소설리스트

전생검신-978화 (975/1,615)

978====================

사신지혼(四神之魂)

솔직히 말해서 이제 와서 진소청과의 무력우위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예전에 초기의 진소청을 꺾는데는 성공했으며 28회차에 이르도록 계속 수련을 하면서 나는 절대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내가 진소청을 상대로 진심으로 싸울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만족감조차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진소청을 이겨봤자 무의미했기에.

그러나 나는 진소청의 눈빛에서 뭔가 다른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저건 그저 대련을 통해 호승심을 충족시키려는 순수한 눈빛이 아니다.

' 무슨 생각이지?'

진소청이 나를 암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하지만 내가 보아왔던 진소청은 아무리 이광의 명령이라 해도 암살을 시도할 녀석이 아니다. 아무리 스승이라지만 황제를 암살하라는 명령에 따를 정도면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것이다. 결국 내 입장에서는, 지금 내게 대련을 신청하는 진소청의 속내를 알아내기 위해 대련에 응하는 셈이었다.

나는 연무장으로 나와서 진소청과 마주 섰다. 또한 나를 호위하는 시위나 금의위등을 모두 물리고 주목하는 시선을 없앴다. 대신 제갈부와 망량이 멀리서 날 관찰하는 건 놔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 우선은 창(槍)을 쓰지."

덜컹

내가 잘 정련된 은빛 창을 근처 장병대에서 꺼내자 진소청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 폐하께서는 검사(劍士)이지 않습니까?"

" 자네의 창술을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어서."

" 알겠사옵니다."

검으로 싸우면 너무 쉬운 싸움이니 일부러 창을 써보는 것도 있었다. 또한 상대의 실력을 대련으로 재어보고자 한다면 같은 병종인 편이 훨씬 좋았다. 창을 그리 많이 연마하지는 않았으나 내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사소한 숙련도는 중요치 않았다.

스으

나는 뇌신류의 창술 정자세를 잡은 채 진소청과 마주섰다. 내 몸이 어린아이의 몸인지라 진소청과 체격차이가 많이 났지만 그럼에도 자세는 마치 거울로 비친 것처럼 똑같았다. 나는 이 상태로 진소청과 마주서자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 얼마만에 진소청과 창으로 대련해보는 건지 모르겠군.'

치리링...

정적 속에서 서로의 의념이 부딪힌다. 나는 현 시점에서의 진소청이 독고성과 비슷하거나 종이 한장차이로 더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딱 내가 파악했던 진소청이었지만 다음 순간, 진소청이 선공을 가해오면서 나는 놀랐다.

피잉!!

' 찰(札)!'

너무 정직하면서도 단순한 찌르기.

진소청도 분명 내가 더 고수라는 건 짐작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단순한 공격을 해 오다니? 적어도 몇 번은 감아치면서 헛점을 노릴거라 생각했기에 되려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당연히 찰을 나(拏)의 수법으로 걷어내며 공격의 방향을 틀었다.

까가강 까강

몇 차례 진소청과 창극을 마주치며 격돌하자 청명한 음이 울려퍼졌다. 내공으로 내가 압도적으로 위에 있기 때문인지 진소청의 손에는 점차 피로감이 몰리는 게 보였다. 굳이 내 깨달음과 절학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이미 내공에서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부웅 -

' 다시 찰?'

진소청이 기를 모으는 듯 하더니 재차 찰의 수법으로 공격해 왔다. 찰이라고는 해도 결국 창술의 기본찌르기인지라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수법으로 튕겨냈다. 란나찰이란 지극히 단순한 창술의 기본이므로 마치 돌고도는 듯한 상생상극이 존재했다. 찰을 쓰면 나로 감거나 튕겨낸다는 건 창술을 배운지 1년도 안 된 초짜도 아는 사실이다.

터엉

그러나 진소청은 반발력을 공중제비로 무마시킨 후 세 번째로 다시 찰을 시도해서 공격했다. 나는 진소청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 빠르긴 하지만 이런 단순한 공격이 절대지경의 고수에게 통할거라 생각하나!'

같은 공격을 세 번이나 한다는 것은 상대를 바보취급하는 셈이다. 나는 약간 화가 나서 이번에는 반격까지 해서 진소청을 쓰러뜨리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내가 이번에는 나(拏)에 이어서 파고들어 진소청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피잉 -

" ......!!"

쏴악

나는 무언가 엄청나게 빠른 반격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간 걸 깨닫고 전율했다. 그리고 진소청의 가슴을 뚫으려던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뭐, 뭐지?'

분명히 진소청은 찰의 초식을 반격당해서 헛점투성이였다. 아무리 고수라도 저 정도 빈틈을 무마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나는 시원스럽게 반격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반격을 하는 순간, 마치 광속(光速)과 같이 어마어마한 창격(槍擊)이 내게 재반격을 해온 것이다! 이런 초식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헉... 헉..."

진소청은 방금 전의 재반격으로 진을 다 뺐는지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창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 ... 이것이 제 대답입니다, 폐하..."

" 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방금 전 제 절초에는 '두 걸음'이 부족했습니다. 폐하를 상대로 두 걸음을 끌어내려면 죽을 고비를 다섯 번은 넘겨야 하니... 폐하께서 이기신 겁니다."

" ......"

진소청의 말이 맞다. 방금 전 가슴이 철렁하긴 했으나 내게 있어서 큰 위기는 아니었다. 재반격의 위력이 두 단계 정도 높았다면 나로서도 목숨이 위험했겠지만 아직까지는 내게 송곳니를 들이댈 수준이 아닌 것이다. 다만 절대지경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소청의 창술은 나이에 비해 초월적인 경지라 할 수 있었다.

'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놀랍지는 않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진소청이지 않은가.

일 년 만에 절대지경에 도달해도 난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진소청이 말했다.

" 이 절초는 뇌신류의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셨던 제 임시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겁니다."

본론으로 들어간 것인가.

' 이걸 보여 줄려고 내게 대련을 요청했나 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히 절세무공이지만 뇌신류의 것은 아니군."

" 이 절초의 이름은 칼라리의 비전(秘傳), 사티야드라타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절초를 총 36개 전수받았으며, 수련기간이 짧아서 그 중에서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다섯 개 정도입니다."

" ......?"

사티야드라타?

중원어가 아닌 생경한 이름의 절초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예전에 범어(梵語)를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 그 자는 천축인(天竺人)이었나 보군."

" 그렇습니다."

" 십이율에 천축인이 있었을 줄이야..."

정말 뜻밖의 일이다. 게다가 진소청을 가르친 걸 보면 절대지경의 고수가 틀림없지 않은가. 세상은 넓으니 절대지경의 고수가 또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만 하필 십이율에 천축인 절대고수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내 말에 진소청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닙니다."

" 아니라니? 그대와 이광, 극호 등은 모두 십이율의 지원을 받아서 단기간에 강한 무력을 가진 게 아니었나."

극호는 지금 내상을 심하게 입어서 혼절한지라 의식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렸다. 진소청 외에는 진실을 들을 자가 없었다. 그러자 진소청이 말했다.

" 십이율과 손을 잡은 건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스승은 그 전에 방문했으며 우리를 가르치는 이유는 인과율(因果律)을 조정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 ......?"

무슨 소리야?

나는 진소청의 말의 앞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먼 발치에서 듣고 있던 망량이 가까이 와서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 즉 스승이 먼저 당신을 방문해서 가르쳤으며 그 자는 십이율 측의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군."

" 그렇습니다, 재상."

" 인과율이라! 황제폐하를 죽여야 한다는 이유로 당신들을 가르친 것이오?"

진소청은 망량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 천기(天機)를 관찰했더니 중원대륙에서 거대한 힘이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통일되어 가는 걸 염려하여 중원으로 왔다고 하셨습니다. 지나친 힘이 밀집되면 인과율이 혼란스러워져 필멸자들이 도탄에 빠질 거라고 하시면서... 또한 주군을 잃은 친구가 섣불리 중원에서 학살을 벌일 것을 염려하셔서 그 자의 횡포를 막을 역할으로 우리 뇌신류 무인들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 ......"

나와 망량은 서로의 눈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지금 진소청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혀 뜻밖의 상황이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 3의 인물의 등장!

제 3의 인물은 천축인 절대고수인데다가 십이율과는 관련이 없는 제 3자였다. 게다가 동기를 들어보면 인과율과 필멸자를 언급하고 있었으니 틀림없이 반쯤 초월적인 존재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소청에게 물었다.

" 그 자의 이름은?"

" 스승의 이름은 크리슈나라고 하셨습니다."

" ......"

크리슈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내가 기억이 날락말락하고 있을 때 망량이 알겠다는 듯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 그렇군. 그러면 그 자에게서 가르침을 받던 중 십이율이 손을 잡자고 제안해 온 것이오?"

" 그렇습니다."

" 크리슈나라는 자가 십이율과의 만남을 주선했소?"

"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께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신 건 고작해야 석 달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 후 홀연히 떠나가 버리셨고 나중에 전대 청룡인 이광 스승님께서 십이율과 손을 잡으셨습니다."

" 이광이... 흐음."

망량은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 크리슈나라는 자는 술법(術法)도 사용할 수 있었소?"

" 네. 신수(神獸)도 타고 다니셨습니다."

" 일의 전모가 보이는군."

그렇게 중얼거린 망량이 내게 말했다.

" 폐하.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물어봐야 할 듯 하옵니다."

" 그렇군."

망량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 물어보면 내 체면이 깎이기 때문에 일부러 망량이 내게 눈치를 주며 배려해준 것이다. 나는 이제 들을 건 얼추 들었다 생각했기에 진소청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 청룡 진소청. 이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이 든 이유가 무엇이지?"

" ......"

" 나는 그대같은 자를 알고 있다. 어떤 신체적 정신적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자라서 고문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지. 그런데도 배후의 전모를 솔직히 털어놓은 건 짐에 대한 충심(忠心) 때문인가?"

"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건 폐하께서도 아실 겁니다."

" 어... 그렇겠다만..."

진소청의 말투가 단호해서 내가 입맛을 다시자 진소청은 올곧은 목소리로 말했다.

" 저는 십이율과 손을 잡는 게 뇌신류를 살리고 백련교에 복수하는 길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엇나간 게 분명한 길이지만 저는 차마 전대 청룡, 스승님의 선택을 직접 말리지 못했습니다."

" ......"

" 스승님께서는 십이율이 저를 호위해 줄 테니 안심하고 청룡의 자리를 얻어 잠입하라 하셨지만, 저는 스승님의 집착을 끊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알 것 같다.

이광은 백련교에 복수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걸 하려 했을 것이다. 크리슈나가 그들에게 힘을 줬으니 더욱 자신감도 붙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폭주하는 이광을 곁에서 지켜본 진소청은 틀린 길이라는 걸 직감하고 내게 솔직히 털어놓고 있는 것이리라.

' 이 정도면 흑요석을 줘도 되지 않을까?'

나는 손이 근질거렸지만 망량이 옆에서 눈치로 제지했다. 그리고는 망량이 말했다.

" 뇌신류 고수들에게 무공을 가르친 크리슈나란 자는 보통 인물이 아닌 신인(神人)이오. 그가 석 달만 가르치고 난데없이 사라진 이유를 알고 있소?"

" 친구를 막으러 간다 하셨습니다."

" 친구가 뭐 하는 자요?"

" 그건 말하지 않았습니다."

" 뭐, 대충 짐작은 가지만..."

망량이 말을 이었다.

" 진소청! 당신에게는 십이율의 감시와 도청의 술법이 걸려있을 가능성이 있소.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철저하게 검사하고자 하는데 동의하시오?"

" 알겠습니다. 허나 폐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 무엇이오?"

진소청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폐하께서 뇌신류의 종사시라면... 백련교주를 결코 용서하지 마십시오."

" 뭐?!"

털썩

진소청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 뇌신류의 정영(精靈)들이 백련교를 제패한 뇌신류종사인 폐하께 가장 간절히 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 자는 뇌신류의 수천 무인과 죄없는 양민들을 학살한 괴수이옵니다. 그 자를 벌하여주십시오. 그것만 확실히 말씀해 주신다면 이 진소청, 몸과 영혼을 폐하께 바치겠나이다."

" ......"

뜻밖의 말에 내가 멈칫하고 있을 때 망량이 나 대신 부채를 쫙 펼치며 말했다.

" 물론 그러실 것이오! 앞으로는 황제 폐하를 도와 스승의 어긋난 길을 막는데 전력을 다하시오."

" 알겠사옵니다."

" 따라오시오."

이윽고 진소청은 망량과 제갈부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갔다. 아마도 십이율의 감지술법을 꼼꼼하게 잡아내는 작업을 거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소청의 말의 여운 때문에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 백련교주를 벌하라고...'

확실히 뇌신류에게 있어서 백련교주는 불공대천의 원수이다. 내가 백련교주를 아군으로 하고있다고 하더라도 백련교주가 과거에 쌓은 업(業)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백련교주가 뇌신류를 추방할 때 수많은 고수를 학살하고 심지어 죄없는 뇌신류 하위소속의 양민들까지 죽인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련교주는 현재 내 전생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동료 중 한 명일 뿐만 아니라 진공가향을 위해 노력하는 자이기도 하다. 백련교주를 내쳐서는 도저히 안될 지경이다. 백련교주가 아군이 됨으로써 내 전생이 수십 년은 과정을 단축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정상적인 뇌신류 무인이라면 생애를 걸고 토벌해야 할 최종악역이 바로 백련교주이지만, 지금 와서 내게는 소중한 동료이기도 한 모순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와서 백련교주를 내친다는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 내게 백련교주의 죄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 ......"

문득 나는 깨달았다.

용서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인과(因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그 시대의 당사자 뿐.

나는 방관자이며 외인(外人)이다.

전생자인 시점에서 필멸자인 그들의 숙명에는 섣불리 의견을 말할 수 없다.

' 나도 내 목적을 위해서 그저 백련교주를 이용하고 있을 뿐인가...'

그 때였다.

쿠르르릉 - !!

갑자기 진소청을 데려간 쪽에서 거대한 폭염과 빛이 흘러나왔다. 내가 급히 멸혼보를 써서 그 쪽으로 날아가자, 거기에는 빛의 광막(光幕)에 둘러싸인 진소청이 허공에 둥실 떠 있었고 망량과 제갈부가 그를 경계해서 술법으로 결계를 치고 있었다. 또한 뒤늦게 제갈유룡도 찾아왔으며 백련교주도 도착했다.

" 망량, 어찌된 것이오?!"

" ... 백웅. 이 상황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건 바로 당신이오. 화안금정을 쓰시오."

파앗

나는 그 말에 재빨리 화안금정에 힘을 불어넣어 진소청을 관찰했다. 그러자 광막 내부에서 진소청을 둘러싼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그것의 형상은 마치 거대한 새(鳥)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이상한 것은 그 새는 온 몸이 칠채(七彩)로 빛나고 있었으며 발톱이 세 개였다. 내가 관찰한 것을 망량에게 이야기하자, 망량이 말했다.

" ... 제길. 호위란 게 그런 의미였군... 십이율주, 정말 대단한 놈..."

" 망량. 뭔가 짐작가는 게 있소?"

" 시해지술로 대충 알아보았소."

잠시 후 망량이 이를 악물더니 외쳤다.

" 백웅. 저건... 봉황(鳳凰)의 가호이자 화신(化神)이오!!"

뭐?

후와아아아악

그 순간 진소청을 둘러싼 광막이 크게 홰를 치는 듯 했다. 날개가 돋아난 듯한 광막이 서서히 사라지려 했고, 그 모습을 본 제갈유룡이 급히 부신술을 부리며 주문을 외웠다.

" 서천암룡부(西天暗龍符)여! 신수의 움직임을 제약하라!"

위잉

제갈부 또한 전력을 다해서 술법을 펼쳤다.

" 낙혼별부(落魂別府)!"

파바밧

두 명의 최상위 술법사들이 동시에 전개한 부신술의 결계는 삽시간에 새하얀 부적의 빛으로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광구가 부적에 둘러싸여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싶을 때였다.

위이이이 -

봉황이 한 줄기 피리소리 같은 소리를 흘렸다.

퍼버벙!

콰광!!

" 커헉!"

" 크으윽."

신력(神力)의 폭발!

제갈유룡의 양 팔이 터져나가며 피부가 산 채로 벗겨지며 혈관을 드러냈다. 또한 제갈부도 내상을 입었는지 선혈을 토해내며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제갈유룡은 피칠갑이 된 상태로 피를 꾸역꾸역 흘리며 말했다.

" ... 아무리 곤륜 대라신선의 술법인 서천암룡부라도... 신수에겐 상대가 안 되는군... 후... 후후..."

풀썩

제갈유룡이 기절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백련교주가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 백웅이여. 시간을 벌겠다... 방법을 찾아다오.]

쿠구궁!!

[ 오오오오...]

백련교주의 원영신이 무한의 내공으로 기운을 밀집하며 봉황의 광막을 견제했다. 그러나 봉황은 그 압박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홰를 치면서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고, 백련교주는 그 상승을 막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압박을 받는 듯 했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 망량. 이 상황이 어찌된 거요?"

" 상식적으로 이광이 가장 아끼는 제자를 적진 한가운데에 보냈다면 그만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오. 그리고 어설픈 호위로 진소청을 보호하느니, 그에게 최강의 신수인 봉황의 가호를 불어넣은 거겠지... 그건 아마 십이율주의 제안일 테고."

" .......!!"

십이율주는 봉황을 그렇게 까지 부릴 수 있단 말인가?

" 저걸 놔두면 눈뜨고 진소청을 놓치게 되오... 틀림없이 봉황의 화신이 십이율의 본거지인 신시까지 진소청을 배달할 터."

나는 기가 막혔다.

" 큭... 봉황 본체도 아니고 화신일 뿐인데 저렇게 강하단 말이오?"

" 봉황을 부리면 해신조차 물리칠 수 있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결심한 듯 말했다.

" 백웅! 방법은 두 가지요... 그냥 진소청과 함께 저 광구를 베어버리는 것. 그렇게 하면 봉황의 본체에도 타격이 갈 터, 유리해질 것이오. 본체에서 직접 힘을 전해받지 않는 한 저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없으니까."

" 또 하나는?"

" 또 하나의 방법은 그냥 저걸 놓아주는 것이오..."

" ......"

" 잘 선택해야 하오. 어쩌면 십이율주는 저 화신을 이용해서 더더욱 황궁을 휘저으려 할 수도 있소."

베어버리던가 놔주던가 인가.

" 후우..."

그 순간 나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 그래... 이 수밖에 없군.'

나는 검을 들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고, 백련교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비키시오."

[ 알았다.]

백련교주가 비키는 순간, 나는 검뢰를 뻗어서 봉황의 광막을 베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절대지경의 의념으로 진소청만큼은 베지 않도록 신경을 써 두었다. 마음만 먹으면 폭포도 벨 수 있는 지경인데 이 정도 조정력은 당연한 것이다.

스컹!!

의념천주가 작용하며 봉황의 광막에 감돌던 신력을 물리쳤고, 광막은 마치 알껍질이 잘려나가듯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봉황의 가호가 신비스러운 소리를 내며 하늘로 튕겨 올라가려 했다.

키이이이 -

' 역시.'

역시 광막을 베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봉황의 가호가 진소청의 몸을 통째로 뒤덮으며 빛의 덩어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빛줄기로 합체해서 곧이어 날아가려 할 듯한 모습이었다.

위기상황 그 자체! 하지만 나는 대충 이럴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는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 될까...? 되겠지!!'

기다린다...

합쳐질 때까지.

우웅

' 왔다!'

절기(絶技)

만상지투(萬象之偸)

나는 진소청과 봉황의 가호가 합쳐지는 순간, 만상지투를 운용해서 의념천주를 굳혔다. 그리고 의념천주는 고스란히 [진소청]만을 봉황에게서 훔쳐오도록 설정되었다. 내 손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순간, 진소청은 봉황에게서 떨어져서 내 곁에 와 있었다.

' 훔쳤다!'

만상지투 성공!

휘오오오 -

봉황의 가호는 잠시 후 빛으로 변해서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밑에서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 휴우우...'

찰나의 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만상지투의 시간이 안 맞았다면 진소청은 진소청대로 빼앗기고 내 손은 봉황의 가호에 분쇄되어서 못쓰게 되었으리라. 만상지투가 없었다면 진소청을 뺏기는 걸 결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기절해 있는 진소청을 잠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미안하지만 뇌신류의 염원을 들어주기엔 여유가 없어."

스윽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정리해 주시오. 그리고 진소청과 극호가 회복되면 그들에게서 모든 무공내력을 알아내 주시오. 크리슈나란 자에 대해서도."

" 알겠소."

" 또 하나... 대명제국의 대군을 요동 국경에 모아주시오.."

흠칫!!

망량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준비하겠소."

" 전면전은 벌이지 않을 생각이오. 하지만..."

"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소. 당신이 무슨 선택을 하든 우리는 따르겠소."

" 고맙소."

전쟁까지는 벌이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저 병력을 과시해서 요동의 국가들과 고려에 압박을 넣는 것만으로도 십이율주의 입지에 위협을 줄 수 있겠지. 이런 방법까지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십이율주 또한 수단방법을 안 가린다는 걸 확인한 이상, 나도 똑같이 나가줄 수밖에 없다.

" 십이율주..."

나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 좋아, 어디 붙어보자고."

이렇게 된 이상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을 쓰러뜨리겠다.

이 전생(轉生)의 흐름이 내게 세상의 패주(覇主)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면... 그렇게 해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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