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77화 (974/1,615)

977====================

사신지혼(四神之魂)

내 말에 장내가 크게 얼어붙었다.

이광은 딱딱한 표정으로 버티려 하고 있었지만 크게 동요했음을 그 균열에서 알 수가 있었다. 체면 때문에 유지하고 있으나, 당장이라도 고함을 지로그 싶은 표정으로 보였다.

그리고 극호가 짜증을 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 듣자 듣자하니 너무 제멋대로군! 뇌신류의 종사라는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 ...잘 알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나는 극호를 보고 괘씸한 마음보다는 도리어 대견하다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홍길동이 절대지경의 고수인 걸 그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런 홍길동이 십 초 만에 찢겨죽은 걸 보고도 당당하게 나선 것이다.

' 극호 녀석. 정말 입이 찢어져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군.'

동시에 극호가 생각보다 수준이 높아서 방금 전 대결의 본질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 아무리 나라도 절대지경의 홍길동을 정면으로 상대한다면 최소 삼백 초 이상을 호각으로 겨루게 되겠지만 치명적인 빈틈과 방심을 잘 노린 덕을 본 것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 나는 이미 녹월을 비롯한 귀혼일파에게 종사(宗師)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뇌신류의 모든 검법(劍法)을 익혔으며 교주의 자격인 뇌신검무(雷神劍舞)를 극성으로 익혔다. 또한 이 대륙의 황제이기도 한데 나보더 더 뇌신류 종사에 어울리는 자가 있는가?"

" ......"

극호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표정은 내가 말한 게 진실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나 정도의 실력이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나는 극호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뇌신검무를 전개했다.

쩌정!!

천뢰기(天儡氣)가 몰아치며 검무에 맺힘과 동시에 쏜살같이 뇌신검무의 초식을 광풍처럼 몰아쳤다. 당연히 뇌신검무를 수천 번도 넘게 연습했기에 한 치의 오차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검무를 본 극호의 얼굴에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그것은 저알로 내게 종사의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으로 보였다.

이광이 갑자기 버럭 외쳤다.

" 황제여! 어둠의 세력과 결탁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무슨 사악한 수법으로 우리 유파의 무공을 얻어냈는가! 통탄할 일이구나."

" 뭐라고...?!"

나는 이광이 내 뇌신검무의 성취를 못 알아볼 리가 없는데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혹스러웠다. 설마 자존심까지 버린 건가 생각했지만, 이어진 말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넌 이미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사악한 존재들이 세계의 이면에 꿈틀거리는 걸 알게 된 이상, 그런 헛소리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라!"

버럭 외친 이광이 자신의 창을 뽑아들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렇군. 십이율주에게 뭔가 들은 건가? 십이율과 손을 잡으면서 이면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사악한 마법을 사용해서 뇌신류의 무공을 쓸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사실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초상기인을 잘만 이용하면 그런 일도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광이 내 무공을 보고도 완전히 부정해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라 나는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이윽고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광을 설득하는 대신에 당초 생각한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 흥!"

타닷

멸혼보(滅魂步)

나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이광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가 달려들자마자 옆에 있던 극호가 마찬가지로 멸혼보를 써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그 순간 멸혼보 비기 천광(天光)을 시전해서 많은 환영을 만들어내었다. 극호는 내 천광을 보자 놀라는 듯하더니 마주 천광을 시전 했다. 삽시간에 우리 주변은 새파란 환영이 마치 청뢰(靑雷)가 날뛰듯 번쩍거렸다.

그리고 나는 극호의 천광이 못 막는 부분을 즉시 알아채고 그 안으로 짓쳐 들어서 이광의 등 뒤로 돌아갔다. 이광은 그 순간 자신의 창을 날려서 내게 반격했지만 나는 그 반격을 가볍게 피해내고는 그의 목 뒤편에 점혈을 찍으려 했다.

위잉!!

그 순간 옆에 있던 십이율 고수들이 끼어들어서 어검(御劍)과 강기를 날려왔다. 나는 십이율 놈들의 실력을 알아채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 제길... 이 새끼들 좀 하네.'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이 상태에서 점혈을 찍으려다가는 내가 도리어 못 빠져나갈 위기라, 나는 점혈은 포기하고 유연하게 공격을 피하면서 이광의 다리를 한 번 걷어차 주었다.

터엉

" 큭."

쉬쉬쉭

내가 원래 자리로 돌아옴과 동시에 이광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죽거렸다.

" 한쪽 무릎은 꿇게 했군. 다른 쪽 무릎은 황실에 대한 충심(忠心)으로 꿇는 게 어떠한가?"

" ......!!"

이광은 대노(大怒)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와의 실력차이를 깨달은 듯 입술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그의 안광이 파들파들 떨리는 걸 즐겁게 지켜보던 나는 근처에 있던 다른 십이율의 고수들에게 말했다.

" 보다시피 나는 뇌신류이니 이건 뇌신류끼리의 집안문제. 외인(外人)들은 이만 여기서 물러나는 게 어떤가?"

" ......"

네 명의 고수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들 중 아름다운 흑발의 청년이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되겠군요, 폐하. 저희는 오늘 끝까지 청룡무관을 도우러 왔으니, 외력은 도리어 그 쪽입니다."

대답은 익히 예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홍길동을 처치한 무력시위에도 쉽게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기에 나는 잠시 눈썹을 꿈틀거렸다.

' 뭐지? 분명 충격이 있을 텐데...'

절대지경의 고수를 잃었다 하면 아무리 십이율이라 해도 타격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절대지경이란 노름해서 따는 경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무림역사에 길이 남을 지존급의 강함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눈앞에 있는 네 명은 잠시 놀랐을 분 아직도 투지를 잃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홍길동을 잃은 것 정도는 큰 손실도 아니란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냉막하게 말했다.

" 너희가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정체를 밝혀라."

" 밝힐 이유는 없을 터... 하지만 당신의 무위(武威)에 존중을 보내고 싶으니 알려드리지요."

청년이 살며시 자신의 가슴 위쪽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 대륙황제시여. 저는 십이율(十二律) 단(檀)의 일족(一族) 중 하나인 양만춘(楊萬春)이라 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양만춘?

' 주 무기는 검인가. 굉장한 고수군.'

자세히 보니 저 놈은 여인처럼 아름답게 생겼으나 일단 성별이 남자인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여자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나는 양만춘이란 이름을 들은 적이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고 이어서 다른 세 명도 자기소개를 하는 듯 했다.

승려와 장군복을 입은 자가 차례로 말했다.

" 저는 단의 일족 중 하나인 의천(義天)이라 합니다."

" 저는 단의 일족 중 하나인 배중손(裵仲孫)이라 합니다."

마지막 한 명은 다소 떫은 표정으로 나를 꿍하게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기소개를 했다. 아무래도 대륙황제에 대한 예를 표하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 ...나는 단의 일족 중 하나인 이성계(李成桂)다."

삼십 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단단한 무관이자 장수처럼 보이는 인상이었다. 또한 주무기가 활인 듯 등에 차고 있는 게 보였다.

이성계?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중요한 게 그게 아니란 걸 깨닫고 말했다.

"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 끝까지 짐과 싸우겠다는 말인 것인가."

양문찬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사옵니다."

" 그대들 중에서 홍길동보다 더 강한 자는 없는 듯한데."

" 목숨을 다 바치는 싸움에서 그런 비교는 무의미하지요. 실날같은 승산이 있어도 물어뜯는 게 전투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희 중 둘 이상이 힘을 합치면 대장로님 못지 않다 생각하니."

상당히 언변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 후후. 입만 살아있는 것 같군..."

" 직접 알아보시렵니까?"

" 그러고 싶지만, 난 여전히 당신들이 외인이라 생각하니 더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순어구를 통해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어떻게 하면 좋겠소?]

[ 백웅. 이혼대법을 나와 연결해 준 덕에 당신의 시력을 공유해서 상황은 파악했소.]

그렇게 말한 망량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 ...더 이상 당신이 직접 나서는 건 좋지 않소. 상대가 저렇게 까지 나오는 이상, 저 자들에게는 당신을 기습해서 죽일 방도가 있을지도 모르오. 당신이 죽으면 다 끝이란 건 알고 있잖소.]

[ 그러면.]

[ 이제부터는 우리 신하들이 해야 할 일이니 명령을 내리시오.]

우회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나는 망량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 ......"

정말 뇌신류를 말로 설득하는 건 힘든 것일까?

나는 고뇌하다가 어쩔 수 없이 손을 스윽 하고 들었다.

" 좋다. 그럼 너희가 원하는 대로 백련교와 맞상대 할 수 있게 해 주마."

타닷!!

내 손짓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청룡무관의 담장을 수십여 명의 인영이 뛰어넘으며 내부에 착지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강대한 내공을 내뿜으며 상대방을 압박했다. 그들 모두가 강호에서는 절정급 이상의 무인으로 불릴만한 백련교의 정예, 성련인(聖蓮人)들이었다.

또한 성련인들의 전면에는 세 명의 가면을 쓴 자들이 앞에 나와서 통솔하고 있었다. 그들을 본 양만춘이 침음성을 흘렸다.

" 으음... 호법사자인가..."

그렇다.

수신류, 화신류, 풍신류의 모든 호법사자가 직접 온 것이었다. 세 명 모두가 무한의 내공인 천령단을 갖고 있기에 강호의 그 누구도 호법사자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여우 가면을 쓰고 있던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이 내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 폐하. 토벌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 ...이광과 극호는 생포하라. 나머지는 모두 죽여도 좋다."

" 존명!!"

파밧

말이 끝나는 순간 성련인들이 거의 동시에 벼락처럼 십이율 단의 일족 4인방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 순간 단의 일족 중에서 아까 의천(義天)이라고 자신을 밝혔던 승려가 가사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와 법장을 휘둘렀다.

해동(海東)

천태종(天台宗)

부동명왕법(不動明王法)

퍼펑!!

" 커허헉."

" 으윽."

의천이 법장을 휘두르자 거대한 무형의 방어막이 생겨나더니 성련인들을 모두 튕겨내 버리고 말았다.

' 결계인가?'

수십이나 되는 강력한 절정고수들의 합격을 튕겨낼 정도면 의천의 법술 실력은 굉장히 높을 것이다. 그러자 곧장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이 눈에 불꽃을 튀기면서 광소를 터뜨렸다.

" 크하하핫!! 결계 따위는 힘으로 깨 주마!"

쿠구궁

용비천이 순식간에 천령단의 힘으로 만들어낸 열 개나 되는 풍탄이 동시에 결계에 맞부딪혔다. 나는 저 풍탄의 위력이 지금의 나로서도 경시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하단 걸 알고 있었기에 결계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풍탄이 의천의 결계에 균열을 주기 시작할 때 갑자기 용비천의 눈을 부릅떴다.

" ...컥?!"

퓨콱

그가 자신의 왼 손을 움켜잡으며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용비천의 장심(掌心)에는 한 자루의 화살이 꽂혀 있었고, 그 화살을 발사한 것은 아까 이성계라고 자신을 밝힌 자였다. 이성계는 차가운 눈으로 용비천을 쳐다보다가 다시 활시위에 활을 매기기 시작했다.

' 저 자는 용비천의 빈틈을 노려서 호신강기를 꿰뚫는 일격을 먹였단 말인가?'

중원에도 그 정도 궁술의 고수는 거의 존재치 않는다. 아무리 용비천이 풍탄을 날리는 중이라 경계가 소홀해졌어도 그의 방심을 노리려면 신의 경지에 달한 궁술 실력이 필요했다. 이성계의 실력은 신궁(神弓)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결계를 깨라!"

이윽고 수신류의 독고준과 화신류의 한백령이 합공하며 의천의 부동명왕법을 부쉈는데 그 때는 양만춘과 배중손이 각자 한 명씩을 맡아서 달려들고 있었다. 호법사자들은 그 자들의 반격에 맞서기 시작했고 강기의 폭풍우가 장내에 휘몰아쳤다.

꽈과광!!

까가강! 콰쾅!!

" ......!!"

짧은 십여 초의 겨룸을 보자 나는 그들이 거의 동급의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등하게 싸우는 걸 보면 결국 호법사자가 천령단의 위력으로 이기긴 하겠지만, 단의 일족에 비해 순수한 무공이 나은 건 결코 아닌 것이다. 그 말은 눈앞의 단의 일족 모두가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절대지경을 앞두고 있는 수준에 이른거나 다름없단 소리였기에, 나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 그 좁은 반도에 무슨 고수가 저리 많단 말인가?'

더 놀라운 일은 잠시 후에 일어났다. 독고준이 순수 무공으로 누르려다가 여의치 않자 뒤로 몸을 빼서 수룡(水龍)을 일으켜서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저건 무한의 내공이 뒷받침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는 반격조차 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기술이었다. 수룡이 등장한 이상 저 자들 네 명이 아무리 용을 써도 승패가 결정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 하아아압!!"

" 이야아압!!"

갑자기 양만춘과 배중손이 버럭하고 괴성을 지르는가싶더니 그들의 몸에 강력한 기(氣)가 솟구쳐 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합체검기(合體劍技)를 써서 수룡에 정면으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꽈릉!

퍼어억

[ 으...으음...]

그리고 독고준의 수룡이 그대로 몸통 째로 터져나갔고 독고준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닌 듯 했으나 그는 약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 천령단의 힘을 정면으로 깨다니...!!]

그렇다.

수룡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무한으로 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상대가 아무리 내공의 고수라도 상대가 되지 않으니 오로지 절대지경의 고수나 그에 준하는 절학만이 수룡을 파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단의 일족 두 명이 쓴 합체기술은 정면 승부로 수룡을 깼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천령단 무한의 내공에 준하는 힘을 끌어올렸다는 소리였다.

' 흐음.'

나는 그 순간 양만춘과 배중손의 몸 주변에 흐르는 광대한 초록빛 기운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서서히 그들의 몸으로 스며드는 걸 보고는 일이 어찌 된 건지 알아차렸다.

' 세계수의 기운인가...!!'

그럼 이해가 간다. 세계수의 힘을 직접 뽑아 쓸 수 있다면 저 자들은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강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저 권능은 세계수 근처, 신시 내에서만 발동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중원에서 쓸 수 있는거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서히 검을 들었다.

' 슬슬 싸울 때가 된 것 같군.'

망량은 내가 직접 나서는 게 좋지 않다고 했지만, 지금 내가 싸우면 압도적인 승기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죽을 위험이 있다고 해도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눈앞의 저 단의 일족 4명이야말로 십이율주가 부리는 핵심수하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점차 투기를 끌어올렸다.

싸우다 보면 백련교주도 합류할 테니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 때였다.

" 황제여. 오늘은 여기까지 함이 어떻소?"

우우웅

갑자기 공간이 열리면서 네 명의 인영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그들 중 한가운데 있는 자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 십이율주. 뇌신류를 이용해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가?"

가운데에 있는 건 개탈을 쓰고 있는 십이율주였으며 그와 함께 나타난 건 삼사(三師)였다. 특유의 전신탈을 쓰고 있던 십이율주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귀하야말로 백련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황궁의 어둠과 손을 잡아서 유례없는 대세력을 만들어서 무엇을 하실 작정이오? 천하통일이라도 하실 생각인지?"

나는 그의 말에 대꾸했다.

" 그런 생각 없다. 이광과 극호를 내놓아라. 그들은 네 흉계에 휘말릴 만큼 잘못한 게 없다."

" 그럴 순 없지. 그들은 뇌신류의 부흥을 위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으니, 어찌 그들을 함부로 내칠 수 있겠소?"

" 네가 꼬셨겠지!"

나는 단호하게 말한 후 극호에게 외쳤다.

" 극호!! 너만이라도 이리로 와라! 너라면 진짜 뇌신류를 위한 길이 뭔지 알 것이다!!"

" ......"

나는 피맺힌 목소리로 설득했다.

" 넌 백련교 모두를 숙적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뇌신류의 권주(權主)로써 백련교를 지배했다. 네 원리와 상충되는 건 없다!"

" 음..."

극호는 크게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벅저벅 걸어서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잠시 후 십이율주의 은하구절편에 가로막혔다. 은하구절편을 옆으로 들어서 극호의 발걸음을 막은 십이율주가 말했다.

" 뭐하는 짓이지? 이제 와서 저 마도세력에 가담하겠다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라구. 저 놈은 나쁜 놈이야."

" 당신 말대로라면 이건 분명 어리석은 짓이오."

극호는 잠시 후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하지만 나는 내가 눈으로 보고 판단한 것만 믿소! 저 자의 뇌신검무는 진짜였소."

극호가 은하구절편을 밀치며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히죽 웃었다.

" 그래. 믿고 싶은 걸 믿어도 좋지."

까강!!

그 순간이었다. 십이율주가 엄청난 속도로 은하구절편을 뻗어 열하난사편법으로 극호를 찢어발기려 할 때, 나는 멸혼보로 달려들어서 십이율주의 습격을 막아냈다. 십이율주의 공격을 막은 나는 으르렁거렸다.

" 치사한 새끼."

" 적이 늘어나는 걸 보느니 죽이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런 놈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까 더 짜증난다!

십이율주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흐음, 오늘은 우리가 진 걸로 해 두지... 또 봅시다."

휘리릭!!

말이 끝나자마자 십이율주는 삼사의 술법으로 모두를 데리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부상을 입은 극호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힐끔 홍길동의 시체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 시체도 사라졌군.'

아무튼 절대지경의 고수를 없애둔 건 큰 소득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십이율주와 크게 부딪혔어도 큰 소득은 없었으리라.

나는 대신에 큰 의문이 들었다.

' 어떻게 놈들은 세계수의 힘을... 중원 깊은 곳인 관중에서까지 쓸 수 있었던 거지?'

이 의문을 풀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격전을 수습한 직후 현 사신위 청룡이 되어있는 진소청을 불렀다. 진소청이 황제와 일대일 알현을 하는 방으로 찾아와서 무릎을 꿇었다.

" 사신위 청룡, 폐하를 뵙니다."

나는 진소청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 진소청. 너를 가르친 게 누구냐?"

" 제 스승은 전대 청룡인 이광입니다."

" 이광이 당연히 너를 십 수 년 간 가르쳤지. 내가 말하는 건 단기간에 네 경지를 끌어올린 스승이 누군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무슨 말씀이신지..."

" 숨길 필요 없다. 이미 두 시진 전, 청룡무관은 토벌되었고 이광은 토벌군을 피해 실종되었다. 극호는 이쪽에서 보호하고 있지."

진소청은 전혀 흔들리는 표정이 아니었다.

진소청은 역모로 올가미를 씌워죽인다 해도 결코 아군을 배신하거나 할 놈이 아니고 위협에 굴하는 놈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접근법을 쓰기로 했다.

" 너와 극호를 책할 생각은 없다. 너희가 원한다면 황궁에서 풀어주겠다. 단, 너희가 알고 있는 걸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 폐하. 말할 것이 없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 그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뇌신류를 위한 것인가, 이광을 위한 것인가?"

" ......"

" 무의미한 죽음이란 건 너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겠지. 십이율과 내통한 이광이 뇌신류의 종맥을 잇는 자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가?"

진소청이 침묵하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진소청. 모든 걸 던져버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단지 그 스승에 대한 이야기만 해 다오."

이혼대법을 써서 억지로 알아낼 수도 있고 흑요석으로 강제로 아군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강제적인 방법을 쓰는 건 진소청에 대한 예가 아니었기에 최대한 말로 풀어보려는 것이다. 또한 흑요석을 쓸 경우 제갈유룡이 말했던 대로 이쪽의 정보가 십이율에 다 넘어갈 가능성이 있어서 자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진소청은 천천히 땅에 박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창으로 서서히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 그렇다면 제게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 뭐?"

" 폐하께서 감추신 무력이 있다는 걸, 곁에서 뫼시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힘을 확인할 수 있다면 폐하께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러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 좋다. 한 번 붙어보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