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76화 (973/1,615)

976====================

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동료들을 모두 데리고 청룡무관 근처의 큰 누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청화루(靑華樓)라고 불리는 누각의 상층에서 청룡무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그래서 지금은 백련교의 성련인(聖蓮人)이 청룡무관을 포위해서 감시중인 것이오?"

[ 그렇다.]

내 옆에 서 있던 백련교주가 함께 청룡무관을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 성련인 오십 칠 인, 그 중에는 삼대무류의 초절정 무인들도 있다. 또한 그들을 통솔하기 위해 삼대 호법사자를 모두 내보냈다.]

" ......"

[ 원로원은 이 누각에 대기 중이며 내 명에 따라 추가투입될 예정이다.]

" 거의 모든 전력이 와 있는 셈이군."

[ 그렇다.]

사실상 백련교가 총력전을 하려고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련교에서 백련교주 혼자서 절반 이상의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삼대호법사자까지 합치면 백련교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성련을 복용해서 막대한 내공을 보유한 성련인에 각 무류의 초절정고수까지 투입되었다면 강호를 몇 번이나 들어엎고도 남을 전력인 것이다.

' 백련교주도 이번 일을 굉장히 심각하게 여기나 보군.'

화신류의 염령 화덕을 이용해서 백련교 고수들이 강호 여기저기를 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력고수들이 본진을 비우는 것은 자칫 근처의 사파나 괴인들이 마음대로 행동할 빌미를 줄 수 있었다. 사실 기껏 일개무관의 감시 때문에 백련교가 통째로 온다는 건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다르다.

배후에 '누가' 있는가 - 그 누군가가 어떤 세력인지에 따라서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질 지경이라면 백련교주의 대응이 옳았다. 나는 말없이 한참동안 청룡무관을 내려보다가 함께 와 있던 제갈사에게 말했다.

" 제갈사. 이광은 무슨 생각일까?"

"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지. 하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다."

" 왜?"

" 너한테 괜히 말했다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 적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지..."

" ......"

" 넌 안 되면 죽으면 그만이야. 그러니까 모든 걸 일단 부딪혀보고 판단하는 게 나은 거다. 그런 점에서는 네 바보같은 성격이 도리어 낫달까... 어설프게 경륜이 쌓이면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 백웅. 중요한 건 네 마음이다. 넌 이번 생에 청룡무관을 몰살시켜도 괜찮겠나? 이광은 물론이고 진소청과 극호를 모두 죽여도 괜찮겠어?"

제갈사가 중요한 걸 물어오자 나는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모르겠어."

나는 너무 무른 건가?

청룡무관이 외세의 개입으로 강화되었다는 건 거의 확실한데도 거기까지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때 내 동료였던 자들이고 앞으로도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함부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이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진소청과 극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무른 생각이 도리어 다른 동료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와서 계속 복잡한 상념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미호가 말했다.

" 백웅. 그냥 그들에게 흑요석을 줌이 어떠하느냐?"

" 흑요석을...?"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자들이 외세와 어떤 거래를 했든간에 네가 전생자(轉生者)라는 걸 생각하면 너와 손잡는 것 이외의 선택은 없지 않느냐. 하물며 그들은 모두 과거에 네 동료가 되었던 전력이 있었으니, 큰 거부감도 없겠지."

" 흐음."

" 이런 식으로 백련교와 부딪혀서 유혈사태를 조장하는 것 자체가 힘낭비라고 생각하느니라. 청룡무관 고수들을 죽일 각오도 없으면서 이럴 필요가 있느냐? 죽일 거면 확실히 죽이던가."

" 그건 그래... 흑요석을 줄까."

미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흑요석을 건네주는 게 차라리 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켠에 서 있던 제갈유룡이 반대하고 나섰다.

" 아니, 이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그건 또 왜지?"

" ... 뇌신류 고수들의 정신에 만일 보고들은 모든 것을 전송하는 장치나 술법이 걸려있다면, 흑요석을 주는 게 어떤 결과를 유발할지 짐작하고 있는가."

아!

내가 헉하는 표정을 짓자 제갈유룡의 말이 이어졌다.

" 네가 저번에 제천대성을 통해서 천계에 모든 기억을 전송한 것과 같은 효과가 벌어지겠지. 하물며 지금은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실정. 책사로써 그런 위험한 결정은 결코 하라고 권유할 수가 없다. [기어오는 혼돈]에게 전생자의 정보가 흘러들어갈 위험성이 너무 크다!"

" 그렇겠군... 흑요석은 쓸 수 없겠어.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지?"

" 저들을 죽이려는 각오가 없는 거라면, 생포할 수밖에 없지. 그걸 위해서 여기까지 우리 모든 전력이 와있는 것이다."

" 흠."

" 명령을 내려라. 동이 트기 전에 결판을 내는 게 옳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내가 직접 가 볼게. 그리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병력을 투입하겠다. 진솔하게 대화를 해 보고 싶어."

" 네가 직접? 너무 위험하다. 다른 부하를 시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 아니! 직접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내가 어떤 주장을 하든 뇌신류는 결코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 무슨 근거냐."

" 나도 뇌신류이기 때문이지."

" ......"

장내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으나 개 중 백련교주는 납득하는 듯 했다.

[ 그렇군... 이해했다.]

저벅

나는 호위나 동료를 하나도 대동하지 않고 청룡무관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암운이 깃들고 있는 청룡무관의 정문에 서 있는 문지기, 방일을 마주쳤다. 방일은 본래 건성으로 서 있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군기가 바싹 들어서 문 앞을 지키는 중이었다. 방일이 말했다.

" 얘야. 동냥이나 구걸은 안 되니까 썩 물러가라."

" 큭큭..."

나는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이 아주 예전, 방일과 처음 만났던 그 날의 말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옷을 입지 않고 평상복을 입고 있으니 그는 내가 황제라는 건 전혀 알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방일에게 말했다.

" 방일. 어쨌든 이번에는 고수가 될 수 있게 힘 좀 써주마."

" 애새끼가 무슨 개소리를..."

방일이 버럭 화를 내며 내 멱살을 잡으려 했으나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를 점혈해서 기절시켰다. 방일은 마치 잠들듯이 앞으로 쓰러졌고 나는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 내가 방일의 처지였다면 별로 다를 것도 없었겠지.'

왠지 녀석에게는 동병상련같은 감정이 종종 느껴진다. 나는 그에게 뛰어난 스승을 붙여서 고수로 만들어줄까 생각하며 청룡무관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이광이 있는 건물 앞으로 가자, 거기에는 이미 두 명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광이 예전과는 달리 다소 냉막한 어조로 말했다.

" 황제폐하. 여기까지 어인 행차이십니까. 미처 뫼시지 못했나이다."

정중한 말과는 달리 굉장히 기도가 가라앉아 있었다. 저것은 발톱을 숨긴 야생호랑이보다 더한 살기를 잠재시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이광은 이 주변을 둘러싼 백련교의 포위를 이미 눈치챈 것이리라.

" 이광."

나는 그를 힐끔 본 후 극호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극호에게 말했다.

" 극호. 한 가지 물어보지."

"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폐하."

" 만일 그대는 백련교와 현 황실이 일심동체(一心同體)라 하여도 끝내 백련교에 대한 복수의 칼을 놓지 않을 생각인가? 도저히 승산이 없어도 말인가."

흠칫

극호는 단숨에 본질을 꿰뚫듯 질문해오자 약간 당황한 듯 했다. 왜냐하면 뇌신류의 모든 계승자 중에서 가장 흔들리지 않는 복수심을 유지하고 있는 게 바로 극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호는 이윽고 평정을 찾으며 대꾸했다.

" 그렇습니다, 폐하. 저의 복수는 개인의 의기(義氣)일 뿐만 아니라 스승의 원수를 갚는 일. 제 목숨을 걸고 포기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 그 말은 반역(反逆)을 하겠단 말인가?"

극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 눈빛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눈꼽만큼도 없어보였다.

" ... 황제께서 제 앞을 막아서지 않는다면 저 또한 황상께 칼을 들이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회적으로 표현했으나 극호는 이미 모든 걸 각오하고서라도 복수할 뜻을 밝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극호가 이런 녀석이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광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이광. 넌 누군가와 손을 잡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 세력에 대해 밝히고 이쪽으로 솔직하게 투항한다면 결코 너와 청룡무관에 해가 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내 이름을 걸고 말하겠다."

" ......"

이광은 서서히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말했다.

" 원래는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운을 띄운 이광이 말을 이었다.

" 백련교주와 호법사자의 힘이 현재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백련교가 국교(國敎)로 인정받았으니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황상을 돕는 비밀스러운 세력의 힘 또한 백련교에 못지 않다는 정보를 얻었으니 미칠 지경이었지요.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자살하는 길 또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뇌신류 천 년 종맥(宗脈)을 이어받은 자로써 면이 서지 않습니다."

" ......"

" 폐하. 이만 물러가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가 백련교와 싸우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국교(國敎)와 국사(國師)가 침범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황제가 어디 있던가?"

" 그렇습니까..."

휘리릭!!

그 순간 이광의 앞에 다섯 명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처음 보는 자들이었으나 나는 단 한 명만은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기에 눈을 꿈틀거렸다.

' 홍길동!'

역시 이광의 뒤에는 십이율이 있었던 건가?

십이율의 대장로이자 절세고수인 홍길동은 빙글거리며 웃더니 내 앞까지 걸어오며 말했다.

" 걱정 말게, 이광. 이 철없는 황제는 우리가 데려가서 인질로 쓸 수 있게 해 주지."

홍길동과의 거리가 삼 장까지 가까워지자 나는 입을 열었다.

" 네 실력으로 나를 잡을 수 있을까?"

" 하하하. 기껏해야 무술 좀 하는 아해가 호위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난 게 잘못이다."

쉬익!!

반약판롱인(般弱阪朧印)

홍길동의 손에서 개세절학이 펼쳐지며 내게 덮쳐왔다. 이 절학에 숨겨진 묘수가 대단히 많은데다가 수법이 정밀해서 초절정고수라 해도 꼼짝없이 당할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반약판롱인은 뛰어난 무공일지언정 홍길동의 진신절기는 아니었기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 정말로 방심했군, 홍길동.'

그렇다면 그 목숨 받아가겠다.

후와앗!!

그 순간 나는 홍길동의 장력 정면에 그대로 절대지경의 검뢰를 날려서 반으로 쩍 갈라버리고 말았다. 홍길동은 그 찰나에 내가 그의 장력을 베어버리자 심각하게 당황한듯 눈이 크게 흔들렸고, 급히 자신의 공령백팔환(空靈百八幻)을 시전해서 환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 큭!"

쉽게 놔줄 줄 아는가.

위이잉

검뢰(劍雷)

뇌룡천강지변(雷龍天降之變)

그러나 때는 늦어서 내 검뢰의 궤도에는 그의 진체(眞體)가 정확하게 걸렸고, 나는 검초의 변화횟수를 회전시키며 급격히 늘림으로써 절대 피할 수 없게끔 했다.

그도 나도 이번 일격이 적중당한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홍길동에게는 이제 정면으로 강기를 집중시켜서 방어하느냐, 아니면 피해를 줄이느냐의 선택이 남았을 뿐이었다.

' 자,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나는 내심 웃었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완벽히 막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목숨이 갈려버릴 수도 있었다. 후자를 택한다면 손목을 확정적으로 잘리는 대신에 더 이상의 피해를 무마할 수 있으리라.

찰나지간에 홍길동이 입술을 질끈 깨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전자를 선택하며 자신의 등 뒤에서 의념의 날개를 강하게 뻗어냈다.

공령백팔환(空靈百八幻)

오의(奧義)

염공익(念空翼)

의념으로 만들어낸 환상의 날개가 그의 정면을 막아내며 내 검뢰에 정면으로 맞섰다. 저것은 새파란 꼬맹이인 내 공격에 손목을 잘리며 피하는 굴욕을 겪느니, 차라리 정면으로 파해해 버리겠다는 자존심의 발현이었다.

투둥

절대지경 고수의 오의답게 염공익이 펼쳐지자 내 검뢰는 잠시 큰 방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공격이 막혔는데도 실망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다.

' 하하하하...!!'

설마...

이렇게 쉽게 십이율 소속 절대지경 고수의 목을 딸 수 있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절대검뢰(絶對劍雷)

무량단(無量斷)!

쿠콰콰콰

내 검에 형형하게 빛나는 검뢰가 수십 배나 더 강하게 빛을 내뿜었고 어마어마한 기력과 함께 무시무시한 뇌력(雷力)을 내뿜었다. 그 기세가 잠시 지진을 일으켰고 이윽고 검극(劍戟)의 한 점에 뇌력이 집중되어서 고요해졌다.

그 정적을 느낀 홍길동이 그제서야 뭔가 잘못된 걸 알아챘는지 눈을 부릅떴다.

" 이... 이건...!!"

홍길동은 필사의 발악으로 백팔환을 운용해서 현실과 환상을 분리시키려 했으나, 나는 그의 환상이 분리되는 틈조차도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로 꽉 옥죌 수가 있었다.

' 흥. 놓칠 줄 아느냐.'

초절정고수에게는 저 수법이 잘 통하겠지만 같은 절대지경에게는 자칫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게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나는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외쳤다.

" 뒈져라!"

퍼벅!

그의 단말마가 새어나오기 전에 내 일섬(一殲)이 홍길동의 목을 쳤다. 홍길동은 죽을 때까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목뼈가 분쇄된 채 허망하게 모가지가 허공을 날았다. 나는 일섬을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상하로 쫙하고 검을 그어버렸다.

퍼버버벅

검뢰의 힘을 이기지 못한 홍길동의 몸뚱아리가 오체분시되며 피분수가 터져나갔다.

" ......!!"

" 헉!!"

" 대... 대장로님이!!"

뒤에 서 있던 십이율의 네 고수들이 경악하는 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이광과 극호 또한 크게 놀랐는지 주춤거리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였나?

이런 힘을 믿고 내게 까분 것이었나?

나도 모르게 내면에서 말이 흘러나온다.

" 이광, 당장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 ......"

나는 빙긋 웃었다.

" 뇌신류의 종사(宗師)가 네 앞에 있지 않느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