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71화 (96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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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성진은 그 날부터 사대무류를 개발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는 무공은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달마의 제자였기에 절정고수의 소양을 지니고 있었고, 호월이 모은 무공천재들과 협력해서 사대무류의 기반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신기(神氣)가 흐르는 맥을 잇기 위해서는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의례용(儀禮用) 무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례용이라 함은 실전용이 아닌 보여주기식 무공을 의미했다. 당연히 비실전적이기에 약할 수밖에 없었고, 현 무림에서 약한 무공은 익힐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실전에 맞춰서 무공을 만들 경우 신기를 담아낼만한 맥을 잇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 모순 때문에 성진이 고민하자 호월이 말했다.

" 고민할 것 없네. 그 무공과 술식의 요체를 만들어서 내게 알려주게. 그럼 최대한 조건에 맞춰서 무공을 만들어 보지."

" 사형. 우리가 아무리 전승해달라고 떼를 써도 무림인들은 현실주의자들이며 실전을 중시합니다. 약한 무공은 생존에 도움되지 않으니 전승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백련교 사대무류가 계속해서 무림의 지존위를 지니고 있으리란 법이 없으니..."

성진은 호월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기에 불경한 말투를 되돌린 상태였다. 호월은 팔짱을 끼며 고민했다.

" ......"

" 신기의 맥이 통하는 경지에 오르려면 엄청난 수련과 재능이 있어야 할 터인데 보여주기용 무공을 그 경지까지 연마할 자가 있을지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무림지존인 호월이 무공을 다듬어 준다면 보여주기용이라 해도 수련을 하면 나름대로의 성취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전에 맞춘 절정 무공을 연마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그런 시간낭비를 할 자가 있을까?

성진의 고민은 당연한 것이었다. 말이 좋아서 무림이지 힘을 추구하는 강자들이 모여서 피튀기게 살육을 벌이는 격전지였고, 이런 무림에서 빛좋은 개살구같은 무공은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자기 후계자가 약한 무공을 익혀서 죽기를 원하는 스승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호월이 말했다.

" 사대무류는 백련교의 권력과 교주위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것이다. 정 그게 걱정이라면, 우리가 만들 의례용 무공을 [교주의 자격]으로 명시하면 되겠지."

" 교주의 자격으로요?"

" 그래. 무파(武派)이지만 동시에 백련교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는 상징성을 지니게 하면 될 걸세. 각 사대무류에서도 그 무공을 대성한 자만이 교주가 될 수 있다고 하면 되겠지."

" 으음. 일부러 의례용 무공을 대성하게끔 강요하는게 본교를 약해지게 만들지는 않을까요."

" 그럴 리가. 백련교에는 앞으로도 천하의 인재들이 천 년 동안 구름처럼 몰려들 것일세. 무공천재에게 그 정도를 요구하는 건 무리한 게 아니지."

" 그것도 아유타의 예언입니까?"

" 그렇네."

가볍게 대꾸한 호월이 말을 이었다.

" 실제로도 사대신기의 신력을 쓸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자를 교주라고 인정해줄 수는 없지. 사대신기의 힘을 쓸 수 없다면 절대지경 수준에서는 [옛 지배자]와 싸워서 살아남기 힘들어. 순수하게 좌(座)에 도달하는 자가 백련교의 후세에 등장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 ... 사형. 전부터 묻고싶었던 겁니다만."

" 무언가?"

성진은 호월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무신(武神)과 좌(座)라는 건 대체 무엇이지요? 사형도 아유타도 마치 그런 존재가 실존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제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한 적이 없습니다."

" ......"

" ... 알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요."

성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과거에 정신적으로 몰려서 사형제들에게 못난 꼴을 보였다고는 해도 이제는 열과 성을 다해서 백련교에 종사하고 있는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진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호월이 말했다.

" 사제. 언젠가는 이해해줄 날이 올 것일세..."

" 그것도 예언이었으면 좋겠군요."

성진은 훗하고 웃으며 넘겨버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 사대무류의 기본형은 지난 십여 년간 거의 다 갖춰졌습니다. 사형께서는 뇌신류(雷神流)의 수장이 되실 생각입니까?"

뇌수화풍(雷水火風).

사대무류의 무공은 이미 거의 다 만들어지고 분화된 상태였다. 그걸 익힌 자들 또한 천재였기에 조만간 사대무류가 출범하는 건 기정사실이 되리라. 후계자들은 강대한 사대무류의 무공을 바탕으로 백련교에 난무하는 무림세력들을 흡수하고 제압할 것이고, 그 때부터 신생 백련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호월의 대답은 성진의 예상과 달랐다.

" 아니. 나는 뇌신류를 맡지 않겠다. 무린(無燐)에게 맡기겠다. 또한 나는 모든 교(敎)의 대소사에서 물러나서 제의만 맡을 생각이다."

호월은 즉시 잠정적인 은퇴를 선언해 버렸다. 성진이 당황했다.

" 네? 뇌신류의 무공이 가장 사형의 원래무공인 광룡파천황(狂龍破天荒)과 가깝고 강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린은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서 이 혼돈을 홀로 헤쳐나가기에는..."

수신류, 화신류, 풍신류를 이어받는 종사들은 다들 원래부터 강호의 초절정고수였으며 일대세력의 주인이었다. 애초부터 현 강호의 최강자인 팔대고수(八大高手)로 이름을 날리던 맹자들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뇌신류를 전승하는 초대종사가 될 초무린(肖無燐)은 오랑캐라고 불리는 북방민족 출신인데다가 오로지 무공재능 하나만 보고 호월이 제자로 받아들인 경우였다. 초무린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 갓 넘었으므로 날고 기는 다른 무류의 최절정고수들과 부딪히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성진은 당연히 호월이 무림지존으로서 뇌신류를 도맡으면서 초무린이 더 클 때까지 지켜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호월은 미소를 지었다.

" 무린은 현재의 나를 상대로 일백 초를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광룡파천황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이미 자기만의 경지를 개척하고 있지. 이미 백련교는 물론이고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다."

" ......!!"

" 그 아이는 천재다. 천재에게 있어서 세월은 큰 의미가 없다.."

성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

' 겨우 약관을 넘은 초무린이 그 정도 경지에 오르는 게 가능한가?'

그러나 성진의 걱정은 말 그대로 무의미했다.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이 지나 사대무류가 출범하고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뇌신류의 초대종사이자 백련교의 부교주인 초무린은 뇌신류를 향한 모든 도전을 혼자 힘으로 꺾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무림지존이었던 광룡신군(狂龍神君) 호월 다음가는 고수임을 스스로 입증했고, 차기 천하제일인이 될 팔황뇌신(八荒雷神) 초무린의 전설이 강호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

일련의 과정을 백련교의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성진은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재능의 격차라는 게 이토록 클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구 무림의 천하팔대고수로 꼽히던 다른 무류의 수장들은 초무린을 꺾지 못하고 일패도지했을 뿐만 아니라 초무린은 스물 셋이 되기 전에 가볍게 절대지경에 올라버렸다.

' 사형이 뇌신류에 가장 애정이 깊어서 무슨 생각인가 싶었는데... 처음부터 뇌신류에 차기 천하제일인을 점지해줄 생각이었구나.'

뇌신류를 걱정하는 건 처음부터 쓸데없는 일이었으리라.

그 후 호월은 완전히 무림에서 은퇴해 버렸고 신생백련교의 교주이자 뇌신류의 종사인 팔황뇌신 초무린이 백련교 사대무류를 이끌게 되었다. 물론 사대무류의 모든 고수들에게 핏줄과 문파여부를 막론하고 교주도전권이 주어져 있기에 앞으로의 세상에서 누가 백련교주가 될지는 알 수 없으리라. 아마도 사대무류가 돌아가면서 교주직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성진이 다소 안심이 되어서 말했다.

" 사형. 초무린이라면 무신의 좌란 곳에 도달할 수 있겠군요. 이런 식으로 계속 천재와 무림지존을 배출한다면 사형의 뜻도 머지않아 이뤄질 겁니다."

" ... 아니. 그건 안일한 생각이다, 사제."

" 네?"

" 초무린은 좌에 도달하기 힘들겠지. 그는 일개 무림지존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 그는 천하에서 제일 가는 무공의 천재인데... 게다가 명실공히 절대지경의 고수이지 않습니까."

호월은 우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 [그 곳]에 도달하는 조건은 단지 재능뿐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험난한 길이 될 수밖에... 또 다른 조건을 충족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강대한 [힘]을 가진 자는... 그 조건을 충족하기가 힘들어."

" ......?"

" 뇌신편(雷神鞭)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초무린보다 강한 고수가 후대에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초무린보다 약한데도 무신의 좌에 도달할 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백련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출될 수도 있겠지."

" 그런... 그러면 우리는 사대무류를 뭐하러 만들었단 말입니까?"

" 최소한의 대비지. 신인(神人)을 마냥 갈구하기 보다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 ......"

" 얼마 전 황우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를 데려오겠다."

" 잘 다녀오십시오."

" 내가 없는 동안 교를 살펴주게, 사제."

" 맡겨두십시오."

성진은 호월을 송별했다. 호월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저 사형제를 데려오는 일에 지나지 않았으며 천하에 호월을 상하게 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비록 지금은 달마의 사망과 함께 사도의 권능을 잃어버렸지만 한때는 마왕이라 할 수 있는 팔부신중을 상대로 홀로 버텨내던 인간최강자였다.

그러나 - 황우를 찾으러 간 호월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기다림이 일 년을 넘어서 삼 년, 오 년에 이르렀을 때 성진은 크나큰 불안감을 느꼈다. 아무리 중원이 넓다지만 장소까지 특정해서 찾아갔는데도 이리도 오래 걸린단 말인가?

결국 성진은 초무린을 찾아가서 말했다.

" 백련교주. 전대교주를 찾으러 가겠네. 교를 잘 부탁하네."

" 스승님의 행적을 찾으면 알려주십시오, 사조(師祖)."

" 알겠네."

" 호위를 대동시킬까요?"

" 그럴 필요는 없네.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네."

" 모쪼록 조심하시길."

초무린의 송별을 받은 성진은 호월의 마지막 행적을 뒤쫓아갔다. 그리고 호월이 찾아낸 황우의 본거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상한 느낌에 불안감을 느꼈다.

' 이 곳은 장백산(長白山)... 황우 사형이 이런 동방(東方)의 외지에는 뭣하러 왔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이 곳에는 세계수가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장백산에 도착한 성진은 호월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중 신시(神市)를 지배한다는 세 명의 신적 존재, 삼사(三師)와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 중에서 운사(雲師)라고 불리는 자가 성진에게 말했다.

" 호월이란 자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다만 황우는 단(檀)의 일족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

단의 일족?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성진은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 뭐라고...?! 당신들이 뭔데 백련교인인 황우 사형을 멋대로 받아들인단 말이오."

" 원한다면 황우란 자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다."

" ... 안내하시오."

성진은 삼사의 안내를 받아서 황우를 만났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황우를 만난 성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사형. 어찌... 젊어졌단 말이오?"

그랬다.

원래 황우는 장수의 술법을 써서 노화를 멈추긴 했으나 그 성취가 느렸기에 사십대 후반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황우는 도리어 더욱 젊어져서 약관의 앳된 청년처럼 보였다. 회춘의 술법 또한 존재하긴 했으나 그 술법은 천계에서도 극히 일부의 대라신선들이 다룬다고 들었기에 필멸자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청년의 모습을 한 황우는 훗하고 웃으며 성진에게 말했다.

" 돌아가. 나는 단의 일족이 되었으니 이 곳에서 계속 살 것이다."

"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소...!! 분명 호월 사형이 이 곳에서 사형의 종적을 찾아왔을 터, 호월 사형은 어디 갔소?"

" 난 모른다."

" 거짓말하지 마시오!"

황우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술법으로 '약속'이라도 해줄까? 나는 정말로 사형을 본 적 없다."

" 해 주시오."

" 짜증나는 새끼."

이윽고 황우가 술법으로 자신의 [말]을 공증하자, 성진은 충격을 받았다. 언령으로 자신의 말을 공증한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누구도 섣불리 하지 않았으며 강요에 따르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불문율까지 존재했다. 강요한 자를 습격해서 죽여도 정당방위로 칠 정도였다.

' 정말로 황우 사형은 호월 사형을 본 적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호월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난데없이 호월이 실종되어서 황망해하는 성진을 보던 황우가 말했다.

" 호월사형과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님께서 돌아가신 시점에서 백련교는 끝났어. 너도 단의 일족으로 들어오지 그러냐?"

" 병신같은 소리 작작 하시오. 이 곳에서 회춘을 시켜주니 개처럼 충성하는가 보군."

" 크크. 고작 회춘이라... 달마의 제자였던 내가 고작 그 정도에 만족할 줄 아느냐? 이 곳에서 뭘 하는지 알게 되면 넌 놀라자빠질 것이다."

킬킬 웃던 황우는 서서히 술법을 부려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물론 성진은 황우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은 조급함으로 가득찼다.

' 호월 사형을 찾아야 해.'

성진은 그 날부터 천지를 빼곡히 뒤지고 다녔다. 그 와중에 귀호선괴는 물론이고 마(魔), 이족, 용족 등과도 쉴 새 없이 부딪혔으며 죽을 위기도 숱하게 넘겼다.

그렇게 칠십 년이 지났다. 성진은 곁에 있던 백룡(白龍) 백능파에게 말했다.

" 저기가 백련교요."

성진은 어쩌다보니 동정호의 용왕의 딸인 백능파와 가약을 맺어 살게 되었고, 그녀 뿐만 아니라 많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천하를 돌아다녀도 호월을 발견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백련교에 다시 한 번 들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백능파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가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지 않을까요?"

" 상관없소. 초무린은 그대로 있을테니."

성진의 예상대로였다. 초무린은 환골탈태를 거쳤기에 아직 젊은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련교주의 자리에서는 진작에 물러나서 원로원에서 은거하고 있는 중이었고 현재의 무림에서는 전설의 노괴 팔황뇌신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성진은 초무린을 만나서 말했다.

" 미안하네... 아직 호월 사형을 찾지 못했네."

" ......"

" 아무리 생각해도... 호월 사형은 장백산으로 가는 도중에 변을 당한 듯 하네."

" 그렇습니까... 때마침 잘 오셨군요,"

" 무슨 말인가?"

초무린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성진 사조. 저는 곧 천계(天界)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 뭐... 라고? 설마..."

" 천계의 대라신선이 저를 찾아와서 투선(鬪仙)이 되겠냐고 했습니다. 저는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 ......"

" 인간세상의 부귀영화는 더 이상 지루하기 짝이없고... 무림에도 적이 없습니다. 천계에 가면 강자들이 많을 테니 지루한 시간을 때울 수가 있겠지요."

" 천계는 그저 중간관리자에 불과하네. 자네는 필멸자보다는 나은 존재가 되겠지만 결국 종말의 시간에 파멸을 맞이하는 건 같아."

"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 권태를 극복하고싶군요..."

" ......"

그리고 얼마 후, 초무린은 훌쩍 우화등선(羽化登仙)해버리고 말았다. 말이 우화등선이지 실질적으로는 천계와 계약을 맺어서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고 영혼을 불멸체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성진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가고 있다...'

무력감이 그를 휩쓸고 갔다. 달마의 곁에서 전생자와 함께 할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감이었다. 고작 필멸자에 불과한 성진으로서는 이면의 세계에서 삼황오제와 겨루기는 커녕 겉으로 보이는 무림세계조차 어찌하기 힘든 것이다.

성진은 자신이라도 나서서 백련교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앞으로도 높은 경지에 이른 백련교 고수가 천계로 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내심 결심했다.

' 나만의 새로운 유파를 만들자. 그리고 내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익힌 다양한 술수와 기술을 백련교에 주입시키고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백련교 사대무류는 무(武)만이 중점이 되어 있었기에 성진은 자신의 술법을 가미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성진은 암중에서 몰래 풍신류(風神流)의 수장 위치를 차지했으며 풍신류에 자신의 기술을 접목시켰다. 또한 풍신류를 근간으로 사대무류를 통합하여 백련교주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암중모색했다.

성진의 새로운 유파는 귀혼일파라고 칭해졌다. 성진은 이제 백련교에는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때문에 더 강력한 백련교를 만들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아유타 공주는 예전에 예지능력의 반작용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그러나 - 그런 성진의 시도는 십여 년 후 뇌신류의 사대종사 위치에 오른 천재, 주능통에 의해 좌절당했다. 심계는 물론 무공까지 뛰어난 주능통은 백련교의 배후에서 암약하는 귀혼일파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계속해서 성진을 견제했다.

백여 년도 안되는 사이에 치열하게 내부경쟁을 하며 2번이나 종사를 갈아치우며 성장해 온 뇌신류에서도 불가일세의 천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능통은 귀혼일파의 흑막인 성진의 위치를 알아내서 일대일로 결투를 신청했다.

" 성진 사조! 귀혼일파를 만들어서 백련교주 자리를 노리다니 치졸하구려. 백련교를 어지럽혀서 뭣에 쓴다는 말이오?"

"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소리냐. 넌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고작 권력때문에..."

성진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주능통은 자신의 진신병기인 판관필을 치켜들며 말했다.

" 닥치시오. 개념이 없는 사조라면 새파란 후배에게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겠지!"

" 뭐, 뭐라고. 감히 사조에게 도전하겠단 말이냐."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성진에게 주능통이 으르렁거렸다.

" 그게 바로 뇌신류요! 잘못된 건 사숙이고 사조고 박살내고 말겠소!"

그리고 벌어진 일대결전.

퍼버벙

" 크아아악..."

성진은 결국 뇌신류 4대종사 주능통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뇌신류 절기 뇌왕천경파(雷王天驚波)에 적중당한 그는 땅에 드러누운 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 이럴수가... 내 나이의 반도 살아오지 않은 애송이에게 지다니...'

성진의 술법실력은 대라신선에 필적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나 주능통은 그런 성진의 술법을 모조리 신법으로 회피하면서 유효타를 먹였다. 그리고 주능통의 가공할 실력을 확인한 성진은 뇌신류의 잠재력에 몸을 떨었다.

' 이미... 나와 사형이 만들었을 때의 뇌신류가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천재들이 계속 뇌신류의 신공을 다듬어서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구나...!!'

주능통 또한 멀쩡히 이기지는 못했기에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는 피가 섞인 침을 퉷하고 바닥에 뱉으며 말했다.

" 말해두지만 내가 만일 멸혼보(滅魂步)를 극성으로 익혔다면 당신에게 한 대도 안 맞고 이겼을 것이오."

" 주... 주능통. 너의 그 멸혼보는 평범한 무공이 아니다. 신기(神氣)를 강신(降神)시키는 비법을 어떻게 터득했느냐?"

성진은 믿기지 않았다. 멸혼보는 초기 사대무류 뇌신류에 아예 없었던 무공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무공의 등장일 뿐만 아니라 의례용 무공이 아닌데도 신기를 끌어내서 쓸 수 있는 듯 했다. 그러자 주능통이 말했다.

" 내가 독학으로 개발했소. 잘은 모르겠지만 강력한 힘을 이어받는 흐름이 있는 것 같더군."

" ......"

인간의 감각으로 그게 가능한가?

' 천재들의 시대가 이어지는구나...'

그 순간, 성진은 뇌신류의 역대천재들이 시간과 함께 이어져나가며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듯한 환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호월이 사대무류를 창시한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 신무(神武)...'

정말로 이들이라면 신을 쓰러뜨릴 무예를 언젠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달마의 비원(悲願)을 언젠가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주륵...

그렇게 생각한 성진은 눈물을 흘렸다. 주능통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운다고? 그렇게 세게 안 때렸소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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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일세."

" 흠."

성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 내가 아홉 명의 여인을 만나서 인연을 맺었다거나 이후 수백 년간의 구질구질한 과거사를 이야기해봤자 지금의 백웅 자네에겐 도움이 되지 않겠지."

성진은 그 이후로 주능통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귀혼일파의 무공에 멸혼보를 더했으며, 동시에 환(幻)과 술(術)을 사대무류에 접목시키며 술법사의 맥을 잇게 되었다. 또한 주능통과 약속하여 두 번 다시 백련교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야욕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성진의 과거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말했다.

" 예전 이야기는 이제 대충 알겠소. 근데 그래서 신기(神氣)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오?"

과거사를 들으면서 가장 애매한 게 이것이었다. 호월의 행적같은 건 나중에 따로 찾아보면 되는 거겠지만 신기의 존재가 가장 중요했다. 왜냐하면 사대무류의 무공에 숨겨져 있는 막강한 잠재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성진이 말했다.

" 나도 사실 신기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네. 다만 신기 자체는 혜가 사형의 마지막 유산이나 다름없지."

" 소림사의 시조인 혜가는 사대신기의 정령들에게 잡아먹혔다고 했잖소. 그래서 진실을 알아내지 못한 채 큰 피해를 봤다고..."

" 그랬지. 허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네."

성진은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 혜가 사형은 정령들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들었네. 그리고 그 단계에서 정령들에게서 신의 힘을 이어받는 통로와, 그 통로를 잇는 법을 전수받았지. 혜가 사형이 호월 사형에게 그 방법을 전달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의식이 먹혀서 정신적으로 사망하고 만 것일세."

" 흠..."

" 우리가 사대무류의 무공을 만들 때 신기를 강신시키는 비법을 무공에 접목시키고 싶었지만 실전성 있는 무공에는 접목시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네. 워낙에 무공과는 상관없는 이질적인 영역이었기 때문이지."

혜가는 왜 죽은 것일까?

알 수 없는 이유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것도 의문이었으나 나는 일단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 즉... 사대무류의 무공에서 신기를 강신시키는 비법이란 건 결국 사대신기에 봉인된 고대신의 힘을 끌어내는 것이구려."

" 그렇네."

성진이 말했다.

" 자네의 기억속에서 종종 정체를 드러냈던 강신의 능력은 고대신의 권능에서 비롯된 것일세. 우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존재들의 힘을 쓸 수 있는 것이지."

" ......!!"

" 특히 멸혼보는 틀림없이 고대신의 힘을 불러오는 것일세. 뇌신류 뿐만 아니라 다른 무류에도 그런 능력이 있지."

그랬던 것인가!

나는 어느 정도 사대무류의 실체에 다가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귀중한 정보를 얻었기에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자 성진이 아리송하다는 듯 말했다.

" 다만... 자네가 해신을 베었던 일격이라던가 백련지종 천뢰신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

" 무슨 말이오? 그것 또한 고대신의 힘, 사대신기의 능력이 아니오?"

"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흑요석을 통해서 보았던 그 기억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네. 그 힘은 신기와는 또 다른 능력이야. 나로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 ......"

" 아마도 호월 사형이 알고있을 것 같네."

뭐지?

수수께끼가 풀렸는데 또 쌓인 듯한 기분이었다.

' 흐음. 좀 더 알아봐야한다는 거군...'

한 번에 모든 게 풀릴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 그럼 나와 함께 갑시다."

" 그리 하지."

성진은 함께 일어서며 말했다.

"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황제가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생각인가?"

" 그럴 리가."

나는 성진에게 말했다.

" 백련교주에게 함께 갑시다."

현재의 백련교주, 독고운천.

그는 신녀(神女)이자 제사장의 혈맥이자 모든 백련교의 비밀을 전승한 존재였다.

틀림없이 이 이야기를 전해주면 뭔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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