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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70화 (96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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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호월이 혜가를 죽였다니?!

성진과 아유타는 호월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성진은 낯빛이 딱딱하게 굳은 채 말했다.

" 정말이오?"

" 그렇다."

" ... 왜 죽였소."

" ......"

호월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말했다.

" 나는 백련교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도 나를 따라와라."

" 백련교에? 사형이 교주가 될 생각이오?"

" 필요하다면."

성진은 호월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 무슨 이유로 혜가 사형을 죽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겠소!"

" 마음대로 해라."

호월은 성진의 말을 가볍게 흘려넘기며 아유타에게 말했다.

" 아유타.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를 따라오겠느냐?"

" ......"

아유타는 깊이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알았어요."

" ... 아유타!!"

" 대신 따라가면 혜가 사형을 죽인 이유를 알려준다고 약속해 주세요."

아유타의 말에 호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약속하지."

호월은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서서 소림사를 걸어서 나가버렸다.

아유타는 성진에게 말했다.

" 사형. 같이 가요. 호월 사형이 경공술을 쓰지 않고 있으니 따라오라는 뜻이에요."

" ... 모르겠어."

성진은 머리를 감싸쥐며 말했다.

"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 혼란스러운 건 이해해요. 하지만 지금 모든 단서를 쥐고 있는 건 호월사형이에요. 혜가 사형을 죽인 이유를 알아야 해요."

" ......"

"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림사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아유타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성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혜가의 죽음을 납득할 수가 없었고, 호월이 자신을 속이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은 채 아유타에게 말했다.

" 나는 소림사에 머물겠다. 네가 사형을 따라가라."

" 알겠어요. 아무쪼록 잘 지내세요, 사형."

아유타는 떠났다.

' 아아아...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진은 내면의 혼란을 주체하지 못하고 매일마다 소림사의 독방에 갇혀서 고문이나 다름없는 자기수양을 반복했다. 모든 것이 자신을 떠나간다는 괴로움과 어둠이 그의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종종 소림사를 침범하는 사파무림인이나 도적떼를 격퇴하면서 소림사에 십여 년 이상을 머물렀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금 호월이 찾아왔다. 아예 머리를 밀어버리고 중의 가사를 입은 채 불전에서 염불을 외우고 있던 성진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 사형. 애꾸가 되었구려."

그랬다. 호월은 환골탈태를 예전에 겪어 나이를 먹지 않았으나 흉험한 격전을 치른 듯 몸 여기저기에 흉터가 가득했고 눈 한 쪽이 사라져서 애꾸의 사내가 되어있었다. 팔짱을 낀 호월은 성진에게 말했다.

" 성진. 너는 백련교에 와야 한다. 나를 따라와라."

" 헛소리...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관여하고싶지 않소."

목탁을 천천히 세 번 두들긴 성진이 말했다.

" 그 시간은 그저 꿈같은 것에 불과했소. 나는 더 이상 세상의 어둠과 맞서싸우고싶지 않단 말이오. 평화로운 수양의 시간을 보내려 하니, 나를 내버려 두시오."

호월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 십여 년 전에는 네게 권유를 했다. 그러나 오늘은 권유가 아니다."

" 그러면? 나를 힘으로 데려가겠단 말이오?"

" 필요하다면."

성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노갈을 터뜨렸다.

" 어디 해 보시지!"

성진 또한 십 년 동안 논 게 아니었다. 자신만의 술법을 갈고닦아서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렀고, 불경을 깊이 탐구하는 동안 술력(術力)이 진일보한 상태였다. 그의 손에서 칠채(七彩)의 구름이 뿜어져 나오며 오리(五理)를 가득 감쌌으며, 무시무시한 환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성진은 지금의 자신이라면 대라신선과도 술법전투를 해볼 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 그건 성진만의 생각이었다.

쿠콰쾅

" ... 커, 허허헉..."

정확히 삼 초식이었다. 호월은 성진의 술법을 모두 기합만으로 파해해버리고 가볍게 제압해 버렸다. 하늘과 땅 차이의 역량차이를 확인한 성진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 너무 강해...!!'

실력차이가 더 벌어져 버렸다. 호월의 힘은 저 천계의 투선(鬪仙)의 경지를 이미 넘어선 듯 했다. 호월은 땅에 누워있는 성진을 아무 감정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 너는 포기할 생각이냐?"

" 뭘 포기한단 말이오... 백련교의 힘? 권력?"

"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우리는 전생자와 함께 하면서 그게 무엇보다도 의미없고 덧없다는 걸 이미 깨달았다. 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건... 세상에서 오로지 하나 뿐이지."

" ......"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승님의 의지', 즉 진공가향의 의지 뿐.

성진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성진은 호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 사형... 웬만한 신을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던 스승님조차도 결국 인간을 구하지 못하고 진공가향에 실패했소. 우리가 어떻게 한단 말이오? 우리는 전생자가 아니라 필멸자일 뿐이오. 저 천계의 신선조차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자들이오."

" 그래서 포기하는 건가?"

" 그렇소. 스승님은 내게 포기하는 길 또한 있다고 말씀해 주셨소. 나는 그 가르침에 따르고싶을 뿐이오."

순간, 호월의 눈에 슬픈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 사제. 날 따라와 주게. 부탁이야."

" 난 가지 않겠..."

성진은 버럭 외치려다가 멈칫했다. 호월의 텅 빈 애꾸눈에서 눈물이 비어져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석간담의 강철같은 사내인 호월은 평소에 눈물은 커녕 감정변화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기에 저 눈물은 정말로 예상외였다.

호월은 입술을 꾹 깨물다가 말했다.

" 나는 스승님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싶지 않네."

성진은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따라가겠소."

" 고맙네."

" 하지만... 혜가 사형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를 왜 죽였는지는 반드시 말해주시오."

" 알겠네."

성진은 얼마 후 호월과 함께 백련교의 본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백련교의 분위기에 크게 놀랐다.

' 이건?!'

원래 백련교에는 사회적인 약자들과 소수부족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억압받는 약자들이 흐르고 흘러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영토는 넓었으나 서민과 약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부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백련교에는 왜인지 모르지만 무림인(武林人)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최소한 천여 명 이상의 인간들이 무공을 익히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문파(門派)가 세워져 있었다. 으리으리한 전각도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조그마한 무림(武林).

백련교가 지배하는 영토 자체가 무림으로 변해버린 걸 알아챈 성진은 옆에 있던 호월을 쳐다보았다.

" 호월 사형. 무슨 무림인이 이리도 많소?"

" 내가 백련교의 강력한 무공과 비급을 미끼로 그들 모두를 끌어들였다. 내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인정받으니 더 쉬웠지."

" 어째서? 저 자들은 모두 다른 문파이며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는데... 백련교에 이런 혼란이 필요하단 말이오!"

대충 보아도 수백여 가지의 무기술과 문파가 난립하고 있었다. 심지어 저잣거리에서 결투가 벌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강호에서 쫓겨난 현상수배범이나 사파의 마두들도 여기저기에 출몰했다. 물론 정파의 고수들도 그만큼 많았고 은거기인도 셀 수가 없었다. 이런 혼란의 도가니를 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성진이 어이없어하자, 호월이 말했다.

" 사제. 내가 환골탈태를 겪었으나 오백 년 이상은 살 수가 없네. 그 동안 입은 부상도 큰데다가 천계에서도 나를 주시하고 있으며, 기로 수명을 연장해도 한계가 있지. 나는 천 년을 살 수 없다는 말일세. 언젠가 천계의 투선과 싸우다 죽거나 기가 고갈되어 사망하겠지."

" ... 사형은 미륵을 만나서 또 다시 전생자의 동료가 되려 했단 말이오?"

" 그랬네."

성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 엄청난 일을 겪고도 세계의 어둠에 맞설 용기가 남아 있다니! 그 당시에 입은 정신적 상처의 후유증을 아직도 다 회복하지 못한 성진으로서는 호월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 허나 미륵은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야 출현하겠지. 나는 생전에 미륵을 볼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네."

" 사형. 술법을 익히시오. 장수(長壽)의 술법을 익히면 천 년동안 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오. 아니면 요이(妖異)의 정수(精髓)를 받아들여 반요(半妖)의 능력을 가지면 훨씬 안정적으로..."

" 아니. 나는 그 생각을 하던 중 훨씬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네."

" 본질적인 문제?"

" 설령 내가 천 년을 산다고 해도, 전생자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스승님의 힘에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했다는 걸 알지 않은가."

" ......"

" 이래서는 의미가 없어."

그 말이 맞다. 달마의 다섯 제자들의 힘을 합치면 천하무림을 제패하는 건 물론이고 중원의 제국을 새로 건국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 정도 힘은 마도(魔道)의 이면세계에서는 미물이나 다름없었다. 사도의 권능을 지닌 호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들 달마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호월은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 나는 내가 죽고 나서 무엇이 남을지를 생각해 보았네. 그리고... 결국 무(武)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

" 호월 사형. 인간의 무예에는 한계가 있소. 절대지경의 고수라 해도 투선을 당해내기 힘들고 마왕급 존재를 상대하기 힘드오. 그건 답이라고 할 수가..."

" 사제. 나를 따라오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네."

저벅

저벅

호월은 백련교를 가로질러 교주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방에 난립하던 무림인들이 호월을 보면 다들 경외와 공포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호월이 무림지존이 된 건 사실이었던 것이다.

교주전에 도착한 호월이 교주의 좌에 앉으며 말했다.

" 사제는 사대신기가 의식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 모르오."

" 나는 사제가 그 행방을 궁금해해서 본교를 찾아오리라 생각했지. 허나 사제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내 생각보다 더 깊었던 모양이군."

" ......"

" 스승님은 사대신기에 정령신을 봉인시키는데는 성공했네. 그러나 왜인지 몰라도 본래 우리가 목표로 하던 만큼의 힘을 낼 수가 없었지. 스승님이 [혼돈]에게 당한 건 사대신기의 힘이 부족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 힘이 부족하다니... 봉인된 정령신이 힘을 빌려주지 않는단 말이오?"

성진의 반문에 호월이 고개를 저었다.

" 아니. 그들은 계약에 따라 호응하고 신기의 계약자에게 힘을 빌려준다. 다만 고대신의 힘을 완전히 다 쓰지 못하고 기껏해야 1푼의 힘밖에 끌어내지 못하는 게 문제지."

" ......!!"

" 9할 9푼의 힘은 완전히 인과율에 묶여 있네. 스승님이 사대신기를 완전히 썼다면 혼돈의 신을 상대로도 승기가 있었을테지만 그게 안 되었던 걸세."

잠시 우울한 눈빛을 하던 호월이 말을 이었다.

"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인과율의 제약이 없다면 사대신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네. 진정한 의미의 신살(神殺) 무기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일부러 사대신기는 인과율의 제약을 최대한 푸는 쪽으로 계획되었지. 그런데 스승님께서 계획하신 것과는 달리 사대신기는 인과율에 묶여 버렸네."

" ... 나도 알고 있소. 왜 그렇게 된 것이오?"

굳이 호월의 설명을 듣지않아도 성진 또한 술법 관련으로 달마와 많은 대화를 했기에 사대신기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전투에 사대신기가 어처구니없이 약화되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정령신은 우주의 근원소를 다루는 초월적 존재이기에 아무리 [기어오는 혼돈]이라 해도 쉽게 상대할 수 없다.

" 그 이유를 모르겠네. 다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혜가 사형이 노력했지."

" 혜가 사형이 어찌되었단 말이오? 알려 주시오."

" 혜가 사형은 사대신기에 봉인된 정령들과 3년동안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네. 그리고 정령들의 호응을 끌어냈지만..."

호월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정령에게 정신을 침식당해 사대신기에 영혼이 끌려들어갔네."

" ......!!"

"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네. 무리하게 진실을 알려하지 않았다면..."

" 정령이란 존재는 사악한 [옛 지배자]가 아닐 터인데 어찌 그런 짓을...!!"

" 그 자들도 우주적인 존재. 우리 수준에서는 그들을 판단할수도 없고 선악의 구분을 할 수도 없네. 하물며 스승님의 주술으로 강제로 사대신기에 봉인된 상태에서 호의적일 리가 만무했지."

" ... 그랬군."

성진은 진실을 알게되자 허탈함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혜가는 사대신기의 진실을 알아내려다가 희생당한 것이다.

' 내가 빨리 정신력을 회복하고 혜가사형 일행을 따라갔다면 내 술법지식으로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었을텐데...'

성진이 침묵하자 호월은 말했다.

" 사제. 이제 천지간에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사제들 뿐이네. 나를 도와주게."

" 알겠소. 최선을 다해 돕겠소. 하지만... 뭘 해야할지 모르겠구려."

" 아유타가 있는 곳으로 갑세. 함께 이야기하지."

호월은 성진과 함께 아유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성진은 십 년 만에 아유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 ......!!"

아유타는 맹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성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왜... 왜 맹인이..."

" 미래를 엿보려고 한 대가예요."

아유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 하지만 큰 대가를 치른 덕분에 저는 강력한 예지능력을 얻었어요. 앞으로 이 능력을 제 혈맥으로 이어줄 생각이에요, 사형."

" 혈맥...? 설마, 호월 사형의 계획을."

아유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호월 사형은 후대에 신무(神武)에 도달할 단서를 남기고, 저는 예지능력으로 그 계획을 보조할 거예요. 물론 저 또한 천 년을 살기 힘드니 제 혈맥에 능력을 계속해서 전달하겠지요."

" 뭣..."

" 언젠가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 제 후예들은 계속 미래를 들여다볼 겁니다."

" 사형!!"

성진은 호월을 돌아보며 외쳤다.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오? 신무라니...!! 정말로 무예의 힘으로 신에 대적하려는 생각이란 말이오?"

" 그렇네."

" 말도 안 돼! 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경지의 무예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소. 차라리 마도를 연마해서 마력의 극한에 도달하는 게 현실적이오. 그런 망상 때문에 어떻게 사제의 시력을..."

그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호월이 천천히 말했다.

" 망상이 아닐세."

" ......"

"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마(魔)로 마(魔)를 상대하는 건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네. 혼돈은 같은 속성으로 귀일(歸一)하기에 힘의 크기만 키우는 건 궁극적으로 무의미해. 혼돈의 존재를 진정으로 격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위대한 [끈]... 인과율의 근원을 다루는 또 다른 축일세."

" 사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자네가 이해해줄 거라 믿네."

그렇게 대꾸한 호월이 말을 이었다.

" 나는 언젠가 출현할 미륵이 마(魔)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길에 접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둘 생각이네.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계속해서 전승되는 무도(武道)를... 그리고 우리의 의지를 잇는 길을 만들 것일세."

" 길..."

" 사제. 길을 만드는 걸 도와주게."

호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 이 백련교에 모인 천하의 고수들을 억지로 일문(一門)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일세. 그들의 무공 전반을 사대신기에 맞춰서 특화시키고 발전시킬 예정이네."

" 사대신기에 무공을 맞춘다니... 그게 가능하겠소?"

"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일세. 사제가 나를 도와주게. 정확히는 신기(神氣)를 끌어올려서 사대신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하네. 나아가서는 사대신기의 모순까지 해갈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해."

" ......"

호월의 말을 듣고 있던 성진은 주먹을 꾸욱 말아쥐었다.

' 미친 짓이야.'

호월도 아유타도 망상을 하고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삼황오제를 넘어섰던 달마대사조차 혼돈에게 패배하여 영겁토록 소멸당했는데, 필멸자끼리 무술놀이를 해봤자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 줌의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절망을 향해 달려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 너는 전생자가 아니다. 필멸자에게는 포기하는 것 또한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제자가 무한히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달마가 그에게 남겼던 말.

성진은 그 말을 그저 포기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제자가 불행하기를 원치 않은 달마대사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스승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필멸자에게는 포기하는 게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말.

그 말은 - 전생자에게는 포기하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승은 그저 인류를 구원하려는 일념에 수천 번의 전생을 반복했고 - 단 한 번도 포기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타락할 위기 앞에서 최후의 도박을 하는 지경까지 가서야 소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스승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스승을 돕지 못했던 성진은 뼈저리게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에 되돌아올 미륵이란 존재 또한 스승과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 하겠소."

성진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 천 년이 걸리든 이천 년이 걸리든, 미륵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소!"

" 고맙네, 사제."

" 고마워요 사형."

세 명의 사형제는 이 순간 서로 단결했다.

천 년의 세월을 걸고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새긴 것이다.

" 사형. 그 말대로라면 거대한 무맥(武脈)을 네 개 만들어서 전승시키겠단 말인데 그들이 반목하거나 서로 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소."

" 그 말대로일세. 그렇기에 아유타의 예지능력으로 제사장의 일족을 따로 이어지게 만들 생각이네."

" 제사장?"

" 아무리 무력이 뛰어난 자라고 하더라도 미래를 예지하는 일족을 홀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지. 백련교가 엇나가지 않도록 바로 잡아주고 우리의 본래 뜻을 이뤄주려 하게 될 것이네."

" 그렇구려."

" 사제를 받아들였으니 조만간 황우도 찾아서 우리 일에 동참시키면 되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호월이 말했다.

" 오늘부터 같이 연구하세. 사대신기에 어울리는 무공을."

" 사형. 그런데... 우리 둘이서만 그 거대한 작업을 하기엔 역부족이오. 좀 더 무공에 정통하며 절세적인 재능을 지닌 자가 있어야..."

호월은 훗하고 웃었다.

" 이미 나를 도울 만큼 뛰어난 천재들을 네 명 골라두었다네. 내가 천하무림을 일통하면서 발굴해낸 자들이니 천하에서 손꼽히는 절세천재들이지. 그들이 우리와 함께 무공을 연구하며 기본형을 만들어갈 것일세."

" 알겠소. 그런데 그 무맥의 이름을 뭐라고 해야겠소?"

" 사대무류(四大武流)."

호월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뇌수화풍(雷水火風)의 신무(神武)을 잇는 무림사상 최강의 무맥이 될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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