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69화 (96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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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저것]은 무엇인가?

' 어... 어지러워...!!'

성진은 저 어둠의 실체를 도저히 직시할 수가 없었다. 술법으로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고 있으나 도저히 눈을 제대로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대술법사의 경지에 오른 성진의 술법성취를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극히 드물었고, 웬만한 고위이족을 상대할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심지어 팔부신중을 대면한 방금 전에도 본체를 상대로 눈이 아프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성진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격외(格外).

진정한 신(神)의 반열에 이른 존재가 눈 앞에 현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격차가 너무 나기 때문에 직시하기는 커녕, 상대가 이쪽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성진 스스로가 미쳐 죽고 말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성은 물론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저 어마어마한 존재를 인식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 으아아아악...'

털썩

그는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았다. 성진의 눈은 이미 풀려 있었고 두 눈에서는 그렁거리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헛소리가 새어나왔다.

" 헤헤... 죽어... 다 죽는다... 헤헤..."

정신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성진은 눈으로 보고있되 인식할 수 없었고, 자신의 오감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성이 마비되는 걸 넘어서서 마력(魔力)의 독기가 그의 영혼에 침투하는 중이었다. 그저 상대를 직시한 것만으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어찌 성진이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을까?

" 아, 어억. 억."

보이지 않는 무형의 촉수가 성진의 코와 귓구멍에 파고드는 듯한 환상이 느껴졌다. 뇌가 촉수에 농락당하면서 성진의 눈동자가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나 성진이 광기에 침몰하기 직전, 달마대사가 뇌성(雷聲)을 터뜨렸다.

갈(喝)!

" ......!!"

그 순간, 성진은 박살난 정신이 회복되면서 이성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신급의 마력이 그의 영혼을 집어삼키기 직전에 분쇄된 것이다! 어떻게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달마대사가 그를 살려준 것이었다. 달마대사가 그에게로 전음을 보냈다.

[ 성진이여! 아유타를 데리고 이 곳을 빠져나가거라!]

[ 스... 스승님. 아유타가 설마 배신을...]

눈물을 줄줄 흘린 채 간신히 성진이 질문하자 달마가 준엄하게 말했다.

[ 속단하지 말거라! 우리는 처음부터 우주의 광기 그 자체와 싸우고 있었노라. 수많은 인과율이 얽혀있으니, 하나의 개념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의할 수는 없다! 계교(計巧)의 마신에 맞설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의지 뿐이다.]

[ 사, 사대신기는.]

[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가거라!]

[ 알겠습니다!]

파앗

성진은 이를 악물고 술법을 운용해서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있는 아유타를 들쳐업고는 재빨리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어둠]의 존재는 그런 성진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진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잠시 그 앞을 스쳐지나갈 때 [어둠]의 그 눈빛 - 그것은 무한한 무관심이었다.

그 상대에게 있어서 성진의 존재는 벌레 이하.

미물(微物)과 다를 바 없는 성진을 무시한 채 달마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적수는 커녕 공기만도 못한 존재라고 느낀 것이다.

경멸조차 아닌 무관심을 느낀 성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그 처절한 심정을 끌어안고는 아유타를 데리고 장내를 빠져나왔다.

' 스승님...!!'

정말 저런 괴물을 이길 수 있으십니까?

저건 절대 무리입니다.

삼황오제조차도 저걸 이길 순 없을 겁니다.

저런 걸 어떻게...

스승의 힘이 삼황오제 그 이상인 걸 알고 있는 성진이었으나 도저히 지금 상황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진의 힘이 너무 미약하기에 대존재들의 격을 추측할 수는 없으나, 방금 전 보았던 [어둠]은 너무나 격외(格外)의 존재였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달려들어도 저걸 어찌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타다닷

타닷

" 허억. 허억. 허억..."

숨이 찰 정도로 술법을 전개한 성진은 자신이 어느 새 [결계]를 빠져나와서 근처의 성(城)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막 태양이 저물어서 노을이 지고 있었고, 그는 아유타를 어깨에 들쳐업은 채 객잔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는 탈력해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 ......"

도망쳐버렸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라고 달마에게 말해버리고는, 진공가향의 결계에서 도망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결계에서 나와버린 이상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으리라. 이미 이 근처에 [옛 지배자]들이 무형의 화신을 보내어서 잔뜩 독기가 오른 채 포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세계멸망의 의식이 치뤄지는 걸 확인하고는 그 주재자를 없애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들어가려 하다가는 신에게 붙잡혀서 극악한 고문을 당하다가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져버리리라.

이윽고 성진은 오열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으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그는 그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 으아아아아아아!! 스승니이이이임!!! 제발... 제발!!"

죽어주십시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 이 절망과 고통을... 끝내주십시오!'

스승인 달마대사는 전생자. 죽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존재였다. 차라리 그가 죽는 순간 세상이 멸망해 버린다면, 성진은 이 괴로움과 비참함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달마대사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뿐이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곱게 끝났으면 좋겠다.

진공가향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었을 줄이야!

쿠르르릉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1층에 있던 객잔 주인이 점차 어둠과 적염이 교차하는 바깥 하늘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거 참 이상하구만. 회족 사람들이 백련교에 가려다가 다들 도망치듯 중원쪽으로 가 버렸잖아. 백련교에서 뭔 일이 생긴 건가?"

성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회족 사람들은 마도(魔道)에 연관된 일족이 많았기에 이번 일에 대해 큰 계시를 받았으리라. 그리고 예언자의 명에 따라 서둘러 진공가향의 재난을 피한 거겠지.

" 으음... 사형... 어찌된 건가요. 우린 왜 바깥에..."

그 때 아유타가 점차 깨어났다. 멍하니 앉아 있던 성진이 원독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네가 스승님을 배신했느냐?"

" 그게... 무슨..."

" 어둠의 존재와 그 권속들이 만신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결계를 마음대로 뚫고 들어왔다. 팔부신중은 대놓고 본체를 드러냈는데도 인과율의 제약을 받지 않았지. 그게 가능하려면 사전에 누군가가 침투해서 결계를 혼란시키고 놈들에게 유리한 마법을 전개해야 한다. 즉 범인은 우리 제자들 중에 있는데 마지막까지 스승님 근처에 있던 건 바로 너다. 나와 호월 사형은 아니고 혜가 사형과 황우 사형은 계획이 시작되기 전에 탈주했으니 더더욱 아니다."

" ......"

" 어찌... 그런 짓을..."

아유타는 성진의 원망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무슨 말씀이신가요, 사형..."

영문을 모르겠다는 아유타를 본 성진은 그만 화가 끝까지 치솟아올라서 이를 악물고는 외쳤다.

" 배신자! 널 죽이겠다!!"

꽈르릉

성진은 뇌전의 술법을 소환해서 손에 감고는 그대로 아유타를 공격했다. 이 공격을 맞기만 하면 웬만한 요괴들이 일격에 소멸되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이윽고 아유타가 막거나 반격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눈을 감아버리자 당황했다.

' 아, 안 돼...'

퍼억!

아유타가 방어하지 않은 탓에 성진의 공격은 그대로 아유타의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다. 즉시 아유타의 몸에서는 핏줄기가 치솟았으며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성진은 상대가 혼돈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고 제어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술수를 출수했기에 도저히 도중에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 으아악! 살인이다!"

부들부들

밑에서 객잔 주인이 경악해서 도망치고 있을 때 성진은 머리가 하얗게 비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홧김에 사제를 죽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아유타는 슬픈 눈으로 성진을 보며 말했다.

" 사형... 결국 우리 모두가... 신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군요..."

" ... 아유타..."

쿨럭 하고 피를 토해낸 아유타가 말했다.

" 제가 어리석은 탓... 사형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풀썩

잠시 후 아유타는 핏기를 잃고 천천히 쓰러져서 죽었다. 그리고 사제의 심장을 터뜨린 자신의 피묻은 손을 보던 성진은 반쯤 미쳐버리고 말았다.

" 으... 으아아... 아아아아아...!!!"

괴롭다.

삶이 너무 괴롭다.

죽으면 끝이 아닐까?

' 죽자...!!'

성진은 더 이상 죄책감과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손에 술법을 모아서 천령개를 내리쳐서 자결하고자 했다.

파밧!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뛰어들어서 성진을 말리듯 그의 손을 붙잡았다. 성진이 발버둥을 치자 그 상대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 결국 그 예언대로 되는가... 하아..."

" 혜가 사형...?!"

성진은 자신의 자결을 막은 자가 혜가인 걸 알아채고는 경악했다. 소림사에 있어야 할 혜가가 여기까지 와 있다니!

혜가는 씁쓸한 눈으로 성진을 쳐다보다가 순식간에 지법(指法)으로 성진을 제압했다.

금강대정신공(金鋼大正神功)

금강법륜지(金鋼法輪指)

투두둑

순식간에 36개의 요혈을 제압당한 성진은 뻣뻣이 굳어버렸다. 반항할 틈도 없을 정도로 고절한 솜씨였기에 성진은 평소에 혜가가 자신의 실력을 육 할 이상 숨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성진의 무공도 절정수위에 이르러 있었으며 내가고수였으나 혜가의 금강법륜지에 도저히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굳어있는 성진을 잠시 쳐다보던 혜가가 천천히 몸을 숙이더니 이윽고 아유타의 시체에 자신의 손을 갖다대며 무공을 시전했다.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

겁파공무(劫波空無)

우우우웅 -

" ......!!"

그 순간이었다.

현실이 일그러진다고 표현해야 할까? 무형의 기운이 아유타의 몸을 잠시동안 감싸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아유타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버렸다.

" 아아...!!"

아유타 스스로도 살아난 걸 믿을 수 없어서 놀라는 기색이었다. 특히 방금 전 뇌전의 술수로 그녀의 심장과 장기를 통째로 태워버린 걸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성진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아유타는 즉사했는데도 부활한 것이다! 게다가 전혀 부상의 흔적도 없었고 도리어 방금 전보다 더욱 활력이 넘쳤다.

혜가는 불호를 외웠다.

" 아미타불."

" 사형... 이건 대체..."

" 성진 사제. 너무 자책하지 말게. 아유타 사제도."

혜가는 놀라는 둘에게 심유한 눈으로 말했다.

" 성진 사제. 아유타 사제. 지금까지 자네들은 혼돈의 계략에 휘말려 절망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네. 필멸자라면 그 존재의 계략을 피할 수 없지. 이런 일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스승님께서 나를 먼저 내보내셨던 것일세."

" ......"

" 모든 걸 알고 싶다면 날 따라오게."

혜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 스승님이라면 호월 또한 구출해주실 걸세. 소림사에서 그를 기다리도록 하세..."

어찌된 일인 걸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와서 혼돈의 신격들이 도가니처럼 엉켜있는 천암의 제단으로 되돌아갈 순 없었기에 혜가를 따라가야만 했다. 되돌아가봤자 개죽음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혜가와 함께 머지않아 소림사에 도착했고, 사찰에서 멍하니 명상을 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만 하루가 지나자 혜가가 예고한 대로 호월이 소림사를 찾아왔고, 그들은 호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호월 사형..."

호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은 그리 다친 곳이 없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우울함과 절망이 가득차 있었다. 염세적인 기운이 가득한 호월은 이윽고 혜가와 마주앉으며 말을 꺼냈다.

" 혜가 사형. 스승께서는 돌아가셨소."

" 아미타불."

" 돌아가시기 전, 사형을 찾아가라 말씀하셨소..."

혜가의 얼굴에 슬픔이 스쳐지나갔다.

" ... 아미타불."

"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소. 스승님의 명을 받아 침입해 온 팔부신중들과 싸우던 중, 팔부신중 놈들이 갑자기 후퇴했고 스승님을 도우려 천암의 제단으로 갔소. 하지만 거기에는 스승님께서 쓰러져 있었소."

" ......"

" 스승님께서는 기력이 모두 쇠한 상태에서도 끝내 의식을 진행시켜 사대신기를 강림시키고 법문을 완성시켰으나... 결국 결계가 모두 뚫리면서 [옛 지배자]들의 저주가 쏟아져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하셨소. 그게 내 기억의 끝이오."

그렇게 말한 호월은 주먹을 꽉 말아쥐며 말했다.

" 사형. 어찌된 일이오? 스승님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왜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것이오?"

" ......"

" 본디 우리 모두는 스승님의 죽음과 함께 세상이 멸망한다는 명제 하에 활동했었소. 그렇지 않소?"

금구(禁句)!

호월은 무력감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철저하게 냉정하게 가장 궁금한 점을 혜가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다들 궁금해하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금기를 깨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형제 중에서 호월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혜가는 한 번 불호를 외운 후, 호월의 말에 대답했다.

" 짐작하고 있는 대로일세."

" 설마..."

" 스승님의 전생(轉生)이 끝난 것일세."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얼어붙었다.

전생이 끝났다!

그 말은 수천 번의 전생이력을 지니고 이 세계를 구원하려 하던 전생자, 달마의 생애가 완결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그 순간 모든 제자들은 엄청난 슬픔에 통곡을 하고 말았다.

" 아아아아아아!!"

" 크흐흐흑."

" 스, 스승님..."

철석간담의 사내인 호월조차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오열했으며 성진과 아유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혜가만큼은 슬픔을 억제한 듯 했으나 그의 몸이 계속해서 떨리는 것은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혜가는 깨달음을 얻은 자였기에 순식간에 감정을 통제하고는 말했다.

" 사제들은 두 가지가 궁금하겠지. 한 가지는 어째서 스승님께서 위험한 걸 알면서도 이번 진공가향을 감행하셨는지... 또 한 가지는 누가 어떻게 전생(轉生)을 끝낼 수가 있었는지를."

" 그렇소."

호월은 자신의 눈물을 훔치며 형형한 호목(虎目)을 빛냈다.

" 따라죽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으며 여기까지 찾아온 건 바로 사형이 그 대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사형은 무엇을 알고 있소?"

" ... 많은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지."

씁쓸하게 말한 혜가가 말을 이었다.

"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하겠네. 스승님께서 위험을 감수하고서 이번에 지체하지 않고 진공가향을 시도하신 이유는, 더 이상의 전생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일세."

" 무의미하다고요?"

" 그렇네."

고개를 끄덕인 혜가가 말했다.

" 스승님께서 일백 번, 아니 일천 번을 더 전생하셨다면 어찌되었을까? 홀로 삼황오제의 합공을 제압할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으리라 생각하는가?"

" 아니란 말입니까?"

" 결국 스승님께서 추구한 건 옳은 길이 아닌 마도(魔道)였네. 그리고 마도를 추구한다는 건 끊임없이 마(魔)와 타락에 노출된다는 뜻... 스승님께서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지금까지 인간의 이성을 유지하며 힘을 얻으셨으나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하신 걸세."

" ......"

" 지금의 몇 배나 되는 더 큰 힘을 손에 넣는 건 가능하겠지. 그러나 그 수준의 힘을 손에 넣는 순간 마(魔)의 절대자가 우주에 한 명 더 생겨날 뿐,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진공가향을 시도하려는 달마대사는 존재치 않게 되는 것일세."

" 정신력의 한계에 도달하셨던 거군요."

" 그런 것일세. 사실 보통 인간이었다면 오십 회도 되지 않아 미쳐버렸을 터. 스승님의 의지력은 가히 초인적이셨네."

" 사형은 어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스승님께서 종종 내게 상담을 해 오셨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때마다 불경을 암송하며 함께 정신수련을 했네."

그랬던 것인가.

가장 정신수련의 경지가 높은 혜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다른 제자들이 납득을 하고 있을 때 혜가의 말이 이어졌다.

" 스승님께서는 더 이상의 전생을 해도 모을만한 인과율과 단서가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고 판단하셨네. 그리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도전했고, 실패한 것일세."

"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생 자체가 끝나버린 건..."

" 그 말대로 이상한 일일세. 그리고 그 이상한 상황은 바로 인위적으로 발생한 것."

혜가가 무겁게 말했다.

" ... [기어오는 혼돈]. 그 존재가 스승님을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던 것일 테지. 그리고 그 본체를 대면한 순간 스승님의 전생이 끝난 것일세."

" 그건 우주에서 가장 악랄하고 두렵다는 마신이 아닙니까?"

" 그렇네."

" 크윽... 역시 신에게 도전하는 건 무리였던가... 최상위 신이라면 전생조차도..."

성진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혜가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 아니! 그렇지 않네. 신의 격이 높다고 해서 전생자의 전생을 멈출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라고 스승님이 말씀하셨네. 외신이라 하여 그럴 수 있는 건 아닐세."

" 네? 그렇다면."

혜가의 눈빛이 빛났다.

" [기어오는 혼돈]이라는 외신 자체가 처음부터 전생자의 숙적(宿敵)으로 설정된 존재.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일세. 스승님 또한 평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계셨지."

" ......"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전생자의 숙적!

무적이라고 느껴졌던 전생자에게도 그런 게 존재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사악한 외신이 전생자의 숙적으로 설정된 이유가 무엇일까.

" 그럼 아유타. 그 때의 상황을 말해보거라."

혜가의 요청에 앉아있던 아유타가 나직이 당시의 상황을 말했다.

" 저는 스승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갑자기 제게 [이제 그만 정체를 드러내라]라고 하셨고 뭔가 주문을 외우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전 정신을 잃었습니다..."

" 그랬군."

" 혜가 사형. 제게 [기어오는 혼돈]이 빙의했던 걸까요?"

" 어찌 우리가 외신(外神)의 수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네게는 죄가 없다. 설령 빙의했다 해도 그정도 존재가 빙의를 시도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 ......"

" 다만 그런건 중요치 않다. 나는 다른 사실을 추측했다."

" 다른 사실이요?"

촤락...

혜가는 외팔이였다. 그는 자신의 손에 기다란 염주를 천천히 굴리며 말을 이었다.

" 진공가향이 진행될 때 온갖 마신들이 결계 주위에 드글거렸으나 직접적으로 결계 내부로 공격해들어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창힐의 권속, 팔부신중 뿐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창힐과 팔부신중이 [기어오는 혼돈]의 수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 ......!!"

" [기어오는 혼돈]이라 해도 모든 [옛 지배자]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삼황오제나 다른 존재들이 개입하지 못하게끔 하고 자기 부하들만 결계 내에 들였겠지."

" 그렇군요!"

" 창힐과 그 부하들은 혼돈의 수하다. 앞으로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혜가의 통찰에 다른 제자들이 감탄했다. 이로써 적의 정체가 확실해진 것이다.

절대적인 악(惡), [기어오는 혼돈]이 배후에서 모든 걸 조종하고 있었으며 그 휘하에 신격이 된 창힐과 그 부하 팔부신중들이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혜가가 씁쓸하게 말했다.

" 사제들이여. 상황은 이로써 정리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스승님의 뒤를 이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 사형. 그러고보니 소림사를 만드신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스승님의 최후를 예상했기에 만든 것입니까?"

" 그렇다..."

아미타불, 하고 불호를 외운 혜가가 말했다.

" 스승님께서는 자신이 사라져도 새로운 미륵(彌勒)이 세상에 도래할 것이라 예언하셨노라."

" ......!!"

" 스승님께서 이번을 마지막 시도로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미륵!

그 말이 울려퍼져지자 달마의 제자들 모두가 날카로운 눈빛이 되었다. 그들은 진공가향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으며 세계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호월이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 사형. 스승님의 뒤를 잇는 전생자(轉生者)가 새로이 등장할 거란 말이오?"

" 그건 알 수 없다."

" 무슨 말씀이오? 미륵이라 함은 결국 전생자일 수밖에 없잖소."

호월은 이해가 되지 않는듯 말했다. 그건 호월 뿐만이 아니었고 다른 제자들 또한 혜가를 쳐다보았다. 전생자 달마 밑에서 수행해 온 자들의 관점에서 미륵이 전생자가 아니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혜가가 말했다.

" ... 스승님께서는 자신이 [처음]이 아니라 하셨다. 그리고 미륵이란 존재가 어쩌면 전생자보다 더한 존재일 수도 있다고 하셨지."

" 무슨 말이오?"

"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법칙이 작용한 세계에 살고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 ......?"

아무도 혜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혜가는 다른 제자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말했다.

" 큰 일을 겪었으니 쉬어야 할 터... 모두들 당분간은 소림사에서 지내거라. 그리고 호월은 나를 따라오게."

" 알겠소."

혜가는 호월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 후우. 어떻게 해야 할까...'

성진은 혜가의 말대로 자신의 정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힘껏 쉬었다. 아유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존경하는 스승을 잃고 모든 목표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 날 이후 3년이 넘도록 혜가가 호월을 데리고 실종되었으나 성진은 그 사실에 의문을 품지 못했다. 그 사실을 신경쓰기에는 정신력을 회복하기만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유타와 함께 혜가를 대신해서 소림사를 지키고 승려들을 돌보면서 술법을 수양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소림사에 호월이 돌아왔다.

돌아온 호월에게 성진이 물었다.

" 사형. 혜가 사형은 같이 오지 않으셨습니까?"

호월의 얼굴은 잿빛으로 굳어 있었다.

이어진 호월의 말에 성진과 아유타는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 내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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