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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성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혜가에게 말했다.
" 사형... 어찌 그런 말씀을!! 스승님께서 진공가향에 모든 걸 걸고 있다는 걸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실패한다니..."
" ......"
" 그리고 이 사찰은 하루아침에 지은 게 아니군요! 대체 언제부터 이 소림사라는 걸 만드셨단 말입니까?!"
사찰의 규모는 물론이고 이 곳에 기거하는 승려들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뛰어난 술법사인 성진은 이 곳의 승려들이 뛰어난 불법을 성취했으며 만만치 않은 고승(高僧)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웬만한 마(魔)의 존재를 뛰어넘을 정도의 대정(大正)한 기운이 소림사 전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뛰어난 불승들은 하루아침에 모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진이 동요를 감추지 못하자 혜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예전에 스승님께 미리 말씀드린 적이 있고, 허락해주셨지. 소림사를 창건하고 이미 십여 년이 흘렀네."
" 허... 허락해주셨다고요?! 우리의 모든 깨달음과 자산은 백련교로 귀속시키는 게 원칙 아니었습니까! 스승님의 진공가향을 돕기 위해 모든 걸 집중시켜야 할진대."
" 사제가 모르는 뒷사정이 있네. 아주 복잡한 사정이지... 예전부터 스승님께서도 이해해주신 일일세."
" 그런..."
" 사제."
혜가가 그윽한 눈으로 성진을 보며 말했다.
" 아까 했던 내 말을 스승님께 그대로 전해주게."
" ...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진은 원한어린 눈으로 혜가를 쳐다보았다.
" 스승님이 사형 때문에 또 다시 전생(轉生)하시게 된다면, 저는 사형을 죽을 때까지 원망할 것입니다!"
" 마음대로 하게."
혜가는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 허나 스승님께서는 결코 이번에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야..."
무슨 말인가?
전생자에게 있어서 진공가향은 종착지나 다름없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조차 없어야하는 대업(大業)이라면 하나의 불안요소만 있어도 당연히 새로 시작하는 게 옳다. 물론 달마대사의 입장에서는 제자들을 수십 년간 가르치며 부단히 노력해온 결실이 사라지며 기껏 모은 제물도 무용지물이 되는지라 아깝겠지만, 적어도 거대한 실패보단 나은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혜가는 절대로 달마가 재도전하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말투였다. 성진은 혜가의 생각을 알고 싶었지만, 왠지 전혀 말해주지 않을 듯한 태도였다.
어쩔 수 없이 성진이 혜가를 데려가지 못하고 되돌아가자 달마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꾸했다.
[ 그렇군... 마음대로 해도 좋을 것이다. 혜가에게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으니.]
" 스승님. 혹시 다시 시작하실 생각이신지..."
성진이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달마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 아니. 이대로 진행하겠다.]
" 혜가 사형이 그토록 단정적으로 말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계획에 큰 실패요소가 있는 게 아닐지요..."
[ 성진아.]
" 네. 스승님."
[ 전에도 말했었지만... 너희를 데리고 이 단계까지 도달한 건 49회가 넘었노라. 그러나 늘 그때마다 새로운 방해가 들어왔고, 나는 그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힘들다 판단해서 재시작을 선택했다... 계속해서 방해를 줄이려 노력했지.]
" ......"
[ 허나 결국 한 줌의 티없이 깨끗하게 진공가향을 준비할 수는 없었느니... 세계를 멸망시키는 대업(大業)은 그만큼 거대한 인과(因果)를 머금고 있기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능(異能)이 비대하게 발달해있는 만큼 초인(超人)또한 많으며 상위존재도 많으니... 내 일은 더욱 힘겨워졌다.]
그렇게 말한 달마가 성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걱정하지 말거라... 이번 일은 그냥 진행하겠다. 만에 하나 실패한다 하더라도 나는 전생자, 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터.]
" ... 알겠습니다."
성진은 그 말에서 달마와 혜가 사이에 암묵적인 대화가 이미 오갔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이미 성공이든 실패든 자기가 할 일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따져봤자 무의미하리라.
그리고 성진이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황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진이 황우에게 말했다.
" 사형. 아유타와 호월 사형은?"
" 대련을 하러 갔어."
" 대련?"
" 아유타의 무공(武功)이 그 사이에 한층 높아진 것 같더군. 호월 사형이 사도의 권능을 쓰지 않고 몇 수 접어주면서 대련해주기로 했어."
그렇겠지.
성진은 내심 중얼거렸다. 아유타 공주는 다섯 제자의 막내로서 가장 늦게 입문했으나,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어서 무공이든 술법이든 굉장히 빨리 익혔다. 성진도 뛰어난 편이었으나 아유타에 비하면 범재라고 할 정도였다. 더욱이 전생자인 달마의 도움으로 여러 번 기연을 얻었으니 지상에 아유타에 비할만한 고수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 때 황우가 말했다.
" 이봐... 혜가 사형이 뭐라고 했냐? 나한테 좀 알려줘."
" 네?"
" 네는 무슨... 같이 오지 않은 걸 보면 혜가 사형이 거절했겠지. 혜가 사형이 소림사란 걸 만들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혜가 사형이 어떤 꿍꿍이를 품었는지 알려달란 거다."
" 음. 혜가 사형은..."
성진은 별 생각 없이 황우에게 혜가와 달마의 대화를 전해주었다. 그 대화를 신중하게 듣고 있던 황우가 문득 히죽하고 웃었다.
" ... 흐흐. 그렇구만. 좋아."
" 사형. 나쁜 생각을 하는 겁니까?"
" 바보야. 그럼 나쁜 놈이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티를 내고 다닐까? 이래봬도 내가 일국의 재상이자 십만 장사치를 통솔하던 거상(巨商)이다. 내가 널 속이려 했다면 이런 티를 내지도 않았겠지. 하여간 이렇게 순진해서야... 이래서 왕족이란 놈들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모르지."
황우가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내 직감으로 볼 때 이번에 스승님은 실패할 거다. 혜가 사형은 절대 허튼말을 안 하거든!"
" 아니 그건 좀..."
" 그러니까 나도 진공가향에서 빠지겠어."
성진은 기겁했다.
" ... 네?! 사, 사형 그게 무슨..."
" 어차피 스승님이 죽으면 다 재시작이잖냐? 그건 그와 동시에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 그럼 난 죽기 전까지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겠다."
" 자, 잠깐..."
" 그럼 다음 생에 보자고! 하하하."
쉬리릭
황우가 순식간에 술수를 부려서 사라져 버렸다. 황우의 특기 또한 환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진은 황우를 붙잡으려면 붙잡을 수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움직이지 못했다.
" ......"
진공가향이 고작 몇 시진 남았을 뿐인데 벌써 다섯 제자 중에서 두 명이 탈주하다니!
성진은 참담한 심정이 되어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이 떠난 사람을 잡아봤자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성진은 하는 수 없이 황우의 탈주를 달마에게 보고했다. 달마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구나.]
" 스승님. 황우 사형의 배신을 어떻게 하실건지..."
[ 배신이랄 게 있느냐? 그가 한 말은 모두 맞는 말... 또한 나는 무수히 전생하면서 황우의 본질을 지켜봐 왔다. 그 아이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지언정 배신은 하지 않는다.]
" 배, 배신이 아니란 말입니까?"
[ 너 또한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좋다.]
"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성진은 내심 분노했다. 스승에게 받은 기연이 얼마나 많으며 은혜가 엄청난데 진공가향을 앞두고 탈주라니! 스승이 명령한다면 사형이라도 죽여버릴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달마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 성진아. 그러지 말아라.]
" 네?"
달마는 전에 없이 자애로운 말투로 말했다.
[ 너는 전생자가 아니다. 필멸자에게는 포기하는 것 또한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제자가 무한히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 ......"
[ 이럴 경우도 대비해서 사대신기에 강림할 고대신의 촉매는 내가 따로 마련해놓았으니 걱정 마라.]
" 하지만."
[ 때가 되었다. 제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른 아이들을 불러오거라.]
달마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겨진 성진은 한동안 멈춰서서 생각했다.
' 필멸자는 포기하는 것 또한 선택지.'
성진은 그 말의 의미를 한참이나 생각했다. 그리고 막 대련이 끝난 아유타와 호월을 데리고 천암의 제단으로 향했다.
쿠구구구...
사방에 괴물과 마도사들의 시체가 그득하게 쌓였다. 그리고 그 시체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제단에 흑혈(黑血)로 변해서 흡수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마력이 끓어오르면서 차마 인간의 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는 끔찍한 귀곡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크아아아아악 - !!
마력이 중앙에 결집되면서 천암의 제단에 서 있던 달마는 점차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을 강화시키던 달마는 마력을 흡수하던 중 말했다.
[ 호월아.]
" 네, 스승님."
[ 팔부신중이 들어왔구나. 네가 그들을 상대하거라.]
" 알겠습니다!"
파밧
호월은 말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성진은 호월이 사라진 자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 호월 사형이 팔부신중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성진 또한 먼 발치에서 팔부신중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같이 마왕급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에 걱정이 앞섰다. 원래 그 자들이 인간형으로만 활동할 뿐 본체를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진공가향은 세계를 멸하는 의식이므로 인과율도 신경쓰지 않고 덤벼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성진은 달마에게 말했다.
" 스승님. 저희는 이제 뭘 하면 되겠습니까?"
[ ......]
" 스승님?"
무언가 고민하던 달마는 이윽고 성진에게 명령했다.
[ 마력이 충분히 들어왔는데도 사대신기가 공명하지 않는다. 가서 하나하나 살펴보아라.]
" 네!"
성진은 재빨리 제단 한쪽으로 가서 사대신기가 될 무구(武具)가 꽂혀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달마의 말대로 무구가 마력에 공명하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이상하군. 본디 고대신이 빨려들어와서 사대신기에 갇혀야 하는데...'
성진이 조심스레 사대신기를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후와아악!
" 으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암풍(暗風)이 터져나왔고 성진은 제단 바깥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성진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호월과 팔부신중이 혈투를 벌이는 장소에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쿠콰콰쾅!
콰콰쾅!
" 뭐 하나, 사제!"
" 사형!"
" 정신차리고 자기자신을 보호해라. 널 보호해줄 여력이 없다!"
" ... 네!"
성진이 주위를 둘러보자 무려 세 명이나 되는 팔부신중이 본체를 드러낸 채 자신과 호월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눈코입이 없는 광인(光人)처럼 보이는 기이한 존재가 말했다.
[ 나 팔부신중 천인(天人), 살면서 많은 것을 보아왔으나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군. 넌 정말 인간인가? 우리 본체를 상대로 여기까지 싸울 수 있다니... 설마 너는 사도인 것이냐?]
호월은 광소를 터뜨렸다.
" 크하하하!! 인간임을 포기한 쓰레기들이 뭐라고 지껄이는거냐!"
절대지경(絶對之境)
광룡파천황(狂龍破天荒)!
쿠콰쾅
미친 용이 날뛰는 것일까? 호월의 쌍장(雙掌)에서 어마어마한 강기가 폭증(爆增)하면서 마치 날개같은 형상을 만들었고, 양손이 모이는 순간 용형(龍形)의 기운이 전방으로 장풍처럼 뿜어져 나갔다. 광룡파천황의 강기를 본 천인이 술법으로 방어막을 만들어서 막으려 했으나 호월이 자신의 손아귀를 뒤틀며 용형강기를 조종했다.
광룡파천황
비기
뇌광정령참(雷光精靈斬)!
갑작스럽게 절삭력을 더해서 뇌참이 쏟아지자 천인의 술법방어막은 이내 종잇장처럼 뚫렸고, 천인이 뒤로 크게 튕겨져 나가면서 근처에 있던 마후라가와 긴나라 또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 크아아악.]
[ 으음!]
고고고고
' 사형이 절대지경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강했나...!!'
저게 정말 사도의 권능인 걸까?
원래도 강력했던 호월이었으나 알 수 없는 합일의 힘으로 몇 배나 힘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사실 성진은 지금 호월이 어떤 원리로 힘을 발동시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확실한 건 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 해도 원래는 호월같은 힘을 절대로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월이 광룡파천황을 발휘해서 승기를 잡으며 마후라가를 크게 후려쳤다. 순식간에 호월의 분신이 여러 개 나타나면서 수백 개의 권영(拳影)이 날아갔다.
팔분신(八分身)
뇌룡무한광타(雷龍無限狂打)
뻐억!
[ 크악...]
" 죽어라! 죽어!"
뻐억 뻐억 퍼버벅
[ 그, 그만...]
마후라가가 정신없이 호월에게 머리를 후려맞으며 기절 직전에 놓였을 때였다.
" 음!"
호월은 갑자기 때리다말고 엄청난 속도로 뒤로 물러났는데, 그의 시선은 난데없이 나타난 한 검객(劍客)에게로 향했다. 검객의 가공할 살기와 의념영역 때문에 견제당한 것이었다.
천인이 그 검객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 이제야 왔단 말이냐, 아수라(阿修羅)!]
" 흠."
아수라는 천인의 말을 무시하며 팔짱을 끼고는 호월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 절세고수군. 중원에 이런 절대자가 있었나?"
" ......"
" 천축무림지존 파순(波旬)으로서 상대하고 싶으나, 주군의 명이 우선이니 전력을 다해 싸우겠다."
파앙!!
마력을 개방해서 본체로 변신한 아수라가 자신의 손에 병기를 소환했다. 아수라가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절세고수여, 진신병기를 뽑아라!]
" ... 괜찮나?"
호월이 슬며시 등 뒤에 있던 창을 거머쥐며 안광을 내뿜었다.
" 나는 창을 잡으면 열 배 강해지는데!"
[ 후후, 농담도!]
쿠구구구
그리고 아수라의 미간에 빛이 모임과 동시에 아수라의 후광이 뿜어져 나오며 광세절기를 시전했다.
적멸무극(寂滅無極)
팔부신중 아수라의 검섬이 빛을 뿜어냈다. 여섯 개의 팔에서 제각기 다른 절학이 뿜어져 나오면서 가공할 위력으로 호월을 휩쓸듯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호월이라도 적멸무극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버거웠는지 호월은 뒤로 물러서면서 일단 적멸무극을 흘려보냈고, 호월에게 빈틈이 생기자 다른 팔부신중들이 술법을 뿜어내며 호월을 습격했다.
성진이 외쳤다.
" 사형! 위험..."
[ 어림없지.]
파쉿
' 아니!'
성진이 구름의 술법을 써서 호월의 몸을 방어하려 했으나 그 순간 천인이 마찬가지로 술법을 전개하자 허공에서 상쇄되고 말았다. 누가 보아도 호월에게 있어서 최악의 위기였기에 성진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이었다.
호월의 눈에서 기광이 뿜어져 나왔다. 호월은 적멸무극의 여섯 가지 광세절기가 몸을 휩싸듯이 덮쳐올 때, 서서히 창극(槍戟)을 앞으로 뻗더니 내질렀다.
란(欄)!
푸콰콱
[ ......!!]
아수라의 팔 중에서 두 개가 동시에 토막나며 잘려나갔고 다른 팔부신중들도 비틀대며 물러났다. 적멸무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으며 그 자리에는 창술의 기본자세를 취한 채 서 있는 호월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은 근육질의 사내가 그저 창 한 자루에 의지하여 가공할 마왕들을 상대로 대적하는 듯한 형상이었다.
[ ......]
그리고 아수라는 자신의 잘려나간 팔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염동력으로 팔을 도로 가져와서 붙이려 했다. 그러나 절단면을 갖다대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뒤로 내던져버렸다.
[ 안 붙는군.]
[ 뭐라고? 아수라 너 또한 창힐님의 가호로 초재생력을...]
천인이 놀라서 외쳤지만 아수라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수라가 호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이봐. 너도 무신(武神)이란 놈을 만난 거냐?]
호월은 훗하고 웃었다.
" 글쎄다. 너는 못 만났나 보군."
[ 크크큭... 내 복장을 뒤엎으려는 건가. 좋다.]
도리어 호월이 도발을 해 오자 아수라가 진심으로 화를 내며 눈에서 혈광을 뿜어내었다.
[ 내가 소멸하는 한이 있어도 오늘 네놈을 죽이겠다!]
" 어디 해 보시지."
스윽
이번에는 팔부신중과 사대 일로 싸우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호월 또한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뒤에 있던 성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 사제. 스승님께 돌아가라. 여기는 내가 맡겠다.]
[ 하지만 사형! 혼자서는 저 마왕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안에 있다가 난데없이 튕겨져나간 거라서...]
[ 스승님이 사제를 일부러 내보내신 것이다.]
[ 네?]
뜻밖의 말을 들어서 멍해진 성진에게 호월이 말했다.
[ 아무리 창힐이 강력한 신이라도 진공가향의 결계는 만신(萬神)을 방어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창힐의 졸개만 보란듯이 들어온 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이어진 호월의 말에 성진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어서 가라. 스승님은 그 흑막과 홀로 대면하려고 널 내보내셨지만, 너만이라도 스승님을 도와드려야 한다...!!]
[ 네!!]
타닷
" 어디 해 보자꾸나, 신의 졸개들아!!"
호월이 광소를 터뜨리며 팔부신중과 전투를 하는 순간 성진은 재빨리 몸을 빼서 다시금 제단 안으로 향했다. 아까와는 달리 결계가 많이 엷어져 있었으며 이 또한 이상현상이나 다름없었다.
' 제발... 제발...!!'
그리고 성진이 천암의 제단에 도착한 순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어둠]과 자신의 스승, 달마대사가 마주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