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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제갈유룡의 말에 약간 당황했다.
" 황제? 무슨 말이냐."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말하는 황제는 중화전토를 지배하는 제국의 주인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뜬금없이 무슨 황제란 말인가? 내 반문에 제갈유룡이 말했다.
" 현이와 사(邪)도 아직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 내 생각과 같을 것이다. 미리 말한다고 나쁠 건 없겠지."
" 너무 넘겨짚기 아닌가? 내가 왜 황제가 되어야하는지 말해줘."
" 후... 이 자리에서 나 혼자 이야기해봐야 무의미하겠지. 우선 다같이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겠군. 동료들을 모두 모아서 한 번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맞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기절한 제갈부도 데려가지."
우웅!
나는 제갈부를 찾아서 목갑에 넣은 후 무영문에 들러서 검마와 서문혜를 만났고, 하는 김에 무영문에 머물던 식객인 궁왕 연종휘 또한 동료로 만들었다. 이어서 동영에 가서 아베노 세이메이와 미호를 데리고 본거지인 백련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제갈유룡을 대동한 나를 본 망량이 말했다.
" 성공했구려."
" 망량. 제갈유룡이 묘한 말을 하오. 나보고 황제가 되라고..."
내 말에 망량은 거침없이 대꾸했다.
" 맞소.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고 했으니 앉아보시오."
" ......"
제갈유룡의 말대로란 말인가? 힐끔 제갈사와 백련교주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들 또한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담담했기에, 다들 짐작하고 있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만 짐작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윽고 동료들과 다함께 둘러앉은 후 나는 제갈부에게 흑요석을 주었다. 그리고 기억을 얻은 제갈부는 인상을 찡그렸다.
" 빌어먹을... 매 전생마다 나를 우대하기로 하지 않았나! 나는 네놈에게 딱히 큰 적의가 없을 터인데 매번 왜 전생초기마다 다짜고짜 기습해서 이런 꼴을 당하게 하냔 말이다! 지난 전생에서는 내가 여자가 되게 만들어버리지 않나..."
" 미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그리고 제갈사가 널 워낙 싫어해서..."
" ......"
제갈부의 표정이 잔뜩 구겨지자 백련교주가 입을 열었다.
[ 본론으로 들어가지. 이 중에서 백웅이 대명제국의 황제가 되는 것에 찬성하는 자는 손을 들도록.]
" 엥, 왜 갑자기 멋대로..."
내가 황당해하자 백련교주가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 백웅이여. 이런 문제에서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지. 우선 모두의 의사부터 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군.]
" 흐음. 알았어."
잠시 후 동료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네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손을 들었다.
그 네 명은 제갈유룡, 백련교주, 제갈사, 망량이었다.
" ......?!"
뭐, 뭐야!
내 전생동료 중에서도 상당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모조리 내가 황제가 되는 걸 반대한다는 말인가? 무슨 이런....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 제갈유룡!! 니가 나보고 황제가 되라고 말해놓고 니가 손을 안 들면 어떻게 하냐!"
" 오해하지 마라. 우리 넷의 뜻은 그런 게 아니니까."
" 그런 게 아니라니?"
제갈유룡이 힐끔 제갈사를 쳐다보았고, 제갈사가 히죽 웃더니 다시 망량을 쳐다보았다. 마치 서로 공을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였고, 망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백웅. 당신은 대명제국의 황제가 될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대명제국은 낡았기 때문이지."
" ... 무슨 소리요?"
망량의 눈이 일순간 불타오르는 듯 했다. 그 눈빛은 염원과 대의로 차 있는 듯 했다.
" 단도직입으로 말하겠소. 명(明)제국과 주씨(朱氏)를 멸망시키시오. 그리고 백웅 당신만의 제국을 건국(建國)하시오!"
" ......!!"
" 우리 넷의 뜻은 그렇소. 이 정도 세력을 가지고 낡은 간판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단 말이오."
뭐라고!!
나는 기가 막혀서 백련교주를 쳐다보았다.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백련교주가 고요히 말했다.
[ 내 생각도 그렇다. 백웅 그대는 새로운 제국의 이름을 생각해두는 게 좋겠군.]
" 아니 잠깐! 얘기가 너무 빨라서 못 따라가겠는데!"
나는 잠시 허우적대었다. 왜 이 녀석들은 내가 상황을 파악 못하는데 이미 몇 발자국씩 앞서나가 있는거야?! 문제는 나 빼고는 다들 똑똑한 놈들이라서 나만 바보라는 점이었다. 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자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 이 경우는 네가 바보라기 보다는 그쪽 욕심이 없는 탓에 이해가 안되는 거겠군, 큭큭!!"
" ... 그래. 뜬금없이 왕이니 황제니 하면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 참 이상한 일이군. 보통 인간이라면 9할 9푼의 인간이 부귀권력에 혹하게 되어있는데... 넌 촌무지렁이 중늙은이 이류표사부터 시작했는데도 그쪽 욕심이 거의 없었단 말이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신기하다는 듯 말하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뭐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근본적 목적은 법문을 모으는 거다. 그렇지? 그리고 법문을 모으려면 엄청난 재력과 정보력이 필요하다."
" 맞아."
" 그러니까 황제가 되면 그만이야. 황제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 만인지상(萬人之上)이니 사실 중원최고의 부자이기도 하다. 귀찮게 민간의 권력, 무력, 상권을 통합하느니 그냥 황제가 되버리자는 말이었다."
" ......"
" 이면의 세계에서는 별볼일없는 존재겠지만 적어도 표면의 세계에서 황제의 권력보다 더 강력한 건 존재치 않으니 우리 계획에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 대명제국을 움직여서 법문을 찾는 거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내가 조금씩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사가 말했다.
" 하지만 네가 그냥 대명제국의 황제가 되어버리면 곤란한 점이 많지."
" 뭐가 곤란한데?"
" 먼저 혈통(血統). 너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유사이래 황실에서 엄청난 혈통의 순수성을 요구하는 걸 알고 있을 거다. 혈통의 순수성은 곧 정통성이며 강대한 권력의 근원이지. 아무리 네가 강력한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황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밑에서 반발이 끝없이 올라올 것이다."
" 으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 주씨의 정통혈통을 가진 진소청이나 주재후를 명제국 황제로 만들어도 되잖아."
"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계책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진소청과 주재후는 둘 다 뛰어난 황제감이니 그들을 조종하려면 이혼대법을 걸어야 하지. 넌 그런 건 절대 하지 않을텐데?"
" ......"
" 또 하나. 대명제국의 간판을 갖고있다면 썩어서 곪아버린 제국을 개혁하는데 추가로 시간이 더 들어버린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밖에 없단 말이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광소를 흘렸다.
" 크크... 주씨가 대체 뭐라고 대명제국이라는 간판을 우리가 끝까지 지켜줘야 한단 말이냐? 사상최강의 무림세력인 백련교, 황궁을 암중에 조종하던 제갈세가, 그리고 전생자와 그의 동료들이 우리 손에 있다. 힘이 있으니 그냥 싹 다 부숴버리고 다 입맛대로 조종하는 게 백 배는 편하다!"
" ......!!"
그런 생각인가...!!
듣고 있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본교(本敎)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제국이 들어서는 편이 낫다. 대명제국과 수백 년에 걸친 묵은 한을 쓸어내고 교인들을 재통합시킬 수 있는 좋은 명분이기 때문이다. 대명제국의 수뇌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교인들이 중원인에게 품고 있는 불신감과 적의를 해갈하기엔 부족하니까.]
" 그렇겠군..."
[ 백웅 그대가 신생황조를 열어준다면 우리 백련교를 국교로 해 다오. 그럼 백련교는 아주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였으나 확실히 역성혁명은 명분이나 실리 모든 걸 챙길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자 검마가 말했다.
" 백웅. 아주 괜찮은 생각으로 보이는군."
" 그렇습니까?"
" 우리야 자네라면 황제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에 별 생각없이 손을 들었네.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새로운 황조(皇祚)의 주인이 되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야. 자네라면 황제가 되고도 남아."
" ......"
미호가 옆에서 거들었다.
" 까짓거 해 보거라."
" 미호. 정말 내가 황제를 해도 될까?"
미호는 깔깔 웃었다.
" 아하하! 안될 건 무어냐? 너는 전생자이며 수십 번의 삶을 통해서 힘과 경험을 수없이 축적했으며 전쟁도 겪었고 세계의 끝도 보았고 칠요의 시련을 최종단계까지 통과했고 [옛 지배자] 해신의 목을 벤 적이 있으며 백련교의 사대신기를 이 세계에 갖고왔다."
" ......"
" 수백 년간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온 본녀가 단언하건대 이 인간세상의 그 어떤 왕도 네게 비할 순 없다. 기껏 중원의 제왕 따위는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내가 황제가 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걸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내가 황제가 되겠어!!"
황제 별 거 있나!
전생하면서 한 번쯤 해볼 수도 있는 거지!
내가 확실히 의지를 보이자, 망량이 말했다.
" 잘 생각했소, 백웅. 그럼 이제 신승과 명룡자를 아군으로 만든 후 한 달 내에 먼저 무림부터 통일합시다."
" 한 달 만에?"
" 백련교주는 이미 우리 편이고 사파 또한 검마 어르신이 통합할 것이며 신승과 명룡자를 손에 넣으면 정파도 우리 것이오. 거의 무혈(無血)로 최단기간에 무림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지."
" ......"
" 구파일방이나 각지의 유력문파들이 반발하겠지만 그건 호법사자나 성련인을 출동시켜서 제압하면 그만. 현 무림에서 호법사자를 넘어서는 은거고수는 존재하지 않소. 거의 끝난 얘기요."
듣고보니 정말 간단하다. 무림통일이 이렇게 쉬웠단 말인가?
내가 멍하니 있자 제갈부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거들었다.
" 또 있다. 신승과 명룡자를 아군으로 만들고 나면 낙양으로 가서 등곽을 우리편으로 만들어라. 그 자를 손에 넣으면 청류계를 잠잠하게 만들 수 있으니 크게 역성혁명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그게 가능할까? 등곽은 청류계, 역성혁명을 못본체 할 수 없는 입장이잖아."
나는 모처럼 요점을 짚어서 반박했다 생각했지만 제갈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는군. 그 자들을 기득권(旣得權)으로 끌어넣는 교섭만 하면 끝이다. 원하는 걸 주면 그 자들은 아주 쉽게 굴복할 게 분명하다. 특히 등곽같은 너구리라면 우리 말을 잘 알아듣겠지."
" ......?"
제갈부가 역정을 냈다.
" 큭... 네놈이 정치경험이 없으니 설명해주기 정말 귀찮군!!"
뭔 소리여?
내가 제갈부의 말을 잘 못알아듣자 망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 백웅... 청류계의 중심인물들 또한 권력에 욕심이 있단 소리요.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명 제국의 정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그 정권을 일부 그들에게 할양하는 조건으로 등곽과 교섭하면 되오. 그러면 등곽이 알아서 반발을 잠재워 줄 거요."
" 그... 그럴 수가. 나라를 뒤집어엎는데 그 대쪽같은 학사 관료들이 못본 척 넘긴단 말이오?"
" 현실이 그렇소. 나도 그렇고 제갈세가는 수천 년동안 학계와 문계의 수라장을 헤쳐온 가문이라 그들의 생리를 모를 수가 없소. 청류계와 유림이 침묵할거라는 우리 예측은 절대 틀리지 않을테니 걱정 마시오."
" ......"
정말 그럴까?
대쪽같이 올바른 자들이 모여있으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말을 하는 자들일텐데...
내가 긴가민가하고 있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사실 지금 정말 중요한 건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백웅의 전투력이 이미 그 자에게 알려졌다는 점이다.]
백련교주의 말에 망량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 그렇소. 허나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대책을 세우자면 일단 저쪽에서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중원을 통일하는 게 최선책이오."
[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엉망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의아함을 느끼고는 말했다.
" 그 자? 저 쪽?"
이윽고 들려온 백련교주의 말에 나는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 십이율주.]
" ......!!"
[ 그대도 알다시피 황궁에는 늘 절대지경의 고수이자 동영최강자인 미야모토 무사시가 차원을 베어 은신해 있었다. 그 자는 십이율의 특위이니 그대와 야차의 대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했을 것이고, 머지않아 십이율주에게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전달하겠지.]
" 윽....!!"
[ 십이율주가 그대를 위험한 자라고 판단한다면 머지않아 십이율의 힘을 동원해서 중원에 손을 뻗치려 할 것이다. 그 손길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중원을 통일해서 강력한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야만 한다.]
일이 이렇게 꼬이나?!
이런 초기부터 십이율이 방해요소로 떠오르다니!
' 아,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야차랑 싸우지 말고 도주할걸 그랬나...'
나는 내심 후회했지만 내 표정을 읽은 듯 제갈사가 말했다.
" 그 선택을 후회할 필요 없다. 나쁜 싸움이 아니었어."
" 제갈사."
" 어차피 창힐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팔부신중은 하나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고, 특히 창힐에 크게 집착을 가진 야차라는 놈은 음모를 잘 꾸미지. 아주 귀찮은 놈이야. 그러니 일찌감치 야차에게 치명상을 입혀서 판에 끼어들기 힘들게 한 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 으음..."
" 야차같은 놈이 팔부신중을 규합해서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더 신경쓰이겠지. 네가 놈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니 당분간 야차는 못 움직일거다."
" 그렇구나."
제갈사의 말도 맞았다. 제갈사는 훗하고 웃었다.
" 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사시는 새로운 절대고수의 탄생을 십이율주에게 알리겠지만 십이율주는 호승심때문에 본거지를 비우고 최강을 가리러 중원까지 올 놈은 아니야. 침착하게 할 일만 하고 있으면 놈에게 대응하는 건 쉬울 것이다."
제갈사의 말에 나는 다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 ... 알았어!"
파앗
나는 잠시동안 책사들과 계획을 짠 후 신승과 명룡자를 등용하러 갔다. 그리고 신승이 있는 곳으로 먼저 향했는데 기이하게도 신승은 자리에 없었다.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소림사에서 자취를 감춘 듯 했다.
" ......?"
소림사의 승려 몇을 제압해서 그 정보를 알아낸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신승은 늘 소림사를 지키고 있거나 명룡자와 바둑을 두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명룡자를 만나러 간 것도 아니었다.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 흠. 당장은 못 찾겠군. 그러면 일단 시설을 확인한 후 명룡자에게 가자.'
그리고 명룡자에게 방문해서는 그에게 흑요석을 건네주자, 명룡자는 기억을 얻은 후 말했다.
" 으음... 신승이 사라졌단 말이지."
" 그렇소."
" 나도 짐작가는 바가 없다. 놈이 나와 바둑을 두러 올 때는 며칠 전에 미리 기별을 보내거든. 그리고 소림사를 이유없이 떠날 놈도 아닌데... 아!!"
" 뭔가 짐작가는 게 있습니까?"
" 그러고보니 놈은 이따금 뭔가를 찾으러 강호를 떠돈다고 들었다. 마침 너와 그 기간이 겹쳐버린 모양이군."
" 뭘 찾는 겁니까?"
" 나도 모른다. 아마 사문과 관계되어 있겠지.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올 것이다."
신승은 뭘 찾으러 강호에 나간 걸까?
나는 궁금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십이율의 간섭이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세력의 통합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명룡자에게 새로운 거대세력의 탄생을 위해 협력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명룡자를 등용한 후 이번에는 제갈유룡, 제갈부를 본거지에서 대동해서 낙양으로 갔다. 그리고 등곽을 만났는데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는 듣지 못하고 마부인 척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유룡이 말하길, 등곽에게 내 모습을 들켜봐야 좋을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윽고 등곽과의 이야기가 끝난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온 후 내게 말했다.
" 등곽은 제안을 수락했다."
" 흠... 그럼 더 할 일이 없는건가?"
" 설마. 지금부터 나와 부아는 황궁의 조직을 정비하고 금의위와 동창 등을 신황조 출범에 맞춰서 개조할 것이다. 무능한 관료를 솎아내고 제도를 개선해야 하니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겠지."
" ......"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리고는 제갈유룡을 쳐다보며 말했다.
" 역시 이 시대의 대명제국이 타락하고 무너지고 있던 건 네가 의도했던 거냐."
" 그렇다."
" 제갈세가의 가주이자 천재인 너라면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제갈유룡은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대꾸했다.
" 나와 부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겠지. 무능한 황제를 축출하고, 현이를 재상으로 등용해서 내정을 맡겼다면 태평성대를 구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후세계마저 신에게 저당잡힌 상황에서 인간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지?"
" 개자식. 그래서 세상을 일부러 지옥처럼 만들어서 인신공양을 바치기 쉬운 환경으로 만든 거냐!"
내 욕설을 듣고도 제갈유룡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 나는 측천무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후배라 할 수 있겠지..."
그는 잠시 후 제갈부와 함께 황궁쪽으로 사라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 나중에 우리 일을 도와다오. 연금술사를 포획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싶으니."
" ......"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저 놈들은 내가 전생하기 전의 기준으로는 틀림없는 악당이었다. 수천 수만명의 인간을 인신공양하고 일부러 대명제국을 무너뜨려서 민초들이 지옥처럼 괴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게끔 했다. 그러나 그 악행조차도 [옛 지배자]에게 대항하려는 약자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제갈유룡과 제갈부를 용서하거나 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과거 적이었던 자들이 동료로 들어왔다는 건 결국 내 그릇을 시험받는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저 천재들을 부리고 위에 설 수가 있으리라.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음 행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 귀혼일파를 찾자."
나머지 일은 다른 동료들이 다 해줄 것이다. 다들 천재이며 영웅들이니 무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백련지종 천뢰신무와 무신의 좌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단서를 모으는 것 - 그걸 위해서는 뇌신류의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