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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제대로 야차의 역량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술법을 쓰거나 전술을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물론 여동빈이 강신해서 나 대신에 야차와 싸운 적도 있었으나 그 당시는 야차가 제대로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으며, 여동빈의 기억을 읽었을 때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서인지 대충 넘어갔던 것 같다.
지금 내게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 본체로 돌아가기 전에 격퇴시켜야 한다.'
아무리 내가 절대지경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마왕(魔王)이다. 고대의 영웅급 존재들이 창힐과의 계약에 의해 신체(神體)를 얻어 수천 년동안 마력을 연마해 온 존재들이니, 그 본체의 강함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물론 팔부신중에게도 제약이 걸려서 손쉽게 본체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테지만 어쨌든 지금 상태로 본체에게 내가 단독으로 이길 방법은 없다시피 했다.
속전속결을 해야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빈틈을 노려서 한 번에 끝내야 해.'
전생과정에 이득을 얻겠다고 야차의 공격수법을 다 볼 생각으로 질질 끌면 안 된다. 내 실력이 상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연수법을 써봤자 결국 농락당해 인질이 되거나 사지가 찢길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이 단기전 뿐이며, 그나마도 방법이 한정되어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상대는 무려 천 년 전에 이미 대당제국과 천계를 농락하고 측천무후를 뒤에서 조종하던 괴물인데..
" ......"
지금이라도 비등을 써서 도망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저만한 강적과 굳이 일전을 겨룬다는 건 쓸데없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쉽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야차 앞에서 너무 손쉽게 도망쳐 버린다면 앞으로 그녀보다 더 막강한 적이 나타났을 때 무조건 도주부터 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싸운다!
우우우웅
내 선검(仙劍)이 칠흑의 빛을 뿜어내며 울렸다. 다음 순간 나는 통강(桶罡)의 형태로 열두 줄기의 검강을 떨쳤고, 야차의 전신을 공격했다.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야차는 전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강기를 맞이했다.
투두둥
" ......!!"
뭐지?!
나는 무형의 방어막때문에 검강이 즉시 흡수당해 소멸한 걸 보자 움찔하며 놀랐다. 뭔가 술법의 일종인 것으로 보였지만 그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런 피해없이 내 공격을 막아낸 야차가 서서히 자신의 낫을 움직이더니 허공에 한 번 그었다.
키기기긱
끄아아아아아아
시공이 베어지면서 그 차원의 틈새에서 끔찍한 악수(惡獸)와 이족들이 기어나오는 게 눈에 보였다. 스멀거리며 기어나오는 괴물들을 본 나는 이를 악물었다.
' 소환술인가!'
저 수법은 여동빈의 전투에서 설핏 봤던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환이 성공해서 저 틈바구니에서 괴물이 소환되면 물량에서 밀리게 되니 내가 크게 불리해진다.
소환술사가 소환을 하게 놔두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나는 저 위치에서 야차를 격퇴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얼마 전 교주와의 일전에서 사용했던 검뢰절기를 사용했다.
절대검뢰(絶對劍雷)
무량단(無量斷)
한 줄기의 뇌검이 정적을 가르고 야차의 몸뚱이를 반쪽으로 갈랐다. 가로로 잘린 듯한 그 몸뚱이는 이윽고 허상의 그림자가 되어서 나풀거렸고, 나는 그대로 어검(御劍)의 의념을 발휘해서 검뢰를 조종해 차원의 틈을 공격했다.
빠지직!
키에에엑
뇌검이 터지듯 폭발했고 새어들어오던 괴물들은 모조리 비명횡사했다. 그리고 번개의 힘 때문인지 열리던 틈이 빠르게 닫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내 등 뒤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제법 하는걸..."
슈칵
나는 심안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장소를 측정해서 재차 공격해 들어갔다. 야차는 이번에는 내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거대낫을 들어서 막아내었다.
콰과광!!
" ......!!"
뭐지 이건?!
나는 야차의 낫 주변에 기이한 무형의 막이 둘러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이건 기막(氣幕)처럼 기로 형성한 게 아닌 듯 했다. 그리고 이 막은 굉장히 유연하고 튼튼한지 내 검뢰로도 갈라지지 않고 그저 움푹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야차는 요염한 미소를 흘리고 주언(呪言)을 외웠다.
상고지주(上古之呪)
혈폭(血爆)
키잉!
' 으... 으으윽...'
낫 끝에서 수상한 빛이 번쩍이는 순간, 나는 전신의 피가 요동치며 급격하게 끓어오르는 걸 깨달았다. 이윽고 전신의 피가 폭발하려 한다는 걸 깨달은 나는 이를 악물며 의념으로 가라앉혔다.
그리고 야차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약간 후퇴했는데, 거리를 벌려도 피가 폭발하려는 기색이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거리를 불문하고 계속 효과가 남는 주술인 듯 했다. 나는 지금의 현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주술이다! 그것도 정통...'
평상시 요술이나 주술, 마법을 퉁쳐서 하나로 묶긴 했으나 지금의 현상은 정통파 주술으로 보였다.
제갈사가 내게 여러가지 마도의 술법을 알려줄 때, 정통주술이라고 하는 계파가 따로 있다는 걸 알려준 적이 있었다. 이들 또한 일종의 초상능력자들이었는데 이족들이 쓰는 마법과는 다르다고 분류되었다. 정통주술은 굉장히 발동하기 어려운 대신에 그 효과가 극악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 빌어먹을...!! 주술이라니. 대체 언제 걸린 거지?'
주술은 발동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다. 적어도 이런 빠른 전투에서 즉석시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사악한 축원을 반복하며 제물을 바쳐도 모자랄 판인데 즉석에서 피를 폭발시킬 정도의 저주를 거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야차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 호오... 예상은 했지만 의념을 그 정도로 쓰는 걸 보면 절대지경의 고수구나. 게다가 상당한 신력(神力)을 갖고 있어서 내 저주에 쉽게 저항하는군."
" ......"
" 천계의 끄나풀이냐? 아니면 삼황오제 쪽이냐."
나는 야차의 말에서 상대의 대전경험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저주에 저항하는 정도만 봐도 즉시 내 역량을 측정해낸 것이다. 하긴 수천 년 전부터 천계의 무수한 대라신선이나 투선과 싸워온 자이니 저 정돈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야차를 비웃듯 말했다.
" 천하의 팔부신중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했는데 고작 주술사였다니 실망스럽군. 가진 무예는 수천 년을 살아왔어도 비천한 수준인가 보지?"
조금이라도 도발해서 상대방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면 좋다. 내가 도발적으로 말했는데도 야차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 나는 아수라같은 별종이 아니다. 그리고 네가 한 번 주술에 걸린 이상 지금부터는 쭉 내가 유리하지."
까딱
" ......"
나는 야차의 손가락이 움직인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가 회전하려는 걸 억제했다. 손가락이 움직인 순간 목뼈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해서 즉시 머리통이 다섯 바퀴는 돌아버릴 뻔 한 것이다. 이것 또한 저주가 분명했다. 근력이나 기만으로는 절대 저항할 수 없는 공격이었고 의념이 있었기에 막아낼 수 있었다.
' 제기랄! 엄청 까다로운 놈이야.'
이미 내 몸에 어떤 방법으로든 저주의 단말을 박아넣었고, 그걸 매개로 추가적인 주술공격을 하는 건가? 그리고 자기에게 접근하는 놈은 강력한 방어막을 시전해서 튕겨내버리는 전투법인 듯 했다. 어찌보면 단순했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한 압박감과 괴로움을 느끼게끔 되어 있었다.
여동빈이 야차와 싸울 때 애를 먹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여동빈이 야차와 첫대면 했을 때 패배했던 이유는 정통주술이라는 요소를 거의 알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기 때문이리라. 다만 이후부터는 자신의 역량을 더욱 상승시키고 야차의 방어막마저 갈라버릴 정도로 강해졌기에 여동빈이 이겼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건 저 놈의 방어막을 일격에 가를 수 있느냐 아니냐이다. 방어막부터 뚫지 않으면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검뢰를 써서 공략하자.
투웅!!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멸혼보를 써서 야차의 지근거리까지 압축시켜서 공격했다. 하지만 야차의 목을 검뢰로 베는 순간 아차했다.
' 가짜!'
이럴 수가?!
분명히 직전에 화안금정으로 실체라는 걸 확인했는데!
나는 일검을 휘두른 순간 그대로 기를 느껴서 야차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 위치를 향해 다시 짓쳐들었는데 야차는 또 다시 순식간에 허상을 남기고 이동해 버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나는 뭔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그렇군...!! 내 공격에 반사신경으로 대응하는 게 아냐! 자동으로 회피하는 주술인 거다!'
내 공격이 날아오는 순간 자신의 본체를 순간이동시키도록 조건을 설정했을 뿐인 것이다.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이런 식이면 내가 죽을때까지 공격해도 야차를 건드리는 게 힘들 수도 있었다. 나는 이제서야 야차가 어떤 놈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은 절대 안 다치고 상대가 지쳐 죽기를 기다리는 정통파 주술사!
주술의 피해를 축적시켜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게끔 하는 전법의 대가였다.
이런 유형의 적은 거의 맞이해본 적이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물론 제갈부나 제갈유룡 또한 이런 전법을 쓰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야차는 그들과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절대지경의 검기가 아니면 자동으로 두르고 다니는 방어막을 가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주술의 위력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야차는 틀림없이 천상천하를 통틀어서 최고의 주술사 중 하나였다.
정면에서 붙어준다면 아무리 팔부신중이라 해도 일전을 결하는 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이런 놈은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 으음. 흑웅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흑웅으로 음신지력을 통제해서 주술의 영향력을 막아내는 강력한 술법방어막을 만들면 내가 크게 유리해진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음신지력을 거의 통제할 수 없으니 그저 자연저항력을 강화시키는 용도로밖에 쓸 수 없다. 나는 곤란함을 느끼다가 결국 당초에 생각했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팔부신중쯤 되면 목숨을 걸 수밖에...
" 이 기술을 쓰면 원래 내가 죽는다."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야차가 비웃었다.
" 후후, 뭘 쓰려는 거냐?"
" 하지만 이번엔 너만 죽게 될 거다."
나는 손을 움직여서 내 자신의 요혈을 찍었다.
대라멸진(大羅滅盡)!
전신의 문이 열리면서 엄청난 수준으로 기가 증폭하는 게 느껴졌다. 일시적이지만 무한의 내공을 지닌 천령단조차 넘어서는 기세였고, 천지간이 내 기 때문에 가득 메워지는 듯 했다. 기가 열리면 열릴수록 내 몸을 붙들고 있던 주술의 압박이 점차 옅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 아니..."
야차가 처음으로 크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기가 부풀어오르고 밀도를 더해가자 야차의 몸을 보호하던 무형의 방어막에 금이 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여동빈을 상대할 때도 이런 현상은 없었을 테지만, 일순간이나마 지금의 내 힘은 원영신마저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비틀
야차는 이윽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패도의 기 때문에 방어막이 반쯤 깨진 상태에서 그녀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묻어났다.
" 너... 너는 마왕이냐? 인간이 어떻게 이런..."
기가 평소의 수십 배 이상 솟구쳐 오른 상태가 되자 나는 몸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 팔문을 다 연 게 아니라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 동안 계속해서 내공을 꾸역꾸역 쌓고 더 쌓은 탓에 대라멸진으로 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도 계속 증폭되었던 것이다.
투둑
나는 육문(六門)까지 열린 상태에서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며 잠시동안 대라멸진의 정공을 닫았다.
' 육문 정도면... 어떻게든 뒷감당이 되겠지...'
팔문까지 다 열면 무조건 죽으니, 이 상태에서 최대한 싸워보자!
빠지직
내가 눈에서 혈광을 내뿜으며 한 걸음을 내딛자 갑자기 땅이 크게 반으로 갈라지면서 일대에 약한 지진이 울려퍼지는 게 느껴졌다.
" 야차, 뒈져랏!!"
뇌신류(雷神流)
정권(正拳)
콰과과과과광
첫 일격은 단순히 힘을 강하게 넣어서 휘두른 뇌신류의 앞지르기 정권이었다. 용비천을 이 일격 한방으로 터뜨려 죽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권은 그저 야차의 방어막을 깨부수고 그녀를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에 그쳤다. 모종의 방어막이 또 생겨나며 내 공격의 힘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쿠구구궁
그리고 빗나간 정권의 괴력이 마치 거대한 충격파처럼 변해서 황궁 뒤편의 산을 통째로 날려서 지형을 바꿔버렸다. 지평선 너머까지 권력이 번져나갔다.
' ... 크윽...!'
빌어먹을!! 역시 팔부신중답게 강해!
나는 대라멸진을 쓴 상태의 정권을 어떻게든 피해없이 기술로 막아내는 시점에서 야차가 용비천보다 최소한 몇 배는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권을 거두며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후속공격을 가했다.
여의조령(如意照靈)
멸혼보(滅魂步)
합식(合式)
천광백렬각(天光白裂脚)!
퍼버버버벙
뇌신류 종사 이청운이 가르쳐 준 합체절초!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여의조령에 멸혼보 절기 천광을 합쳐서 상대가 어떻게 피하든간에 따라붙어서 약점을 빛살같은 발차기로 날려버리는 오의, 천광백렬각을 시전하자 순식간에 수백 번의 발차기가 야차가 있던 공간을 날려버렸다.
후웅
' 이동했다...!!'
이번 공격은 정면에서 막거나 흘릴 수 없음을 깨닫고 도중에 실체를 이동시킨 게 느껴졌다. 나는 즉시 상대의 위치를 탐지하고는 선검을 꽉 쥐었다.
멸혼보(滅魂步)
극성(極成)
파천일보(破天一步)!
투콰악
말 그대로 빛과 같은 속도로 나는 야차가 이동한 십여 리 밖에 쇄도했다. 숨을 한 번 쉬는 순간의 일 할도 걸리지 않았다.
" ......!!"
야차는 설마 내가 이렇게 순식간에 도착할지는 몰랐던 모양인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펼친 파천일보가 크게 실망스럽다는 걸 알아차렸다.
' 제길! 원래라면 더 빨라야 하는데...'
이상하게 예전과는 달리 파천일보가 제 위력을 내지 못했다. 원래라면 야차가 깨닫기도 전에 와 있어야 했는데 이 정도면 절대고수를 압도할 정도의 속도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목표에는 도착했지만 무술경지의 시전으로서는 실패였다.
설마... 과도하게 향상된 신체능력 때문에 심기체의 균형이 흐트러져서 파천일보의 위력이 떨어진 건가?
슈칵
검뢰(劍雷)
무량단(無量斷)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즉시 선검으로 야차를 공격했다. 검뢰가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야차의 몸뚱이를 베었고, 나는 야차를 벤 직후에 허공에서 뚝 떨어져서 땅으로 착지했다.
고개를 돌려서 볼 것도 없다.
이번에는 '진짜'를 베었다.
" 커... 커헉..."
야차는 몸이 반쪽으로 갈라진 채 허공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원래 잘려서 토막나야 할 몸뚱이를 어거지로 마력을 이용해서 유지시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원독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네놈... 감히... 인간따위가 나를..."
슈와악
야차는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는 아예 기척이 안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전투를 포기하고 멀리 도망쳐버린 모양이었다.
야차를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휴... 본체로 변신하진 않았군.'
본체인 마왕형태로 변했다면 그때부터가 2차전이며 내 승산은 희박해진다.
다만 야차는 나와 싸우는데 그 정도의 부담을 감수하기 싫어서 도주한 듯 했다. 인간에게 패했다는 굴욕은 남겠지만 창힐이 실종된 지금 본체로 싸웠다가 만일 큰 부상을 입으면 야차 입장에서는 엄청난 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차가 도주할 거라고 예측했기 때문에 나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대라멸진을 써서 싸워볼 수가 있었다. 인간모습일 때 따끔한 일격을 먹여주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몸에 무지막지한 부담이 밀려오면서 토혈을 하기 시작했다.
" 쿨럭!! 쿨럭..."
내장이 토막나는 것 같다. 너무 아프다.
그리고 원래라면 대라멸진을 펼쳤을 경우 6단계에서 경맥의 개방을 중단시킨다 해도 결국 죽음에 이르는 건 같았다. 그릇이 통째로 깨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눈을 흐릿하게 뜨면서 내 몸 속의 음신지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기(氣)와는 다른 이질적인 신력이 내 몸에 감돌기 시작했다. 나는 이 광대한 신력을 세밀하게 제어할 역량은 없었지만 그 대신에 다른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 음신지력이여... 내 몸 곳곳에 스며들어라...'
스으윽
본래는 상단전을 위시한 다른 공간에 보존되어 있던 음신지력이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내려와서 실체하는 공간에 구현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대라멸진으로 끌어올렸던 압도적인 기(氣)가 엄청난 속도로 휘발해서 말라붙어가는 단전과 혈맥에, 음신지력이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느껴진다.
실시간으로 뼈와 근골, 혈맥이 녹고 있지만 그 속도만큼 음신지력이 도로 달라붙어서 몸의 파괴를 막아주고 있었다.
나는 잠시 후 몸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신지력 덕분에 몸의 괴사(壞死)를 막은 것이다. 이건 시간역행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대라멸진을 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이(有二)한 방법이었다. 나는 몸이 다시 멀쩡하게 움직이는 걸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 제기랄... 이번에 음신지력 30년치를 써버렸군.'
이론적으로는 이 방법으로 대라멸진의 부작용인 죽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방법으로 몸을 치유할 경우 음신지력을 영구히 소실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30년치는 되었으므로 전생자인 내 입장에서는 손해가 컸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대라멸진 쓰고 죽는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수백 번 죽기를 각오한 이상, 힘의 축적에만 집중하는 건 도리어 전생자의 여정을 느리게 만들 수가 있었다. 나는 이번 소모를 아까워하지 않기로 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내 주변에 와 있던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날 습격해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공격하지 않더군."
" ......"
슈슉
은신술을 풀고 나타난 제갈유룡은 침묵했다. 그러더니 불쑥 말했다.
" 그대는 내가 봤던 인간 중 최강자다. 단독으로 야차를 격퇴시킬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감탄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는데, 사실 격퇴를 노리고 무리해서 대라멸진을 쓴 게 아니었다면 야차를 상대로 꽤 고전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좀 더 갈고닦으면 이런 방법을 안 써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절대지경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야차의 주술을 상대로 의념으로 다 파해할 수준이 되지 않았다. 야차는 인간상태에서도 굉장한 강적이 분명했다. 여동빈의 시대에는 최종흑막이었던 마왕인 것이다.
' 뭐, 제갈유룡에게 신뢰를 줬으니 다행인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 흑요석을 받겠나?"
내 질문에 제갈유룡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좋다. 다만 그 전에 네 목적이 뭔지를 말해라."
" 내 목적은 일차적으로 무림일통, 그리고 이차적 목표는 당신이 직접 기억을 보고 확인해라."
" 그러지."
우우웅
나는 제갈유룡에게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제갈유룡은 기억을 받아들인 후 크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내게 대뜸 말했다.
" 백웅이여... 이 모든 기억이 사실이라면..."
이어진 말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 그대는 이번 생에 황제(皇帝)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