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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우선 서문혜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인명을 구조하는 일을 너무 미룰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수기의 공양을 머지 않은 시일내에 해결해야 했으므로 가능하면 빨리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문혜 일행과 나머지 사람들을 구조한 후 모든 보물을 얻어서 목갑에 넣은 후 예전처럼 검마의 무영문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검마와 서문혜에게는 아직 흑요석을 주지 않은 채 망량을 찾아갔다.
파앗
나는 망량이 사는 진랑곡(晉郞谷)에 도착해서 차분히 망량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망량을 불러내었다. 망량은 잠을 자고 있다가 얼떨결에 나온 듯한 표정이었고 도깨비라도 보는 듯 했다.
나는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흑요석을 주기 전 미리 말해두겠소. 당신의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원래대로 되돌려 주겠소."
" ......?"
우우웅!!
망량은 잠시 후 흑요석을 통해 기억을 전송받았다. 그리고는 잠시 혼란스러운 듯 비틀거리다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는 듯 했다.
" ... 이럴 수가..."
" 이제 상황을 알겠소?"
" 으음. 잠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시오."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망량이 말했다.
" 어떻게든 납득은 한 것 같소만, 솔직히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구려. 운이 나빴다면 나는 광인(狂人)이 되었을 것이오."
" 그 정도요?"
" 그렇소. 기억에 새겨진 암기(暗氣)가 절반이하로 줄어들었소만 그렇다 해도 보통 인간에게 줄만한 건 아니오. 숙부가 정신력 운운한 것도 굉장히 기준이 높다고 생각해 주시오."
" ......"
아직도 내 기억은 위험한 물건인 것인가...
" 아무튼 날 찾아와 준 이유를 알았소.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뭘 해야하는지도."
" 무엇을 할 생각이오?"
내 말에 망량이 차분히 대꾸했다.
" 우선 광성자의 유적으로 가서 삼황내문을 얻고 싶소. 그리고 흑백련과 천년설삼은 내가 먹고싶구려."
" 으음, 알겠소."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 망량이 이렇게까지 기연을 직접 챙기는 건 처음같군...'
나는 망량의 말대로 삼황내문을 얻고, 그에게 흑백련과 천년설삼을 복용시킨 후 옆에서 그의 진기를 도인해주면서 내공을 얻을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그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망량은 순식간에 큰 내공과 술법능력을 손에 넣은 듯 했다. 망량이 이윽고 나와 함께 망량선사의 마을로 향했고, 우리는 그 안으로 가서 천우진을 설득한 후 수기 공양의식을 치르기로 했다.
우우우
수기 공양의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하늘이 아주 검게 변해 있었다. 망량이 그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수요를 얻은지 약간 시간이 지나서 위험한 시점이었구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공양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행할 것이오."
" 어떻게 하려는 것이오?"
" 이번에는 내게 맡겨 주시오. 조그마한 것으로 큰 것을 얻어낼 생각이니."
잠시 후 천우진의 몸에 태허천존이 처음으로 강신했다. 그리고 태허천존이 강림하자마자 망량은 그에게 말했다.
" 태허천존이시여. 나 망량은 백웅에게서 의식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로써 이번 공양의식의 대가를 따로 부탁드리고 싶나이다."
[ 흐음... 무엇을 얻고 싶은가?]
망량의 눈이 빛났다.
" 태공망의 손에 있는 천계 최강의 보패, 태극도(太極圖)를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옵소서!!"
[ ......]
태허천존의 눈에서 기묘한 이채가 일렁였다. 무언가 흥미롭다 여기는 표정이 분명했고,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망량의 말에 대꾸했다.
[ 너는 태극도가 그의 손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저희의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 내 소관이 아니구나. 본인과 직접 이야기 해 보도록.]
슈아악
잠시 후 천우진의 몸에 태허천존 대신에 태공망, 강자아가 강림했다. 태공망은 아무런 표정없는 얼굴로 우리 쪽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 도사여. 수요의 수기 따위로 너무 과한 것을 바라지 않는가? 태극도는 천계 최고의 보패이며 나는 태극도를 수호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으니, 그 어떤 외압에도 태극도의 소환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다.]
그 말에 망량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수요의 수기가 있어야 천계의 정원에 물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 터. 서왕모께서도 이번 일을 은근히 바라실터인데 거절하시려는 겁니까?"
[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리 서왕모라고 해도 태극도의 거취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 그 권한은 당신에게만 있다는 말이군."
[ 입씨름할 이유가 없는 문제다. 그럼 나는 이만...]
태공망이 되돌아가려 하자 망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 당신이 태극도의 소환권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에 신술(神術) 창천대신광(蒼天大神光)의 비기를 퍼뜨려 버리겠소."
흠칫!
태공망의 영기가 천우진의 정수리에서 빠져나가려다가 멈칫거렸다. 태공망이 눈에서 광망을 흘리며 말했다.
[ 헛소리 하지 마라. 너희가 그 비기를 어찌 안단 말인가?]
" 못 믿겠다면 중요 수련구결을 몇 구절 읊어보겠소."
망량은 대략 120여 자 정도의 구결을 천천히 읊었다. 그 구결은 내가 남극선옹의 가면을 훔쳤을 때 얻어냈던 기억 그 자체였다. 구결이 이어질수록 태공망은 좌불안석하는 표정이 되었고, 급히 외쳤다.
[ 그만둬라!!]
" 이제 우리 얘기를 들어줄 생각이 있소?"
[ 신술이 세상에 풀려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결국 거대한 인과의 축에서 인간이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감당도 못할 비밀을 감히 퍼뜨리려 하다니...!!]
" 우리 요구대로 태극도를 우리에게 넘기던가, 아니면 소환권이라도 주시오. 그렇게 해 준다면 신술에 대하여 영원히 입을 닫겠노라고 언령으로 계약해 주겠소."
[ ... 좋다.]
태공망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망량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 계약하자. 수기공양의 대가로 나는 이 거래를 받아들인다. 너희는 영원히 신술의 전승을 포기하는 대신, 나는 너희에게 보패 태극도의 소환권을 주겠다.]
" 고맙소."
[ 고마울 것 없다. 나는 딱 대가만큼만 너희에게 소환권을 부여할 테니까.]
파앗...
이윽고 수기공양의식이 끝나자, 나와 망량의 손 위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태극 속의 태극이 겹쳐 있는 듯 했다.
" 대라신선 태공망이 우리에게 준 단말이자 태극도의 소환능력이오."
" 호오."
나는 태극도를 소환하려고 문양에 술력을 모았지만 그러자 망량이 급히 내 손목을 붙잡았다.
" 그만두시오."
" 응? 잘 되나 한번 소환해 보려는건데..."
" 태공망은 딱 수기공양의 대가만큼만 준다고 했소. 그러니 횟수는 당연히 제한이 있을 것이오. 섣불리 이런 자리에서 소환횟수를 낭비할 순 없지."
" ......!!"
" 그렇다 해도 우리가 이득본 건 사실이오. 태극도의 위력을 생각한다면..."
" 그렇구려. 잘 했소."
태극도!
그 보패는 항우조차도 얕보지 못한 강력한 보패였다. [신선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태극도는 신성(神聖)을 파괴하는 능력이 있었으므로 중요한 순간에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겨우 수기공양으로 태극도의 소환권을 얻어낸 건 큰 성과인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 백웅. 이제 순어구, 수정석비, 무명제사서, 그리고 용문석굴의 보물 등을 얻으러 갑시다. 그리고 나중에 검마와 서문혜에게도 흑요석을 줘도 될듯 하오. 내가 정신력으로 버텼다면 검마 어르신도 당연히 버틸 수 있을 것이오."
역시 망량은 내가 흑요석의 암기에 갖고있는 불안감을 눈치챈 듯 했다. 검마가 자칫하다가 미칠까봐 건네주지 않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 알았소."
파앗
나는 각지의 보물을 수습하기 위해 망량과 함께 움직였다. 그 보물들 전체를 수습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으며 모든 일이 끝나자 나는 망량과 함께 진랑곡의 모옥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대청에 앉아서 머리를 긁적였다.
" 그러고보니 망량선사가 이번에는 내게 말을 걸거나 잠들게 하지 않았구려."
오늘 제일 이상하게 여겼던 일이었다. 평소에는 갈 때마다 무슨 수상쩍은 말을 하거나 경고를 해댔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망량은 근처의 밭에서 가져온 듯한 과일을 한 입 베어먹으며 대꾸했다.
" 좋은 징조요. 딱히 조언할만한 일이 없다는 뜻 아니겠소?"
" 그럴 수도 있지만..."
" 왜 그러시오.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드는 거요?"
" ......"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육감이라고 해야할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거리고 있었다. 그 불안감은 망량선사가 아무런 조언도 주지 않은게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망량이 말했다.
" 잠시 쉬었다가 숙부가 있는 백련교로 갑시다."
" 알았소."
파앗!
나는 잠시 후 망량과 함께 제갈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 할 일은 다 하고 왔냐?"
" 어."
제갈사는 교주전의 귀빈이 머무는 곳에 있었으며 교주 또한 제갈사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와 망량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앉았고 이번에 얻은 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듣고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역시 현이군. 태극도를 얻어낸 건 아주 훌륭한 계책이야."
" 제갈사. 이제 재료는 거의 다 모았어. 아직 하지 않은 건 아베노 세이메이, 미호를 만나서 우리 편으로 만들지 않은 것 정도야."
그 외에도 연종휘, 당산, 진소청 등을 아군으로 만드는 일이 남아있긴 하지만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닌데다가 괜히 인과가 왜곡되어 퍼져나갈까봐 섣불리 시도하지 않았다. 내 말에 제갈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네가 오기 전에 교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았다만... 결론은 하나였다."
" 뭔데?"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 무림일통(武林一通)!"
" ......!!"
" 예전에도 비슷한 일을 했었지? 명목상으로는 백웅 네가 백련교의 부교주가 되고 우리는 호법사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일을 진행한다. 그리고 백련교의 힘으로 중원을 정복해서 모든 무림을 우리 손에 넣는 거지."
" 그, 그걸 왜 하는 거야?"
" 몰라서 묻냐? 당연히 무림을 손에 넣으면 온갖 무림방파에게서 세금을 걷을 수 있고 온갖 인적 물적자원을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정보력도 급증하게 되고 새외(塞外)의 소식도 쉽게 알 수 있지. 무림을 정복하면 백련교의 자금력은 지금의 열 배 이상이 될 거다."
나는 제갈사의 말을 이해하고는 중얼거렸다.
" ... 법문을 찾기 위해서 무림을 정복한다는 말인가."
" 바로 그거야. 그리고 무림의 제일세력이 되기 전에 방해되는 세력을 제거하거나 포섭해야겠지. 무림 여기저기에 은거기인이 묻혀있다가 우릴 방해할수도 있잖아? 그건 백련교주의 힘만으로는 잘 처리가 안 될테니 네가 그림자에서 활약해줘야겠다."
" ......"
모든 무림인들의 꿈 중 하나인 무림일통이 겨우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니.
나는 갈수록 판이 커지는 걸 느끼자 왠지 아득해졌지만 차분해졌다.
' 까짓거 해보지 뭐...'
제갈사의 말마따나 예전에도 백련교 부교주로서 무림을 침공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비밀세력을 조직해서 백련교에 맞선 적도 있었다. 이제 와서 이 정도가 어렵다고 할 순 없는 것이다.
" 좋아. 그럼 무림을 통일하는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 흐음... 내 생각에는 대략 두 달 정도면 충분하겠더군. 현아, 네 생각은 어떠냐?"
제갈사의 질문에 망량이 대답했다.
" 그건 너무 거친 수단을 썼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평화롭게 장악한다면 일 년은 걸리겠죠."
" 웃기는 소리하지 마. 진짜 거친 수단을 쓰면 한 달만에 가능해. 그나마 유하게 갔을 때의 이야기인데..."
" 그런 식이면 백련교주도 진작에 무림을 통일하고도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반발을 최소화시키면서 최강의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서두르면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 너도 알고 있을 테지만 법문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무리수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상상할 수 없는 방해가 들어올 거다. 빨리 진행해서 힘을 빨리 키우는 게 나쁘진 않아."
" 일 년도 긴 시간은 아닙니다."
보기 드물게 제갈사와 망량이 서로 의견충돌이 일어난 듯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련교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내 의견을 말해도 되겠나?]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백련교주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 중원의 송사리들을 걱정하는 자는 이 중에 없을 것이다. 진짜 중대한 방해물은 내 생각에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갈사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 세 가지라. 뭔지 말해 봐."
[ 첫째. 천계(天界)다. 너희도 알다시피 어떤 수준을 넘게 되면 그들은 무조건 우리를 방해하게끔 되어 있다. 천계의 대라신선과 투선이 간섭하는 걸 어떻게 물리칠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되겠지.]
" 좋아. 두 번째는?"
[ 창힐의 팔부신중 세력... 구체적으로는 그들 중에서 아수라(阿修羅)다. 그 자는 천축최강의 고수이며 현재 용병인 상태이니 우리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이미 백웅의 전생경험 속에서 선례가 있지.]
" 마지막."
[ 십이율주(十二律主).]
백련교주의 눈에서 광망이 흘렀다.
[ 그 자가 앞서 말한 두 가지 경우보다 더욱 골치 아플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십이율주를 제압할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 교주의 두뇌도 매우 뛰어나구나.'
하긴 젊은 나이에 수천 권의 마도서를 통달하고 자력으로 지존의 자리를 쟁취한 자가 결코 평범한 인물일 리가 없었다. 그 또한 천재에 준하는 두뇌의 소유자인 것이다. 제갈사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히죽 웃으며 내게 말했다.
" 좋아, 백웅. 너는 교주가 말했던 장애물 세 가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냐?"
" ......"
나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 황궁(皇宮) 세력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최선이겠지."
제갈사가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 크크크, 정답이다."
천하 삼대세력이라 불리던 백련교, 황궁, 십이율.
그 중에서 백련교를 이미 우리가 장악했으니, 그 다음으로 황궁을 얻어서 연합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미증유의 세력이 탄생할 게 분명했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 중원제압은 백련교주에게 맡기고 우리는 제갈유룡과 황궁을 포섭한 후 백련교와 연합해서 십이율을 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천하일통은 코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