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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제갈사는 내 말에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게 몇 개 있다만, 뭐 일단은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다시금 천뢰신무를 쓸지 알고 싶군."
" 흠..."
나는 제갈사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사실 찰나의 감각이었기 때문에 다른 무공처럼 생각나는대로 쓸 수는 없어. 내가 다시 한 번 천뢰신무의 경계에 도달하려면 몰아일체의 상태에 도달해야 할 것 같아."
" 그 몰아일체라는 건 그냥 명상과 집중만으로 가능한가?"
" 해 봐야지."
" 좋아. 자리를 마련해 주지."
나는 제갈사가 장령곡 내에 수련장을 마련해주자 널찍한 장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고수에게 있어서 명상은 기를 쌓는 수단이며 동시에 집중력을 극대화시키는 훈련이기도 하기에 몰아일체에 빠지기는 가장 좋은 수련인 것이다.
우우웅
나는 기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며 생각했다.
' 역시 항우가 줬던 성좌의 단말은 사라져 버렸다... 신투지존이 지배자 소환에 바쳐버려서인가.'
좀 아쉽긴 하지만 그 위험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던 대가로 생각해야겠다. 나는 내 몸에 흐르는 광대한 기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는 걸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이 감각은 환골탈태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꽤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쿠구구
기가 정점에 이르게 되자 저절로 내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왔고, 후광과 함께 내 주위에 엄청난 기가 유형화되어서 하늘과 통하는 기둥이 생긴 듯 했다. 의념천주가 곧추세워지면서 하나로 집중된 정신을 통해서 예전에 느꼈던 천뢰신무의 감각에 빠르게 접하는 게 느껴졌다.
' 왔다!!'
콰앙!!
상단전에 무언가가 내리치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나는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듯 정신이 더욱 높은 차원에 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묘한 부유감을 느끼면서 나는 또 다시 백좌(百座)가 눈에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어전(御殿)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게 무신의 좌를 얻는 것인가...!!
나는 필사적으로 어전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저기에 닿는 순간 많은 게 변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허우적
허우적
하지만 나는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일 듯한 백좌의 어전에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다가가려 하지만 상대가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는 걸 눈치챈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 부족하다.
뭔가가 부족해...
뭐가 부족하지...?
심지어 백좌에 거하는 본래 주인들조차 희미한 인영을 비치고 있으나 내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조차도 내가 아직 좌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기를 쓰고 계속 나아갔지만 어느 순간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걸 느끼고 말았다.
' 크윽!! 의념천주가... 고갈된다...'
의념천주는 무한이 아니다. 절대지경의 상징이며 세계의 법칙을 왜곡시킬수도 있는 강력한 힘이었으나 인간이 사용하는 만큼 그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내가 영혼을 높은 차원으로 도약시키며 의념천주의 도움을 계속 받았으나 의념이 고갈된다면 본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슈욱!!
" 커헉!!"
나는 집중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피를 토했다. 선혈이 가만히 있어도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걸 느끼자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내가 한동안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 안 됐나?"
" ... 크흑... 제길."
" 대충 예상은 했다."
" 뭐?"
내가 제갈사의 무덤덤한 말에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근처에 놔두었던 의자를 끌어당겨서 고고한 자세로 앉으며 말했다.
" 나는 무인이 아니지만 네 기억에서 유추해볼때 백련지종 천뢰신무라는 건 네가 만들어낸 무예가 아니다. 또한 절대지경에 올랐다 해도 백련지종 천뢰신무가 절대지경의 무예인 것도 확실치 않지.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천뢰신무는 별격(別格)의 경지이다."
" ......"
" 다만 천뢰신무가 만일 신역절기(神域絶技)일거라는 예상을 한다면 네가 그때 천뢰신무를 썼던 게 설명되지 않지. 내 생각이지만 천뢰신무는 신역절기이되, 특수한 사용조건을 만족한다면 절대지경에서도 사용가능한 기술이 아닐까 싶군."
" 으음!!"
" 또한 천뢰신무를 쓸 때의 감각으로 고도의 집중을 가한다면 무신의 좌에 저절로 도전하게 된다는 건... 무신의 좌에 도달하는 게 기본 사용조건일 가능성이 높다."
" 그건 대충 짐작하고 있어. 그래서 이번에 도전했던 건데..."
도저히 손이 닿이지를 않는다. 내가 방금 전에 느꼈던 절망감을 제갈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그는 천천히 말했다.
" 네가 천뢰신무를 시전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지. 그 때는 무쌍패를 써서 말도 안되는 삶의 고비를 연속으로 넘겼었지?"
" 그랬어."
" 그 당시의 집중력과 지금 명상을 하는 집중력은 비교가 안 된다고 본다. 상황이 다르다는 거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제 너는 그 당시에 준하는 엄청난 집중력과 홀황경을 다시 체현(體現)해야만 한다."
" ......"
그게 될까?
' ... 하다가 최소 20번은 죽을 거 같은데...'
지난 27번째 삶에서 무쌍패를 연속으로 펼치며 지배자 테스카틀리포카의 파상공세를 막아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강적을 상대로 무쌍패를 써서 완벽하게 무효화시키는 건 두세 번 정도가 한계였고 그 이상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때는 물리공격도 아니고 무형의 주술이나 저주가 날아왔기에 평소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았던 것이다.
다시 그 수련에 도전하는 것은 마치 극소한 확률을 계속 중첩시키는 것과 같았기에 나는 도저히 또 그 짓을 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내 시간이 무한이라고 가정한다면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단시일에는 수련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제갈사는 턱을 괴며 말했다.
" 다만 이 경우도 의문점은 남지."
" 의문점?"
" 테스카틀리포카를 물리쳤을 때 네 집중력은 물론 대단했다.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너는 전생하며 수십수백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삶의 극한에서 계속 집중력을 짜냈다. 단순히 집중력만으로 신역절기의 경지에 한 번 도달했었다는 건 뭔가 말이 안 돼. 예전에도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은 수도 없이 많았잖아? 아무리 무쌍패를 연속으로 썼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그 상황만이 특별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해."
" ... 그건 그렇지."
" 뭔가 우리가 모르는 특수한 조건이 있다고 본다. 그건 아마 천뢰신무만의 조건이겠지. 그걸 찾아내야 한다."
제갈사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 흐음... 앞으로의 과제인가.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차분하게 하면 될 것 같군.'
내가 제갈사의 말에 섣불리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고 내 안에서 그의 말을 정리하고 있자, 제갈사가 말했다.
" 우선 천뢰신무는 당장 이룰 수 없으니 잠시 미뤄두지. 대신 네 사대신기라는 걸 한 번 보고 싶은데."
" 알았어."
나는 제갈사에게 잠시동안 정신세계 속에서 사대신기 중 바즈라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제갈사는 흥미롭다는 듯 사대신기를 만져보려 했는데 문득 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급히 손을 뒤로 물렸다.
" 왜 그래?"
" 그것들은 마력(魔力)에 극성의 성질을 갖고 있군. 내가 만지면 즉시 뇌전에 타 죽을 것이다."
슈욱
바즈라는 잠시 후 사라져 버렸다. 그 상황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설득할 재료이긴 한데 조금 부족한가."
제갈사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아냐. 도전할 가치가 있어."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내게 빠르게 주문했다.
" 백웅. 다른 일은 일단 뒤로 미뤄도 좋다.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백련교의 본단으로 가서 백련교주를 만나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 ... 좋아!!"
파앗
나는 제갈사와 함께 비등을 써서 백련교의 본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와 제갈사가 교주전에 나타나자 교주전에 잠복해 있던 원로원의 고수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살기를 뻗치는 게 느껴졌다. 제갈사는 그 살기를 느끼자 크큭하며 웃었다.
" 백웅. 원래 너였다면 외력(外力)을 빌리지 않고 무술만으로 이 놈들을 다 돌파하긴 힘들었겠지. 하물며 지금은 흑웅도 없는 상태다. 이 원로원 놈들의 전력을 다 합치면 구파일방을 3번 멸망시키고도 남지."
" ......"
" 절대지경의 힘으로 정면돌파가 가능하겠나?"
" 나를 뭘로 보는 거냐?"
나는 투덜거리며 서서히 검을 들었다.
" 금방 끝내주지."
[옛 지배자]랑 싸우다가 인간계에 오니까 도리어 마음이 편해진다.
내 말에 자극을 받은 듯 반로환동한 모습의 일로(一老)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건방진!! 저 애송이들을 잡아 죽여라!!"
후와악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열다섯 명의 인영(人影)이 동시에 뻗어오듯 내 주변으로 쇄도해 왔다. 저들 하나하나가 원로원 고수이며 강호에서 초절정고수로 군림하는 존재들이라 생각하면 엄청난 합공인 건 틀림없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강호의 고수들 중 누구도 저들의 합공을 혼자서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리라.
' 그치만...'
왠지 이런 데서 거창한 필살기를 써가면서 이기고 싶진 않다.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저 정도는 기초적인 검술의 응용으로도 충분히 격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키리링
뇌신류(雷神流)
뇌룡신검(雷龍神劍)
주검난화(註劍亂化)
나는 첫 초식을 펼쳤다. 그리고 뇌룡신검의 검술초식에서도 가장 화려한 주검난화가 펼쳐지며 검화(劍花)를 허공에 열 송이 정도 수놓았다. 주검난화를 본 원로원 고수 세 명이 정면으로 검화를 깨부수려는 듯 자신들의 무기에 강기를 불어넣으며 휘둘렀다.
콰칭!!
" 허억!!"
" 아, 아니 어떻게..."
하지만 그들이 성련으로 쌓아올린 막대한 내공으로 펼치는 강기는 검화를 부수지 못했고 무기째로 부숴져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나풀거리는 듯한 검화는 잠시 후 뇌창(雷槍)으로 변모하더니 그대로 그들의 요혈을 관통해 버렸다.
퍼버벅!!
" 으악."
삽시간에 세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지자 그 틈을 타서 다시금 다섯 명이 돌진해 오면서 기술을 쏟아부었다.
" 죽어라!!"
폭사하는 강기가 어지럽게 허공에 수를 놓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초절정 상위급 고수라서인지 의념(意念)을 담은 필살기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도망칠 틈 없이 날아오는 공격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음 초식을 시전했다.
뇌신류(雷神流)
만승검결(萬乘劍決)
회린장룡(灰鱗裝龍)
쉬리링...
내 검이 길어지는 듯 했고 기다란 검기가 기세를 더해서 곧추섰다. 내가 깔끔하게 전방으로 한 번 베자 회색빛 검강이 부드럽게 눈 앞의 공간을 베어서 무(無)로 만들어 버렸고, 앞에서 공격하던 두 명이 배와 어깨에 중상을 입고 그대로 쓰러졌다.
' 가볍게 또 한번...'
나는 곧장 제자리에서 왼쪽발을 축으로 회전을 하며 칼날 끝에서 검룡(劍龍)을 방출했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두 명의 고수가 쓰러졌다. 그들이 호신강기를 발휘할 틈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룡이 그들의 가슴팍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팟
그리고 회린장룡의 초식동안 공방이 일체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강기폭풍을 빠져나왔고 나머지 한 명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원로원 고수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내 혼미한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 어어..."
풀썩
옆을 스쳐지나가는 찰나지간에 칼의 손잡이로 요혈을 때려서 기절시켰는데 당하는동안 몰랐던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고 여덟 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리자 남은 일곱 명이 섣불리 덤비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 윽!!"
" 뭐냐 저 놈은..."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동작에 낭비가 너무 많은 거 아냐? 헛점투성이라서 때릴 데가 너무 많잖아."
이건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다. 여동빈이나 장삼봉과 싸울 때에 비하면 너무 쉬운 싸움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빠른 것처럼 보여도 너무 낭비가 많았고 자신의 빈틈을 감추는 게 어색했다.
" 이노옴!!"
" 허튼 소리 하지 마라."
터엉!!
' 이번에는 이렇게 해 볼까?'
다시금 원로원 고수들이 덤벼들었으나 나는 이번에는 총 10초를 써서 이 싸움을 끝내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였다. 어째서 10초인지는 몰랐지만 그냥 감이 그랬다. 예전에는 상대의 무위에 눌려서 일단 피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면 지금은 상대랑 마주쳤을 때 어느정도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 여유가 느껴졌다.
우선 일 초. 간단하게 눈 앞의 상대의 헛점을 공략하자. 나는 상대가 두 자루의 낫을 휘두르며 공격해오는 걸 느긋하게 보고 있다가 다리의 하박을 빠르게 찔렀다. 거기는 상대방의 중심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약점이었고, 상대의 초식이 주춤거리자마자 나는 주먹을 휘둘러서 그의 관자놀이를 쳤다.
뻐억
그리고 가볍게 그를 기절시키자마자 기절한 자의 목덜미를 붙잡아서 옆에서 쇄도하는 다른 적에게로 던졌다. 원로원 고수들은 초절정고수였기에 이 정도로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지 빠르게 비켜서 내게로 돌진했는데, 나는 그 짧은 호흡 속에서 가장 안전한 지대가 어디인지 왠지 느껴졌다. 그래서 그 장소로 이동하면서 이번에는 두 명의 명치에 칼손잡이를 한 번씩 쳐 주었다.
퍼벅
나는 다음으로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가볍게 차서 장력을 내뿜어 나를 공격하던 일로를 향해서 날렸다.
" 흥!! 이런 꼼수 따위로..."
일로는 돌멩이를 호신강기로 무시하고 내 얼굴을 강맹한 장력으로 짓뭉개려 했으나 다음 순간 그의 팔이 뻑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나갔다. 정확히 그의 팔 관절에 돌멩이가 박혀있었다.
" 컥?!"
돌멩이가 내 의념을 담았기 때문에 그의 호신강기를 꿰뚫고 일격을 먹인 것이다. 뜻밖에 관절이 나가버린 일로는 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달려들면서 목덜미를 수도(手刀)로 쳐서 쓰러뜨렸다.
쿠웅
일로가 쓰러지자마자 나는 옆에 있는 자들에게 달려들어서 두 걸음에 일참(一斬)씩을 먹였다. 간단하게 그들의 허점을 노려서 그저 칼을 휘두를 뿐이었으나 그들은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퍼억!!
칼등에 맞아서 허물어진 원로원 고수가 시허연 수염을 떨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기절하지 않고 다시 덤벼들 수 있었겠지만 이미 전의를 잃은 듯 했다.
" 어... 어떻게 이런 무예가."
저 자들은 경지가 모자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허실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 강력한 내공만으로 승리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무공을 완벽하게 다듬으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천외천의 고수를 만나서 자신의 부족함을 가르침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라.
풀썩
마지막 원로원 고수가 쓰러지자 나는 납검(納劍)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 음... 예상대로 10초가 아니군. 더 빨리 끝내버렸네.'
너무 상대를 과장해서 평가하는 버릇이 생겨서 그런가?
다른 절대지경의 고수들이었다면 자신의 예측에 딱 맞춰서 쓰러뜨렸을 텐데 아직은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씁쓸함을 느끼면서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제갈사에게 말했다.
" 가자."
제갈사가 광소를 흘렸다.
" 크크큭... 모조리 한 방에 끝내는군. 잔챙이한테는 큰 기술을 쓰지 않겠다는 건가?"
" 뭐 그런 셈이지."
저벅
저벅
나와 제갈사는 성큼성큼 걸어들어가서 백련교주가 거하는 정원에 도달했다. 그리고 교주는 커다란 나무를 등진 채 나를 기다린 듯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백련교주가 말했다.
[ 기쁘다. 그리고 그대의 무(武)에 찬사를 보내노라.]
" ......"
[ 세상에 나와 견줄 수 있는 자는 투선(鬪仙), 혹은 십이율주 정도라 생각했건만... 세상에 그대와 같은 절대고수가 존재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백련교주의 무면가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 백련교주.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오."
[ 그럼 무엇 때문에 왔는가?]
" 나는 진공가향의 진실에 대해 당신에게 말해주기 위해 찾아왔소."
바로 사대신기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천천히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이다.
[ ......]
백련교주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그대의 이름은?]
" 백웅이오."
[ 백웅이여... 그대는 필시 중대한 이야기를 하러 나를 찾아왔구나. 허나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쿠구구구
백련교주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무한의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의 무면가면에서 혼돈의 기운이 줄기줄기 광망을 내뿜는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시간이 급격히 느려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거대한 압박감이 사방을 감쌌다.
[ 그대와 무(武)로 대화하고 싶구나.]
" ......"
상대가 원영신을 최대로 발휘하고 있다...
나는 백련교주가 상당히 기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엄청난 인지감각을 갖고 있었기에 내가 방금 전 원로원 고수들과 싸우는 걸 보고 들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 무위를 추측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무인(武人)으로써 나와 일전을 겨루고 싶어하는 게 틀림없다. 진공가향이라는 말을 꺼냈음에도 교섭이나 정보획득보다 나와의 싸움을 우선시한다는 뜻이었다.
피해서는 도리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