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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56화 (95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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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28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위잉!!

그리고 나는 외양간에서 눈을 뜸과 동시에 머릿속에 네 개의 원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 ......?!"

뭐지?!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네 개의 원은 제각기 동,서,남,북을 상징하듯 떠올라 있었으며 제각기 다른 빛을 뿜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의식세계에 자연스럽게 떠올라있다고 해야했고, 마치 태양과 같은 느낌이었다.

' 저 원은 뭐야?'

그리고 네 개의 원의 중심에는 시꺼먼 구멍같은 게 있었다. 중앙이 비어있다는 걸 상징하는 듯 했다.

' 한 번 손을 뻗어보자.'

내가 원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의념을 발휘해서 의념천주를 곧추세운 순간이었다. 내 의지가 원 중에서 은은한 백색빛으로 떨리던 원을 강하게 때린 것 같았고, 그 원은 한 차례 공명(共鳴)을 일으켰다.

위잉 -

파지직!!

" ......!!"

나는 내 손 위에 어느 새 뇌신류의 신기(神器) 바즈라가 떠올라있다는 걸 알아챘다. 손에 생생하게 잡혀있는 바즈라의 감촉에 나는 순간적으로 전율했다.

" 저, 전승된 건가!!"

사대신기를 가지고 돌려보내주겠다는 달마대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달마는 [큰 굴레]를 뛰어넘어서 내게 사대신기를 줄 수 있도록 진공가향의 마지막 순간에 법칙을 바꿨을지도 몰랐다. 내가 내심 놀라워서 바즈라를 앞으로 뻗어서 신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파스슷

바즈라가 뭔가 힘을 발휘하려다가 빠르게 부식되듯 소멸되어 버렸다.

" 헉."

나는 황당해서 내 손 위를 바라보았지만 먼지조차 남지 않고 빠르게 사라져버린 후였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서 멀뚱멀뚱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뭐지? 사대신기가 전승된 거 같긴 한데... 왜 힘을 발휘하려 하니까 사라진 거야!'

나는 잠시동안 앉아서 이게 어찌된 일인지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원에도 차례로 의념천주를 뻗어서 자극해 보았지만, 사대신기는 모두 잠시동안 소환되었을 뿐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 음. 일단 할 일부터 하고 제갈사를 만나야겠군."

원래라면 망량을 찾아가서 계책을 구하겠지만 내 기억에 스며든 암기가 해결되었는지는 미지수이다. 이럴 경우에는 제갈사를 먼저 동료로 얻는 게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곧장 일어서서 천암비서를 얻으러 갔다.

타닷

천암비서를 얻은 후에는 소환수를 써서 산동까지 간 후 비등을 얻었다. 그리고 비등을 얻은 후에는 목갑을 얻으러 황연 장군이 갇혀 있는 대뢰옥으로 갔다.

나는 대뢰옥에 잠입해서 예전처럼 여상하게 괴물을 해치우고 황연장군 일행을 구해내려 했다. 열 번도 넘게 했던 일이라서 전혀 어려울 게 없었는데, 문제는 내가 두꺼비 괴물을 마주쳤을 때 생겼다.

우우우우

두꺼비 괴물은 평상시처럼 쥐새끼같은 침입자를 공격하려고 덤벼들지 않고 머뭇거리며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있을 뿐이었다. 다른 때는 가만있는 것 같아도 주살주문을 외우거나 사악한 저주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 저 놈이 왜 저러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魔)에 속하는 괴물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놈들은 인간을 한없이 하찮게 여길 텐데 왜 저런 반응인 걸까.

잠시 후 대뢰옥의 두꺼비 괴물이 내게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 인간이여... 아니... 그대는 인간인가...?]

명확히 들려온다. 지금까지 저 놈과 제대로 의사가 통했던 적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희한한 일이었다. 저 놈의 의지를 들은 적이 있긴 했지만 명확하게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두꺼비 괴물의 십 장 거리에서 팔짱을 낀 채 대꾸했다.

" 그래. 난 인간 백웅이다. 괴물이여, 왜 내게 덤비지 않지?"

[ ......]

이어진 두꺼비 괴물의 말은 뜻밖이었다.

[ 느껴진다... 그대의 순수한 '힘'이... 너무 엄청나서... 도저히 내가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힘의 윤곽만으로도 깨달았다...]

" 음..."

[ 싸워봤자 난 그대를 이길 수 없다... 부디 내게 자비를 베풀어 다오... 살려주거나... 혹은 깔끔하게 죽여주었으면 한다.]

그러니까 마물의 본능으로 내가 저놈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에 무의미한 반항을 포기했다는 말인가?

' 희한하군...'

일대일로 괴물을 물리칠 수준이 된 건 벌써 십수년이 넘은 일이다. 초절정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을 때도 저 녀석 정도는 다소 시간을 들여서라도 부상없이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 전투를 포기하려 한다는 게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이려고 하면 쉬운 일이다.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로 참(斬)의 일선(一線)을 허공에 긋기만 해도 저 놈은 반토막이 나서 죽으리라. 물론 껍질과 마력방어막으로 단단하게 방어한다면 일격에 베어버리긴 좀 힘들수도 있지만, 저렇게 전투의지가 사라졌다면 매우 쉬운 일.

' 그냥 죽이는 건 좀 시시하군.'

애초에 나랑 원한관계가 직접 있었던 괴물은 아니다. 상대가 적의를 버렸다 생각하니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 저은 후 말했다.

" 내 목표는 네 등뒤의 동굴에 있는 보물들이다. 네가 깔끔하게 이 근처, 아니 이 세상에서 떠나서 마(魔)의 이계로 되돌아가겠다면 봐줄 수도 있어."

[ ... 이계로 되돌아가라니... 무슨 뜻이지?]

" 말 그대로다. 넌 이 세계 출신이 아닐텐데. 마도사에게 소환되어서 이 대뢰옥을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닌가?"

[ ......]

두꺼비 괴물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잘 모른다...]

" 모른다고?"

[ 나는 정신을 차렸을 때 이 세계에 있었다... 나를 소환한 존재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동굴의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 이전의 기억은 없다.]

" 마도사가 널 소환한 게 아니라고?"

[ 너희 인간의 시간으로는 수백 년 이상 살아왔다... 시간의 흐름을 잘은 모르지만... 네가 말하는 마도사같은건 보지 못했다...]

" 흐음."

뜻밖이군. 전형적인 마도의 소환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놈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 그럼 네 뒤의 동굴은 왜 있는 거고 너는 왜 동굴을 지키고 있는 거지?"

[ 본디 심처에 살고있던 나를... 제갈유룡이라는 인간이 발견했고... 그 인간이 내게 거래를 제안했다.]

" 제갈유룡!"

[ 그를 아는가...]

" 대충은 알지. 계속 말해 봐."

[ 제갈유룡이 내게 이 곳에서 거주하면서... 전 왕조의 보물을 모아둔 동굴을 지키라고 했다... 그 대신... 대뢰옥의 죄수들을 가끔 먹이로 주겠노라고 했지...]

" ......"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말했다.

" 결국 인간을 먹었단 말이군. 그리고 기억도 없는데 넌 어떻게 마법과 주살저주를 쓸 수 있단 거지?"

[ 아... 아니... 배가 고파서... 그리고... 마법같은 건... 그냥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덩치가 커지면서 점차 깨달았고...]

선천적인 마족(魔族)이라서 굳이 배우지 않아도 마법을 생득적으로 쓸 수 있는 종족인 건가. 나는 어쨌든간에 눈 앞의 두꺼비괴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란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놈의 처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 어쩌지. 그냥 죽이는 게 마음은 편한데.'

식인괴물 따위 지금까지처럼 베어죽인다 해서 누가 뭐라할 사람은 없다. 아니, 일반적인 경우 안 죽이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나는 왜인지 저 괴물에게도 일단 최소한의 동정을 해줄 여지는 있다고 생각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면... 그 존재 자체가 죄일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앞으로 무고한 동물이나 사람을 먹지 않겠다고 이름을 걸고 약속해. 그리고 중원에서 떠나서 변방의 인적없는 곳에서 평생 살아라."

[ 오... 오오... 살려주는 것이냐...]

" 빨리 약속이나 해. 네 진명(眞名)을 꺼내라."

[ 으... 으음... 내 이름은...]

침묵하던 두꺼비괴물이 말했다.

[ 모르겠다...]

" ......"

스릉

' 이제 슬슬 귀찮아지는군.'

나는 칼을 빼들었다. 두꺼비괴물이 공포심을 느꼈는지 외쳤다.

[ 지, 진짜다!! 난 내 이름을 모른다!! 내 이름을 지어준 자도 불러준 자도 없었다!]

" 그 말, 거짓말은 아니겠지."

[ 그렇다!!]

"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줘도 되겠지?"

[ 그, 그래. 지어다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 음... 이름짓는 거 귀찮군... 내가 이름짓는 데 재능이 없나.'

유신의 이름을 지어줄 때는 그렇게 쉬웠는데 이번엔 왜이리 어려울까. 나는 끙끙대다가 결국 대충 짓기로 했다.

" 개똥이... 그래 개똥이로 하자."

[ 개똥이라고... 좋은 이름인가.]

" 그, 그래 좋은 이름이라구."

[ 좋다... 나 개똥이는 두 번 다시 인간을 먹지 않으며 중원 바깥에서 조용히 살 것을 맹세하겠다.]

" 알았으니 얼른 가버려."

푸콰콰콱

두꺼비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땅을 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론 내 힘이라면 저 놈을 추적해서 잡아죽일 수 있었으나 이름을 걸고 약속했으니 봐주기로 했다. 나는 두꺼비괴물을 죽이지 않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 희한하군. 저 놈과 왜 갑자기 말이 잘 통할까.'

이번 생은 어쩐지 지금까지와 많이 다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후 보물을 모두 회수하고 황연 장군과 포로들을 구출하고 황산으로 갔다. 그리고 황산에서 천년설삼, 흑백련, 수요 등을 모두 얻고서 제갈사에게로 갔다.

그러자 지난번처럼 제갈사가 있는 장령곡의 대청에 형산파의 조희태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부들부들거리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 이 녀석, 제갈사를 치려다가 역습당해서 결국 제갈사한테 목베여 죽는 얼간이였지.'

27회차 초반의 내용은 잘 기억하고 있다. 결국 죽게 될 놈인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 배신한 경우인지라 제갈사가 이 놈을 살려둘 리가 없다. 나는 조희태를 무시하고는 안쪽에 있는 제갈사에게 외쳤다.

" 제갈사! 잠깐 나와봐! 할 말이 있다!"

스윽

안에서 제갈사가 서서히 걸어나왔다.

" 넌 누구지?"

" 난 백웅. 그리고 전생자다."

" ......"

제갈사가 묘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곤 말했다.

" 전생자라고 하면 삶을 반복하는 존재라는 거냐?"

" 그래. 그리고 난 이미 28회차에 접어들었지."

제갈사는 씨익 웃었다.

" 큭큭큭... 네 녀석은 천하의 광인이거나 괴물이 틀림없겠구나."

" 둘 다일지도 모르지?"

나는 제갈사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그에게 흑요석을 던지며 말했다.

" 의심스러우면 흑요석을 받아."

타악

제갈사가 흑요석을 잡아채자 나는 천천히 말했다.

" 배교의 마왕 시몬 마구스가 널 중마로 만들어서 강력한 만마전의 종복으로 만들려는 걸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정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여러가지 일들을 알고 있어."

" 흐음... 재밌겠군. 해 봐."

" 그럼."

파앗!!

나는 제갈사에게 기억을 전송했다. 제갈사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듯 차분한 모습이 되었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 백웅... 넌 대체 뭘 한 거냐?"

" 네가 본 대로 뭔가를 했겠지."

" 큭큭큭! 전과는 좀 달라졌군. 좀 더 차분하고 견고해졌어."

유쾌하게 웃은 제갈사가 문득 장검을 뽑아들고는 기분좋게 조희태의 목을 베어버렸다.

뎅겅

" 이런 잔챙이랑 놀고있을 필요가 없겠군."

나는 조희태의 목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제갈사의 말대로 놈은 잔챙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제갈사를 차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제갈사. 내 기억에 암기(暗氣)가 느껴지나?"

" ......"

제갈사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 반반이다."

" 반반이라면...?"

" 27회차의 강력한 암기는 느껴지지 않아. 그러나 암기가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니, 상당한 고위 마도사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느낌 정도라고 할까? 일반인이 이걸 보자마자 광기를 느끼는지는 정신력에 따라서 다를 것 같군."

" 으음."

"  그렇다 해도 장족의 발전이야. 원래의 수위는 마치 [옛 지배자]의 기억을 보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낮출 수 있다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멸망의 절망적 기억이 신역절기(神域絶技)라고 하는 희망 덕분에 상당부분 상쇄된 것 같군.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 아무튼 이 상태라면 네가 영입할 수 있는 동료는 꽤 늘어난 셈이다."

" 그렇군."

" 백웅.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네가 이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하나뿐이란 걸 알고 있겠지?"

" 그래. 알고 있어."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 지금 즉시 무예를 연마해서 다시 한 번 백련지종 천뢰신무를 시전하겠어!"

더 이상 돌아갈 필요는 없다.

절대지경에 오른 나라면 가능하다.

무신의 좌까지 한 번에 쟁취해서 신역절기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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