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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54화 (95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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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뭐라고?!

나는 신투지존의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 말에 담겨있는 뜻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반문해야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초조한 눈으로 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 다행히 서는 이 근처는 아직 파멸시키지 않는 모양이지만...'

우주의 멸망은 서서히 이뤄지고 있었다. 달마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영적 밀도와 힘이 높은 존재부터 차례로 다 없애버린 후 물질의 파멸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언제 모든 게 끝장날지 몰랐기에 나는 다급히 말했다.

" ... 자세히 좀 말해 줘!"

" 큭크... 뭐 조급해하지 마라. 이 정도 말해줄 시간은 있으니까."

신투지존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 ... 모든 게 끝났군. 제기랄."

나는 그의 한숨에서 깊은 절망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란 게 느껴졌다. 그런 만큼 지금부터 그가 하는 이야기는 진실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 말한대로다. 나는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으로써 그의 가면을 훔치려 했다."

" 가면이라니... 당신이 신의 화신이란 말인가?"

내 질문에 신투지존은 고개를 저었다.

" 화신이면 그냥 화신이라고 했겠지. 가면은 화신과는 달라. 화신이 신의 수족(手足)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면, 가면은 단말 중의 단말. 화신보다 훨씬 격이 낮은 '도구'에 불과하다."

" 도구..."

" 뭐, 보통 자다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끊어졌다고 해서 자기 몸이 상했다고 걱정하진 않잖아? 머리카락에 의지를 줘서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자못 유쾌하게 말했지만 말투 저변의 우울한 어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의 상황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나는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재능... 상대의 무공을 복사하는 재능은 당신이 가면이었기 때문에 갖고있었던 건가."

" 뭐 그렇지."

" 그럼 당신은 [기어오는 혼돈]의 정찰과 유희를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건가!"

내가 약간의 적의를 담아서 외치자 그는 껄껄 웃었다.

" 그게 또 희한한 얘기거든. 큭큭큭... 맞는 말이긴 한데 내가 가면으로서의 자아를 각성한 건 바로 심연의 가면 때문이었어."

" 뭐?"

" 그러니까~ [인간] 신투지존은 태어날 때부터 강호의 고수로 성장할 때까지 그런 인식따윈 요만큼도 없었다 그 말이지. 원래부터 내가 초천재라 생각하고 강호를 활보했을 뿐. 그런데, 내가 고대의 비술인 가면술을 익히다가 심연의 가면을 통제하는데 실패했던 사고가 한 번 발생했었거든."

신투지존이 서서히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더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면을 떼어냈다. 어디 있었는지 모를 그 가면을 떼는 순간 처음 보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바꾼 신투지존이 말했다.

" 그 사고와 동시에 나는 내가 [가면]이라는 걸 깨달았고 본질을 알고 말았다."

" 사고 때문에? 어떤 원리인거냐."

" 심연의 가면을 오랫동안 놔두게 되면 폭주하게 된다. 그리고 폭주한 가면은 또 다른 자신이 되어버리지... 자신과 완벽히 똑같은 힘과 능력을 가진 존재로 말이야."

" ......!!"

" 그런데, 난 [나 자신]을 따로 처리할 필요가 없었어. 왜냐고? 그 놈이 나타나는 순간, 나는 그 놈과 동일인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야. 애초부터 난 인간이 아니라 가면이었으니까 정체성의 혼란이나 적의 따위가 있을 수가 없었지."

" 뭐, 뭐라고."

" 그리고 나는 가면을 합치게 되면서 내가 비인간(非人間)이라는 걸 각성하고 말았다..."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던 신투지존이 약간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 자신의 본질과 맞닥뜨려서 [신의 가면]을 훔치려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지. 나는 내가 신의 찌꺼기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 ......"

본질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건가.

자기자신의 본질을 찾지 못한다면, 그가 인간으로써 그 어떤 명성을 지닌 대도라고 할지라도 무의미해진다. 또한 살아갈 이유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는 신투지존에게 말했다.

" ... 하지만 당신은 여동빈을 맞닥뜨렸을 때 헌원검을 찾겠다는 의욕이 강하지 않았나?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헌원검은 대체 왜 찾았던 거지?"

" ......"

" 그리고 헌원검을 찾아서 외우주까지 오기까지 했잖아. 당신의 말과 모순돼!!"

" 멍청아. 내가 그럼 팔선의 최강자이자 천계의 앞잡이인 검선 여동빈에게 내가 하려는 일과 비밀을 고스란히 말했을 것 같나? 천계에서 내 목적과 존재를 알면 어떤 방해를 할지 모르는데?"

" 어..."

그건 그렇다. 천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게 여와 및 삼황오제들이며 온갖 간섭을 하던걸 생각하면 신투지존의 말은 틀리다고 할 수 없었다. 내가 할말을 잃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 후배야. 헌원검은 말이다... 뻥이야."

" ...... 엥?"

신투지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을 거듭했다.

" 뻥이라고. 잘 들어둬. 개뻥이었다."

몇 번이고 강조하는 말에 나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 뻥이라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내가 헌원검을 찾아서 얼마나 개삽질을 했던가! 몇 번의 생을 헌원검을 찾기 위해 갈아넣었으며 그 정보를 얻으려고 오만 짓을 다 했었다. 나는 그 삽질을 생각하자 난데없이 화가 끓어올라서 신투지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 개새끼...!! 후대 사람들 고생하라고 그런 뻥을 쳤단 말이냐!!"

내가 달려들어서 신투지존을 한 대 칠 기세였지만 신투지존이 느긋하게 대꾸했다.

" 워워, 진정하라구 후배. 뻥이긴 하지만 내가 친 뻥은 아니니까."

" 뭐?"

" 이상하지 않냐? 내가 친 뻥이었다면 공손세가에서 수천 년 동안 가짜이긴 하지만 헌원검을 보관하고 있었을 리가 없어. 그리고 예의 하인인 여축이 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최소한 신화시대급의 역사가 있다구. 그러니까 당나라때 사람인 내가 헌원검에 대해서 뻥을 쳤을 리가 없잖아? 시기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구."

" ... 그, 그렇긴 하군."

신투지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신투지존은 하고 싶은 말을 해서 다소 속이 시원해졌는지 아까보다는 밝아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 나는 헌원검에 대해 조사한지 오래지 않아서 헌원검이 실존하지 않으며 신대(神代)에 의도적으로 흘려진 헛소문이라는 걸 파악했지. 하지만 헌원검을 찾는다는 명분 자체는 내 진짜 의도를 감추기에 적절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헌원검을 찾는 척 했을 뿐이다."

" 그럼 헌원검을 이용해서 봉선의식을 거의 공짜로 치를 수 있는 특권, 황제를 알현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게 탐나지 않았다는 건가?"

" 탐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구라인데 무슨 소용이야? 나는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구."

" ... 그렇다면 여동빈에게는 왜 거짓말을 한 거지?"

내 질문에 신투지존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 당시에 여동빈은 천하제일고수이자 천계의 첨병(尖兵)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였다는 거지. 다소 거짓말을 해서라도 여동빈과 붙어다니며 그의 동향을 감시하는 건 나쁠 게 없었다."

" 낙양의 암흑가는 왜 통일했던 건데?"

" 낙양 쪽에서 내 본체와 관련된 신화전승이 많았기 때문에 대신 조사해 줄 쫄따구들을 모은 거였지 뭐."

" 측천무후 밑에 육걸으로 들어간 이유는?"

" 마찬가지 이유야. 헌원검을 찾기 위해 들어간 게 아니라 창힐과 손을 잡은 측천무후와 팔부신중의 동향을 살펴보려 한 거였어. 그리고 꽤나 소득을 얻었지."

" 소득?"

신투지존이 훗하고 웃었다.

" 창힐은 앞으로도 절대로 삼황오제를 쓰러뜨릴 수 없다... 라는 걸 깨달은 거지."

" ......!!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거지?"

" 간단해. 창힐이 추구하던 계략은 기껏해야 측천무후를 이용해 종말의 거룡을 소환해서 인과율을 먹어치우는 거였어. 그 방법으로 일시적으로 삼황오제의 영지에 타격을 줄 수는 있어도 결국 창힐 본인의 힘을 키울 순 없지. 또한 창힐의 그릇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한 신투지존이 손을 휘저어서 날려보내는 모양새를 취했다.

" 놈은 세상을 멸망시킬만한 그릇이 아니었어. 그래서 창힐에게 기대를 끊은 후 떠나기로 한 거야. 이 세상을."

" ......?"

" 천하를 아무리 뒤져도 내 본체는 눈에 띄지 않았어. 그렇다고 해서 삼황오제가 종말까지 견고하게 수호하고 있는 중원을 내 힘으로 뒤엎는 건 불가능했고. 내 입장에서 내 본체의 강림을 보려면 적어도 세계가 멸망하는 대혼란 정도는 되어야 했으니, 당연히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게 옳았지."

" 그, 그 말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 그냥 당신의 본체를 보기 위해서... 그 이유만으로 어느 세계든 좋으니까 멸망으로 치닫게 하려 했다는 말인가?!"

" 그래."

" 미쳤군!! 우리 세계도 멸망시킬 수 없는데 다른 세계는 무슨 수로 멸망시키려 했던 거지? 무슨 확신이 있어서 수해의 생사입멸을 뚫고 다른 세계로 건너갈 생각을 했던 거냐고!!"

나는 신투지존의 광기와 무모함에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엉뚱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규모가 컸다. 정말로 무림이라는 단위에서는 신투지존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신투지존이 말했다.

" 진공가향."

" ......!!"

" 나는 무림에서 현역으로 활동할 때 어지간한 대학자보다 더 많은 지식을 섭렵했지. 자랑은 아니지만 한번 보면 뭐든 잊지 않는 암기력도 갖고 있어서 책 십만 권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구. 그리고 이런저런 책을 읽던 중 백련교에도 관심이 생겨서 그들의 교리와 은밀한 비밀을 파헤쳤고, 그 결과 진공가향이라는 세계멸망의 의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 그럼 왜 우리 세계에서 진공가향을 하지 않은 거지?"

" 할만한 여건이 전혀 아니었어. 진공가향을 시전하려면 어마어마한 제물, 사대신기와 제사장, 그리고 지금처럼 멸망의 서를 완성시킬 초강력한 마도사가 필요했는데 그 당시의 백련교에는 그런 존재가 없었거든. 이후에도 탄생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 당신 자신이 강력한 마도사가 되는 건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

" 농담해? 달마가 서의 마지막 조각이 되어서 사라지는 걸 보고도 내게 그딴 걸 묻는 건가? 자기희생이 전제인 의식인데 내가 죽으면 뭐하냐고."

" ......"

" 뭐 내가 이세계로 넘어간 경위는 이 정도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라도 세계멸망을 시도하면 본체가 나타날거라고 생각했어. 본체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니까 외우주에도 간섭받지 않겠지."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황당함을 느꼈다.

" ... 외우주를 넘어갔을 때 당신이 말한 진공가향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을 텐데. 지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원시의 우주일 수도 있었어."

" 큭큭큭. 그걸 내가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나? 당연히 요건을 맞출 방법이 있었으니까 넘어갔던 거지."

" 뭐?"

" 외우주에 진입한 후 입구에서 외신 주시자에게 부탁했다. 그 요건이 충족되는 세계로 나를 보내 달라고."

" 외신에게 부탁을 했다고?! 그걸 들어줬단 말인가!"

" 암, 들어주고 말고. 왜냐하면 그 존재는 절대적인 중립이며 그저 재미있는 걸 보고싶어하니까 들어줄거라 생각했어. 가면으로서의 자아는 그게 가능하다고 내게 말했지."

" ......"

미친 놈이다.

이 놈은 멀쩡한 척 하지만 정말 미친 놈이었다.

' 외신 주시자의 힘을 알고도 그런 발상을 했다니...'

단숨에 우주의 먼지가 될 수도 있는데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니, 인간이 아니라 신의 가면이니까 애시당초 인간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사상최고의 대도(大盜)일 수도 있는 것이리라.

" 하지만 뭐, 헌원검이 전적으로 모두 뻥인 건 아니야."

" 응?"

" 정확히는 여러 개의 전승이 섞여 있는 물건이었어. 그리고 그 대부분의 전승이 거짓이었으나, 단 하나의 전승만은 사실인 것 같았지. 그렇지만 내 목적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다가 그 전승을 파고들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했기에 안 찾았을 뿐. 그래서 난 헌원검을 뻥이라고 판정한 거야."

" 그 전승이 뭔데?"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삼황오제는 헌원검을 쓸 수 없다]. 여축에게 들은 바로 그것만은 진실이었다."

"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 내가 조사한 걸 다 떠먹여 주긴 싫으니까 말하지 않을련다."

" 야!"

" 내 생각에는 엄청나게 흉악한 물건의 단서일지도 모르겠다만 차마 조사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신투지존이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이 세계로 온 다음부터는... 달마가 탄생할 때까지 계속 환생이나 하면서 기다렸지. 환생할 방법 정도는 도둑으로써 세계를 누빌 때 이미 알아냈으니까. 이런 식으로 이천 년 넘게 기다리다보니까 드디어 달마가 진공가향을 시전한 것이다."

" ......"

" 더 궁금한 점은?"

" 뭔 갑자기 얼렁뚱땅이야. 당신이라면 반쯤 불로불사에 가깝게 이천 년을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환생을 선택한 거지?"

내 질문에 신투지존이 히죽 웃었다.

" 신역절기 때문에 그랬다."

" 신역절기?"

" 신역절기에는 조건이 필요해.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한 번의 삶으로는 부족했다고. 그래서 편법을 통해서라도 미리 힘을 비축해 두기로 했던 거지."

" 조건을 말해 줘."

"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신역에 도달하지 않은 자에게는 이 이상은 말하지 못한다고."

" 윽..."

" 후우... 뭐 아무튼 이제는 끝이군."

그는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마른 듯 물통으로 목을 축이며 중얼거렸다.

" 여기까지 오니까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는군.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을 빼앗아서 나 자신을 되찾으려 했는데... 설마 이 사단이 나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줄이야. 허망하기 그지없구만."

나는 신투지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 당신은 세상을 구하려는 마음같은 건 없었던 건가? 당신의 능력이라면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었을 텐데."

" ... 있는 놈이 이상한 것 같은데.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존귀한 건 없다."

" 꼭 그런 건 아니야."

" 엉?"

" ...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자기자신을 가장 귀하다 생각했다면... 나는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있는대로 갑질을 하며 힘을 자랑하며 모든 걸 누리고 살았겠지. 그러나 그런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료들 덕분에.

" 흥... 넌 정말 최악의 후배놈이군. 멍청한데 신념있고 재주좋은 놈이라니... 뭐가 그리 엉망진창이란 말이냐?"

신투지존이 투덜거리자 나는 씨익 웃었다.

" 그치만 이런 후배가 찾아와줘서 영광인 거 아닌가?"

" 관둬라. 어차피 다 죽는 마당에... 무슨..."

신투지존은 닭살돋는 표정을 지으며 물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젠 네 얘기를 해 봐라."

" 알았어."

쿠구구구구구

쿠구구구

우주 저편에서 환한 백색 빛이 번져나오는 게 보였다. 저런 건 처음보는 일이었는데, 아무래도 우주의 파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신투지존에게라면 못 털어놓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을 열려고 했다.

" 나는..."

전생자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 ......"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신투지존이 미동도 하지 않고 멈춰 있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그의 얼굴이 바뀌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고 보통사람은 절대 눈치채지 못할 변화였지만 나는 즉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을 멈추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 왜 그러지? 어서 말해 봐."

파밧!!

나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선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의념천주를 곧추세웠다.

" ... 넌, 누구냐."

" 신투지존이지."

" 넌 누구냐고!!"

저 놈은 신투지존이 아니다.

나는 가면술사이자 그의 모든 것을 배운 자로써 그 사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 그 현상은 [가면]이 완전히 벗겨져서 다른 것으로 바뀌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면의 속까지 덜어낸 이상 가면술사는 결코 멀쩡할 수가 없는데도 상대는 아직 저 모습을 멀쩡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자 '신투지존이었던 존재'가 말했다.

" 눈치는 좋군, 필멸자여."

" ......!!"

설마...!!

상대가 서서히 허리를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는 기이함을 느꼈는데, 상대는 분명히 내게 얼굴을 보이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인식할 수가 없었다. 기억이 되지 않았으며, 마치 저 얼굴에 천 개의 가면이 겹쳐있는 것만 같았다.

그 존재가 빙긋 웃었다.

" 내 가면을 이제야 찾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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