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52화 (950/1,615)

952====================

진공가향(眞空家鄕)

우주의 멸망을 축복했다고?!

' 그렇다면... 외신이 진공가향에 찬성했단 말인가!'

그렇게밖에 볼 수 없다. 나는 내 팔다리가 재생된 것 또한 방금 전 만유의 지모가 내게 내린 축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인 게 사실이었다. 동시에 나는 지금이 최고의 기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의 정령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저런 고위존재가 혼란을 겪을 정도로 방금 전 일이 엄청났으며, 동시에 이런 절호의 공격기회는 두 번 다시 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즉시 내가 쓸 수 있는 최강의 공격수단이 무엇인지를 알아챘다.

백련지종 천뢰신무!

어떻게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격은 [옛 지배자] 테스카틀리포카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 치명타를 입혔다.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은 검뢰가 아니라 바로 천뢰신무인 것이다.

천뢰신무를 쓰면 틀림없이 눈 앞의 고대신 정령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걸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치 해신 때처럼 황홀경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딘가에] 도달해서 자연스럽게 그 힘을 내려받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이름이 존재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힘의 발동원리를 아직 알지 못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여동빈이 말한대로 생사의 십연전처럼 엄청난 위기와 고난을 겪으면 각성의 계기가 되는 건 맞지만, 그 각성의 위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고 토막나는 게 적지않게 짜증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안 돼.

이렇게 기억상실 마냥 깨달음에 휘둘리고싶지 않아!

늘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면 그게 대운중첩과 다를 게 뭐란 말이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멍청하게 죽는 건 이제 질린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죽기 전까지 모든 집중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죽더라도 후회만큼은 없어야 한다.

현재 쓸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절대지경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 그러다보면 지난번처럼 천뢰신무의 단서가 나오거나, 그 힘을 따라서 쓸 수도 있으리라. 일종의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전신의 기력을 한올한올 끌어올리면서 의념의 천주를 곧게 세웠다.

의념천주(意念天柱).

절대지경에 오르면 얻게 되는 의지의 기둥! 이 기둥은 상중하단전을 관통하여 절대지경 고수의 의념이 천지에 떨치도록 만들어 줬으며, 현실을 의념으로 본격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끔 했다. 본디 물리적 법칙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광세절기나 필살기가 발현할 수 있는 의념의 작용이 수십배 이상 극대화되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우우 -

내 의념천주가 공명(共鳴)했다. 나는 절대지경에 오르고서 아직 제대로 의념천주의 힘을 발휘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예가 집중되는 칼날 끝에 의념천주를 걸어서 이 힘을 강화시키려 생각했으나 이내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 칼날... 칼날만으로는 신을 꿰뚫을 수 있는 공격을 결코 만들 수 없어!'

만일 의념천주로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뇌전의 칼날]이나 [시공간을 베는 검]을 구현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절대지경 고수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구현화될 것이다. 절대지경에 오른 독고성의 검뢰, 혹은 미야모토 무사시의 시공간베기같은 것이다. 그 절대지경의 필살기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위력을 지니고 있어서 십만대군을 상대할 만 했으나, 문제는 인간의 의념천주로 구현했기에 위력의 한계가 존재했다.

무사시가 전욱을 베지 못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때 무사시는 분명히 강림한 전욱의 몸 근처에 있는 시공간을 베어버렸으나, 신의 인지력(認知力)과 마력을 결코 넘을 수가 없었다. 전욱은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이기에 아무리 빠른 검술이라고 해도 무의미했고 무사시가 공격하는 수단과 방법을 애저녁에 알고 있었다. 그가 한 것은 의념천주보다 몇 배 강한 마력으로 그저 차원을 틀어막아버렸을 뿐이다.

그건 삼황오제에게 있어서 어린아이 팔비틀기보다 몇 배나 쉬운 일이므로 전욱은 무사시를 벌레취급했으리라. 시공간조작의 능력에 있어서 신은 필멸자를 아득하게 뛰어넘었으므로 절대지경 고수가 구현화하는 의념 수준으로는 결코 신을 벨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병기 끝보다 더 공격력이 강력한 장소는 따로 존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느낀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절대지경의 무예로 신을 벨 수 있는 걸까?

그 순간 - 내 머릿속에는 얼마 전 신투지존의 한 마디가 스쳐지나갔다.

[ 한 가지만 말해 두지. 인간의 무공으로 신을 죽일 수 있다는 망상은 버리는 게 좋아.]

망상(妄想)...

' 그래. 망상인 거군...'

나는 신투지존의 말을 손쉽게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무사시가 완벽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시는 신에 대한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서 신살참이라 이름붙인 무예를 갈고닦아, 시공간을 베는 칼날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칼이 신에게 한끝도 닿이지 않으며 처절하리만치 능욕당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이다.

인간의 무공으로 신을 베려는 건 망상이다.

애초부터 차원이 다른 존재다.

은하계 단위로 노는 초월자를 너무 얕보는 짓이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게 다름아닌 신투지존이었기 때문이다.

' ... 인간이 아닌, 신(神)의 무공이라면.'

신의 무공으로 신을 베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신의 영역(神域)에 도달한 절세무공(絶技)이라고 칭하는 게 아닐까!

그게 바로 무신의 좌에 도달한 자, 신투지존의 충고가 아닐까!

어처구니없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란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무공으로 신을 벨 수 있게 하려면 대전제부터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통의 술법사나 마도사들이라면 이런 생각 자체를 비웃으리라. 이렇게 억지스러운 시도를 하느니 인신공양을 하거나 수련을 해서 마(魔) 그 자체가 되거나 존재를 승격시키는 게 백 배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무인(武人)이다.

단순히 강함만을 위해서 무(武)를 추구하는 거였다면 내가 어찌 절대지경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무란 수단도 목적도 될 수 없으며 오롯이 그 자체로 무일 뿐이다. 내 무도(武道)에 타협이고 효율이고 있을 수가 없다.

" ......"

눈을 감자.

비운다.

잡념을 없애고 살의(殺意)도 없앤다.

나는 상대를 베어죽이려 하는 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내가 설령 천 년을 수련해도 타고난 절세천재인 무사시의 야수적인 전투감각과 선천적인 천살성의 영역은 따라잡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무사시가 이뤄낸 절대지경이 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확인한 이상 같은 방법은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어찌해야 할까.

죽이지 않는 한, 쓰러뜨리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게 싸움인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싸움을 넘어선 무언가를 깨닫지 않으면 백련지종 천뢰신무는 결코 내게 다가와주지 않는다.

' 여동빈과 장삼봉의 말대로야. 공(空)을 내 마음속에서 체현해야 해.'

우웅

뭔가가 내 뒤통수를 간질이며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가 싶었는데, 이윽고 희미한 역광을 보면서 그게 내 머리 뒤의 후광(後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후광이 점점 강렬해지면서 나는 예전에 무쌍패로 황홀경에 도달했을 때의 감각이 서서히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온다.

이게 바로 천뢰신무의 감각인가.

환상인지 현실인지...

두둥!

그와 동시에 내 눈 앞에는 거대한 어전(御殿)이 펼쳐지는 듯 했다. 그 어전은 마치 일백 개의 궁(宮)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고, 그 궁에는 각각 주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전의 끝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앉아있는 듯 했다. 또한 백 개의 궁에 거하는 자는 왜인지 순수인간이 아닌 존재도 꽤 있는 듯 했다.

저긴 어디지?

저기에 발을 들여야 하는 걸까?

왠지 그래야만 다시 한 번 백련지종 천뢰신무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 좌(座)에 도달해야만...

그래서 내가 황홀경의 상태에서 어전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였다.

푸욱!!

" ...... 쿨럭."

... 엥?

나는 심장이 돌의 창에 꿰뚫린 걸 느꼈다. 시꺼먼 피가 꿀렁거리며 흘러내렸다.

[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건 잡아야겠군. 너희를 일단 청소하마.]

지의 정령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끝장이란 걸 알아챘다. 지의 정령은 혼란을 회복하고는 내가 무방비상태에서 자아에 몰입한 걸 발견하곤 빈틈투성이인 나를 공격해버린 듯 했다. 나는 빠르게 의식이 아득해지며 몸이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 컥, 허헉..."

아, 안 돼...

뭔가 느낄 거 같았는데 이렇게 어이없게...?

' 생사결전에서 넋놓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게 바보짓이긴... 하지만...!!'

풀썩

나는 눈빛이 흔들리며 앞으로 주저앉아 쓰러졌다. 그리고 정향의 인과율이 끝난 여파가 즉시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의 주인공처럼 모든 게 내 위주로 흐르던 게 끊겼다는 것.

그것은 현실적인 악재가 있을 경우 결코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공격한다는 것이다.

설마 나도 무의식중에 정향의 인과율에 의존하고 있었던 걸까?

큰일이다.

내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숨이 오락가락하고 있자 갑작스럽게 내면에서 거대한 태양같은 힘이 뿜어져나왔다.

[ 걱정하지 말라, 백웅이여! 나의 이름은 케찰코아틀!! 나를 구해준 그대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쿠와아앗

케찰코아틀이 황금빛 새의 형태로 변하더니 내 심장을 메웠다. 그리고 내 몸의 통제권이 사라지면서 케찰코아틀이 내 육체를 대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내 몸에 황금빛 영기를 감싼 채 지의 정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 오오오!!]

콰과광

케찰코아틀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면서 지의 정령을 공격했고, 정령은 아까처럼 언령 한방으로 그를 해치우지 못하고 방어막을 쳐서 막아내는 듯 했다. 아무래도 케찰코아틀이 강림한 상태에서는 격하의 존재로 간주할 수 없으므로 언령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의 정령이 불쾌한 듯 말했다.

[ 이럴수가! 그대 또한 위대한 고대의 신이 아닌가. [옛 지배자]와 쌍생(雙生)으로 태어난 존재여, 진정 이 미친 멸망의 의식을 수호할 생각이던가?]

우우우웅

지의 정령이 케찰코아틀에게 분노의 외침을 토해내자 공기가 찌르르 울리면서 시간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시간을 멈춰서 상대의 존재를 없애는 궁극의 술법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케찰코아틀이 눈을 빛내자, 뱀의 형상이 앞에 만들어지더니 그 술법을 무효화시켜 버렸다. 케찰코아틀의 힘은 지의 정령과 대등한 듯 했다.

[ 그렇게 복잡한 건 생각치 않는다. 이 또한 인과율, 나는 백웅 덕분에 존재를 독립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 은(恩)을 갚을 뿐이다!]

[ 세계 만물이 멸망해도 좋다는 건가?]

[ 우리가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있던가? 어차피 이 세계는 위대한 [아버지]의 뜻이며 하룻밤의 꿈일 터, 우리 또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 ......]

[ 절대적 중용을 추구해야 할 정령이 존재의 이기심(利己心)을 갖게 되다니...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구나.]

[ 닥쳐라.]

콰과과광

두 신적 존재의 권능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나는 무의식의 상승면에서 의식 언저리에 간신히 목을 내밀고는 그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케찰코아틀이 정신세계를 통해 내게 말을 걸었다.

[ 백웅이여.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벌 수 없다. 뭔가 방법이 없겠는가?]

[ 네? 뭔가 문제라도...]

[ 그대와 나는 사도나 화신의 관계도 아니며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이 몸을 더 움직일수록 신력을 감당치 못하고 몸이 무너져내릴 것이다. 게다가 그대는 이미 달마와 사도의 계약을 했으니 나와 이중계약을 할 수도 없다. 더 이상 그대 몸을 움직일 명분이 없단 소리다.]

[ ......!!]

[ 몸은 모두 회복시켰으니 잠시 후 통제권을 되돌려주겠다. 그 때까지 저 정령을 상대할 수를 내는 게 좋을 것이다.]

잠깐의 시간벌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가.

나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문득 방법이 생각나서 대꾸했다.

[ 네. 되돌려 주십시오.]

[ 좋다. 또한 이번 강림으로 그대는 내 신체(神體)의 일부를 얻었으니 나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파앗!!

잠시 후 나는 다시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케찰코아틀이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태양빛의 방어막 속에서 재빨리 삼대신기 중에서 바유와 바루나를 양 손에 들었다.

" 신기여! 그 힘을 발하라."

우우웅

그러자 바유가 바람의 방어막을 만들어냈고 바루나는 물의 감옥을 펼쳐서 지의 정령을 가두었다. 순식간에 공방을 일체시키자 지의 정령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하는 듯 했다. 지의 정령이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 감히 고대신을 신기에 가두다니... 신을 능멸하는 놈!!]

" ... 후우."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기왕 하는 김에 무(武)의 경지를 향상시키면서 물리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는 흘러가지 않는 듯 했다. 그렇다 해도 천뢰신무의 감각을 한층 깊게 깨달은 건 사실이었고, 진작에 신기를 썼으면 이겼을 싸움을 어렵게 끌어간 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이번 생에 정향의 인과율을 얻고 나서 순풍을 얻는데 익숙해져서 매사에 신중해지지 못한 건지도 몰랐다. 물론 마음이 급하다보니 삼대신기를 사용하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 죽어라."

쿠콰쾅

나는 아그니를 들어서 그대로 발사했다. 그와 동시에 지의 정령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지의 정령의 흩어진 영혼을 이혼대법으로 끌어들여서 마지막 신기에 집어넣었다.

" 마지막 신기, [바즈라(वज्र)]. 손에 넣었다."

우우웅

이걸로 사대신기를 다 모았다. 나는 힘든 임무를 끝내자마자 사대신기를 모두 가지고 달마가 있는 제단으로 향했다.

저벅

내가 제단 위로 올라가자 막 서(書)가 9번째 조각을 붙이고 있었다.

치지지직!!

" ......"

이제 한 조각만 더 붙으면 진공가향이 끝나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단 위에 서 있는 달마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인간의 형상이 거의 남지 않았으며 몸 전체가 시꺼먼 혼돈의 덩어리로 변모해 있었고, 그마저도 서서히 허공으로 흡수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저 상태의 달마가 의식을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 달마. 사대신기를 다 모아 왔어. 이제 뭘 하면 되지?"

그래도 나는 달마에게 말을 걸었다. 이 모든 일의 주재자가 달마였기에 그의 다음 지시를 듣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말을 걸자 달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서서히 내게 말했다.

[ ... 백웅이여... 어찌하여 이 진공가향의 의식에 다른 [옛 지배자]들은 반대했으나 외신(外神)들은 찬성하여 축복까지 내려주었는지를 알고 있는가...?]

" 잘 몰라."

나는 정말 몰랐기에 그렇게 대꾸했다. 그리고 서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며 말했다.

" 거의 다 됐군. 조금만 기다리면 마지막 조각이 붙겠지?"

[ ......]

달마는 침묵하다가 자기 할 말을 했다.

[ 외신들이 세계의 멸망에 거부감이 없는 이유... 도리어 내게 진공가향을 하라고 응원을 해준 이유... 그것은 외신들은 진공가향으로 인한 세계의 멸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

뭐라고?!

나는 처음 듣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 아, 아니 이치상으로는 맞지만!'

나는 급하게 외쳤다.

" 저, 정말인가? 진공가향이 진행되어도 외신은 영향받지 않는다는 게?"

[ ... 그렇다...]

"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는건데?"

[ 내가 얼마 전 진공가향을 허가받기 위하여... 세계의 도서관에 접속했을 때... [그 분]께서 내게 넌지시 일러주셨다...]

달마는 마치 쓴웃음을 짓는 듯 했다.

[ 이대로 진공가향을 하더라도 외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세계의 멸망에 무관하며 면책(免責)를 받지... 왜냐하면 그들은 윤회(輪回)를 진정한 의미에서 초월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옛 지배자]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존재들...]

" 윤회? 무슨 소리지."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되물었다.

" [옛 지배자]는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모두가 윤회를 뛰어넘은 자들 아닌가? 외신이 그들과 뭐가 다르다는 거야."

[ 백웅이여... 그것은 필멸자가 인식하는 윤회... 초월자들의 윤회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굴레]...]

달마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가 뜨는 일순(一巡)... [큰 굴레]의 윤회... 그걸 뛰어넘은 존재야말로 외신이라고 인정받는 것이지...]

" ......!!"

[ 그래... 백웅이여... 크크크...]

그가 광소를 흘렸다.

[ 내 진공가향은... 처음부터 무의미했던 것이다... 진정한 마신 중의 마신인 외신들을 없앨 수 없는 이상... 세계를 멸망시킨다 한들... 또다시 무한의 고통이 윤회할 것이 아닌가... 크하하하하하...!!]

" ......"

그, 그럴 수가.

[ 나는... 그저 광대에 지나지 않았을 뿐... 크하하하하!!]

달마의 광소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토록 무력하다니.

목숨을 다해 추구했던 세계멸망이 이토록 허무하게 농락당하다니.

내가 멍하니 서 있을 때 달마가 말했다.

[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백웅 네가 있기 때문에...]

" 무슨 소리지?"

[ 그대는... 어째서 이 세계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유일한 희망이다... 백웅이여... 약속해다오... 그대밖에 할 수 없는 일...]

" ......"

[ 허억... 허억...]

잠시 달마는 숨을 헐떡이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백웅...!! 외신마저 멸할 수 있는... 진정한 진공가향을 완성시켜 다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