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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51화 (94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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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이제 전부 끝장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신의 압도적인 권능을 이미 느껴보았기 때문에 이미 싸움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옛 지배자] 또한 필멸자 입장에서 상대가 불가능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렇다 해도 계책과 작전을 세우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으나, 외신은 그런 차원조차 벗어난 존재였다.

" ......"

아니야. 그럼 이상해...

' 외신이 나타난 것 자체로 끝이라면... 달마는 애초에 계획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마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진공가향을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에 외신격이 끼어드는 순간 파멸이라면 그는 애초에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달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강행했으며,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여긴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달마처럼 총명한 자가 자신의 계획에 외신같은 불안요소를 상정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분명히 외신이 나타날 가능성도 짐작했으리라.

달마는 이 사태에 대해서 뭔가 복안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였다. 초록빛의 안개가 하늘을 뒤덮은 채 이계(異界)를 범람시키고 있었고, 수많은 별이 녹아들어 그 안개에 먹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치 살아있는 듯한 무형의 안개가 고요히 천체(天體)를 부유시키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즈즈즈즈

갑자기 녹아내리던 별빛 사이에서 흑백(黑白)의 광선이 수천 갈래가 되어서 마치 폭포수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융단처럼 하늘의 한켠에 깔리던 그 광선을 타고서 서서히 한 마리의 시꺼먼 '무언가'가 이계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무언가'는 가까이 올수록 점차 커졌으며, 종래에는 흉신의 몸 크기와 비슷할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모습을 식별 가능한 위치까지 왔을 때는 그것이 무(無)라는 걸 깨달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분명히 거기엔 아무것도 없지만, 충만한 무언가의 존재감이 있다.

투명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너무 높은 차원의 존재라서 일반적인 시력이나 영력으로는 그 존재를 관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나는 저 존재의 압도적인 격을 느끼고는 탈력상태에 빠졌다.

' 아아아아아!!'

세, 세상에 저런 존재가 있을 수가...

[옛 지배자] 앞에서도 전혀 움츠러들거나 공포를 느낀 적이 거의 없었던 나였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경외심이 솟아나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다만 이건 그저 외경의 감정일 뿐 공포심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 감정마저 갑작스럽게 사그라드는 걸 느꼈고 서서히 상대방의 윤곽이 보이는 것 같았다. 평정심이 절로 찾아왔으며 어렴풋이나마 저 존재가 마치 수백 마리의 양이나 염소가 합친 것 같은 괴이한 형상이란 걸 알아차렸다.

' 으음! 자세히는 안 보여...'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을 때 신투지존이 비틀거리며 말했다.

" 제길... 너무하는군. 외신이 이 정도의 존재일 줄은... 소멸당할 뻔 했어."

" 괜찮나?"

" ......"

신투지존은 내가 말을 걸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 ... 큭큭!! 괜찮냐고?!"

" 어... 물어보면 안 되나."

" 하..."

그는 경악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 넌 정말 뭐냐? 외신이자 만유의 지모이신 존재가 근처에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데도 그렇게 멀쩡하단 말이냐? 순수한 혼돈의 가면으로써 의태한 나보다도 혼돈저항력이 높다니...!!"

" ......"

" 이해가 가지 않는군..."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내 얘기는 됐어. 이제 우린 뭘 해야하는거지?"

" ... 세 번째 신기를 얻어야지."

" 저 존재가 공격해오면 어떻게 하지..."

" 알 게 뭐냐. 어차피 상대할 방법이 없는데."

" ......"

" 죽을 때 죽더라도 할 일은 하고 죽는 수밖에."

염세적인 말투였지만 나는 신투지존의 말이 옳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저런 존재와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 그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내 운이 좋기를 바라면서 신투지존을 따라서 세 번째 정령에게 향했다.

신투지존이 이번에도 기습을 가하려 했으나 그 순간 물의 정령이 입을 열었다.

[ 그대들은 진실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의지가 가득하구나... 만유의 지모께서 강림하셨는데도 덧없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는가?]

신투지존이 달려들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앞선 두 번의 시도가 이미 들킨 탓에 맨입으로 기습해서 봉인하는 게 힘들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물의 정령의 말에 대꾸했다.

" 어차피 당신들이 지금 우리 일을 돕고 있는 것 또한 자유의지가 아니라 어떤 절대자의 명령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들의 힘을 빌려서 이 임무를 끌고나가는 것 또한 그의 명령에 따르는 일일 것입니다."

[ 말은 좋군... 감히 고대신을 능멸하여 그 힘을 이용하려는 주제에...]

물의 정령이 비웃는 말투를 하자 나는 발끈해서 말했다.

" 그러면 안 됩니까?! 아무도 인간을 위하려 하지 않으니 우리가 자구책을 마련해서 살 길을 마련하려는 게 그리도 잘못입니까? 심지어 본디 살 길을 마련해야하나 도저히 답이 없어서 다같이 멸망하자는 상황이 왜 왔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 고대신과 질서에 속하는 대존재들이 고통받는 필멸자들을 내버려뒀기에 세상이 혼돈에 잡아먹힌 게 아닙니까!"

[ ......]

" 할 말이 있다면 해 보십시오. 저는 진공가향이 지극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인신공양을 바쳐서 소의 희생을 막지 못한 진공가향이었다면 틀렸으니 막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옛 지배자]의 영혼을 바침으로써 희생을 최소화했으니 이 의식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하자 물의 정령이 불쑥 말했다.

[ 과연 그럴까?]

" 반박하려면 반박해 보십시오."

[ 듣고있자니 그대 스스로도 진공가향 주재자의 진의(眞意)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 그대는 자기 편한 대로 보고 들었을 뿐이다.]

" ......!!"

[ 질서와 혼돈의 대립은 선(善)과 악(惡)의 대립이 아니며 우주의 법칙 속에서 이념적 가치는 무의미하다. 이 고통과 절망의 우주가 그대들을 위함이 아니라 하여 최악이라고 부정할 순 없으리라.]

" 뭐, 뭐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탄식했다.

' 이게 최악의 우주가 아니라고?!'

필멸자들은 [옛 지배자]에게 농락당하여 절망하고 있으며 죽은 후에도 구원이 없으며 오로지 고통 뿐이다. 수십 번 전생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진공가향으로 모든 게 멸하는 게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강한 힘을 지닌 고대신이 저런 소리를 하고 있다니!

그 때 신투지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당신의 힘이라면 우리의 기습을 눈치챈 순간 다 소멸시킬 수 있었을 텐데 잡담이나 하고있는 건 이유가 있겠지."

그러자 물의 정령이 잠시 꿀렁거리더니 대답했다.

[ ... 봉인되어 주마.]

응?!

뜻밖의 말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물의 정령이 말을 이었다.

[ 이 무기에 들어가면 되는가.]

" 그래."

" 자, 잠깐만!!"

나는 놀라서 외쳤다.

" 그렇게 봉인되기 싫어하더니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야!"

[ 그대의 인과율 때문이지...]

" 나?"

물의 정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질서의 창조주... 그 분의 기운이 내게 마음을 돌릴 것을 종용했다. 또한 내가 받은 임무에도 위배되지 않으니 봉인되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무엇이 작용한 건지 알 수 있었다.

' 정향의 인과율!!'

설마 아직까지도 남아서 나를 도와주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내심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어진 말에 찬물을 맞은 느낌이 들었다.

[ 그러나... 그 기운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대의 앞길이 험난할 것이라 예언해두지.]

정향의 인과율이 끝났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털어내기로 했다.

'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어디야!'

이렇게 오랫동안 질기게 나를 도와준 축복은 거의 존재치 않았다. 어째서 제갈유룡이 기를 쓰고 반고의 축복인 정향의 인과율을 얻으려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본래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부차적 효과로 인해 [질서]에 속하는 고대신이나 고위존재들이 순응하며 호의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으리라.

슈르르륵!!

잠시 후 물의 정령은 스스로 무기 속으로 들어가서 봉인되었다. 알아서 봉인되었기에 신투지존이 따로 힘을 쓸 필요도 없었으며 신기에 들어간 힘이 잔잔하게 흐르는 듯 했다. 내가 물의 정령이 들어간 수신의 신기를 들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대. 내 이름으로 계약을 이을 지어다.]

나는 아까 달마에게서 들었던 [이름]을 떠올리며 말했다.

" 당신의 이름은 바루나(वरुण). 신기의 계약을 맺어주시오."

[ 좋다... 계약은 맺어졌다. 나는 만물을 뒤덮는 창공(蒼空)일지니!]

파앗!!

그리고 세 번째 신기가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지금까지 얻은 신기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첫 번째 신기인 아그니는 기다란 철통모양으로써 내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고, 두 번째 신기인 바유는 뿔피리로써 내 왼손에 들려 있었다. 세 번째 신기인 바루나는 깃발처럼 생겼기에 등에 메기로 했다. 사대신기를 다 장비하면 다소 움직이기 불편한 모양일 듯 했고 통일성이 없었다.

' 뭐, 원래부터 무기로 만들어진 건 아닌 거 같군...'

그러고보니 이 가짜신기들은 우리 세계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달마의 손에 하필 가짜 신기가 소환된 것일까?

나는 아직 궁금증이 다 풀리지 않은 걸 느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장 신투지존과 함께 마지막 정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地)의 정령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지의 정령 또한 우리의 존재를 미리 감지하고 있었는지 거대한 흙인형의 모습으로 변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의 정령이 말했다.

[ 필멸자여! 세 정령신을 신기에 가두었는가? 그대 혼자서 그 강대한 힘을 사역하여 [옛 지배자]를 물리치고 세계의 멸망을 이룩할 셈이더냐?]

" 그렇소! 당신도 도와줘야겠소."

지의 정령은 진정으로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 허튼 소리! 전 우주의 물질을 다루는 자로써 너희의 광기를 두고 볼 수는 없겠구나.]

" ......"

[ 사라져라!]

퍼엉!!

" 크아아아악!!"

단지 한 번의 언령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투지존은 아예 형체도 없이 분해당해서 사라져 버렸고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튕겨져 나갔다. 형태가 있는 무술이나 공격이었다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을텐데 그저 언령이 작용했을 뿐이니 피할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 헉... 헉... 허억..."

파... 팔이 전부 떨어졌어. 다리도 한쪽...

삽시간에 사지의 세 쪽을 잃어버리고 오른다리만 남았으며 눈에 피가 고여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장도 전부 파열된 듯 넝마가 되어 있었다. 이미 결판이 나 버린 상태에서 나는 숨만 몰아쉬며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 이럴 수가... 고작 언령 한 방에...'

고대신이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아예 싸움이 성립되지 않을 줄이야.

의념천주고 뭐고 방금 전에는 마치 행성조차도 일격에 분쇄할 법한 어마어마한 기운이 내리쳐 오는 것 같았다. 이런 우주적인 힘 앞에서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만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무려 수만 배 이상의 절대적인 힘 차이 앞에서 그 어떤 기술을 써도 의미가 없었다.

이제서야 [옛 지배자]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던 절대지경 고수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전욱에게 당한 무사시는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그러나 지의 정령은 나보다 더 놀라워했다.

[ 으음... 언령을 발휘했는데도 숨이 붙어있다니! 일백 개의 별을 부숴버릴 수 있는 권능을 불어넣었는데도 버텼단 말인가?]

" ......"

[ 네가 가진 그 신기가 널 수호해줬나 보구나.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을 했구나...]

슈욱

한탄성과 함께 지의 정령의 곁으로 삼대신기가 날아갔다. 나는 눈을 멀쩡히 뜨고 신기를 빼앗기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지의 정령은 삼대신기를 허공에 띄운 채 말했다.

[ 이 미친 짓은 적당히 하고 끝내도록 하겠노라. 만유의 지모께서 이 자리에 오셨음은 그런 뜻일 것이다.]

" ... 어쩔 생각...이지."

[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결계가 뚫릴 터... 그대들은 영겁 속에서 소멸할지어다.]

" 크윽..."

여기까지 와서 끝이라니.

보아하니 지의 정령은 명령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의식을 수호하고는 있었지만 반발심이 매우 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의식을 수호하지 않으며 태만하게 굴어서 의식을 끝장낼 생각인 듯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게 끝장이라 볼 수 있었다.

아냐. 포기하면 안 돼.

정말 여기서 끝일 리가 없어.

그 때였다.

오오오오오 -

기괴한 소리와 함께 무형의 존재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마치 한 발자국을 새기듯이 천천히 내딛었고, 사방에서 그 존재를 경배하던 [옛 지배자]들이 움찔거렸다. 초록빛으로 녹아내리는 성좌 속에서 서서히 움직이던 그 존재는 잠시 후 결계 바로 앞까지 당도한 모양이었고, 내 머릿속에 기이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대 여

기 대 하 노 라 ......

그 목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에 거대한 염소가 들어와서 날뛰는 느낌이 들었다. 염소의 두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며 뺨을 햝짝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 어억... 뭐냐 이건...'

정말 찝찝하면서도 따뜻해서 기분 좋다. 그 기괴한 기분은 한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더니, 잠시 후 천지에 무한한 어둠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빛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이 펼쳐졌다.

쿠구구구

진동이 한동안 울려퍼지더니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방에서 어둠이 걷히며 빛이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번갯불 튀기는 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그 쪽을 돌아보다가 내 팔다리가 모조리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알아차렸다.

" 앗!"

어떻게 된 거지?

심지어 방금 전 소멸했던 신투지존도 멀쩡히 서 있었다. 그리고 지의 정령은 흙인형의 형상으로 서 있었는데 무언가에 경악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위... 위대한 만유의 지모시여... 어찌...]

잠시 후 지의 정령이 광포한 경악성을 터뜨렸다.

[ 어찌하여 우주의 멸망을 긍정하시나이까!!]

응?

파지지직!!

내가 상황파악을 하려고 하고 있을 때 번갯불 튀기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리고 그 곳에 있던 서(書)를 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8개의 조각이 맞춰져 있다!!

' 방금 전까지 4개 뿐이었는데...!!'

언제 4개가 추가로 맞춰진 거지?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삽시간에 8할의 서가 완성된 셈이다! 당연히 진공가향을 추구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이었지만 지금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크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오!!

그와 동시에 천지사방에 몰려와 있던 [옛 지배자]들이 마치 지의 정령처럼 광포한 포효를 터뜨리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포효라기 보다는 마치 필멸자들이 내지르는 것과 같은 공포심에 가득찬 절규에 가까웠다.

왜들 저러는 거야?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찰나간에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달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백웅이여. 그대의 손에 삼대신기가 돌아와 있으니, 지의 정령을 쓰러뜨려라. 사대신기를 완성시킬 때가 다가왔노라.]

나는 그 말대로란 걸 알아차렸다. 어느 새 몸도 회복되어 있었고 삼대신기도 내게 장비되어 있었다.

[ 달마! 내가 저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언령 한 방에 죽어버렸는데 어떻게 이기지?

내 걱정은 당연한 거였지만 달마는 느긋한 음성이었다.

[ 후후... 후후후후!! 당연히 이길 수 있으리라... 방금 전과는 다를 것이다.]

부글...

달마는 상반신이 거의 곤죽처럼 녹아내린 상태였는데도 뭐가 좋은지 싱글거리며 웃는 목소리였다.

[ 위대한 만유의 지모께서 방금 전 우주의 멸망을 축복하고 떠나가셨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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