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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45화 (94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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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곧장 달마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 앞의 광경에 잠시 놀라서 멈춰섰다.

" ......!!"

저건 도대체...?

내가 놀란 까닭은 해신 때문이 아니었다. 해신은 달마의 주술에 잠시 봉인당한 듯 전신이 시꺼먼 쇠사슬같은 마법진에 묶여있었고, 그 옆에 있는 [옛 지배자]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상태 때문에 놀란 것이다.

쿠으오오오오

기묘한 소리와 함께 이자나기노미코토의 몸뚱이가 크게 살덩어리처럼 팽창하고 있었다. 그 끔찍한 형상이 번져나오는 것만 봐도 인간의 정신력이 고갈될 것 같았고, 심지어 그의 몸에서 촉수가 줄줄이 흘러나오면서 제멋대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자나기노미코토의 몸 한 가운데에는 [가면]이 떠올라 있었다.

꾸드드득

꾸드득!!

이자나기노미코토는 필사적으로 가면을 벗으려 하고 있었으나 잘 되지 않는 듯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면은 [옛 지배자]의 마력 때문에 꿈틀거리면서도 계속해서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살에 파고드는 모습이었고, 가면이 파고든 자리에서 시꺼먼 악몽의 피가 꿀럭거리며 흘렀다.

내가 달마에게 외쳤다.

" 신투지존은?!"

[ ......]

달마는 대답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 거의 다 됐군...]

슈와아악!!

갑자기 이자나기노미코토의 중심에 박혀있던 [가면]이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었다! 그 빛은 명백히 순수한 혼돈의 기운을 품고 있었으며, 그 빛이 번져나오는 순간 이자나기노미코토가 거대한 포효성을 내질렀다.

[ 으오오오오...!! 나의 본질이... 나뉘는구나...!!]

츄와아아

[옛 지배자]의 몸뚱이가 마치 칼로 벤 것처럼 정확하게 둘로 나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눠진 동체(動體)가 잠시동안 안개에 휩싸여 일렁였고, 나뉜 절단면에서 또다시 시뻘건 눈알이 수백 개나 돋아났다.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모습이었으나 나는 그 상황에서 전혀 눈을 떼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무슨 일이 생기는건지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일단 상황을 기억만이라도 해둬야 했기 때문이다.

파직!

잠시 후 오른쪽의 동체가 떨어져나가더니 새하얀 빛으로 응축되었다. 그리고 그 빛이 우주 멀리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으며, 왼쪽의 동체는 파르르 떨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 이자나미...!! 내 황천(黃天)의 영혼이...]

그 비명이 끝나는 순간, 그 뒤에서 거대한 흑수(黑手)가 나타나더니 이자나기노미코토를 세게 누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제압단계였다면 이번에는 그 존재를 짓눌러 뭉개버리겠다는 듯 격렬한 싸움이었고, 이자나기노미코토는 크게 마력을 떨쳐내며 저항했으나 결국 달마의 공격에 이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조그맣게 변한 이자나기노미코토가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다. 아마 저것이 [신의 죽음]일 것이리라.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옆에서 손을 뻗고 있는 달마대사에게 말했다.

" 그냥 죽여버려도 된단 말인가?! 저 놈의 영혼을 훔쳐야..."

저런 식으로 신의 육체만 죽음의 상태에 들게 하면 영혼을 훔칠 수 없다!

[ 그럴 필요 없다. 백웅 그대가 하나를 훔친 이상 그 이상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내게는 지배자의 영혼을 봉인해둘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달마대사가 대꾸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 ... 흠,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나?"

[ 지배자의 영혼을 쉽사리 가공하거나 보관할 수 있다면 말이겠지... 허나... 이 우주의 그 누구도 그런 도구를 쉽게 갖지 못한다...]

" 그럼 딱 한 군데에 신의 영혼을 봉인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 ......]

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질문에 대답하기에는 껄끄러운 구석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신에 달마는 손을 들어서 해신을 정조준하며 말했다.

[ 봉인하노라!!]

크아앗

그 순간 수많은 손바닥이 해신의 몸을 둘러싸더니 이차원(異次元)으로 끌고가서 완전히 소멸시키고 말았다. 물론 봉인이라고 말했으니 소멸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봉인한 것이리라. 나는 그 또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해신은 나타난 [옛 지배자]중에서 제일 약한데 왜 죽이지 않고 굳이 봉인시킨 거지?"

[ 저 놈을 정면으로 죽여버리게 되면 흉신(凶神)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영혼을 훔치든 봉인을 하든 상관없지만 죽이는 건 다른 문제... 해신은 흉신의 수문장이니.]

" ......!!"

[ 다른 모든 이가 해신의 죽음을 바라는 그런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게 최선이다. 위험한 길은 최대한 피할 것이다...]

그런 건가.

내가 보기에 해신이 죽어도 흉신이 끼어들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전생경험에 따르면 흉신은 해신의 거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거대한 의식을 놔두고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의 위험조차 배제하려 든 것이다.

상황이 일단락 났다는 생각이 들 때, 신투지존이 홀연히 우리 앞에 나타났다.

" 이제 정리된 건가?"

" 신투지존!"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 당신은 어디 갔었지?"

" 열심히 싸웠는데~"

" 방금 전까지 전장에 아예 보이지 않았잖아!! 싸우다 말고 어딜 간 거냐고."

저 놈은 마견으로 변신해서 테스카틀리포카를 잠시 붙잡아두고 있었는데, 내가 막상 그의 이마 위에서 무쌍패로 죽을 힘을 다해서 싸울 때는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같이 안 싸우고 갑자기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 니가 못 본 것 뿐이겠지, 후배."

신투지존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달마를 스윽 쳐다보며 말했다.

" 달마. 정말로 저 녀석이 신의 혼을 훔쳐낸 게 사실인가?"

[ 그렇다...]

부웅

달마가 손바닥을 들어올리자 그 위에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덩어리같은 게 둥둥 떠 있었다. 아마 달마의 힘으로 신의 영혼을 압축시켜서 유지시키는 게 가능한 듯 싶었다. 달마는 물끄러미 테스카틀리포카의 영혼을 쳐다보다가 손을 쥐어서 없애고는 말했다.

[ 백웅 때문에 천하제일의 자리가 위태로워 보이는군... 신투지존.]

" ......"

신투지존은 약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힐끔 나를 쳐다보다가 투덜거렸다.

" 아, 됐어! 나라고 해서 못하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재료]도 갖춰졌겠다 의식은 언제 할 생각이지?"

[ 내일 할 것이다...]

내일?!

나와 신투지존은 거의 동시에 당황한 표정으로 달마대사를 쳐다보았다.

" ... 빠르군! 서두르는 건가?"

달마대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신을 봉인시키고 혼을 빼앗은 행위... 틀림없이 이 세계의 인과율에 파도와 같은 거대한 일탈을 가져왔으리라... 우리는 인과율의 파장이 퍼져나가기 전에 가급적 빨리

의식을 해치워야 한다.]

" 너무 서두르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내가 걱정스럽게 말했으나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 아니... 내일 치를 것은 가의(假儀)다.]

" 가의?"

[ 진공가향의 본의식이 아니라 미리 의식을 치를 것을 하늘에 전달하는 것이다. 다른 대존재들이 끼어들기 전에 우선 확정해두는 것이지.]

" ......?"

그게 무슨 의미지?

나는 머리가 그리 좋지 않아서 달마대사의 진의를 쉽사리 탐색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신투지존은 이미 그의 말뜻을 이해한 듯 말했다.

" 그렇군. [아버지]에게 공양의식을 하는 것도 절차가 있다는 말인가."

[ 그러하다... 가장 위대한 존재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지 의문이니... 가의식으로 그 다음 가는 존재에게 의식을 치뤄도 될지를 여쭙는 것... 이 절차가 없다면 진공가향의 본의식을 치러봤자 반드시 실패하리라.]

" 상황은 이해했다."

신투지존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근데... 후배야. 너 말이다."

" 응?"

" 진공가향이 뭔지 알고 계속 달마를 돕고 있는 거겠지? 엉?"

" ......"

" 이 세상이 너무 개같으니까 신이고 인간이고 가릴것없이 싸그리 다 멸망해버리는 게 진공가향이지. 다시 말하자면 네놈도 죽는단 소리다. 그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필사적으로 도와주는 이유는?"

신투지존이 내 눈을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 진공가향의 끝은 자살이며 세계멸망이다. 넌 그렇게 죽고싶은거냐?"

" ......"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 으음...'

사실 신투지존의 질문에는 그리 대답할 필요가 없다. 저딴 놈의 질문에 대답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달마 또한 함께 있었으며, 달마도 흥미를 느꼈는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 확실히... 이상하게 보이겠어.'

상식적으로 - 아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절대로 진공가향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이 세상의 완전한 멸망과 파멸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진공가향.

신투지존의 말마따나 진공가향을 추구하여 노력한다는 건 결국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오는 셈이었다. 광인(狂人)이 아닌 이상 결코 달마의 이상에는 감화하여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 세계의 신이 벌이는 만행이 절망적이라 해도 보통 사람은 진공가향을 택하는 게 불가능하리라.

그런데도 나는 필사적으로 진공가향을 도왔다. 그것도 단순한 의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몇 번이고 사선을 넘었으니, 누구의 눈으로 봐도 이상하게 여길만 하다. 이 상황에서 달마에게 의심을 사면 좋지 않다.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 어차피 죽고난 후의 세상도 신들이 지배하고 있지. 죽어서 영겁토록 고통받는 거라면 그냥 이 세상은 망하는 게 낫다."

" 그건 평범한 놈들의 이야기. 넌 다르다. 내 후배인 시점에서 너는 보통 놈은 아니야..."

신투지존의 눈에서 기이하면서도 왠지 익숙한 빛이 번득였다.

" 너 정도 힘과 능력이 있으면 어떻게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서 누릴만큼 누릴 수 있을텐데도 굳이 죽고싶으냐? 환생이든 외우주 귀환이든 방법은 있을 터."

" 집요하군."

" 흐흐, 짜릿한 싸움 후에는 말이 많아지는 법이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 세계를 끌어안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죄책감이 덜어질 테니까."

" ......?"

신투지존이 황당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어차피 전생자인 내 입장에서 내 죽음은 세계의 죽음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몰라...'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와 내 전생동료들은 그걸 가정하고 전생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게 죽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십수 회차를 반복하다보니 죽음에 대한 관점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자신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소멸과 다름없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인위적으로 세계의 멸망을 택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거부감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평소에 내가 불가항력으로 죽음을 택하는 순간 [세계]를 멸망시키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늘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그리고 그 때의 무력감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정식으로 도전하는 쪽이 마음은 편할수밖에 없다.

나는 소신을 담아서 말했다.

" 미친 놈이라고 불러도 좋아. 난 진공가향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어!"

달마의 진공가향이 무엇인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반드시 봐야만 한다.

그 결과는 틀림없이 내 전생의 목표에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마가 사대신기를 내게 준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 말을 믿고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 또라이새끼! 진심이냐?"

" 진심이다!"

" 하... 내 후배가 이런 또라이였다니..."

신투지존은 학을 떼는 표정을 짓다가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

" 달마. 정말 좋은 동료님을 두었군... 크큭."

[ ......]

달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휘리릭

신투지존이 그 자리에서 말없이 사라지자, 달마가 내게 말했다.

[ 백웅이여. 내일 의식을 치를 때 그대가 해야할 일은...]

" 달마 당신을 호위하는 건가?"

[ 아니다. 그건 본의식에서 해야할 일.]

" 그럼..."

[ 우선 나를 따라오라. 설명을 해 주겠다...]

파아앗

달마가 순간이동 능력을 발휘했는지 나는 순식간에 달마와 함께 어디론가 옮겨졌다. 나는 내가 나타난 곳이 어디인지 알아채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여긴... 천암의 제단!"

나보다 높은 층계참, 천암의 제단 근처에 서 있던 달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백웅이여. 전에 내게 말했었지... [아버지]라는 존재가 세계 그 자체나 다름없는 존재라면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의 살을 떼어준다고 해도 아무런 대가가 될 수 없다고...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공양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 그랬었지."

정확히는 제갈사가 내게 가르쳐준 지식을 그대로 말한 것 뿐이었지만 사실상 진공가향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 어떤 존재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라는 절대신성,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전능(全能)한 존재는 우주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 종속성 때문에 공양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자기 것인 걸 또다시 받아봐야 그걸 [공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웅

달마가 시꺼먼 안광을 흘리며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서 테스카틀리포카의 영혼을 꺼냈다. 무지개빛을 뿜는 신의 영혼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달마가 말했다.

[ 이 테스카틀리포카의 영혼은 1억 명이 아닌 10억명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조차도 낮게 잡은 거겠지...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신의 영혼조차도 [아버지]에게는 본디 공양물이 될 수 없다... 아무리 가치가 드높다 하더라도 우주의 절대자에게는 제살 깎아먹기에 불과하니.]

" 그래.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데?"

[ 백웅이여...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합집합(合集合)의 바깥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 ......?"

아무래도 수리(數理)의 지식을 이용해서 비유로 설명해줄 셈인 듯 했다. 나는 합집합의 정의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말했다.

" 음... 딱히 없지 않나? 결국 집합이란 것도 어떤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까 그 정의 이외의 것은 무(無)라고 하겠지."

[ 그렇다면... '바깥'이 없는 그 무한한 합집합이 [아버지]라고 가정한다면, 그대와 나 또한 아주 사소하고 작은 피조물이며 조그마한 집합이겠지. [아버지]는 이 세계 모든 것이니.]

" 그렇겠지. 그게 뭐?"

[ 그러면 그대와 나는 [아버지]의 화신(化神)이라고 할 수 있는가?]

" ......?!"

이건 무슨 소리야?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 아, 아니겠지."

[ 어째서 아닌가? 우린 왜 그 절대신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없는가?]

" 그야 화신이란 건..."

나는 뭔가 말하려다가 머뭇거리고 말았다. 화신의 정의를 설명하려다 보니 내적인 모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달마대사가 말했다.

[ 백웅이여. 그렇다면 저 경우, 만일 우리가 [아버지]의 화신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 그건 좀... 화신이라고 해도 아무런 권능도 못 받았고 아무런 힘도 없잖아. 우린 그저 필멸자일 뿐인데, 그걸 화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화신은 본디 본체와 다른 개별적 의지를 갖고 있다. 힘이야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지.]

" 그건 억지같은데..."

[ 그렇다... 억지일 수도 있지. 그러나 진실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버지]의 화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심지어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한줌의 흙, 개미 한 마리 조차도 화신일 수가 있지... [아버지]란 건 그런 존재... 신중신(神中神)이란 존재의 한계는 감히 측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 ......"

[ 이해가 가는가...? 그리고 우린 화신인 이상 공양이 불가한 것이다. 결국 필멸자든 불멸자든 절대자와 한 몸이니...]

" 으음... 하고싶은 말이 뭐야?"

달마대사가 침묵하다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 백웅. 알고 있는가? 단 하나... [아버지]에게 종속되지 않는 존재가 단 하나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 그 존재만큼은 결코 [아버지]의 화신일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뭐?!

내가 놀라서 달마대사를 쳐다보자, 그가 이족의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 이걸 잘 보아라. 그대는 반드시 이걸 보아야 한다...]

퐁당

달마대사가 손 위에 띄워두었던 테스카틀리포카의 영혼을 천암의 제단에 있던 석관 속으로 떨구자, 마치 수면에 무언가가 빠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영혼은 둥둥 떠 있다가 빨려들듯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달마대사의 팔에서 갑자기 퍽하고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흑혈과 함께 낙인이 하나 사라지고 말았다. 낙인의 불이 꺼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 으윽...]

달마대사가 비틀거리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어떻게 한 거지?"

[ ... 대여료를 냈다. 이걸로 [옛 지배자]와의 계약이 하나 줄어들어 버렸군...]

" 신의 영혼을 천암의 제단에 봉인한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이 제단은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제단의 역할은 바로 전송(傳送)이다... 신의 영혼을 담아둘 만한 곳은 오직 그 곳 뿐.]

" 전송? 어디로?"

[ 허공록(虛空錄).]

그가 서서히 석관의 뚜껑을 닫으며 말을 이었다.

[ 진공가향을 진행할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우주의 지혜(知慧), 허공의 연대기... [옛 지배자]의 진정한 왕(王). 그 위대한 외신(外神)의 힘을 빌리는 방법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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