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
진공가향(眞空家鄕)
어떻게 된 것인가 -
예기치 못한 절학의 발현. 나는 혼란 와중에도 마음속 한켠이 무척이나 안정되어 있으며 내 마음속이 충만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기(氣)를 모으자.'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제일 우선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바다 속에서 전신의 기혈을 열고 순수한 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모공을 통해 흘러들어온 무형의 기력이 심맥에 도달한 후 갑작스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소우주(小宇宙)가 열리는 것 같다. 정수리가 쩡하고 깨지는 느낌과 함께 전신이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방금 전에 소모해서 고갈되어있던 기가 단숨에 모두 충전되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마력의 팔을 이용해서 억지로 힘을 끌어들인 현상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지금까지는 우물에서 그릇에 물을 퍼오는 것 같았으나 지금은 그릇 자체가 거대한 물 속에 잠겨있는 듯 했다. 이 물을 퍼낸다는 개념조차도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 황홀한 일체감에 잠기면서 계속해서 빨려들어오는 기를 이용해서 이 몸의 기혈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우두두둑!
우두둑!
신체가 저절로 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나는 내 몸이 아닌 상태인데도 가공할 일체감과 함께 내 몸이 거대한 흐름에 적응하며 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혼이 반쯤 부유하여 내 몸을 내려보는 듯 하면서 내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근골(筋骨)이 드러날 정도로 뒤틀렸고 밖으로 삐져나왔으며 살갗이 팽팽하게 당겨졌으며 핏줄이 몸 주변으로 솟아올라서 혈인(血人)처럼 변했다. 그리고 얼굴의 광대뼈는 물론이고 가슴의 골이 크게 우그러들면서 몸의 구조 자체를 몽땅 변화시키고 있었다.
쿠구구!!
' 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엄청난 기를 보유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당황했다. 아무리 대단한 기를 갖고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몸 자체를 변형시킬 수가 없다. 몸의 생명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고 본질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일은 내 지식에 따르면 틀림없이 -
' 환골탈태(換骨奪胎)!!'
틀림없다!
내가 경악하고 있을 때 피부가 고열에 녹듯이 지방을 바닷물 속으로 흘렸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 일어나던 엄청난 변화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잠시 후 나는 전신의 기혈이 모두 뻥 뚫리면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기력을 단숨에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고오오오
" ......"
이마에서 빛이 나며 화끈거린다. 빛나는 보석이 박혀있는 것 같았고, 이건 아마도 환골탈태한 자가 잠시 겪는다는 진리인(眞理印)의 형상인 듯 했다.
' 이럴수가...?'
설마... 그토록 갈구했음에도 한 번도 이루지못했던 환골탈태의 경지를 이계(異界)에 와서야 이룰 줄이야! 나는 멍한 상태였지만 그와 동시에 이제 몸의 상태에 있어서 본래 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까지는 절학 한두 번만 써도 내공이 다 바닥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반영구적으로 무공을 사용해도 무난할 정도의 '그릇'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릇과 동시에 또 하나의 '중심'이 생겨났다. 그걸 느끼는 순간 더할 수 없는 고양감이 내 몸을 휩쓸었다.
촤아앗!!
나는 환골탈태가 끝나자마자 바닷물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신투지존이 변신한 [옛 지배자]의 형태가 서서히 먹구름처럼 풀려가는 게 눈에 보였으며, 그에 맞서던 테스카틀리포카가 거대한 동체를 뒤틀면서 하늘에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는 게 보였다.
쿠구구구! 쿠구구!!
[ 으아아아아아아...!! 감히...!!]
테스카틀리포카는 대노(大怒)한 듯 했다. 그의 머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턱까지 관통해 있었고 청혈(靑血)이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무시무시한 마력이 암운(暗雲)을 흘려내며 재앙을 예고하는 중이었다.
' 타격을 심하게 입은 건가?'
틀림없이 내가 가한 공격 때문이겠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무공으로 [옛 지배자]에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다니!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개미에게 물려서 간지러워하는 게 아니었다. 의외의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면 저렇게까지 분노하진 않는다. 그 말은 [옛 지배자]의 물질계 육신에 치명타에 가까운 공격을 가하는데 성공했다는 뜻이었고, 여태껏 전생하면서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 어떤 고수도 [옛 지배자]를 상대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것이다.
' 설마... 나는...!!'
내가 멍하니 수면 위에 서 있을 때였다. 달마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 백웅이여...]
[ 달마대사!]
[ 훌륭하다. 설마 사도의 힘으로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은... 예상치 못했노라.]
쿠구구구
어둠의 태양이 수평선 너머에서 치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주언(呪言)이 넘쳐흐르며 가공할 마법을 시전하는 중이었고 법칙 그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힘이 어둠의 태양을 떠올리며 세계가 어둠에 뒤덮였고, 그는 잠시 후 분노에 차서 외쳤다.
[ 나 태양신으로써 명하노니, 흑암의 권세가 이 세계에 영겁의 밤을 가져오리라! 멸망을 이루리라!]
휘오오!!
잠시 후 테스카틀리포카가 포효하자 전 세계가 시꺼먼 밤으로 가득찼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경악했다.
" 아니!"
뭔가 엄청난 일이 시작되려는 건가?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달마대사의 말이 들려 왔다.
[ 세계를 멸망시키는 주문이군.]
[ 주문 한 번으로 멸망시킨다고?!]
[ 흑요석의 왕이 지닌 권능이라면 어려울 것 없겠지... 저 주문을 내버려둔다면 반각 내에 세계가 어둠의 태양에 먹혀서 우주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 ......!!]
천계에서 반고의 주를 시전하려는 걸 본 적이 있었기에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수천 명의 신선들이 오랜 시간동안 주문을 외워야 하는 대의식이었는데 [옛 지배자]는 그저 주문 한 번으로 세계멸망이 가능한 것이다. 신은 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물론... 내가 내버려뒀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후웅
달마대사가 천천히 오른쪽 손을 내뻗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알 수 있었다.
' 원래 저 손에는 해신이 잡혀 있었는데...'
저 손은 현재 텅 비어 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 죽였군!'
시간을 벌어준 틈에 달마가 해신을 잡아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묘한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달마가 허공에 소환해낸 거대한 흑수(黑手)가 서서히 테스카틀리포카의 동체(動體)를 붙잡았다.
콰악!!
[ 으으으으....]
몸뚱이 한가운데를 손에 붙잡힌 테스카틀리포카가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에는 자신이 붙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달마대사가 말했다.
[ 그대, 과한 욕심을 부렸구나.]
[ 이 손을 놓거라, 필멸자 출신의 지배자여! 그리한다면 그대가 이 세계의 영주임을 인정하고 물러가겠다.]
[ ... 그러한가? 나는 그다지 영주가 될 생각은 없다...]
[ 그저 유희로 갖고논다는 말인가? 그 또한 인정하겠다.]
[ 아니다.]
달마대사가 안광을 번득이는게 느껴졌다.
[ 내가 이 우주를 멸망시키기 전에 다른 자가 멸망시키게 둘 수는 없다... 절대로!]
[ 뭐, 뭐라고...]
우드드득!!
우드득!!
[ 크아아아아!!]
신이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본디 신은 고통같은걸 느끼지 않을테지만 본질을 침해하는 공격이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달마의 흑수가 엄청난 힘으로 테스카틀리포카를 옥죄었고, 날개달린 뱀은 크게 퍼덕이다가 잠시 후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추욱 늘어지고 말았다.
눈 앞에서 신살(神殺)이 이뤄지는 걸 지켜보고 있던 내게 달마대사가 말했다.
[ 백웅이여... 준비하라.]
[ 음!]
달마는 강인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 아직은 완전히 그의 육신을 소멸시키지 않고 반죽음으로 만들었다... 그대가 테스카틀리포카에게 큰 타격을 입혀서 약화시킨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기회에 그대가 테스카틀리포카의 영혼이 빠져나오는 틈을 노려서 훔쳐낼지어다!]
달마의 노림수는 그것이었구나. 처음부터 우리의 계획이 그렇기도 했다.
' 해신보다 훨씬 격높은 지배자의 영혼을 손에 넣는다면 굉장히 유리해지겠지!'
나는 상황을 이해하며 물었다.
[ 해신은 그냥 죽여버린 건가?]
[ 그 놈은 잠시동안 봉인했다... 그쪽은 신투지존이 해줄 예정이다.]
달마가 대꾸하며 말을 이었다.
[ 그대... 반드시 성공시켜 다오. 저 자의 혼이 있다면 정말로 1억 명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으리라. 너희 둘 중 하나만이라도 성공한다면!]
[ 알았어!]
타앗!!
나는 허공에 붙들려 있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머리쪽으로 향했다. 멸혼보의 극성을 발휘하자 수십 리 거리를 순식간에 압축시킬 수 있었다. 내가 아까처럼 뱀의 머리 위에 도착해서 내려앉자, 테스카틀리포카는 눈이 반쯤 감긴 채 죽어가고 있었다.
테스카틀리포카와 눈이 마주쳤다. 태양신이자 위대한 존재인 테스카틀리포카는 내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 필멸자여...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고 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스카틀리포카에게 대답했다.
" 신이여. 나는 그대의 죽음이 이뤄질 때 영혼을 빼앗을 것이오!"
[ ... 그렇군... 너희는 정말 광오하구나... 우주역사상 그 누구도 신의 혼을 찬탈하려는 시도는 하지 못했거늘... 초은하의 종족들조차도...]
테스카틀리포카가 잠시 후 희미하게 웃었다.
[ 후후... 해 보아라... 그 또한 재밌겠구나...]
" 내가 그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원망스럽지 않소?"
[ ... 모르겠군. 방금 전에는 좀 아팠지만, 딱히 아무 생각도 없다.]
" 모르겠다고?"
[ 수억년... 혹은 수십억 년... 나는 탄생할 때부터 완전한 존재였으며 내 영혼의 반쪽과 합일하며 더더욱 강해졌다... 그 어떤 불만도 자극도 존재치 않았지... 그리하여 지금은 도리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의 목소리에서는 필멸자가 감히 짐작하기 힘든 압도적인 권태가 느껴졌다.
" ......"
진정한 신으로서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그저 재미를 논할 수 있다니.
역시 신의 정신세계라는 건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기가 질려서 가만히 있자,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 그 전에... 너에게 축복을 내려주지... 필멸자여, 너의 위대한 능력에 찬사를 보내노라.]
" ... 축복? 내가 당신의 영혼을 빼앗아 없애버릴 텐데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 소멸할 때도 삼라만상 모든 것이 마음대로... 그것이 바로 [지배자]가 아니겠는가.]
덤덤하게 대꾸한 테스카틀리포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벌리더니 천천히 꿀렁이면서 입안에서 무언가를 토해내었다.
츄와악
테스카틀리포카가 뿜어낸 무언가는 거대한 보석이었다. 사람의 키만큼 거대한 그 보석은 마력으로 둥둥 떠 있다가 내게로 다가왔고, 이윽고 목걸이의 형태로 압축되어서 내 목에 걸렸다.
내가 그 검은색 목걸이를 쳐다보자 테스카틀리포카가 말했다.
[ 그 목걸이는 검은 태양신이자 [흑요석의 왕]으로써 내가 백웅 너에게 주는 축복... [달의 지배자]가 온갖 미사여구로 내게 환심을 사서야 선물했던 것이지만... 너에게는 그냥 주지...]
" 이 흑요석 목걸이는 어떤 축복이요?"
[ 그것은...]
테스카틀리포카가 일순간 내 머릿속에 지식을 쏟아넣었다. 방대한 양의 지식이 머릿속에 쏟아들어오자 나는 비틀거렸고, 흑요석 목걸이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 그냥 말로 해도 될텐데."
원래라면 이 정도의 악랄한 지식전송을 미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다. 굳건한 기반이 있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티고도 남는다.
[ 글쎄... 나의 통찰과 예지로 보았을 때는... 너 또한 조만간 동료와 반목하게 될 터... 내 나름의 배려라고 해 두지...]
" ......?"
[ 그럼... 나의 죽음을 송별하라.]
뱀은 눈을 감았다.
스스스
그리고 빠르게 그의 몸뚱이가 회색으로 변하면서 딱딱한 돌이 되어 굳어가는 걸 느꼈다. 이제 그가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걸 알아챈 나는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 시작이야!'
신이 물질계의 죽음을 맞이하며 영혼이 머나먼 차원으로 날아가는 그 순간!
그 순간을 잡아채지 못하면 달마의 계획은 실패하게 되고 엄청난 장애물에 부딪혀 진공가향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지금 신의 영혼을 훔치는 일에 모든 것이 걸려있는 것이다.
신의 혼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감지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이 굉장히 간단하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환골탈태한 육신으로 양손을 넓게 벌리며 양손에 백을 끌어당기는 비전의 술법을 모았다. 그리고는 주문을 외우며 정신을 집중했고, 이윽고 거대한 혼의 영역이 내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우우웅
" ... 간다."
이혼대법(移魂大法)!
신의 혼을 훔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이 방법 뿐이다!
파지직
내 머릿속에 번개가 튀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반경 수십 리 이내의 모든 혼이 감지되었고 생명이 불꽃으로 느껴졌다. 환골탈태를 이루고나자 이혼대법의 감각이 몇십 배나 향상된 느낌이었다. 그 선명한 혼의 세계에서 나는 발 아래에 있는 테스카틀리포카의 혼을 정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 ......!!"
엄청나게... 거대하다.
대륙보다 더 크다!
거대하면서도 그 혼의 질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일반적인 혼과 비교한다면, 마치 물렁한 두부와 금강석을 비교하는 것 이상의 차이가 났다. 혼의 압축도가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높으면서도 이 대륙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라니!!
' [옛 지배자]의 혼에 담긴 영력은... 대요괴나 대라신선의 수십억 배라는 게 과장이 아니었구나.'
이런 존재이니 우주적인 힘을 사역할 수 있는 것이리라. 동시에 이런 존재와 대적하는 내 자신이 얼마나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한두 놈도 아니고 전 세계에 이런 놈이 수백 수천마리가 있는데 다 물리칠 수 있을까?
이걸 훔쳐야 한다.
" ......"
어떻게 훔치지?
훔치려 해도 이걸 담을 '주머니'가 없다.
당초에는 그냥 마력의 팔으로 신의 혼을 흡수해서 달마에게 전송하려 했지만, 그걸로 될만한 크기가 아니다. 마치 보통 인간이 한손으로 태산산맥을 옮기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리 사도의 팔이라도 전송하다가 터져버리리라.
그 때였다.
" 그래!"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이를 악물었다.
' 이 방법 뿐이야!'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만상지투를 전개하며 이혼대법으로 신의 혼에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