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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42화 (94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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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무위전변(無爲轉變)!

선검(仙劍)의 흑인(黑刃)이 허공에 미세한 실선을 그리며 스쳐지나갔다. 언뜻 의미없어보였으나 그 궤적은 바늘구멍만큼의 실패도 허용치 않은 단 하나의 정답이었으며, 흑인이 스쳐지나간 순간 흑수(黑手)가 그 빈틈으로 음양의 균형을 맞췄다. 그리고 동시에 그 자리로 쇄도하던 강렬한 저주덩어리가 무쌍패(無雙覇)의 위력에 그대로 소멸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으나 이 일 합에서 나는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거리며 나는 걸 느꼈다.

' 무형의 공격을 방어한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니...'

따지고보면 이건 바람, 불 같은 현상이 아니며 기공파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저주]를 한다는 의지가 시공을 격하고 내게 날아오는 셈이었다. 원래라면 물리적으로 절대 막을 수 없는 공격이지만 무쌍패는 육합(六合)을 다루기 때문에 무형의 저주나 마법조차도 없애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실제로 해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공격은 대충 반사신경이나 감각으로 때려맞출 수 있는 점이 있어서 무쌍패로 막기가 다소 쉬운 편이지만, 개념적인 공격은 내 무쌍패의 간합에 미세한 기척이 잡히는 것이었기에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 공격!

' 무쌍패를...'

음과 양의 기운이 너울지더니 등 뒤에 태극을 만들어내며 강대한 패도를 일으켰다. 그리고 패도의 힘이 한 분간 무화하며 공격을 없애버렸다. 나는 손가락 끝의 미세한 잔근육까지 느낄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도 이 균형을 맞추는 게 힘들다는 걸 알아챘다.

후르륵

두 번째 공격은 제법 강력했는지 비껴내고나자 어둠의 기운이 수평선 멀리로 날아가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간혹 무쌍패로도 완전히 막아내기 힘들 정도의 공격이 있을 경우 무리하게 막기보다는 흘리는 것도 가능했다.

두 번째 방어까지를 성공시켰을 때 나는 이미 다리쪽에서 힘이 쭉 빠지며 기력이 새어나가는 기분이 후들거리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이미 장삼봉 진인과 나의 역량 차이를 처절할 정도로 느끼고 말았다.

' 안 돼... 무리...'

시작은 의욕있게 했으나 역시 성공률이 10할 완전하지도 않은 무쌍패를, 실전에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연속으로 펼쳐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 한 번의 실패율이 쌓이다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대실패가 다가온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 까지는 성공했으나 세 번째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절대로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장삼봉 진인은 이런 짓을 어떻게 하루종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수백 수천 번이나 무쌍패를 펼치면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단 것인가!

진정 초인(超人)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까지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해야 한다.

나는 약한 마음을 금세 떨쳐버리며 심기체(心技體)를 하나로 굳게 뭉치려 했다. 내 머릿속에 장삼봉 진인의 가르침이 스쳐 지나갔다.

[ 그렇게 까다롭진 않소. 의식적으로 쓰려 하면 쓸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도 알다시피 무쌍패는 육대절학의 완벽한 조화와 함께 무위전변의 조율, 힘의 변환, 태극의 구현이 모두 동시에 이뤄져야 하오. 의념과 정신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나 망설임이 있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소.]

[ 흔들림 없이 강인한 정신과 수양이 필수조건.]

[ 실패한다면 그것은 내 부족함의 결과... 무(武)에 자기자신을 바친다는 건 그런 뜻이리라 생각하오.]

무쌍패는 자기 내면의 모든 것을 걸고 유능제강과 강능단유를 동시에 실천하는 모순(矛盾)의 태극(太極)이다.  또한 단 한 번이라도 무쌍패의 시전이 실패하면, 시전자는 죽는다. 그 도박에서 어떻게 매번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장삼봉 진인에게 물어보자, 그는 자기자신을 무예에 바쳤다고 대답했었다.

나는 지금 무(武)에 자기 자신을 바치고 있는가?

모르겠다.

무에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건 어떤 것인가? 지금껏 지옥수련을 수도 없이 반복했으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너무 추상적인 질문일 뿐만 아니라 답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저 몰아(沒我)에 빠지는 것만이 무예에 자신을 바친다는 건 아닐 것이리라.

... 어라.

그러고보니 무(武)란 뭐지?

강대한 힘을 무라고 칭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이 세계에는 무예보다 더욱 강대하고 무시무시한 힘이 넘친다. 초상능력, 선천능력, 술법, 마법, 신력, 과학력 등등을 따지면 결코 무예는 '힘'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없다. 무예와 힘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도리어 무예 그 자체의 속성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 힘을 갈구하기 위해서 무예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는 뭘 위해서 무(武)의 세계에 뛰어든 것인가...?'

터터텅

아주 짧은 몰아지경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때 나는 네 번째의 무쌍패를 성공적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실전에서 이만큼 연속으로 무쌍패를 펼친 건 처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내 표정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으나 내 머릿속에서는 상념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武)에 귀의하여 인생을 바치는 건 지금까지 무사 백웅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무림의 세계는 내 환상을 충족시켜 줄만한 '힘'의 도가니였으며 그 세계에서 명예와 힘을 얻는 게 목표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무예 이외에는 힘을 향상시킬 도리가 없었기에 당연히 힘과 무예는 동의어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무(武)가 힘 그 자체가 아니라면, 내가 아직도 무예의 극한을 간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왜 절대지경을 두드리려 하는가?

지지징

선검(仙劍)이 명동(鳴動)했다. 여태껏 선검이 알아서 울어댄 일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나는 어쩐지 이 울음소리가 내 마음에 화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검의 명동 또한 내 무쌍패의 패도(覇道)로 소화시켜서 맞은팔의 마력(魔力)과 균형을 맞춰서 무쌍패로 승화시켰다.

파아아앗!!

천지를 뒤덮을 듯 밀려오던 저주의 파도가 일거에 소멸되었다. 그와 동시에 깨끗하게 맑아진 하늘이 한 순간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런 내 주변으로 환염의 소용돌이가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쉴 새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옛 지배자] 테스카틀리포카가 마법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내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 단순히 힘만을 쌓는다면... 절대지경에 더는 도전하지 않아도 돼.'

그저 전생을 하면서 요령껏 초상능력에만 집중하면 그만이다. 성좌의 힘을 다시금 긁어내듯 모으고, 음신지력을 더욱 발전시켜서 대성 이상의 경지를 추구하며, 보패와 보물을 바쳐서 [옛 지배자]에게서 초능력을 얻어낸다.

그런 작업만 약 5회차 정도 반복하면 나는 아마도 절대지경 2명이 동시에 덤벼들어도 이길 정도로 강해질 수 있으리라. 절대지경이 아닌데도 절대지경의 고수보다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외법(外法)이긴 하지만 하여튼 힘을 쌓는다는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지경으로 향하는 고된 여정을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미 절대지경이 신에게 대적하기에는 비효율적이란 걸 깨달았음에도.

어째서지?

지금까지 한 게 억울해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절대지경 코앞까지 와 놓고 못 찍으면 아까우니까?

" ......"

아냐. 그런 이유가 아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아직도 절대지경을 놓지 못하는 거였다면, 나는 아마 초절정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무예의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그런 건 무사(武士)가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진정으로 '위'를 추구하는 마음은 그런 눈 앞의 이득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써컥

나는 선검을 휘둘러서 나를 둘러싼 화염폭풍을 베었다. 이번에는 무쌍패를 펼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안 펼쳐도 헤쳐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찰나의 여유일지라도 정비할 틈이 생긴다면 다음 번 무쌍패의 전개에서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다. 내가 검뢰와 함께 마치 번개처럼 화염폭풍 속을 뚫고 나가자 그 때는 천지사방에서 시꺼먼 원념의 덩어리들이 마치 인간같은 형상을 한 채 귀곡성을 질렀다.

끼이이이익 - !!

도망칠 틈은 없다는 듯 사방을 포위하고 날아오는 시꺼먼 안개덩어리를 보면서 나는 괴롭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 그대는 자아가 너무 강한 유형의 인간이오... 심신(心身)의 수양은 깊으나, 그렇기에 도리어 자기자신을 잊을 수 없어 발버둥치는 걸로 보였소.]

그래... 장삼봉 진인은 내게 말했었다. 내 자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망아(忘我)로써 가라앉히고 무심을 도야시켜 줬다고. 완성형의 무쌍패를 내 무의식에 각인시킴으로써 무쌍패를 습득할 수 있게 해 줬다고.

지금도 스스로를 잊지 못하여 극렬한 번뇌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이런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도리어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경계란 건 무엇인가?

예전과는 다른 심득의 테두리가 내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무쌍패의 숙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서 생긴 현상인지, 이런 잡념이 맴돌면서도 무쌍패의 전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능숙해지는 것이다.

쩌엉!!

내가 일 장(一掌)을 태극권의 묘리에 따라 떨쳐내는 순간 저절로 시꺼먼 안개덩어리가 모두 사라졌다. 청량하게 맑아진 공기가 다시 나를 감싸며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 어째서지... 마력의 손조차도 기(氣)의 흐름과 공진(共振)하고 있다.'

본래 달마대사에게서 받은 마력의 손은 순수한 마력덩어리라서 이 손으로는 기력을 방출하거나 조종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무쌍패의 음(陰)이 아니라 양(陽)의 태세로 변환시켜서 무쌍패를 시전하는 게 가능했다.

뭔가가 내 안에서 변하고 있다...

혹시 이건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게 아닐까?

스아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검무(劍舞)를 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젠가 장삼봉과 여동빈의 대련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혜검(慧劍)의 태세였다. 첫 일보로 무(舞)의 시작을 알리며 내 몸은 유려하게 흐름에 따라 동작을 이어나갔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 아니다... 이건 태극혜검이 아니야.'

나는 열 번째의 무쌍패를 연속으로 성공시키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춤을 추며 보보(步步)마다 모든 저주를 중화시키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장삼봉진인의 진신절학인 태극혜검인 줄 알았다. 내가 무의식의 경계에 접하면서 저절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니 이 동작은 절대로 태극혜검이라 할 수 없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이미 배웠던 다른 무공이다.

나는 그 무공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 뇌신검무(雷神劍舞)!"

뇌신류 검술의 최종절기!

독고성에게서 전수받은 뇌신검무는 틀림없이 의념단계의 무술이며 강력했으나 본디 제사용 무공이며 백련교주의 자격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는 선검을 들고 뇌신검무를 추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잉

좌보(左步)의 음(陰)과 우보(右步)의 양(陽)이 투명한 원을 그려내더니 서로 겹쳐졌다. 그리고 겹쳐진 경계에서 또 다시 원이 파생되더니 마치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듯 계속해서 길을 뻗어나갔다. 나는 홀린듯이 뇌신검무의 초식을 시전하며 무아지경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검뢰(劍雷)가 춤을 춘다.

그리고 춤이 절정에 이르러가고 있는데 뭔가가 가로막혀서 자꾸만 힘이 부족한 걸 느꼈다. 나는 그 숨막히는 기분이 어째서 생기는지 잘 알 수가 없었는데, 이윽고 알아챌 수가 있었다.

[ 요점은 천뢰기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가만히 있어도 의지에 감응해서 검뢰(劍雷)가 움직일 때 비로소 뇌신검무를 대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 번개.'

번개의 힘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번개의 힘이, 내게 저절로 감응해서 도와주어야 한다.

번쩍!!!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치켜든 선검을 통해 하늘에서 뇌전이 한 줄기 내려꽂히더니 가득 전력(電力)을 충전시켰다. 이게 우연인지 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무래도 내가 하늘을 향해 쏘아낸 의념(意念)덕에 생긴 일이리라.

선검과 함께 보이지 않는 기운이 내게 임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그 무형의 기운을 담아 물뱀의 정수리를 검으로 내려꽂았다.

푸콱

물뱀의 정수리는 마치 두부처럼 꿰뚫렸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 확실히 산만한 머리통을 관통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이게 통상적인 뇌신검무 위력의 한계일 것이리라.

치지지지직

그 순간, 나는 전신이 뇌정(雷精)의 덩어리로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검을 통해 퍼져나온 무형의 기운이 나를 가득 감싸면서 몰아지경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눈을 반개하며 자세를 다잡았고, 잠시 후 나는 믿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백련지종(白蓮之宗)

천뢰신무(天雷神武)!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이미 지어놓은 듯한 절학명이 울려퍼진다.

쿠콰콰콰쾅

내 몸이 완전히 뇌창(雷槍) 그 자체로 변하면서 즉시 테스카틀리포카의 머리통을 관통한 것이다! 천지를 꿰뚫는 광창(光槍)이 수백만 송이의 백련과 함께 피어나는 듯 했다.

번개의 힘인지라 찰나간에 송곳처럼 그의 머리통을 꿰뚫었고, 그 빛은 수평선 너머까지 한 줄기의 햇살처럼 세상에 비쳤다. 그리고 나는 일 순간의 전개가 끝나고 나자 내 몸이 대양(大洋)의 바닷물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꾸르르륵

[ 크아아아아!!]

뒤늦게 바다 바깥에서 [옛 지배자]의 고통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그 외침을 들으며 내가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방금 그건...'

틀림없었다.

뇌신지혼(雷神之魂)을 펼친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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