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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그러자 달마가 관심을 보였다.
[ 어떤 방법인가...]
" ......"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래도 끝까지 들어줬으면 해."
[ 말해 보라.]
" 1억 명의 목숨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친다면 1억 명을 굳이 인신공양하지 않아도 되는 게 맞지?"
[ 그렇다...]
" 그 동안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이 세계에도 그런 게 있어."
[ 무엇인가. 그대가 말했던 보패나 칠요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치 않으며, 존재한다 하더라도 1억 명의 목숨만큼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칠요보다 더 대단한 거지."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옛 지배자]."
달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말했다.
" [옛 지배자]를 잡아서 그 영혼을 진공가향 의식의 제물로 바치자!"
[ ......]
달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흐음... 그건...]
달마는 내 이야기를 곱씹는 듯 하다가 말했다.
[ 내 힘으로 [옛 지배자]를 직접 토벌해서 잡자는 이야기인가...?]
" 그래! [옛 지배자]를 [아버지]에게 바친다면 1억명 가치는 훨씬 뛰어넘지 않겠어? 놈들은 우주적 존재니까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는 최고의 보물이야!"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그러자 달마가 실망한 듯 말했다.
[ 의외군... 그런 무식한 방법을 진지하게 말할 줄은...]
" ......"
[ 나 또한 육백육십육의 낙인을 찍어서 강대한 힘을 얻게 된 후 그 생각을 줄곧 해 왔다... 그러나 어째서 [옛 지배자]를 토벌하는 방법을 쓰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 잘 모르겠어. 그래서 한 달 동안 계속 고민했던 거고."
달마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 약한 [옛 지배자]를 토벌하는 건 내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러나 쓰러뜨린다 한들 거기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 [제물]로 쓰기 위해서는 상대의 시체나 영혼을 손에 넣어야 하는데, 이미 우주적인 신격을 얻은 존재는 불멸(不滅). 그 영혼을 붙잡거나 바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 음..."
나는 달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제갈사에게서 들었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 [옛 지배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물질계에서 탄생한 존재와 머나먼 신좌(神座)에서 탄생한 존재... 해신은 전자이기 때문에 [옛 지배자]중에서도 격이 아주 낮아. 왜냐하면 물질계에 태어났다고 하는 건 신의 영혼을 가졌으나 필멸자의 육체를 가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뭐 그래도 신의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해신이 이번에 죽는다 하더라도 수천 년 후에는 부활하게 될 거다. 다만 그런 불완전한 [옛 지배자]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죽음을 피할수는 없다는 거지. 이건 해신 뿐만이 아니라 물질계 태생의 많은 [옛 지배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약점이다.]
제갈사의 말에 따르면 [옛 지배자]는 신이므로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다. 영혼이 불멸이므로 애초에 죽인다는 게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물질적인 죽음만큼은 가능할지도 몰랐지만, 그나마도 [제물]로 바치려면 영혼이 필요했기에 육체만 없애봐야 무의미한 일이었다. 신의 육체 정도는 얻을 수 있겠으나 사기(邪氣)가 가득한 마력재료일 뿐 1억 명의 영혼을 대체할만한 가치는 없었다.
[ 나 또한 수백 번이고 생각했던 방법... 그러나 불가능하니 잊어라... 희생을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 ... 너 혼자만 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
[ 무슨 뜻인가?]
나는 눈빛을 날카롭게 하며 대답했다.
" 신의 [영혼]을 붙잡거나 훔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야?"
[ ......!!]
달마가 처음으로 당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는 어린애 취급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명백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는 잠시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설마... 그대와 신투지존이 가진 능력을 이용해서 신의 영혼을 훔치겠다는 소리인가?]
"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만상지투(萬象之偸)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만상지투란 훔칠 수 없는 걸 훔칠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으로 기(氣)도 훔칠 수 있고 개념적인 굴레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조차 훔칠 수 있다. 실제로 신투지존은 그런 용도로 쓰라고 내게 만상지투를 가르친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신의 영혼은 어떨까?
그것 또한 [훔칠 수 없는 것]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가?
나는 그게 가능할지에 대해서 한 달 동안 곰곰히 고민해 보았었다. 그리고 기(氣)와 영혼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 보았고, 시험삼아서 주변에 돌아다니는 동식물의 영혼을 만상지투로 훔치는 연습을 해 보았다. 그러자 바로는 영혼을 탈취할 수가 없었으나 약간의 연습을 거치자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성공했다.
아직은 내 만상지투의 성취가 낮기 때문에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지만, 만상지투의 극성에 이른 최고의 도둑인 신투지존이라면 -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달마가 여전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 무공과 의념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까지 가능한가? 신의 영혼을 훔치겠다는 발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사실 확실하지는 않아. 될지 안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달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시도해볼만 하지 않아? 이대로 죄없는 사람들을 학살하며 1억 명의 영혼을 바치는 것보다는 그 성공가능성에 걸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 ......]
" 부탁이야. 진지하게 생각해 줘."
달마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이론상... 정말로 신의 영혼을 훔치고자 한다면... 신이 물질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내가 [옛 지배자]를 쓰러뜨리고 그 존재의 영혼이 머나먼 우주, 혹은 자신의 차원계로 되돌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이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가 될 것이다.]
" 그렇게 되겠지."
[ 그 찰나의 순간에 실패한다면 내 계획은 심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영혼만 남았다 하더라도 [옛 지배자]의 원망을 사게 된다면 그 자는 방대한 마력을 이용해서 내 계획을 방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조용히 계획을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지.]
" ......"
그럴 것이다. 아무리 현상계에 현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은 신이다. 머나먼 차원계에서 분노와 원망을 실어서 저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재앙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우주적 존재인 [옛 지배자]란 그런 존재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 명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모험을 하자고 내게 제안하는 것인가...]
" 그래. 더 좋은 방법을 시도해보자는 거야."
[ 흐음...]
달마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 신투지존을 잠시 불러들여야겠다.]
파앗!!
잠시 후 달마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고, 그 마법진을 통해서 신투지존이 내 몸뚱이를 한 채 걸어나왔다. 신투지존은 나와 달마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히죽 웃었다.
" 보나마나 못된 짓을 꾸미다가 날 불렀나 보군."
[ 신투지존. 물어볼 게 있다.]
" 뭘 물어보게?"
[ 그대는 만상지투의 수법으로 [옛 지배자]의 영혼을 훔칠 수 있겠는가?]
" ......"
그러자 신투지존은 미친 소리를 들은 표정으로 변했다. 하필 내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지으니 약간 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투지존은 이윽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 어떤 상황인지 알겠군. 저 녀석이 [옛 지배자]의 영혼을 1억명 대신 바치자고 했나 보구만."
[ 가능한지 어떤지를 듣고 싶다.]
" 그런 미친 짓을 생각해본 적이 있어야지... 끌끌."
신투지존은 헛웃음을 흘리다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 가능해. 나라면 할 수 있다. 저 놈은 안 되겠지만."
" ......!!"
" 단, [제약]이 풀린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제약?
나는 신투지존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말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 그... 그렇군. 신역절기(神域絶技)를 쓸 생각인가!"
" 끄응..."
신투지존은 나를 매우 불편한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명백히 껄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 좌(座)에서 별의별 소리를 다 했나 보군. 아무리 내 분신이라 하더라도 너같은 놈을 마음에 들어하다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렇다.
신역절기(神域絶技)!
[ 좌(座)에 있으면 쓸 수 있어. 놈들만의 신역절기가 있겠지.]
[ 못 써.]
[ 인과율과 무신의 제약 때문에 못 쓴다고. 내 본체인 신투지존 또한 인간계로 되돌아가면 절대지경의 기술은 쓸 수 있어도 방금 너한테 쓴 것 같은 신역절기 일수탈심은 시전 불가능할 것이다.]
좌에 있던 신투지존의 분신은 신역절기에 관한 정보를 내게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좌에서 신투지존의 분신은 신역절기 일수탈심으로 나를 일격에 처치한 적이 있었고, 그 가공할 위력은 인간계에서 쓸 수 없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과율과 무신의 제약 때문이었다.
' 아마 지금 신투지존이 말한 [제약]이겠지.'
모순이긴 했다.
신역절기를 쓸 줄 안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 역량을 가진 자는 인간계에서 신역절기를 쓸 수 없다니? 그 강력한 힘이 어째서 사용불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신투지존에게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 일수탈심을 쓰면 신의 영혼이라도 훔칠 수 있는 건가? 정말로?"
신투지존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 ... 그 이름을 말하는 걸 보니까 직접 당해봤나 보구만?"
" ......"
내가 심장을 뺏겼던 기억때문에 움찔하자 신투지존이 피식 웃었다.
" 가능하다. 신의 영혼이고 뭐고 신역의 절기라면 충분히 훔칠 수 있어."
" 좋아. 그럼 그 [제약]이란 건 어떻게 해야 풀 수 있지?"
" 못 말해~"
" ... 응?"
신투지존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 말할 수 없다고."
" 왜!"
" 그리 쉽게 풀 수 있으면 [제약]이라고 하겠냐? 그리고 신역에 이른 자는 [문]을 연 자 이외에는 그 비밀을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 말하면 어떻게 되는건데."
" 자신이 쟁취해낸 [좌(座)]와 자신의 신역절기를 잃어버리게 되지."
그는 귀찮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 그래서 절대 발설할 수가 없는거야~ 세상에 절대지경에 오르기도 힘든데 [좌]에 도달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전 우주에서 100명 안에 들어간 것만 해도 기적같은 일이라고. 그러니까 절대 말할 수가 없는 거다."
발설하는 순간 무신의 [좌]를 잃어버리는 제약도 걸려있다는 건가?
하지만 나는 신투지존의 설명을 듣고있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대체 무슨 의미냐?"
" 엉?"
" 신역절기를 인간계에서 쓸 수 있으면 천하무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잖아. 마왕도 때려잡을 수 있을 테고. 그런데 그런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신역에 되돌아가서야 그 폐쇄공간에서만 신역절기를 쓸 수 있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냐!"
힘이란 건 제때 쓸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신역절기를 깨달아봐야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내가 반문하자 신투지존이 씨익 웃었다.
" 뭐... 너같은 허접이 그 의미를 알아봐야 뭐하겠냐. 신역절기를 단순한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글러먹은 것 같다만."
" 뭐라고!"
" 굳이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신역절기를 단순히 힘이 쎄지는 차원으로 생각한다면 넌 절대 얻을 수가 없을걸? 재능과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든."
" ......"
나를 놀려먹던 신투지존이 달마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 달마. 지금까지 들었으면 알겠지만 저 놈이 말한 방법은 이론상 가능하긴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도와줄 생각이 없다. 도와줄 수도 없고.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걸?"
[ ... 현재 백웅의 [훔치기] 능력으로는 불가능한가?]
" 흠... 솔직히 말하자면 가능성은 약간 있지. 저 놈의 지금 도둑질 실력은 나와 거의 대등하니까. 하지만 저 놈의 훔치기 능력에 네 모든 미래계획을 걸 수 있는가? 그 정도로 달마 그대가 백웅을 신뢰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
[ 그렇군...]
신투지존의 말은 지극히 객관적이었기에 달마도 머릿속이 냉정하게 가라앉은 듯 했다.
여, 역시 안 되는 건가?
나는 간만에 좋은 생각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무위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대로 1억 명이 희생하는 걸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달마의 손에서 벗어나서 다른 방법을 찾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 백웅의 말대로 하겠다.]
홰액
나와 신투지존의 시선이 동시에 달마에게로 향했다. 그는 안광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지금부터 한 달 후에 해신(海神)을 잡겠다. 해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너희 둘이 신의 영혼을 강탈하라.]
" ......!!"
" 좋아!"
나는 달마가 내 뜻을 따르는 걸 보자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쾌재를 불렀지만 옆에 서 있던 신투지존은 진정으로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 지, 지, 진심인가? 달마 너는 제정신인 줄 알았는데..."
[ 미쳤을지도 모르지.]
" 백번 양보해서 신의 영혼을 어떻게든 만상지투로 훔쳤다고 치지. 그 영혼을 어디에 가둬놓을 것인가? 아무리 달마 그대의 마력이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신의 영혼을 마력만으로 계속 속박하는 건 불가능하다."
[ 그 방법은 따로 갖고 있다. 신의 영혼을 훔치는 것만 가능하다면 신경 쓸 문제조차 되지 못하지.]
" ... 미쳤군... 정말로 할 생각인가?"
[ 그렇다.]
달마는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 중생(衆生)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 또한 그 길을 택하리라.]
신투지존은 약간 초조해진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아무래도... 당신은 내가 전설로 듣던 것과는 꽤 다른 인간인 것 같군, 달마."
[ 그런가.]
그는 끙끙대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크크... 좋아. 그 뜻에 따라가 주지."
[ 물론 이 계획과는 별도로 내가 내린 임무는 한 달 후까지 계속 실행하도록...]
" 알았다."
나는 이 순간 달마의 의지가 크게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해냈어!'
1억 명이 고스란히 희생되는 미래만은 피한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달 동안 내 자신의 무공을 쌓으면서 4명의 제자를 가르치는 데 열중했다. 의념의 요령을 통해서 계속해서 속성으로 내공을 쌓자 이제는 그리 내공이 아쉽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듯 했다.
그리고 해신과 결전을 치르는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