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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37화 (93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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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무공을 가르쳐달라니.

나는 달마의 말이 영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반문했다.

" 가르쳐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왜..."

보통 무공을 배운다고 하면 강해지기 위해서 배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달마는 이미 생긴 게 인간의 모습일 뿐 그 본질은 우주적 존재로 변화해 있으니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무공 따위 익히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그러자 달마가 대답했다.

[ 그대의 세계에는 존재하나 우리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신비한 힘... 그 본질을 탐구해 보고 싶다.]

" 음... 알았다."

어차피 안 가르쳐줄 이유도 없으므로 나는 별 생각 없이 가르쳐주기로 했다.

나는 먼저 달마에게 운기토납법부터 가르쳤다. 호흡에 따라 기를 운용하고 때로는 축적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달마는 이론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 그대의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는 널리 기(氣)가 퍼져 있다. 헌데 어찌하여 그대의 세계에서는 기를 고도로 운용하는 법이 발달했고 이쪽은 그렇지 않은가?]

" ... 그건 나도 모르겠군."

[ 계속 해 보라...]

나는 이어서 기를 쌓는 법을 상세히 가르쳤고 기공치료법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그러나 달마는 잠시동안 기를 느끼려 했으나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당연히 기를 끌어당겨서 단전에 쌓는 것도 하지 못했다. 아예 감조차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 달마도 재능이 없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달마를 위로하려 말했다.

" 뭐 기를 잘 못 느끼는 사람도 있지... 그래도 길어도 한 달 정도면 누구든 기를 깨우치고 입문을 할 수는 있어."

나 정도의 고수가 가르친다면 절대 못 느낄 리는 없다. 정 안되면 일부러 내공으로 진기를 도인시켜서 활성화시킬 수도 있었다. 수천 년 역사의 무공이론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 ... 흐음... 백웅, 기다려라.]

잠시 후 달마는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왔다. 그들은 감옥에서 이미 꺼내져서 저마다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또한 그들은 나와 신투지존의 몸이 바뀐 것에 대한 전후상황을 들었으므로 큰 경계의 빛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달마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모은 후 내게 주문했다.

[ 나는 저주의 낙인을 영혼에 새겨 이족의 몸으로 화(化)했다. 그런 까닭에 기를 익히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내 제자들에게도 그 수법을 전수하라.]

" 음... 그런 이유일까."

어쩌면 달마의 말대로일수도 있다. 이족 중에서 무공의 고수라고 할만한 존재는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굳이 예외를 말하자면 팔부신중의 아수라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는 극히 특이한 경우이니 일단 이족은 기를 익히지 못한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달마가 곁에서 보고 있는 동안 한 나절에 걸쳐서 4명의 제자들에게 무공을 전수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기를 느끼고 활성화시킨 것은 아유타 공주였다. 그녀는 기를 느끼는 법을 가르친 지 한 식경만에 경락까지 감각이 닿이게 했다.

' 가히 천재적인 재능이군...'

아유타 공주의 재능이라면 3년이 지나지 않아서 내가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의 재능을 지닌 것은 바로 혜가(慧可)였으며 그 또한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멸망한 왕국의 왕자인 성진은 천재라고까진 할 수 없었으나 나름대로 뛰어난 수재급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황우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지 억척스럽게 고생하다가 겨우 기를 느꼈는데 딱 일반인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나절에 걸쳐서 기의 전수를 끝내자 옆에서 함께 수련하고 있던 달마가 불쑥 말했다.

[ 그렇군... 이제 깨달았다.]

" 뭘 깨달았다는 거지?"

[ 나는 더 이상 기를 연마해봤자 헛수고다. 마도(魔道)에 빠져든 이상 기를 익힐 수는 없는 거구나.]

" ... 너무 속단하는 거 아냐?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달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아니. 나는 방금 전까지 심연(深淵)에서 신성(神聖)을 도야시켜서 기의 흐름을 관조했다. 그리고 기를 이루는 근원소(根原素)가 나의 본질을 거부함을 느꼈다. 그 힘은 마치 음(陰)과 양(陽)이 나뉘어진 것처럼, 마(魔)를 배척하는 성질을 갖고 있구나.]

" ......!!"

[ 그 힘은 마치 끈과 같다...]

나는 그가 [지배자]의 권능까지 사용하며 기의 본질을 측정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의 본질적 단위인 태허(太虛)의 끈까지 관찰한 것이다.

[ 아주... 훌륭한 힘이구나. 대단하다.]

달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몸을 강하게 떠는 걸 보면 마치 감동이라도 받은 듯 했다. 나는 그의 격앙된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 하지만 이 무공을 아무리 익혀도 절대지경의 고수가 마왕(魔王) 하나를 이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미 마(魔)의 극한이 도달한 당신이 그렇게 감격할 정도까진..."

[ 후... 후후... 그런가...? 단순히 힘의 절대치 차이일 수도 있지... 또한... 지구에만 한정되지 않았을수도 있어...]

그렇게 뇌까리던 달마가 말을 이었다.

[ 백웅... 계속 무공을 전수하라. 남은 시간동안 내 제자들이 제대로 입문할 수 있도록 도울 지어다.]

" 알겠어. 알겠는데... 백련교에서 무공전수를 언제까지 해야하지?"

나는 수련용 창을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 진공가향은 대체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 거냐고. 좀 말해줘도 되잖아."

나는 정작 중요한 달마의 진공가향 계획과 그 일정의 전모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저 언젠가는 달마가 할 것이라는 것 외에는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제자들도 모르는 기색이었기에 내 질문은 당연했다. 그러자 달마가 말했다.

[ 얼마 전 천암의 제단을 보았겠지... 그 제단에 어둠의 정수(精髓)가 모여서 응결될 때가 바로 계획을 시작할 때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법문을 제작하기 시작할 것이고 의식을 네가 지켜야 한다.]

" 어둠의 정수?"

[ 그렇다... 내가 세계 곳곳에 뿌려둔 씨앗이 점차 수확의 시기를 앞당겨주리라... 기다리고 있으면 머지 않아 계획이 이뤄질 것이다.]

" ......"

나는 천암의 제단이 무생노모의 법문을 제작하는 의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장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 그게 그런 역할이었던가...'

백련교주 독고운천의 시대에는 법문이 이미 제작되어서 조각나 있었기에 새로 제작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법문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고, 그 제작과정은 바로 천암의 제단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 음... 그렇다면 다음 전생부터는 천암의 제단을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하겠군.'

나는 생각난 김에 달마에게 또다시 질문을 했다.

" 전에 했던 종말의 이야기 말인데. 1999의 해 일곱 번째 달에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건 무슨 얘기지?"

[ 말 그대로다... 그것은 종말의 예언... 서방의 구세주가 탄신(誕辰)한 날을 기준으로 1999번째 해의 일곱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 그래서 세계가 멸망하는 것이 본래 이 세상의 운명이다.]

" 공포의 대왕이 뭔데?"

[ 유성우(流星雨)다...]

" ......"

유성우?

뜻밖의 이야기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달마가 말을 이었다.

[ 나는 예지의 권능으로 그 미래를 보았다... 이 광활한 우주를 스치는 거대한 유성의 암석군(巖石群)이 이 행성 근처를 이동하게 되지... 그리고 거대한 암석의 충돌으로 인해 이 행성은 엄청난 천재지변을 맞이하게 되고... 그 당시 발달해 있던 서구의 문명은 천재지변을 이겨내려 하나... 앙골모아라고 불리는 악마의 질병으로 인해 끝내 괴멸에 이르게 된다...]

" ......"

[ 그 질병은 운석의 내부에 숨겨져 있던 것... 결국 이 대우주가 일으킨 한 순간의 변덕으로 인해 모든 문명이 사멸하는 것이 우리의 종말이다... 그 후 흉신이 몸을 일으켜 세상을 또다시 혼돈으로 뒤덮긴 하지만 어차피 세상이 멸망한 상황에선 아무 의미도 없겠지...]

" 마, 말도 안 돼."

나는 황당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 그렇다면 서력 1999년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리인데... 전혀 그렇지 않아. [종말]과 [계시]는 적어도 그보다 몇십 년 뒤의 일이었다고."

그렇다.

내가 [계시]의 시대로 미래이동을 했을 때, 나는 파우스트 박사에게서 미래의 지식을 일부 전달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멸망한 시기는 1999년보다 최소한 40년 후였으며, 그나마도 1999년의 종말론은 그저 예언자의 헛소리로 판명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그 때 이미 세계가 멸망해 있었다고?

그러자 달마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 그대는 마치 종말을 직접 보고 온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 ......"

[ 다만 내가 보았던 종말의 악랄한 정황조차도 [옛 지배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시시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설령 1999년의 휴거(携擧)를 피했다 하더라도 흉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파멸은 막을 수 없었지... 그래서 그럴 바에는 모든 것을 멸망시키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 으음."

[ 피할 수 없는 종말을 일천 년 후에 맞으나 지금 맞으나...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달마의 사상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회피가 불가능한 상황이면 종말을 추구하는 게 도리어 정상인 것이다. 우리와는 달리 [유예]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마에게 이를 악물며 말했다.

" ... 하지만. 그렇다고 1억 명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야 하나?"

[ 바쳐야 한다. 그 정도의 대가가 아니면 법문은 제작할 수 없다.]

" 그만둬! 네게 그들의 영혼을 바칠 자격은 없잖아."

이게 문제다.

순순히 달마에게 협력하고 싶어도 그 방법론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달마는 보나마나 양무제 소연에게 불어넣은 어둠의 힘을 이용해 그가 천하를 통일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1억 명 이상의 백성을 지닌 제국을 성립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제국이 만들어지고 나면 1억 명의 인신공양을 벌이려는 계획이 분명하다. 그건 말 그대로 처참한 학살이었으며 비인외도(非人外道)의 길이었다.

내가 달마의 멱살을 잡자, 달마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도리어 이족의 눈을 번득이며 나를 마주 쏘아보았다.

[ 그럼 무엇을 바쳐서 법문을 제작하면 되겠는가? 나 하나의 목숨으로 되는 거였다면 나는 내 몸에 불을 붙여서라도 스스로 인신공양했으리라. 그러나 그 엄청난 마도의 의식은 1억명조차도 최소의 단위로 잡은 것에 불과하며, 결국 모든 걸 바쳐야만 하겠지.]

" 그러니까, 인신공양 자체가..."

[ 그럴듯한 이야기만 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그대는 이 방법 외에 우리의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복안을 갖고 있는가?]

" ......"

[ 없겠지. 그러니까 [문]을 넘어서까지 외우주로 넘어온 거겠지...]

내가 달마의 멱살을 천천히 놓자 그가 말을 이었다.

[ 1억명의 목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대의 말을 들어주지... 그러나 끝내 반대한다면, 나는 결국 그대를 죽일 수밖에 없다.]

휘익!

달마는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졌다. 장내에는 나와 달마의 제자들만이 남았다.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르자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혜가가 한 손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 아미타불."

" ......"

" 본디 생명은 생명으로 갚는 것. 우리 백련교가 종말을 추구하는 게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사악한 행위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은사이신 달마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혜가가 눈을 반개하며 말을 이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모두는 세계가 멸망하길 원합니다. 달마께서 가르침을 주신 그 날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쭈욱."

" ... 진심으로?"

" 네."

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버럭 외쳤다.

" 빌어먹을!! 죽는다는 게 뭔지 알고 있어?! 알고 있냐고!! 모든 각오를 하더라도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죽음이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죽을 때는 그저 원통하기만 하다고! 그런 걸 한두 명도 아니고 일억 명한테 강요하다니!"

" 아미타불."

" 정말 그걸 너희의 진심이라 할 수 있나! 스스로에게 취해있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고?!"

내 외침에 혜가는 다시 한 번 불호를 외더니 대답했다.

" 그렇습니다. 저희는 자아에 취해 있습니다. 진실한 세계를 마주할 용기도 안목도 존재하지 않지요. 모든 걸 버리고 종말에 귀의하고자 하지만 사실 인간의 정신으로는 그 경지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멸망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상]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뭐?"

이게 무슨 소리야?

내 반문에 혜가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삶은 고통... 삶은 괴로움일지언정 그게 전부가 아님을 스승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무간지옥에서도 갚을 수 없겠지만, [옛 지배자]에게 농락당하여 무고하고 순결한 영혼이 억년의 괴로움을 겪는 것에 비할 수 있을지요? 세계가 정화(淨化)하여 더 나은 세상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 ... 말도 안 되는 소리."

" 미쳤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비단 우리만이 미쳤을지요."

혜가가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억겁의 번뇌를 휘감으며 살아가는 그대 또한 이미 미쳐있는 게 아닌지..."

" ......"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미쳤다는 말은 그럴지도 몰랐으나 혜가의 다른 말이 나를 황당하게 만든 것이다.

더 나은 세상.

' 설마 저들은 진공가향 이후에 [다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우주의 [계시] 이후 옥좌 이외의 모든 것이 쓸려나가고 심지어 [옛 지배자]마저 소멸당하는 그 끔찍한 종말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걸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 [다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 못하리라.

가만...?

나는 문득 뭔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럴지도 모르지. 우선은 무공수련을 하자."

"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달마의 제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건 일억 명의 희생을 가만히 좌시하겠다는 생각때문이 아니었다. 정말로 좋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네 명의 제자들에게 상당한 무공을 전수하는데 성공했다. 아유타와 혜가는 고작 한 달밖에 배우지 않았는데도 이류무사급의 무력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쯤 되자 나는 무공수련이 얼추 되었다 생각하고는 달마를 찾아갔다.

" 달마."

[ 무슨 일인가...?]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일억 명을 바치지 않아도 네 의식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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