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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35화 (93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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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사실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신투지존과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나의 모든 무공을 훔칠 수 있다면 왜 최강의 무공을 훔쳐서 바로 이기지 않을까?

무쌍패 또한 육의성천도와 동급이라 할 수 있으나 무쌍패는 방어와 반격에 중점을 두기에 결판을 내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육의성천도를 완성의 경지로 쓸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신투지존을 상대로 일 초도 버티지 못하리라.

그래서 나는 만일에 상대가 육의성천도를 쓴다면 무쌍패로 대적하려 했지만 칠십여 초 이상을 버텼음에도 그럴 기색은 없었다. 나를 갖고 논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육의성천도만 안 쓰는 듯 했다. 그리고 무쌍패를 이용해서 승기를 잡은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신투지존은 육의성천도만큼은 복사하듯 훔쳐서 쓸 수 없다!

내 말에 신투지존은 침묵하더니 이윽고 표정없이 메마른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 크, 크, 크크크..."

그는 이윽고 뭔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 정말 이상하군. 하필이면 일이 거의 다 된 이 시점에서..."

" ......"

" 좋아, 후배. 이 상황은 네 승리라고 인정해주지."

슈르르륵!!

" ......!!"

뭣?!

그 순간 난데없이 신투지존의 몸뚱이가 물처럼 흘러내리더니 일 장 떨어진 장소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내 검에 어깨가 관통당한 흔적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환술을 썼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선검은 환술을 제압할 수 있어! 저건 대체...'

환술이 아니면 사술인가?

하지만 화안금정이 없는 지금 상태에서는 상대의 수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신투지존은 손 위에 있던 선검을 소멸시킨 후 달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달마대사. 내가 아무래도 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 ......]

" 실력대결에서 밀리다니 좀 자존심이 구겨지는데."

달마는 침묵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투지존이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 뭐 아무래도 좋은 문제겠지. 당신에게 있어서 유능한 말이 하나인 것보다는 두 개인게 훨씬 좋을 테니 말이다."

[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 글쎄? 내 목적은 아까도 당신에게 말했을 텐데. 난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당신에게 협력할 생각이 가득하다. 저 녀석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말이지."

[ ... 네 목적은 지극히 기이하다. 쉽게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그런 얘기를 자주 듣지."

달마대사가 잠시 후 나와 신투지존을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말했다.

[ 너희 모두 나의 협력자가 되어라.]

뭣?!

나는 달마대사의 말에 놀라서 외쳤다.

" 잠깐! 제정신인가?!"

[ 무엇이 문제인가.]

" 내가 굳이 캐내지 않았다면 신투지존은 끝까지 당신 곁에 잠복해 있다가 뒷통수를 쳤을 거다! 저렇게 의심스러운 놈을 제압하지 않겠다고?"

[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너와 신투지존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 ......"

달마대사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 자신감이 너무 대단하잖아! 아무리 신급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신투지존의 현재 역량은 도무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어떤 무공이든 한 번 보면 복사하는 능력에 내 몸을 얻어서 온갖 이능력까지 손에 넣었다. 게다가 방금 전 내 공격에서 몸을 뺀 기술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것이었다.

저런 괴인을 등 뒤에 놔두고 진공가향을 추구하겠다는 게 나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신투지존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삼황오제급 적수라 해도 빈틈을 찾아서 치명상을 입히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달마대사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고?!

옆에 있던 신투지존이 능글맞게 말했다.

" 후배. 나는 네가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는지 모르겠는걸. 뭐, 얌전히 당하고만 있는 무골호인이 아닌 건 마음에 든다만 사람 일을 너무 방해하면 안 되지."

" 큭... 대체 당신 목적이 뭐야! 내 몸을 왜 뺏은 거냐고!"

" 네가 먼저 날 찾아내서 가두려 하니까 반격한 것 뿐이지. 그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란 말이냐? 그리고 몸이 바뀌는 현상도 나는 처음 알았다."

" ......"

" 뭐 바뀌면 바뀐대로 나쁘지 않군. 이 몸은 못생긴 것만 빼면 제법 마음에 들어."

신투지존은 능글맞게 말하다가 문득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찌푸렸다.

" ... 근데 넌 정말 왜 이렇게 못생겼냐? 이렇게 못생긴 가면은 처음이군."

" 닥쳐!!"

나와 신투지존이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달마대사가 손을 휙하고 저었다.

우우웅

그러자 근처에 씌여 있던 결계가 풀리면서 공기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우리의 대결이 주변에 여파를 줄 것을 우려해서 달마가 방어막을 쳐둔 모양이었다. 달마대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 신투지존. 네 목적은 알겠다. 그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뭘 도와주면 되겠나?]

신투지존은 씩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 당신 정도의 지혜를 갖고 있다면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 그저 소원을 빌 때 내게 그 가능성을 좀 나눠주면 된다."

[ 그게 가능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예측할 수 없다 이건가? 하지만 난 왠지 가능할 것 같은데...]

[ 좋다. 그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그때까지 우리 백련교에 섣불리 반항하거나 기습을 가한다면 그대의 영혼째로 말살시키겠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 쇠사슬을 받아들여라.]

치리링!

달마대사는 손 위에 사람 팔뚝만한 쇠사슬을 소환해서는 신투지존에게 던졌다. 신투지존은 담담하게 쇠사슬을 잡아챘고,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신투지존을 칭칭 묶은 듯 했다.

' [계약]했구나!'

계약을 한다면 달마대사는 신투지존을 얽어맬 능력이 생김과 동시에 그의 소원을 들어줄 의무가 생기게 된다. 말뿐인 동맹이 아니라 아주 확실한 주박이자 연결고리였다. 그리고 달마대사는 동시에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 그대와는 따로 주박을 맺을 필요는 없겠지.]

" ......"

[ 사도의 팔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주마.]

키이잉!!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오른팔이 흑염에 휩싸이더니 엄청난 마력을 뿜어냈다. 사도의 팔이 순식간에 하나 더 만들어 진 것이다. 나는 힘을 받은 건 좋았지만 황당해서 달마에게 외쳤다.

" 이, 이게 뭐야? 사도의 권능이란 게 여러번 줄 수 있는 건가? 그것도 그렇고... 신투지존에게 가있는 사도의 권능을 내 쪽으로 옮기는 건 못 하는 건가!"

[ 옮길 수 없었다.]

" 뭣..."

[ 그대들이 지닌 가면의 능력은 상당히 출중하군...]

침음성을 흘리던 달마대사가 말했다.

[ 오늘은 이만 다툼을 멈춰라. 그리고 할 이야기가 있다면 둘이서 해결하라. 단, 아까처럼 섣부른 다툼으로 서로 살육을 벌이는 건 그대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내가 허용치 않겠다.]

" ......"

" 그러지 뭐~"

신투지존은 다소 가볍게 대꾸한 후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 건방진 후배놈아. 난 너랑 얘기하기 싫어. 그럼 다음에 보자구."

파앗!

신투지존이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졌다. 도저히 붙잡을 방법이 없어서 멍청히 쳐다보고 있자 달마대사가 내게 말했다.

[ 백웅, 그는 더 이상 신경쓰지 마라. 그에게는 따로 내린 명령이 있다.]

" 정말 나와 신투지존을 함께 다룰 셈인가? 당신이 신투지존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계약을 했다면 그 이상의 억제력은 없다.]

" ......"

천하제일의 도둑을 겨우 그 정도 주박으로 억누를 수 있을까.

물론 정상적으로는 아무리 신투지존이라 해도 계약의 주박을 풀 수 없겠지만 왠지 그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 그대가 신투지존에 대해 어찌 생각하든 내 진공가향을 도울 생각이라면 잊어버릴 지어다. 그대는 그대의 목적에만 신경쓰도록...]

" ... 좋아, 그렇다 치지. 그럼 이제 나는 뭘 하면 되지?"

[ 그대는 내가 진공가향을 어떤 방법으로 이루려는지 알고 있는가?]

" 몰라."

내가 시치미를 뗐지만 달마는 잠시 밀교의 진언을 외우더니 말했다.

[ 아니, 그대는 알고 있다. 내가 법문(法文)을 제작하려 한다는 사실을...]

" ......"

[ 그대가 내 제자들에게 의미없이 문답을 하진 않았겠지.]

윽, 신투지존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몰입해 버려서 달마에게 들켜버렸나...!!

내가 찔끔 입을 다물고 있자 달마가 말을 이었다.

[ 일전에는 그대가 얼버무렸으나 확실히 말하라. 그대가 살던 세계에서 나의 시대는 '과거'인가?]

" ... 그래. 일천 년, 아니 그보다 더욱 전이야."

속여봤자일것 같다. 내가 순순히 대답하자 달마가 다시 질문했다.

[ 그렇다면 나는 법문을 제작하여 진공가향을 이루었는가?]

" ......"

[ 아니겠지. 진공가향을 이루었다면 그 순간 우주가 대파멸을 맞이하게 될저... 이후의 역사는 이어질 수 없지. 그렇다면 나는 실패했겠군.]

달마의 말에 나는 무언의 긍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미세한 단서에 불과했는데도 달마는 자신에 관련된 것을 모조리 추리해내고 있어서 그의 두뇌가 명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달마에게 말했다.

"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어. 사실 이 세계와 내가 살던 세계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야."

[ ... 역사가 거의 동일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가 보군. 그대가 내게 누설한 미래의 정보 때문에 거대한 인과율이 요동치게 될 것을 우려한 건가?]

" 그래."

내가 달마에게 섣불리 모든 걸 이야기하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무공과 술법이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역사는 그대로다. 만일 과거역사속의 달마에게 섣불리 '미래'의 결과를 알려줄 경우 역사가 제멋대로 개변한다면? 어쩌면 우리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군. 그대가 살아온 이야기와 모험담을 좀 더 들려다오.]

" 음..."

흑요석이 있으면 그냥 기억전송을 해버릴 텐데 그런 게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로 풀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반 시진이 훨씬 넘게 걸렸다.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들은 달마는 한동안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백웅이여. 그렇다면 나는 이미 내가 법문의 제작에 실패할 것이라는 미래를 그대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러면 내가 법문 제작을 시도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가?]

" ... 응?"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당연히 하지 않겠지. 실패한다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는데도 시도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 그렇다. 그러나 나는 할 것이다.]

" 뭐?!"

[ 왜냐하면 그대의 말을 듣고보니 더더욱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뭔 소리여?!

실패한다는 미래를 알고 있으면 안 하는 게 정상이지!

나는 달마의 생각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황당했지만 달마는 이윽고 말을 이었다.

[ 진공가향을 이루기 위해 백웅 그대에게 첫 번째 임무를 내리겠다.]

" 임무라고? 어떤..."

[ 그대의 세계에는 존재했으나 이 세계에 존재할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을 찾아내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총 세 명의 존재가 될 것이다.]

달마의 눈이 번득였다.

[ 망량선사. 선지자. 그리고 흉신(凶神). 이 셋을 찾아내는 게 그대의 임무다. 아직 진공가향 계획이 발동하기엔 시간이 있으니 그 전에 찾아서 결과를 보고하라.]

" 그들을 찾아내라고! 말도 안 되는..."

[ 전혀 말도 안 되지는 않는다. 그대의 현재 능력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럼 신투지존은 뭘 하는데."

[ 그에게는 따로 다른 명령을 내릴 것이다.]

" ......"

나는 달마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명령은 언뜻 강압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내가 해야할 일을 조목조목 짚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 대신에 생각해준 결과물을 받아든 느낌이었다.

' 악의는... 없는 건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파앗

나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백련교를 뛰쳐나오듯 빠져 나왔다.

' 우선은 망량선사부터...'

여기서 제일 가까운 존재라면 망량선사일 것이다. 나는 비등을 써서 편하게 낙양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었지만 몸을 빼앗기면서 비등도 신투지존에게 뺏겨버린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뛰어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 ... 제기라알..."

내공이 넘치는 몸이었다면 그리 걱정도 되지 않겠지만 이 몸은 내공의 한계가 뚜렷하다. 아무리 멸혼보의 극성을 발휘한다 해도 내공이 부족해서 도중에 지쳐버릴 것이다. 내가 한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 후배. 이거 빌려줄까?"

그 때 마치 공간을 열듯이 자연스럽게 근처에서 신투지존이 내 몸뚱이로 나타났다. 그는 비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이를 으득 악물며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 약 올리는 거냐?"

" 진심인데. 뭐, 중원까지 뛰어가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아."

" ......"

중원까지 뛰어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 선지자가 있는 지역까지 가려면 다시 2천리에 가까운 길이었다. 비등이 있다면 다시 신강으로 와서 훨씬 거리를 줄일 수가 있다. 나는 신투지존의 제안을 섣불리 거절할 수가 없었다.

" 단지 대여료 정도는 받아야겠군."

" 무슨 대여료."

" 네놈은 여동빈과 어떤 관계냐? 어떻게 해서 선검술을 쓸 수 있는지 내게 말해줘야겠다."

" 으음."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 그건 도리어 내가 알고 싶군. 당신은 지금 영혼이 바뀐 상태인데 어떻게 내 선검술을 쓸 수 있는 거지?"

" 가면을 쓴다는 게 그런 의미지. 무슨 그런 뻔한 질문을..."

" ......?"

" ......"

신투지존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하다가 나를 보고는 뭔가를 눈치챈 표정이 되고는 히죽 웃었다.

" 아 뭐, 그렇겠지~ 그래그래. 가면을 써서 그런 거야~ 모르면 됐어."

" ......"

" 아무튼 여동빈에 대해서 말해 봐라. 그럼 이 마도의 유물 정도는 바로 되돌려 주마."

" 약속한 거다."

나는 여동빈과 만나게 된 계기, 그리고 여동빈에게 육의성천도를 얻게 된 계기와 그의 과거를 보았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이야기를 듣던 신투지존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 흐흠... 정말로 종말의 거룡을 쓰러뜨렸다고... 그럴 수가."

나는 문득 짜증이 나서 말했다.

" 당신은 정말 무책임하군."

" 엉?"

" 당신 정도의 힘을 가진 자라면 여동빈과 팔선이 종말의 거룡에 맞서 싸울 때 세상을 지키기 위해 한 손 거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거룡때문에 세상이 파멸을 맞이할 걸 알면서도 다 무시하고 외우주로 온 게 아닌가?"

" 큭큭큭큭!!"

신투지존은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 물론 내가 있었다면 여동빈이 좀 더 허를 찌르기 쉽게 만들어 줬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거룡을 쓰러뜨린 건 기적이 아닌가? 그리고 나한테 세상을 지켜야 할 의무같은 건 전혀 없어."

" 하지만..."

" 그리고 거룡이 설령 세상을 먹어치웠다 한들 세계에 얽힌 주박이 풀려서 인간의 세상이 멸망할 뿐, 실질적으로는 세계가 멸망하는 건 아니지. 인간이 멸망한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가? 너무 인간중심적인 거 아냐?"

그렇게 혀를 끌끌 차던 신투지존이 빙글 몸을 돌리며 말했다.

" 난 여동빈과 달라. 세상을 구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먼저 구하겠다. 그리고 내 목적에 방해된다면 후배, 너라고 해도 치우겠어."

" 잠깐..."

" 왜?"

" 그럼 어째서 굳이 단서를 남겨서 당신의 후배가 찾아오게끔 한 거지? 당신을 방해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자 신투지존이 킬킬거렸다.

" 재밌으니까!"

슈슉!

신투지존은 이윽고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비등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비등을 주워들고는 힐끔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 ......"

잘 모르겠다.

저 놈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유형의 인간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 십이율주와 행동이나 말투가 비슷해보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랐다. 신투지존은 대체 뭘 원해서 이 세계에 온 것일까?

아무튼 나는 그가 비등을 넘겨준 김에 바로 써 보기로 했다.

파앗

나는 비등을 써서 곧장 이 세계에 처음 도착했던 낙양 위쪽의 언덕으로 갔다. 그리고 근처의 지형을 더듬어서 원래 망량선사의 마을과 천우진이 거하던 장소로 향했다.

'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이쯤일 텐데...'

없다.

나는 산골짜기가 황량하게 비어있고 그 밑에 마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씁쓸함을 느꼈다. 망량선사의 마을은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망량선사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엔 일렀지만 마음이 암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흠... 이제는 아스타나까지 뛰어가서 선지자의 행적을 찾아봐야 하는데...'

낙양에서 아스타나까지는 너무 멀다. 한 인간이 10년을 걸고 여행해도 닿을까말까한 거리는 결코 쉽게 볼 수 없었다. 당연히 맨몸으로 뛰어가면 지쳐서 뻗을 게 분명했고, 비등의 목적지가 모조리 초기화된 이상 비등으로 당장 찾아갈 수는 없다.

' 그래. 마도술법으로 소환술을 쓴다면...?'

나는 소환수를 쓰면 즉시 이동할 수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바로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 ... 안 돼. 내공이 이렇게 부족한 상태에서는 소환술을 써서 이동한다고 해도 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해서 죽고 말 거야! 그렇다고 충격에 버티는 술을 만들어둔 것도 아니니...'

나는 이대로 소환수를 탔다가는 능력부족으로 사망한다는 걸 깨닫고는 내심 끙끙댔다. 지금까지 술 없이도 대충 소환해서 탔던 이유는 엄청난 내공으로 방어막을 만들어서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내 내공이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경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본래라면 초절정고수고 뭐고 그대로 죽어야 정상이었다. 지금 소환수를 타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어, 내공이 부족하다면 좀 더 늘리면 되지 않나...?

" 좋아."

나는 내심 마음을 먹고는 뛰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 황산으로 간다!'

황산에서 천년설삼을 찾아서 먹을 수 있겠지!

덤으로 흑백련도 먹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며칠 동안 뛰어서 황산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없다...

본디 천년설삼이 묻혀있고 흑백련이 묻혀있었을 천고의 비지(秘地)는 아예 없었다.

유적은 커녕 처음부터 그런 게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허망해져서 털썩 주저앉았다.

' 왜 없지...?'

정말로 수인의 말대로 이 세계는 겉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세계란 말인가?

문득 그 때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 ...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인해야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먼저 확인했어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르는데 - 지금까지 그냥 내버려 두고만 있었던 것이다.

천암비서(天暗秘書)가 있는 동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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