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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33화 (931/1,615)

933====================

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왜?!'

신투지존이 덮쳐왔을 때, 나는 그의 수법을 피하거나 막는건 무리라는 걸 직감했었다. 워낙 찰나였기에 그 시점에서 나는 당한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을 생각한 끝에 그의 가면을 마주 훔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럼 신투지존과 나는 가면을 서로 훔친 상황인 것인데... 가면을 서로 훔치면 몸이 바뀐다는 말인가?!

일단 내가 호월의 몸인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내 몸을 더듬거리며 이게 환상이 아닌지 확인했고, 이윽고 내공을 일으켜 보았다.

우웅

' 음... 내공이 있긴 하지만 이건...'

그저 기초수준의 내공수련자 아닌가? 우리 세계에서라면 고작 삼사 년을 수련했을 법한 내공수위였고 결코 고수급이라고 볼 수 없었다. 맥(脈)이 거의 트여있지 않고 진기의 흐름은 부실할 뿐만 아니라 절대량도 매우 낮다. 그나마도 내공심법을 제대로 연마한 게 아니라 모조리 체술(體術)이나 과격한 물리적 단련으로 인해 쌓인 것인 듯 단전도 개발되어있지 않았다.

" ......"

당연한 말이겠지만 음신지력과 화안금정도 사라졌다. 성좌의 힘도 없어져버렸다. 혹시나 해서 달마에게서 받은 사도의 낙인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지만 그마저도 없었다. 내게 귀속되어 있던 영력과 신력, 마력이 모두 사라졌다.

설마 지금 나, 모든 힘을 잃어버린 건가?!

나는 경악해서 입만 벌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멍하니 있자 아유타 공주가 다가와서 내 등을 두드리며 다독여줬다.

" 사형. 힘 내세요..."

" ... 이해가 안 되는군. 백웅이 우리를 왜 가뒀지? 신투지존은 한 명 뿐일텐데 왜 모두를 가뒀나."

내 질문에 옆에 앉아있던 멸망한 소국의 왕자, 성진이 대답했다.

" 신투지존이 우리 모두를 세뇌시켰을 거라면서 가뒀습니다."

" 달마는 그 말을 믿었나?"

성진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스승님은 백웅이란 자를 신뢰한 듯 했습니다... 후우."

" ......"

나는 모든 힘을 잃어버린 충격에 빠지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냉정을 찾으려 했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 천암비서.'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나는 천암비서를 신투지존에게 빼앗긴 셈이다. 신투지존이라면 당연히 평소에 품에 넣고다니는 천암비서의 존재를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신투지존에게 전생의 능력을 빼앗길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그게 좀 걱정이 되었으나, 이내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 빼앗기는 거였다면 지금까지 수십 번은 더 뺏겼겠지.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야... 정말 이상한 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위화감'이 존재했다.

' 어떻게 신투지존은 이런 조악한 몸을 써서 내게 회피불가능한 일격을 가한 거지?'

이게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호월의 몸은 원래 장군이며 무인이었던지라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으며 근육이 출중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내공수련을 한 적이 없기에 사실 무림인의 시점으로는 약해빠졌다고 할 수 있다. 내공도 진기도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몸을 운용한다면 아무리 절세무공의 소유자라고 해도 힘이 크게 반감될 것이다.

나는 물끄러미 감옥의 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뇌신류의 권법 기초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호흡을 고르다가 빠르게 일 장(一掌)을 벽으로 날렸다.

두쿵!!

" ......!!"

" 허억! 사형..."

쿠르르릉...

그러자 뇌신류에서 가장 강력한 장법 중 하나인 뇌령인(雷靈印)이 떨쳐지며 돌벽에 무려 사 척에 이르는 장인(掌印)을 만들어 내었다. 십여 배 이상 커다란 손바닥이 돌벽에 균일한 폭으로 새겨졌으며 돌가루조차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 장법이면 강호에서는 초절정의 실력이라고 평가받겠지만 나는 장법의 흔적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역시 그렇군... 의념(意念)을 사용하면 티끌만한 내공을 써도 위력을 강화시키는 게 가능해. 하지만 한계가 있어.'

무림인이 아니다시피한 호월의 몸을 써서 이정도 수준의 뇌령인을 쓴 것만 해도 의념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호법사자의 강력함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리 의념의 고수라고 해도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내공에 크게 구애받기 마련이었다. 내게 원래의 내공이 있었다면 뇌령인 한 방으로 거대한 성벽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었을텐데 위력이 크게 제한된 것이다. 아무리 내가 무예의 달인이며 의념을 끌어써도 이 이상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신투지존이 아까 내게 먹인 그 일격은 아무리 기습이라고는 해도 내 전력을 다해도 맞서기 힘든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걸까? 나는 설령 호법사자가 전력으로 습격해 오더라도 태연하게 막아낼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는데 신투지존의 그 일격은 그런 수준을 훨씬 초월해 있었다.

나는 냉정하게 머리를 돌렸다.

' 몸을 빼앗기고 천암비서도 빼앗긴 지금 상황이라면 자살(自殺)이 답이다.'

자살함으로써 전생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섣불리 신투지존에게 시간을 줬다가 만에 하나 천암비서를 사용하는 법을 깨달아서 전생능력을 강탈당해 버리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장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자살부터 하는 게 상식적으로는 옳았다.

' 아냐. 아직 자살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해!'

여기서 죽게 되면 신투지존이 호월로 변신해있다는 정보까진 손에 얻고 다음회차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제자리걸음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희생을 감수하고 효율만 추구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투지존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정도는 알고 나서 죽어야 억울하지가 않았다.

나는 이윽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알아차렸다.

고오오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내공심법을 휘돌리기 시작했다.

뇌룡일기공(雷龍一氣功)

뇌신류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급심법! 번개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단전에서 맴돌았고 강한 흡인력을 끌어들이며 내공을 모으기 시작했다. 강호의 무수한 절정 내공심법들과 비교해도 단연 앞서고 있었으며 뇌신류에 특화된 무공을 쓰기 좋은 심법이었다.

' 정상적이라면 뇌룡일기공을 최소한 일조일석으로 3년 이상 연마해야 쓸만한 내공이 생긴다... 하지만...'

마음은 기를 끌어당긴다!

의념은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다!

초절정 이후부터 깨달은 의념의 경지 덕분에 나는 일반적인 내공심법의 수련이 지닌 한계를 초월할 수가 있었다. 나는 정갈한 의념을 모아서 정신을 집중했고, 잠시 후 내가 의념을 발휘하며 대기중의 기(氣)를 크게 끌어모았다.

슈슈슈슈

내공심법은 원래 대기중의 기를 피부살갗과 심맥으로 끌어당긴 후 차분하게 단전에서 정제하게끔 되어 있었으나, 나는 그 과정을 무시하고 내 주변에 모인 기의 덩어리를 단숨에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에 끌어당겨서 처박았다.

쿠궁!!

격렬한 고통과 함께 마치 전신의 내밀한 혈맥이 부풀어오르는 듯 했다. 원래 내공이란 건 장시간에 걸쳐서 기를 끌어들여서 심맥을 강화하고, 강화된 심맥을 통해서 더 많은 기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연마하게끔 되어 있었다. 근육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아무런 단련도 없이 단숨에 백회혈에 장대한 기의 덩어리를 꽂아버렸다면 본디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림역사에 내공심법이 괜히 발달한 게 아니었다.

' 쿠웁!'

하지만 나는 눈을 부릅뜨며 입 안에 피가 가득 고이는 것을 뺨을 부풀리면서 참았다. 당장이라도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억지로 의념으로 몸을 붙들면서 내구력을 강화시킨 것이다. 내가 의념의 고수이기에 할 수 있는 외법(外法)이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쑤셔박듯이 백회혈으로 기가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꿀렁거리며 들어오는 방대한 기력을 전신사해로 흩어버렸다.

빠직거리면서 전신에 수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다니면서 몸안을 뜯어먹는 듯한 고통! 나는 그 고통을 참으면서 빠르게 기력을 뇌신류 뇌룡일기공의 심법을 이용해서 뇌력(雷力)으로 변환시켰고 2차로 내공을 정제했다. 정제한 내공은 빠르게 심맥을 확장시키면서 퍼져나갔으며 몸을 내공심법에 적합하게끔 변환시켰다.

나는 한 번의 과정이 끝나자 두세 호흡을 쉬다가 다시 한번 대기중에 기를 크게 끌어당겨서 모았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훨씬 거대한 기의 덩어리가 모였고,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백회혈에 기를 내리꽂았다.

쿠궁!!

" 쿨럭!!"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가에서 선혈을 주륵 흘렸다. 눈에서도 피가 흐르는 게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단전을 좀 다쳐서 큰 내상을 입은 듯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금 전처럼 기를 정제해서 몸에 퍼뜨렸다. 그러자 갑자기 내공이 확 불어났고, 나는 불어난 내공을 이용해서 내상을 또다시 치유했다.

말 그대로 막무가내식 속성외법!

이런 방법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쓸 일이 없었다. 적어도 초절정 수위에서도 절대지경을 앞두고 있는 수준으로 의념을 다룰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 정도 고수라면 수련기간이 길기 때문에 이미 충분한 내공을 갖고 있었다. 내공을 수련한 끝에 초절정의 경계를 돌파해서 의념의 상승제어법을 손에 넣는 것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당장 힘이 필요했기에 무식하게 속성수련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쿠궁!

쿠궁!

그렇게 몇 번을 기를 끌어당겨서 몸 안에 퍼뜨렸을까?

나는 이윽고 내공이 크게 또아리를 틀며 단전을 확장시키고 사지백해의 혈맥이 반쯤 열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기혈정의 원리에 따라 내외가 상조하며 크나큰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나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생각했다.

' 좋아. 이걸로 대략 십오 년의 수련치를 손에 넣은 건가...'

고작 반 시진만에 절정급의 내공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내공이 뒷받침된다면 나 또한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 쇠창살을 붙잡았고, 이윽고 가볍게 창살을 휘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끼기긱

" 허억..."

" 사, 사형?!"

나머지 네 명의 제자들은 크게 놀랐다. 제대로 무공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는 인간이 맨손으로 철창을 엿가락처럼 휘어버리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힐끔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 ......"

" 너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너희들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기꺼이 목을 내놓겠는가?"

내 질문에 그들은 침묵하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앉아있던 혜가가 외팔으로 합장을 하며 말했다.

" 물론입니다."

" 그러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라면?"

" 그 또한 물론입니다."

" 모두가 같은 생각인가?"

그러자 혜가를 비롯한 나머지 네 명의 제자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물론입니다!"

아마 그들은 이미 내가 호월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달았으리라.

" ......"

나는 그들의 표정이 진심이란 걸 깨달았다.

달마의 말대로 그들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고, 또한 이 세상이 멸망하는 걸 강하게 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달마 곁에서 세계의 참혹한 진실을 보아왔던 자들이라면 그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 제길. 모르겠어...'

모두를 구하려고 하는 게 바보짓인가? 저렇게 알아서 죽고싶어 하는데 굳이 내가 구해야 하는 걸까? 그저 내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가?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지만 고개를 털면서 감옥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아까 신투지존에게 습격받았던 장소로 향하자, 거기에는 '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신투지존과 달마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서로 마주앉아있었으며 나는 신투지존의 등 뒤로 걸어갔다.

멈칫

내가 신투지존의 등에서 일 장 뒤에 멈춰서자 '백웅'의 목소리로 신투지존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 의외군. 빈털터리가 됐으면 백련교에서 도망칠 줄 알았는데 도망치지 않는 건가?"

" 꼭 당신 예상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

" 쿡쿡쿡..."

신투지존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듯 했다. 그러더니 편한 자세로 무릎을 굽히고 앉더니 달마에게 말했다.

" 어떤가, 달마대사? 저 녀석과 나 중에서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지?"

[ ......]

달마는 침묵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두건을 깊게 눌러쓴 채 생각에 잠겨있는 듯 했는데, 이윽고 입을 열었다.

[ 그대들은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인 건가?]

달마의 질문에 신투지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꾸했다.

" 아~니. 원래라면 저 놈의 기억을 뺏을 생각이었는데 하필 맞찌르기가 되어버려서 육체만 바뀐 것 같아. 나로서도 이런 일은 처음 겪어. 그리고 난 뜻밖의 힘을 얻었고 저 놈은 빈털터리가 됐지."

신투지존의 말대로였다. 그 순간에 나와 신투지존은 대등하게 훔치기를 교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디 한 쪽의 압승이어야 할 [가면훔치기]가 육체만 바꾸는 현상을 구현화시킨 듯 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 신투지존! 천하제일의 괴도가 기습이나 하다니..."

신투지존이 무슨 소리 하냐는 듯 머리를 긁었다.

" 무슨 소리지 후배? 도둑의 소양은 원래 뒤통수 때리기 아니던가. 난 아주 도둑답게 행한 거 같은데..."

" ......"

" 등신처럼 뒤통수 처맞아놓고 왜그리 당당한지 모르겠구먼."

신투지존의 말에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다 이긴 거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 호오... 하긴 이 몸에 쌓아 놓은 힘을 보니까 자신있게 말할 만 한데."

낄낄거리며 웃던 신투지존이 자리에서 일어선 후 나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그는 '백웅'의 얼굴을 한 채 유쾌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 그래, 어디 내기를 해 볼까?"

" 무슨 내기?"

" 너도 안 도망치고 여기에 바로 온 걸 보면 최후의 한 수가 있거나 나와 교섭하려는 모양인데... 나도 기왕 이렇게 된거 후배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고 싶거든."

" ......"

마음속을 들킨 느낌이다.

어차피 달마대사와 신투지존이 한통속이 되면 도망쳐봤자기에 되든 안되든 이 자리에 와서 최대한 신투지존의 정체를 알아내고, 죽는다 해도 그 후에 죽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보를 긁어내려는 속셈을 간파당한 듯 했다.

" 한 번 더 해 볼까?"

" 뭘 말이냐."

신투지존이 히죽 웃었다.

" 가면훔치기."

" ......"

" 조건은 거의 같군. 누구 손이 더 빠른지 해보자구."

" 같긴 개뿔이 같냐! 신투지존 네놈은 내 몸을 갖고 있잖아!"

" 이상하구만. 그럼 넌 아까 이 몸을 갖고 왜 무승부였지?"

으윽.

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투지존은 나보다 고수다!

내공도 거의 없는 이딴 몸을 가지고, 기습이라지만 나와 동시에 가면을 교환했다는 건 실질적으로는 신투지존의 실력이 훨씬 위라는 의미였다.

' 응?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신투지존은 왜 내공을 쌓거나 수련을 하지 않은 거지?

내공을 가진 게 당연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유리할 거고 훨씬 강한 게 분명한데... 어째서?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신투지존이 성큼 내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 선택권은 없다구. 도둑이 뭘 훔칠 때 주인허락 받는 일은 없으니까."

파밧!!

그 순간 신투지존이 내게 다시 한 번 달려들었고, 나는 찰나의 순간에 신투지존이 달려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멈춘 듯한 순간에 신투지존의 손에 내게로 뻗어져 왔는데 아까와 같은 속도였다.

... 어?

같은 속도?

엄청난 속도긴 하지만 아까보다 더 빨라지진 않는다면...

' ... 그, 그런 건가?'

나는 뭔가를 직감하고는 찰나에 최선을 다해서 [훔치기]를 시전했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문을 외우지 않았는데도 상대의 머리 뒤에 가면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내 등뒤에서도 뭔가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 [가면훔치기]의 시전자끼리 서로 대결하게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듯 했다.

' 좋아! 나도 속도는 맞췄어!'

방금 전 필사적으로 내공을 절정지경까지 올린 덕분이리라!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가면을 낚아채려 했다.

" 음!"

신투지존의 얼굴에 잠시 당혹감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뻐억

그 순간 나는 몸을 뒤로 뺀 신투지존의 발차기에 허리를 얻어맞고는 나동그라졌다. 직전에 의념과 내공으로 막았지만 엄청난 위력에 그만 갈비뼈가 부러져서 피를 토했다.

" 커헉!!"

" 이런이런... 역시나 그렇구만. 성가신 후배가 왔어."

" ......"

" 다 훔치려면 시간을 두고 요리해야할까."

신투지존이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가 왜 직전에 초수의 교환을 거부하고 내게 발차기를 날렸는지를 알아챌 수가 있었다.

' 같아.'

신투지존과 나의 손 빠르기는 같다.

그건 육체가 지닌 힘이나 권능과는 별개로 같은 것이다.

그 말은 신투지존은 육체의 힘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최상의 빠르기로 절도능력을 시전할 수 있으나, 그 빠르기는 모순되게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의념지경으로 마찬가지로 신투지존에게 배운대로 훔치기를 시전했는데 그 속도가 이 몸뚱이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것이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명명백백했다. 나 또한 [훔치기]에 있어서 신투지존과 비슷한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투지존은 그걸 미처 예상치 못한 듯 했다.

" 큭큭."

나는 왠지 유쾌해져서 웃었다.

그렇다면 난 역시 신투(神偸)의 경지에 도달한 거구나.

청출어람이란 말인가!

신투지존은 내공이 없어도 절대지경의 위(位)까지 가속할 수 있는 독특한 수법을 시전할 수 있는 듯 했으나 결국 그 수법은 나 또한 비슷하게 시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훔치기]에 한정되긴 했으나 어찌되었든 대등했다.

내 웃음소리를 들은 신투지존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 허어, 이거 조금 천하제일의 자존심이 상하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 한마디 때문에 앞으로 엄청난 고생길이 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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