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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도와달라고?
나는 달마의 말에 당혹감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 설마 내게 도움을 청할 줄이야...'
물론 도움을 청하는 걸 거절할 순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달마와 대면하고 있는 지금 상태는 삼황오제 전욱의 본체와 맞대면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내가 거절하든 도주하든 파리처럼 잡혀죽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죽음을 각오하면 여러가지 방법으로 상대를 엿먹일 수 있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옛 지배자]의 힘을 지닌 존재가 설마 현격한 힘차이가 나는 상대, 그것도 [특이점]이라고 의심하는 존재에게 도움을 청할 줄이야! 생각조차 못한 제안이었기에 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사대신기를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무슨 말이지?"
[ 말 그대로다.]
달마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처음엔 그대의 존재가 너무 약하기에, 어쩌면 사대신기를 불러달라는 소원이 무시당한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소원이 무시당했기에 [특이점]도 약하게 출현했다는 것.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 어째서 그럴 가능성이 없지?"
[ 내가 소원을 빈 존재는 그럴 존재가 아니다. 그분께 기원한 소원이 무시당했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
" ... 너무 확신하는군. [옛 지배자]들은 인간을 장난감으로밖에 여기지 않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렇다. [옛 지배자]에게 공양을 바쳐서 힘과 가호를 얻는 건 가장 보편적으로 강해지는 방법이었지만, 실제로는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변덕 한 번에 술사까지 몰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술자가 절망하는 꼴을 보려고 장난치는 경우도 많았다.
나야 공양을 치를 경우 성공률이 매우 높은 편이었지만, 그건 매번 바치는 보물이 칠요나 보패 등 최상급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으며 삼황오제 등이 섣불리 인간의 공양을 무시하지 않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악한 우주의 악몽이라 할 수 있는 [옛 지배자]가 정상적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경우가 되려 드물다고 할 수 있었다.
내 말에 달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 그 분께서는 격이 다르시다. [옛 지배자]들과 달리 그 분께서는 우주적인 법리(法理)이자 세계의 근원 그 자체. 고작 나 따위를 농락하려고 기교를 부리는 게 도리어 있을 수가 없다.]
" 설마... 당신..."
나는 뭔가를 깨닫고 외쳤다.
" 외신(外神)에게 소원을 빈 건가!"
[ 그렇다. 사실상 그 이상의 존재다.]
" 그런 게... 가능해? 원래 안 되잖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외신!
신중의 신이며 너무 위대해서 필멸자들은 커녕 지배자들조차도 경외하여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통상적으로 공양의식에서 받게되는 가호와 힘이 신격(神格)에 비례한다는 법칙에 비추어보면, 일반적인 [옛 지배자]보다 외신에게 공양의식을 치르는게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전 우주를 한 호흡으로 주름잡는 우주의 법칙같은 존재들에게 가호를 받는다면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가호만으로 삼황오제와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제로는 외신에게 직접 공양의식을 치르는 건 마도사세계에서 강력한 금기(禁忌)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외신은 너무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쨌든 이름과 의식을 치르면 일단은 부름에 응하는 일반적인 [지배자]와는 달리 공양의식으로 접촉해서 외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시점에서 마도사 따위는 단숨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어떤 경우는 외신에게 의식을 치르려다가 항성계가 통째로 날아간 경우도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그 어떤 수호마법진을 쓰더라도 외신에게 공양을 치르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가능한 경우라고 한다면 해당 외신을 섬기는 권속격인 [옛 지배자]에게 간접적으로 공양을 전달해서 2차로 섬기는 정도였다. 이런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외신에게 가호를 받는 경우는 전무했기에 무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로아스터의 종사(宗師)이자 제갈사의 스승인 시몬마구스가 대단한 존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외신공양의식을 성공시켰고 그 대가로 단숨에 인간마도사에서 [마왕]의 격까지 승천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의식의 성공을 위해서 시몬마구스는 기천년 동안 수백 단위의 마도사, 수십 명의 왕후(王侯), 수백만 명의 조로아스터 신도의 영혼을 공양했으며 수천 번의 번제와 살육을 해야했지만 말이다. 인간쓰레기이며 말종이긴 했지만 그 능력만은 대단했다.
내가 놀라고 있자 달마가 조용히 말했다.
[ 피치못할 일이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것을 실행하게 된다면 엄청난 방해가 들어올 것이다. 나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수단이 필요했고, 그 호신수단을 외신께 요청드렸다.]
" ......"
[ 설령 신이라도 죽일 수 있는... 수호신기(守護神器)가 절실히 필요했지. 그 정도는 되어야 의식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을만한 가호와 수호신기를 내려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외신 뿐이었다.]
그게 바로 사대신기를 소환하게 된 이유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듣다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달마에게 말했다.
" 대가가 부족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수호신기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 그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경우 차라리 신기 자체가 넘어오지 않았을 터..."
" 왜?"
[ 우주의 경계를 넘는다는 건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인과율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일이다. 그 중대성을 생각해본다면, 처음부터 소원은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달마는 굉장히 확신에 차 있는 태도였다. 나는 달마가 굉장히 신념에 차 있다고 생각했는데 섣불리 그에게 의문을 제기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달마는 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마도를 연구한 것만으로 [옛 지배자]의 힘을 얻은 존재이니, 그런 존재에게 내가 마도이론으로 딴지를 걸어봐야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나는 달마의 생각을 웬만하면 긍정하자고 생각하며 말했다.
" 그래서 결론이 뭐지? 가짜신기가 넘어온 게 아닌데도 내가 봤던바에 따르면 그건 아무런 힘도 없는 쓰레기야."
[ 단 하나의 가능성이 생각났지... 그래서 그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 가능성?"
[ ......]
달마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 제안하겠다. 나는 의식을 치르기 직전에 그대가 사대신기라 부르는 수호신기에 힘을 불어넣어서 신살(神殺)의 힘을 지닌 무기로 제련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 수호신기를 가지고 내 의식을 최대한 수호하라. 그 일이 끝나고 나면 그대의 세계로 돌아가게끔 해 주겠다.]
" ......"
나는 달마의 제안에 잠시 멍해있다가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 그런 멍청한 제안이 어딨나? 내가 제련한 사대신기를 갖고 도망치면 어떻게 하려고?"
[ 어디로 도망치겠다는 건가...?]
" 그야 내가 도착했던 외우주의 경계로 가버리면..."
나는 말하다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 ... 비, 비등을 써서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아무리 비등이 대단한 마도구라고 하지만 비등의 단점은 특수한 결계나 가호로 둘러싼 차원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신왕 수인의 투구에 타고올 때, 그 [경계]는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다는 걸 틀림없이 알 수 있었다. 수인이 자신의 권능으로 결계를 뚫어주었기에 내가 별 이상없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비등 없이 우주차원 너머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지금 내 상태로는 수백만 광년은 커녕 달까지 가기도 힘들다. 전욱의 권능을 써보려 해도 이 세계에는 삼황오제 자체가 없어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내가 할 말을 잃자 달마가 말했다.
[ 백웅이여.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 내키는 바는 아니지만 그대를 녹여서 신살무기로 만드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우니까.]
" ......"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 원할 때까지 백련교와 이 세상을 돌아다녀도 좋다. 마음이 정리된다면 내게 말하라.]
파앗!
달마는 다시금 사라졌다.
나는 물끄러미 천암의 제단 위에 있던 돌상자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포기하자!'
역시 지금 수신의 마도서를 훔치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일 것이다. 대신에 그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해 보았다.
' 어떻게 하지?'
의식이 끝날 때까지 사대신기를 써서 달마 자신을 지켜달라는 호위 임무.
나는 그 부탁을 받아들일 경우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았다.
' 의식이란 건 보나마나 무생노모의 법문을 만드는 의식이겠지. 그리고 방해라고 하는 건...'
만신(萬神)이 분노하여 달마 하나를 없애려 드는 아비규환의 우주적 재난!
나는 그 상황에서 수백 수천의 [옛 지배자]를 상대로, 법문을 제작중인 달마를 호위해야 한다.
선지자의 말에 따르자면, 그 시점에서 나는 전 우주의 [옛 지배자]와 마왕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달랑 사대신기만 들고 호위해야 한다.
" ......"
정말 미친 짓이다.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방금 전에 달마에게서는 묘한 확신을 느꼈다. 그는 내가 아니면 호위임무를 맡을 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또한 실패할 걱정같은 건 하지도 않는 듯 했기에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 달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선지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법문제작의 역사를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이렇게 현실로 맞닥뜨리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런 미친짓을 시도한다는 달마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 후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마음먹었다.
" 일단 세상의 상황을 알아봐야겠다."
달마는 내게 생각을 정리할 유예를 준다고 했다. 얼마나 중대한 제안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이 외우주의 상태가 어떤지를 충분히 알아본 후에 그의 제안에 응하는 게 나았다.
타닷!!
나는 곧장 엄청난 내공을 발휘해서 뛰기 시작했다. 멸혼보의 극성에 이른 상태로 무작정 대륙의 동쪽을 향해서 내달렸다.
투두두두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서 고려(高麗)가 있던 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반도에 오자마자 곧장 예전에 신시(神市)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본래 신단수가 있었던 근방에 오게 되자 나는 허탈감에 휩싸였다.
" ... 없군."
예상은 했지만 역시 없다. 천지의 이족을 억누르고 인간의 생존을 도모해주던 동북의 수호자같은 존재, 세계수 신단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오래 된 산인 장백산이 커다란 연못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은 청명하고 영기가 강렬했지만 고작 그것 뿐이었다.
' 이 세계는 마도 외의 그 어떤 능력도 없다. 역시 십이율주는 이 세계에 없겠군...'
마찬가지로 십이율 또한 없으리라. 나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하기 위해서 장백산에서 빠르게 남하하기 시작했다.
타다닷
옛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수많은 군사들이 평야에 도열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단일국가의 병력이 아니라 연합군인 듯 장비한 갑주와 무기가 판이하게 다른 병사들이 섞여 있었다.
' 깃발을 보니... 나(羅)와 제(濟)인가.'
그렇다면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이겠군.
강 이북의 성을 공격해서 고구려의 영토를 치려 하는 거겠구나.
나는 고려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고려의 역사도 배웠기에 대충 알고 있었다. 고려가 세워지기 전에 반도에는 3개의 국가가 있었는데 그 중 신라와 백제라는 조그마한 국가들이 힘을 합쳐서 고구려라고 불리는 대국을 공격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중원은 현재 남북조의 양제국이 성립한 시기이므로 얼추 들어맞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기가 딱딱 들어맞는 것에 도리어 혼란을 느꼈다.
' 이... 이상해.'
이 세계는 우리 세계와 완전히 판박이다. 역사가 거의 똑같다 해도 이상함을 느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우리 세계는 무공, 술법 등의 다양한 초인적 힘이 존재하는데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똑같이 역사가 흘러갈 수가 있을까? 인간의 역사가 약육강식의 역사이며 힘을 가지는 순간 정권과 재력을 주무르려고 든다는 걸 생각한다면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 현격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역사가 같을 수가 있지?
내가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오싹!
" ......!!"
갑자기 섬짓한 느낌이 들어서 동쪽을 바라보자, 흉흉한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 마력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 해신(海神)....!!"
틀림없다. 이건 해신의 마력이다. 직접 상대해 본 입장에서 놈의 기질을 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포착되는 해신의 마력에 곤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 뭐가 이렇게 강해?'
원래 해신은 별로 내륙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원도 그렇고 고려에도 나름대로의 수호자가 있었기 때문에 간헐적인 습격을 할 지언정 전면공격은 못 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이 해신의 마력을 억누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해신을 코빼기도 볼 수 없음에도 느껴지는 마력은 마치 맞대면할 때 느꼈던 수준이었다. 해신의 세력이 최소한 10배는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
" 말도 안 돼... 이런 곳에서 인간이 대체 어떻게 살아!"
[옛 지배자]의 영향력이 강력하다는 건 단순히 위압감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마력에 노출된 인간은 즉시 변이해 버리거나 미쳐서 죽게 된다. 문명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을 정도의 광기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화안금정을 써서 평원에 전개된 인간의 병력들을 살펴보았는데 그들 또한 마력에 영향을 받는듯 맛이 간 표정인 병사가 대부분이었다.
채쟁! 채재쟁!!
잠시 후 나제연합군과 고구려 병사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쟁 도중에 여기저기에서 물고기처럼 생긴 괴물, 해신족들이 등장해서 멀쩡한 병사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아악!
끄아아악!!
그와 동시에 지휘관들도 이족으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이족끼리 싸우는 양상이 되었다. 나는 지휘부가 진작에 이족으로 대체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머나먼 지평선에 서서히 해신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 해신 놈. 이 전쟁을 관람하며 즐기고 있군.'
그렇다. 이건 명목상으로만 전쟁일 뿐이지 실제로는 이족의 세력다툼이다. 인간은 그저 일용할 양식이며 고기에 불과하다. 나는 저 처참한 전장에서 산 채로 잡아먹히는 인간들을 보며 도와줘야 할지를 고민했다.
' 끼어들만한 상황이 아니야...'
저 상황에서 인간을 어떻게 구해줄 것인가?
이족을 다 쓸어버릴 것인가?
무의미하다.
그래봤자 해신의 영향력이 이렇게 강하다면 이미 우리 세계 기준에서 투선들이 여러 명 출동해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갈수록 강력한 해신족 간부들이 나타나서 마법주문이나 초상능력을 써댈 것이고 나중엔 해신이 나와서 나를 일격에 죽일 것이다. 설령 이 자리에 제천대성이 온다 해도 해신을 물리친다는 보장이 없다.
재앙이 쉴새없이 닥쳐온다.
이 전쟁을 빙자한 살육과 식인이 끝나고 나면, 다음은 민가와 마을에 재액이 닥치리라.
여인들은 이유도 모른 채 마력에 노출되어서 어인을 낳게 될 것이며 남자들은 점차 해신족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변이가 끝나고 나면 인간들은 해신을 섬기며 끔찍한 인신공양을 하게 되리라.
본래 이런 상황은 고려의 십이율과 십이율주 등이 억제했으리라. 강력한 절정고수들이나 술법사, 도사등이 출동해서 해신족을 막았으리라.
그러나 여긴 그런 게 없다. 이족들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인간들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다.
전생자인 나조차도 두려운 이 상황에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망, 그저 절망일 뿐이었다.
" 크윽."
나는 무력감을 씹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비등을 써서 도로 백련교로 되돌아갔다.
파앗!
나는 성큼성큼 걸어서 아까 제자들이 모여있던 장소로 향했다. 달마의 제자들 시선이 내게 꽂히자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달마! 네 제안에 응하겠다!"
슈르륵
내 말이 끝나자 마치 연기처럼 달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시꺼먼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 해신의 만행을 보니 내 일을 도울 마음이 든 것인가...?]
달마의 마력은 [옛 지배자]의 수준에 이르러 있다. 그 시야와 감각이 전 행성을 통괄할 수 있을 테니 내 행적 하나 관찰하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 그래. 저건 너무 심해! 이 정도일 줄은..."
[ 심하다라... 후후... 우리의 세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일 뿐이다...]
" 흔하다고!"
내가 놀라서 외치자 달마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 백웅이여... 그대는 세계를 어찌 구해야할지 알지 못한다 했었지...]
" ......"
[ 이 세계에서 나고 자란 나 달마... 그리고 만마(萬魔)에게 생애 끝까지 농락당한 우리 백련교의 제자들... 우리는 이미 세계를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을지 결심했다.]
스윽
달마는 양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그를 따라서 백련교의 다섯 제자들이 합장했다.
바깥에 우르르 몰려 있던 백련교의 수많은 제자들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는 정갈한 결의가 번득이고 있었다.
[ 이 타락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무(無)가 되어 포학한 혼돈(混沌)을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백련교의 이상향, 진공가향(眞空家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