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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특이점!
나는 달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뭐...!! 어째서 당신이 그 말을...'
애초에 내가 이 고생을 하면서 동료들의 희생을 딛으며 악바리처럼 외우주에 쳐들어온 이유가 특이점을 유예시키기 위해서였다. 특이점을 만나게 되면 아무리 전생자라고 할지라도 끝장이 나 버릴 확률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무한전생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중에 완전히 인생이 끝나버린다면 모든 게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이번 생은 죽을 힘을 다해서 특이점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달마가 특이점을 언급하다니.
그것도 내가 달마의 특이점이라고?!
하지만 뭔가 입을 열어서 대꾸하려는 순간, 나는 왼쪽 팔에 끔찍한 고통이 닥쳐오는 걸 느꼈다.
" 크윽!!"
고통에 익숙한 나조차도 반사적으로 비명이 나올 정도로 극렬한 고통! 나는 내 팔에 기이한 기생생물 같은게 엉겨붙으며 물컹하게 살과 뼈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벌써 팔이 시꺼멓게 썩으며 흉칙하게 침식당하는 중이었다. 달마가 마법을 써서 나를 공격한 게 분명했으므로 나는 이를 악물고는 재빨리 팔을 잘라냈다.
츄왁
나는 팔을 자르자마자 내 팔이 순식간에 거대한 괴물이 되어서 부풀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재빨리 신법을 써서 뒤로 물러서자 달마대사가 말했다.
[ 이상한 힘을 사용하는군. 그러나 지배자에게서 직접 내려받는 저주는 필멸자로서 저항할 수 없다.]
" ... 달마대사. 내가 왜 당신의 특이점이라는 거지?"
내가 침착하게 질문하자 달마대사가 말했다.
[ 그대가 마력 이외의 힘을 사용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 행위의 결과를 감수하도록 하겠다.]
행위의 결과?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 잠깐! 나는 당신과 싸우거나 죽일 생각 없어! 방금 전에는 그저 당신을 제압하려 했을 뿐이야."
[ 그렇군. 잘 알겠다.]
키이이잉
나는 순간 어마어마한 속도로 괴물이 입에서 광선을 발사하는 걸 알아챘고, 극한의 의념을 집중해서 그 광선공격을 삼보절기로 피해냈다. 너무 갑작스러운 기습이라서 나는 황당해서 외쳤다.
" 알긴 뭘 알겠다는 거야! 왜 공격해?!"
[ 그대는 날 죽일 생각이 없어도 난 그대를 죽일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노, 논리적인데?!
' 젠장!'
나는 속으로 푸념하면서 음신지력을 끌어내어서 내 팔죽지에 구현화시켰다.
쿠와아아악 -
순식간에 크기가 이 장이나 되는 거대한 거인의 팔같은 게 내 왼쪽팔 대신에 생겨났다. 당연히 음신지력으로 가공한 허구의 팔이었고, 나는 또다시 음신지력의 제어에 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라면 왼쪽팔 대신에 감쪽같이 만들어 붙일 생각이었는데 마치 공성병기를 연상케하는 거대한 팔이 되어버린 것이다.
달마가 신기해하는 듯 했다.
[ 호오. 그 힘은...]
음신지력 제어에 실패한게 약간 부끄럽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놓은 게 아까웠으므로 나는 곧장 달려들어서 음신지력의 팔을 괴물에게로 휘둘렀다.
푸콱!!
내 팔이 떨어져서 만들어진 마도의 괴물은 팔공격 한 방에 그대로 육편이 되어서 흩어져 버렸고, 곧장 달마에게 팔을 휘둘러 공격하자 방금 전처럼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달마가 환영을 만들어내며 피하는 걸 보자 내심 경악했다.
' ... 화안금정은 환영과 거짓을 간파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화안금정으로도 저 놈의 환영은 간파할 수가 없어!'
신력(神力)이 절정에 도달한 내 상태를 생각하면 화안금정의 가능성을 다 못 끌어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화안금정은 틀림없이 만전인데도 달마의 환영을 간파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달마의 환영은 화안금정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고절한 경지에 이르러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마왕 시몬 마구스 이상일지도 몰랐기에 나는 단단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달마는 잠시 후 허공에 떠올라서는 말했다.
[ 그대, 머나먼 시공을 넘어온 존재여! 이 저주를 받을 수 있을 쏘냐?]
" 뭐?"
[ 구겨진 최후의 빛이여, 통로에서 머무는 태고의 혐오스러운 왕이여! 나 계약자로써 육백육십육의 낙인을 걸고 외치나니, 이 언령(言靈)이 세계의 지문(指紋)을 밝히리라.]
지이잉
지지지징
그와 동시에 달마의 전신이 시퍼렇게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이는 듯 했다. 그것은 흔한 화염능력이 아니었으며 그가 전신에 새겨놓은 무수한 문신이 일렁이는 빛을 내뿜고 있었으며, 그 수가 워낙 많았기에 불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위, 위험하다.
저건... 맞으면 죽어.
나는 방금 전 내 팔을 그대로 날려버렸던 저주 이상의 무언가가 달마의 언령을 통해서 내게로 꽂힌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이런 건 주문이 완성되기 전에 끊는다고 해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달마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어마어마한 마력은 이미 내 음신지력을 수백 배나 뛰어넘고 있었으며 세계의 성층권에서부터 천하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 공격할 엄두가 안 나...'
괴물이다.
이런 수준의 마도사는... 맹세컨대 아직 본 적이 없다...
마왕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무언가'가... 눈 앞에 있다.
나는 경이적인 힘에 압도되어서 얼어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내 눈 앞에 망량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 백웅. 부탁이오. 내가 죽으면 이 파천일월선을 사제에게 전해 주시오.]
[ 반드시... 얻고 오시오!!]
피를 토하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나를 위해 계책을 짜내주며 의지를 다했던 망량. 그런 망량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 외우주에 사대신기를 찾아 온 것이다.
[ 그냥 한 번 웃어.]
씩 웃는 제갈사의 미소도 생각났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해 준 제갈사는 책략을 유지시키기 위해, 자기자신의 영혼을 마왕에게 팔아 악마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지옥행을 택하게 되었으나, 사실 그건 모두 주군인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이 길은 책사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더 이상 나만의 길이 아닌 것이다.
" ... 같으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입술을 질끈 깨물자 선혈이 턱으로 줄줄 흘러내렸으나 고통을 잊고는 눈 앞의 상황에 끝까지 집중했다.
왼팔도 날아가 버렸고 도저히 승산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격렬한 분노와 생의 의지를 느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웃기지 마라!
네가 달마대사라고? 사상 최강의 대마도사라고?
나를 도와주는 건 사상 최고의 동료들이다!
나는 뜻을 이루기 전까진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 하앗!!"
나는 인생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전신의 음신지력을 밑바닥까지 다 쥐어짜내서 눈 앞에 창(槍)의 형태로 구현화시켰다. 생사의 집중력을 모두 발휘하니까 어떻게든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어설픈 왼쪽 팔의 음신지력을 모조리 무(無)로 만들어버리고는 오른쪽 팔만으로 창을 잡아서 자세를 취했다.
외팔이가 창을 잡은 형태였으나 나는 신경쓰지 않고 눈을 반개했다. 겉은 잔잔했으나 내면은 끊임없이 뇌가 불타오르는 것같았고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 냉정하게 집중해! 지금 해야 할 건 놈의 방어부터 무너뜨리는 거다!'
뇌신류(雷神流)
투창술(投槍術)
관천일뢰(貫天一雷)의 태세!
뇌신류에서는 투창술 또한 연마시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창을 사용하는 자는 마땅히 창을 던져서 상대를 격중시키는 수법 또한 알아야 했으며 창던지기는 이광 밑에 있을 때 죽어라고 배운 경험이 있었다. 창을 언제나 자신의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게 창술사의 기본이었으나 반면에 창을 던질 경우 어떻게든 명중시킬 수 있어야 뇌신류의 창술고수이며 사범이라고 칭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투창술에서 가장 중대한 정수만을 뽑아놓은 술수가 바로 관천일뢰의 태세. 이 태세는 일종의 던지기 자세였는데, 이 자세에서 효율적으로 근육과 집중력을 다하면 어떤 각도에 있든간에 반드시 창을 목표에 맞출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광은 관천일뢰의 태세를 썼을 때 마상(馬上)에서 백이십 장 밖에 있는 상대측 기마의 이마를 꿰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중대한 상황에 평생 수백년간 연마해온 검을 들지 않고 일단 창부터 든 이유 - 그건 바로 수백 번의 생사결전을 통해서 다듬어진 감(感)이 그렇게 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
나는 의념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 지금!'
그리고 집중력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반개한 눈을 뜨면서 한 올의 낭비도 없는 동작으로 음신지력의 창을 전방으로 떨쳤다.
퓨웅
그 순간, 부풀어있던 달마의 마력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음신지력의 침입을 허용했다. 달마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주문을 외우는 듯 했으나 나는 관천일뢰에 내 모든 의념을 불어넣어서 이기어창(以氣御槍)의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관천일뢰의 관통력이 약해질락말락할 때 나는 손을 앞으로 죽 내뻗었다.
수어창(手御槍)
그러자 창날이 갑자기 죽 늘어나는 듯 하더니 음신지력의 창날이 더욱 강한 기세로 공간을 찢어버리며 달마에게로 파고들었다. 달마는 그제서야 신경을 쓰는 듯 강한 눈빛으로 창을 노려보았는데, 창이 통째로 마력때문에 녹아버리려는 것 같았다.
제길, 얼마나 마력이 강하면 절정의 신력으로 만들어진 음신지력의 창을 저렇게...
나는 상대가 얼마나 괴물인지를 실감했지만 의지를 잃지 않고 이번에는 눈이 충혈되도록 집중하며 무예의 묘리를 발휘했다.
' 지금의 나라면 가능해!'
천축(天縮)
여의조령(如意照靈)
이기어창으로 조종하는 창이 상대의 강대한 힘을 이리저리 피해내고 읽어내었다. 아무리 달마라도 공간 전체를 마력으로 뒤덮기는 힘들었기에 창의 힘을 유지시키며 파고들 틈을 찾아내는게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기나긴 찰나가 끝나는 순간, 나는 달마의 약점을 알아채고는 그 곳을 향해 두 손가락을 모아서 향했다.
심어창(心御槍)!
퍼벅!!
음신지력의 창이 달마의 방어막을 꿰뚫고 어깨죽지에 깊게 박혔다. 달마는 큰 고통을 느낀 듯 몸을 꿈틀거렸는데 허우적거리는 걸 보면 보통 큰 충격이 아닌 듯 했다.
[ 끄흐으...]
됐어!
직접 접근해서 검으로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하니 일단 음신지력의 창으로 놈의 마력을 해산시키는 게 옳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야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하며 검을 뽑아서 놈에게 달려들었다.
뇌신류(雷神流)
검뢰(劍雷)!
촤아악!!
수십 장 길이로 늘어난 내 검뢰가 눈깜짝할 사이에 달마의 몸을 수십 토막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번에는 확실히 칼끝에 감각이 느껴졌기에 놈을 해치웠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맞은 편에 내려앉자마자 뒤를 돌아보았다.
스르륵...
그러나 - 달마의 몸은 베여나가자마자 그대로 종이처럼 나풀거리며 공간 속으로 녹아들어가버리고 말았다.
" ......?!"
저, 저 놈은 정말 불사신이란 말인가...?
내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허공에서 달마의 말이 울려퍼졌다.
[ 내 화신(化神)을 해치우다니 제법이군... 그리고 그 기이한 힘에도 흥미가 생겼다.]
화신?
서, 설마 방금 내가 상대했던 게 화신이라면 달마의 본체라는 건...
[ 이리 오거라.]
내가 혼란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갑자기 천지 사방에 시꺼먼 벽이 쳐지더니 하늘 너머에서부터 거대한 이족의 손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세계를 감싸는 기색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은 달마의 술법에 대항할 방법이 없어서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끝인가.
쿠콰쾅!!
그러나 내가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거대한 도끼가 어디에선가 날아오더니 세계를 감싸는 달마의 손목을 베어버리고 말았다. 폭음과 함께 손목이 베여나가자 이윽고 달마의 술법은 씻은듯이 사라졌고, 내 앞에는 거신왕 수인이 도끼를 회수한 채 서 있었다.
거신왕 수인이 시꺼먼 하늘을 보며 엄포를 놓듯 말했다.
[ 어설픈 수작을 부리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물러가라.]
스르르륵...
완전히 주변에서 달마의 마력이 해소되자 사방의 풍경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달마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시공간이 왜곡되어 이계처럼 변해버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내가 겨우 목숨을 건진 채 서 있자, 거신왕 수인이 내게 말했다.
[ 백웅. 네가 상대해야 할 놈이 아까 그 놈인가?]
" 그렇습니다. 달마에게 사대신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그러자 거신왕 수인은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 했다.
" 왜 그러십니까?"
[ 여기까지겠군.]
" 네?"
거신왕 수인의 이어진 말에 나는 어찌해야할지 모를 기분이 되고 말았다.
[ 봉선의식의 주재자 백웅이여. 그대의 요구대로 외우주까지 와 줬으나, 내 힘을 뛰어넘는 적과 싸워주는 건 그대가 신농에게 바친 공양물의 대가로는 부족하다. 사대신기를 찾는 여정은 여기서 그만두는 걸 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