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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23화 (92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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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 달마?!'

달마라고 하면 백련교의 교조(敎祖)이자 과거 법문(法文)을 제작한 사상최강의 마도사가 아닌가! 게다가 달마는 사대신기를 사용해서 법문의 의식을 지키려 했다는 선지자의 이야기까지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 달마... 달마가 길잡이가 아닐까? 사대신기를 얻을 수 있는 단서? 그것도 아니라면...'

달마가 사대신기를 다 갖고있을 수도 있다!

나는 가슴이 크게 뛰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사대신기를 찾을지도 모르는 기회가 오다니! 하지만 나는 동시에 머릿속 한켠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 사대신기를 만일 달마가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에게서 사대신기를 뺏을 수 있는가?'

사대신기의 위력은 미지수이다. 여동빈의 회상에서 보았던 바로는 인간을 자연지력의 화신 그 자체로 바꾸어서 천령단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게 힘의 전부인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상대는 모든 [옛 지배자]를 경악시킬 정도의 마도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최강의 마도사, 달마. 그런 달마를 상대로 지금의 내가 싸워서 사대신기를 강탈할 수 있을까?

" ......"

안 돼.

무리다.

선지자에게서 들었던 달마의 위력이라면 지금의 나로서는 100명이 달려들어도 그를 이길 수가 없다. 최소한 마왕을 뛰어넘는 존재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소치일 뿐,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파악해 왔던 무력의 기준으로는 측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거신왕 수인을 불러와서 달마를 때려잡자고 할 수도 없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설령 달마를 무력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가 만일에 중대한 단서를 쥐고 있는 길잡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 아무튼 지금 문답무용으로 달려드는 건 멍청한 짓이야.'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자 내가 해야할 일이 명확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은신술을 발휘해서 최대한 기척을 없애서 은신했고,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화안금정의 천리안 능력을 이용해서 안의 상태를 살폈다.

' 우선은 내 정체를 숨기고 안의 상태를 알아보자.'

원시천반이 만들어낸 흑광의 길은 내실으로 통해있지만 지금은 그 종착지를 확인할 수 없다.

우웅

안의 상황은 좀 더 전개가 되어 있었다. 달마대사라고 불린 장포의 괴인이 자칭 황제인 소연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했다.

[ 반갑소.]

" ......"

소연은 순간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는 듯 했다. 그리고는 껄껄 웃었다.

" 허허! 듣던 대로군. 그대는 인간의 말이 아닌 괴물의 말을 한다고 들었네. 그렇다 해도 황제인 내게 존대를 하지 않다니... 어찌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 말에 달마대사가 대꾸했다.

[ 지금부터 내가 보여드리는 것을 보고 난 후에는 인간의 법도가 내게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오.]

" 흐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하여간 별종인 건 확실하군. 어쨌든 자리에 앉게."

소연은 달마대사의 괴짜스러움이라고 여기고는 응접실의 의자에 앉았고, 달마대사 또한 그를 따라서 앉았다. 잠시 후 시비가 차를 내오면서 그들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는데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 ... 괴어(怪語).'

틀림없다.

방금 달마대사가 인간의 언어 대신 발음한 것은 틀림없는 괴어, 혹은 외계의 언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어둠속의 이족(異族)의 말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나는 지금껏 모험하면서 괴어를 쓰는 존재와 수도 없이 마주쳤으므로 당연히 알고 있었다. 괴어는 인간의 발음체계와는 완전히 달랐으며 인간이 발음할 수 없는 음 또한 굉장히 많았기에 인간은 절대 괴어를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는 건...

달마대사는 이미 백련교주처럼 이족의 몸이 된 것인가?

다만 그가 장포로 몸을 둘러싸고 있는데다가 화안금정으로는 그를 직시하지 않는 한 본질을 알아볼 수 없을 듯 했다.

' 좀 더 지켜봐야겠어...'

대면한 두 사람 중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소연 황제였다.

" ... 그대는 현묘한 신통력(神通力)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자를 되살리고, 강물을 술으로 바꾸고,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했으며, 농지를 풍요롭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 말이 사실인가?"

달마대사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 사실이오.]

" 어떻게 그런 힘을 쓸 수 있는가? 나의 양(梁) 제국(帝國), 그 정점에 선 본인의 궁궐에도 많은 재사(才士)와 방인(方人)들이 머물고 있으나 그 누구도 그대같은 기적은 쓸 수 없다. 기껏해야 길흉화복을 점치고 사람의 마음을 위안시키는 존재들... 그대는 대체 어떻게..."

소연 황제가 경이로워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달마대사가 천천히 말했다.

[ 당신의 소원은 무엇이오?]

" 허허! 말하면 들어줄 생각인가?"

[ 황궁에 불러주신 대가로 하나의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오. 원하는 소원을 말해 보시오.]

" ......"

달마대사는 아까부터 황제에게 공대도 하지 않고 너무나 무례했으나 소연 황제는 마치 홀린 듯이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달마에게서 풍겨나오는 신비의 힘이 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소연 황제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 북위와 동위... 그리고 이 난세에 웅거하는 모든 잡스러운 나라를 멸하고 중화를 통일하고 싶다."

[ ......]

" 허허!! 말해봤자군. 아무리 그대가 신통력이 있어도 이런 소원은..."

[ 너무 소원이 작군.]

" 뭐라!!"

소연 황제가 깜짝 놀라자 달마대사가 말을 이었다.

[ 대륙을 통일하면...? 천하를 통일했다는 만족감에 잠시동안 기쁘겠지. 그 후에 나이를 먹고 말년이 되어 눈을 감게 된다면... 그 땐 어떤 소원을 빌 생각이오?]

" ... 불로불사를 청하겠지."

[ 불로불사의 소원또한 들어준다고 치지. 불로불사 또한 이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언젠가 영고성쇠의 이치에 따라 스러지게 될 것. 그 때는 어떤 소원을 빌 생각이오?]

" 어찌 소원을 빌겠는가? 그 정도면 이 세상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리게 되어 더 이상 미련이 없을 터."

[ 죽고 난 후... 생사입멸(生死入滅)의 마지막 단계가 진정으로 정화(淨化)의 무(無)라면 그렇겠지. 그러나 만일 죽어 스러진 후 무한한 억겁의 고통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 ......"

소연 황제는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대체... 그대가 바라보는 건 어떤 세계이지?"

[ 당신이 여태껏 보지못한 세계. 어둠의 세계...]

" 그대의 신통력 또한 어둠의 세계에서 얻어냈다고 말할 생각인가?"

[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지. 황제 당신은 이미 내 말을 거의 믿고있지 않은가.]

" 으음...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러자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 내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 이 세상에서 불가 승려들의 육식(肉食)을 금지시킬 것. 그리고 내가 창시한 백련교(白蓮敎)를 유일한 인간의 종교로 인정하시오.]

" ... 그리 어려울 것은 없군. 헌데 그 두 가지 조건을 들어준다면 내 소원도 들어준다는 말인가?"

[ 약속을 했으니.]

" 허허. 말만이라도 유쾌해지는군. 설마 그럴 리가... 허허."

소연 황제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달마대사의 말을 넘기려는 듯 했다. 달마대사가 말한 '소원'은 그저 말뿐인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의 부탁 정도는 들어주려는 모습이었다. 소연 황제가 달마대사에게 큰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달마대사의 신통력을 크게 믿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는 이미 내심 달마에게 압도당해 있었으며 어느 정도는 그의 말을 믿고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

후우웅!!

갑자기 주변 풍경이 뒤바뀌었다. 소연 황제가 당황해서 비명을 질렀다.

" 으아아아?! 그, 근위대!!"

근위대를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대신에 달마대사가 서서히 혼돈으로 이지러지는 궁궐 속에서 소연 황제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잘 봐라... 이것이 세계의 진실...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깨달은 절망일지니...]

파앗

빛이 터져나온다. 나는 그와 동시에 달마대사가 소환한 기억의 환영이 생생하게 내게도 보이는 것을 느꼈다.

태초의 세계 -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있었으매, 질서와 혼돈이 뒤엉켜서 세계의 본질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혼돈이 승세를 얻어 세계를 변화와 혼돈으로 조율했으며 억조창생의 혼돈이 창조되었다. 혼돈은 한없이 넓어지고 강해지며 세계를 뒤덮었고, 무한한 우주 속에서 무량대수의 문명과 생명이 창생사멸을 거듭했다.

그리고, 위대한 혼돈이 날뛰며 포학하게 필멸자를 괴롭혔다. 그들이 강한 이유따위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존재들이었고 그들을 [옛 지배자]라고 불렀다. 지배자들은 우주가 끝나는 그 날까지 무릇 의지있는 존재들을 희롱하며 잔학의 연회를 즐겼다.

그리고 세계가 전몰(全歿)한다.

위대한 [아버지]의 의지로.

사라진다.

" ......"

소연 황제는 넋을 놓고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반쯤 미쳐버린 듯 눈에서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 흠. 달마는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었군...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서 아무런 감흥없이 쳐다보았으나 평범한 인간인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진실들이었다.

달마대사가 말했다.

[ 이미 이 세계에도 어둠의 종족과 신들이 스며들어 인간의 탄생 전부터 우리의 운명을 농락하고 있지. 인간을 가호하는 신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위대하고 현명한 [고대신(古代神)]들은 질서의 힘이 너무 약해서 이미 이 세계에서 손을 뗐다. 그들은 다음 [큰 굴레]에서나 자신들의 힘을 쓸 생각이겠지.]

" 허, 허억... 허억... 헉...."

그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 가장 큰 문제는... 이 세계의 인간이 믿을만한 힘이 오로지 마도(魔道)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인간을 가호하는 신격이 존재했으며 최소한의 유예... 찰나의 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이토록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인간이 자기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초상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터... 후후. 결국 그것도 나의 운명이겠지만.]

"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

[ 쉽게 이야기해 주지, 황제여. 내가 쓰는 힘은 모두 마도의 권능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지배자]와 계약해서 이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지.]

콰직

달마대사가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 지금의 나라면 숨을 세 번 쉬는 사이에 이 세계의 인간문명을 멸망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 반대도 가능하리라.]

" ......!!"

[ 그런 나의 눈에 그대의 소원따위는 무척 하찮아보이는구나.]

소연 황제는 잠시 후 울부짖으며 땅에 엎드렸다.

" 으아아아아!! 말도 안 돼!! 이런 건 현실이 아니야!!"

[ 미치고 싶은가? 그렇겠지. 원래라면 미쳐야 할테지만, 그대는 내게 쓸모가 있으니 미치지 못한다. 견명한 이성을 유지한 채 현실을 받아들여라.]

" ......!!"

아마도 달마대사가 인위적으로 주문을 발휘해서 소연황제의 정신력을 유지시킨 모양이었다. 달마대사는 천천히 말했다.

[ 아까 내가 말했던 요구를 꼭 실행하도록... 그리고 하나의 요구를 더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면, 그대의 영혼만큼은 구원해주도록 하겠다.]

" 무... 무... 무엇이오..."

[ 내게서 권능을 받은 그대는 머지않아 중화대륙을 모두 통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원하는만큼 세력을 넓혀, 그 힘이 세상천지에 뒤덮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 ]

달마대사의 손가락이 소연황제의 턱에 닿였다.

[ 일억 명의 산제물을 백련교에 바쳐라... 알겠는가.]

" ......"

소연 황제가 잠시 후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하겠소..."

[ 잘 생각했다.]

스르륵

달마대사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기이한 술수를 발휘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지려는 듯 했다. 마치 모래처럼 흩어지는 걸 보면 예전에 시몬 마구스가 사용했던 마법같았다.

나는 지금 달마대사를 쳐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했다.

' 제길! 지금이라도 공격해? 아니면 끝까지 지켜봐야하나...'

지금이라도 공격해야 최소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칫했다가는 달마를 경계하게만 만들고 괜히 나만 죽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마음을 결정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파앗!!

일섬(一殲)!

나는 전신에 음신지력을 두르고 뛰쳐나가서 필생의 공력을 담아서 달마의 목을 따려고 했다. 검뢰를 담은 내 찌르기는 설령 금오도 십천군이라 해도 방심하고 있으면 절대 못 피하는 수준이었고, 하물며 지금은 필생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동빈조차도 이 검은 쉽게 받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 죽일 수밖에!!'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명확한 이성적 판단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놓쳐버리면 사후약방문을 하게 될거라는 전생자의 직감이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 순간, 달마대사의 목에 내 검이 닿였다. 그리고 그대로 죽 횡으로 그어버렸다.

촤악!!

' 해, 해냈다!!... 가 아니라?!'

환영인가!?

달마대사의 목을 베었다 생각했지만 그건 환상에 불과한 듯 했다.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역시 원시천반 흑광의 길은 달마대사에게로 뻗어 있었다. 다만 그 길이 급격히 방향을 전환해서 어디론가 향했고, 그 곳에 아마 본체가 있는 듯 했다.

나는 그와 동시에 달마대사의 음울한 괴어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 네가 나의 특이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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