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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다른 모든 보물은 봉선의식에 바쳤으나 오로지 이 원시천반만큼은 남겨두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외우주에 왔을 경우 사대신기를 찾아야 하는데 다짜고짜 찾을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최소한의 탐색도구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본래 모험중에 그 역할을 전국옥새가 담당하고 있었으나 이미 공양으로 바쳤고, 다행히도 원시천반을 그 대신에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잉
원시천반은 상당히 커다란 크기였고 도저히 휴대하고 다닐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원시천반을 기공으로 허공에 띄우자 거신왕 수인이 말했다.
[ 원시천반인가. 그걸로 찾겠다고?]
" 네. 지금은 이 수밖에 없습니다."
[ 잘 되었으면 좋겠군.]
그래야 할 것이다.
나는 원시천반의 작동법을 제갈유룡에게 배운 바 있었기에 거대한 팔괘반의 위에 손을 올리고 팔괘의 운행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냥 정령과 계약을 맺고 대뜸 물어보기만 하면 알아서 사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전국옥새와 달리 원시천반은 꽤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팔괘의 운행에 정통한 자만이 괘수(卦數)를 조작하여 원하는 물건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 큭... 역시 복잡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팔괘의 운행에 정통하다는 건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학문적, 술법적 성취를 뜻하기도 했다. 제갈유룡이나 망량처럼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자는 중원전역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팔괘와 진법의 전문가들이었다. 실제로는 그들 절반의 성취를 얻는데만도 보통인간이 평생동안 노력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팔괘에는 현 시대의 모든 수리, 지리, 천문 등의 전문지식이 뒷받침되어 있었으며 망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시천반은 왜 이렇게 불편한 거지?
나는 고작해야 여덟 개의 괘를 움직이는데 무려 육천 개 이상의 변화가 일어나자 내심 신경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전국옥새는 물어보면 바로 대답을 주게끔 편리하게 되어있었는데 뭐가 이렇게 까다로운걸까. 하지만 원시천반이 애초에 신급보패이며 인간이 사용할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위이이잉...
' 됐다.'
희미하게 원시천반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3개의 조건을 맞춰서 괘수를 알맞게 조작하자 기초반응을 내는 것이다. 나는 바로 지금이 음신지력을 불어넣을 때라는 걸 알아챘고, 원시천반에 힘을 불어넣고는 말했다.
" 사대신기를 찾아다오!!"
위잉
그와 동시에 원시천반에 새겨져 있던 64괘가 촤라락 하고 원형으로 휘돌면서 허공에 괘를 띄웠다. 괘는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듯 하더니 잠시 후 새까만 빛이 떠올라서는 한쪽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암광(暗光)의 길은 새까만 별하늘 속에서도 독보적인 느낌으로 우주 끝까지 뻗어나가는 듯 했다. 나는 원시천반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생각하며 거신왕 수인에게 말했다.
" 됐습니다. 이제 저 빛을 따라가면 사대신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
" 왜 그러십니까?"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던 거신왕 수인이 말했다.
[ 이상하군. 어째서 사대신기인데 4개의 길이 나타나지 않는가?]
" 아..."
[ 4개의 신기라면 원시천반이 4개의 길을 알려줘야 할 터.]
그러고보니 이상한 일이다. 내가 멈칫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 아무래도 1개의 길만 표시한다 함은, 이 길의 끝에 나머지 4개의 행방을 추가로 좇을 수 있는 단서가 있는 듯 하군. 단번에 찾을 수는 없을 듯 하구나.]
" 으음... 어째서일까요."
[ 나도 모르지.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일 터이니 그대는 자신의 힘과 지혜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 알겠습니다."
부웅!!
잠시 후 거신왕 수인이 나를 태우고 외우주의 공간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우주를 날아가는 중인데도 흔들리거나 어딘가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고 부드럽고 쾌적했다. 나는 투구 위에서 말했다.
" 외우주라고 하지만 바깥우주와 별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군요. 행성과 항성이 고스란히 보이니."
[ 무슨 소리인가? 엄청난 차이가 있다만...]
" 네?"
[ 우선 여기에는 우주의 왜곡된 구멍이 존재치 않는다. 그리고 심각할 정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왜곡된 구멍?
나는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알 수 있었다.
' 아... 우주의 중력이 왜곡되는 새까만 점을 말하는군.'
너무 중력이 강해서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장소. 나는 미래세계로 갔을 때 얻었던 과학지식으로 그 존재를 대충 알고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말했다.
" 왜 없을까요?"
[ 이 외우주의 법칙이 바깥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겠지. 혹은 이 장소가 태초의 우주를 복사한 장소이기 때문일 수도.]
" 복사했다고요?"
[ ......]
복사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에 대해서 수인은 그다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에 말했다.
[ 네가 주시자님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는 찾을 것만 찾고 빨리 나가는 게 좋다. 이 곳은 위험하다.]
" 알겠습니다."
파앗
이윽고 수인은 나를 태운 채 암광의 길을 끝까지 가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 장소에는 새파란 별이 눈에 띄였다.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져서 우주에서도 푸른 빛을 뿜어내는 별이었으며 나는 그 별을 보자마자 신음성을 내었다.
" ... 지구(地球)..."
미래에는 우리가 사는 별을 지구라고 칭했다. 그리고 대륙의 생김새와 바다의 모양을 보면 저게 지구라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게다가 지구를 돌고 있는 조그마한 달을 보면 결코 착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 어떻게 된 겁니까? 어째서 외우주에도 지구가..."
[ 어찌되었든 원시천반은 저 지구에 사대신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군. 내려갈 수밖에 없겠다.]
"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긴 세계의 바깥... 그런 곳에 또 다른 지구가 존재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습니다."
[ 외우주에서 그런 확률 따위를 따져봐야 무의미하다는 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면 그대가 신농의 봉인을 풀고 주시자의 관문을 통과하여 여기에 올 확률은 말이 되는가?]
" ......"
거신왕 수인이 내 의문에 냉막하게 대꾸하더니 말했다.
[ 더 이상 내게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라. 죽여버릴테다.]
" ... 네."
수인은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을 자꾸 하는 게 짜증나는 모양이었기에 나는 입을 닫기로 했다.
[ 진입한다.]
쿠와아아앗
잠시 후 수인의 몸이 대기권을 뚫고 지구의 대지에 안착했다. 수인은 암광의 길이 흐르는 곳을 따라서 다시 날아가기 시작했고, 그 길은 중원대륙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원대륙에 도착한 수인은 이윽고 점점 더 내륙으로 향했으며 급기야는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타닷
수인은 근처의 큰 산맥 위에 내려앉아서는 밑의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 인간의 도시로군.]
" ......"
나는 당연히 눈 앞의 도시에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안력을 집중해서 휘황찬란한 초저녁의 야광(夜光)을 내뿜는 도시를 쳐다보았고, 그 도시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낙양... 인 것 같습니다."
낙양!!
원시천반이 제시한 사대신기의 위치는 바로 낙양이었던 것이다. 안력을 집중해서 보니 낙양에 돌아다니는 건 전형적인 인간들이었으며 내가 살던 시대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는 왁자지껄하게 울려퍼지는 풍악이며 기루 등을 보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외우주에 왔는데 어떻게 또 다른 지구에 도착할 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원시천반은 어째서 이 곳에 사대신기가 있다고 말한 것인가?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수인이 말했다.
[ 시간이 없으니 모조리 부숴버리고 찾아내는 게 빠르겠다.]
우웅
수인이 거대한 도끼를 들어서 거기에 힘을 집중하자 시뻘건 신력(神力)이 응어리처럼 맺혔다. 나는 음신지력을 다루고 있었기에 그 도끼에 맺힌 힘의 크기를 알아채고 기겁했다.
' 내, 내 음신지력보다 최소한 50배는 많아! 저런 걸로 도시를 공격하면...'
일격에 도시가 괴멸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나는 급히 수인을 제지하며 말했다.
" 수인이시여!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저 도시 안으로 암광이 뻗어있으니 제가 알아서 찾아내 오겠습니다."
[ 도시 안에 어떤 위협이 있을 줄 알고 그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짓을 한단 말이냐? 잠자코 있어라.]
" 저 많은 인간들을 어떻게 이유도 없이 학살한단 말입니까."
[ 알게 뭔가...?]
수인은 진심으로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는 인간을 벌레취급하는 기색이 역력히 살아 있어서, 나는 그가 진정한 거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모습이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어도 그는 거신의 왕이며 인간과의 차원이 다른 존재인 것이다. 인간을 학살시키는 게 그의 양심을 건드릴 일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나는 수인을 설득하려 했다.
" 아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4개의 길이 뻗어야 하는데 하나의 길만이 남아있다고... 그렇다면 그 하나의 길은 [길잡이]를 뜻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 흐음.]
" 만일 그렇다면 지금 낙양을 섣불리 공격해서 몰살시키면 길잡이까지 휩쓸려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 좋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빨리 그 길잡이란 존재를 찾아내보거라. 뒤에서 지켜보겠노라.]
" 알겠습니다."
타닷
나는 수인의 투구에서 뛰어내리고는 낙양을 향해 달려내려갔다. 원시천반이 만들어 낸 암광의 길은 낙양의 심처로 뻗어있었으며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를 손도 못쓰게 해서 죽일만한 존재는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내심 나 자신의 무력을 믿고 빠르게 뛰쳐나갔다.
파밧
내가 낙양의 중심부까지 왔을 때였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 ......?'
여기 약간 내가 살던 시대와는 다른 것 같은데...?
사람들의 복식이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잘 보니까 내 시대와는 달랐다. 나는 저 복색이 어디서 봤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여동빈의 시대와 비슷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 으음. 여동빈의 시대...? 그럼 당나라 때인데...'
묘하게 그 시대랑은 또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이 묘한 위화감이 왜 생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외우주로 왔는데 하필 이 시대의 지구에 도착한 이유도 아직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찝찝함을 뒤로 하고 계속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윽고 정말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 아!"
나는 지붕 위에서 탄성을 질렀다.
진짜 위화감이 왜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무공을 익힌 사람이 없어!"
지금까지 몰래 지붕 위를 타고 오면서 화안금정과 기감으로 인간들을 감지했으나 한 줌의 무림인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보통 무림인이라 하면 내단(內丹)을 연마해 기공술을 익힌 자들로써 일반인과는 다른 기력이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보통 낙양에는 천하의 무림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기 때문에 심심찮게 무림인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많은 인간들 중에서 기(氣)를 연마한 자는 단 하나도 없다! 생득적으로 기력이 강한 사람은 있는 듯 했으나 그나마도 전문적인 기공수련자가 아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천하무림인들에게 낙양에 무림인이 없다고 하면 무슨 농담을 하냐고 비웃을 지경이었다. 최소한 수백 수천명의 무림인들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세계에서는 무공을 익히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는 위화감을 느끼면서 암광의 길이 끝나는 곳을 앞둘 수 있었다.
나는 암광의 길이 새어들어간 장소가 바로 하나의 궁(宮)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황궁 내부에서 나는 그 궁을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 대체 누가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군..."
외우주까지 온 장대한 여정에서 느닷없이 지구, 그것도 중원대륙에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황궁의 심처에 있는 궁이 종착지라니 이해가 안되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의문을 품으며 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저벅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허허! 그대가 바로... 천하에 이름높은 그 괴승인가?"
용상(龍床)에 앉아있던 인물이 책을 읽다 말고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용포를 입고 있었으며,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인물을 쳐다보며 말했다.
" 어서 오게, 달마대사(達磨大師)... 이 소연(蕭衍), 황제의 체면도 잃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