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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19화 (91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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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악마라고?!

그 순간, 나는 예전에 전승받은 제갈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 네가 완전히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그렇게까지 손해도 아니지...]

[ 지금까지는 계약의 최소치 때문에 네 인간의 껍질을 놔두기로 배려했으나... 너를 중마(衆魔)로 전생(轉生)시키면 틀림없이... 굉장한 게 나올 것이다.]

세계수의 결전 당시에 시몬 마구스가 제갈사에게 교섭을 제안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시몬 마구스는 제갈사의 영혼을 받는 대신 크게 선심을 쓰는 척 했으나, 실상은 제갈사의 영혼으로 최강의 중마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가득해 있었다.

중마(衆魔)란 마도사가 자신의 모든 지혜와 기술을 더해서 만드는 인공적인 마(魔)였다. 당연히 일반적인 주술사나 초급 마도사는 절대 만들 수가 없었으며 [옛 지배자]와 결탁하여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된 타락한 존재만이 제작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사악한 이계로 침식시킬 정도의 고위마도사여야 최소한의 도전자격이 주어졌다. 그런만큼 중마에 새겨지는 마도기술과 가호는 굉장히 수준이 높았으며, 중마는 차원계를 누비는 마도사의 수족으로 활약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마의 질은 생전의 강함이 아니라 영혼과 재능의 질에 달려 있었다. 생전에 고귀하고 성스러운 영혼을 타락시킬수록 뛰어난 중마가 생겨나는 건 당연했다.

또한 재능의 수준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제갈사 수준의 이혼대법 종사가 중마가 될 경우 최강의 염마술(念魔術)을 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중마가 탄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갈사같은 고위마도사가 타인의 중마가 되는 일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으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제갈사가 이 전선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의 혼을 버리고 마왕에게 혼을 팔아서 악마가 되고 말았단 말인가?! 그건 틀림없이 제갈사가 최악의 고통을 겪고 타락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 빌어먹을!!"

" 기다려라."

나는 나도 모르게 뛰쳐나가려 했으나 제갈유룡이 속박술의 보법으로 나를 얽어매었다. 내가 성가셔서 음신지력을 떨쳐내서 풀어버리자 제갈유룡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 지금의 제갈사가 악마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악마를 설득하여 인간의 마음을 되찾게 할 생각이냐?"

멈칫

나는 순간이동의 잔향을 좇으려 하다가 그 자리에서 움찔했다. 내가 서서히 제갈유룡을 돌아보며 물었다.

" 대화조차 안 통한다는 말이냐?"

" 아니. 대화는 분명히 통한다. 저 중마는 제갈사의 이성과 능력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경우는 이성을 갖고 있다는 게 더 최악이지."

" 무슨 말이야."

제갈유룡은 한숨을 쉬었다.

" ... 후우. 제갈사가 진심으로 너의 적이 된 경우를 생각해 본 적 있었나? 그런 제갈사를 상대해본 적이 있는가?"

" ......"

나는 그 순간 머리의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라면, 그럴 경우 제갈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될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갈유룡이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다.

" 당장 나부터가 사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으니까. 그건 알고 있겠지?"

" ... 그래."

세계수 대전 당시의 일이었다. 무력으로나 술법능력으로나 제갈유룡이 제갈사를 압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사는 기어이 승리를 쟁취하고 제갈유룡을 봉인시켜버렸다. 제갈사의 사이(邪異)한 지력과 광기는 도저히 인간의 범주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네가 제갈사에게 다가간다면 그가 너를 어떻게 대할 것 같은가? 다짜고짜 공격할 것 같은가?"

나는 침묵하다가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인간성을 되찾은 척 하면서 내 뒤통수를 치겠지..."

" 정답이다. 그리고 그 허에 허를 또 찌를 수도 있다."

" ......"

" 지금의 제갈사는 무력과 지력을 함께 갖춘 괴물... 아니 '제갈사였던' 괴물이라고 해야겠지. 너에 대한 충성심이나 호의따위는 없다고 보는 게 좋다."

" 제길."

나는 어째서 제갈유룡이 내게 제갈사의 이야기를 하기 꺼려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그가 철석간담의 냉혈한이라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친아들이 쇠약사하고 친동생이 영혼을 팔아넘긴 상황에서 멀쩡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어 내가 무신경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제갈유룡의 말이 모두 납득이 갔다.

' 지금 제갈사와 접촉하는 건 자살행위야. 제갈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나아...'

제갈유룡이 말했듯이 제갈사가 자신의 힘과 지혜를 다해서 마왕 시몬 마구스의 수족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면 더 이상 그를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유일하게 방법이 있다고 하면 시몬 마구스를 소멸시키고 그의 존재를 부숴버려서 계약 그 자체를 파기시키는 거지만, 그마저도 시몬마구스가 파멸할 경우 그와 영혼으로 이어진 중마들이 함께 소멸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더 이상 구원의 길은 없는 것이다. 제갈사가 어떻게든 시몬에게 영혼을 파는 것만은 피하려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 ......"

달리 말하자면, 제갈사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리면서까지 이번 일에 모든 걸 쏟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벌써 내 소중한 책사이자 동료들 중 두 명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차올랐다. 동시에 내 무력함 때문에 분통이 터져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흉신...!!'

이 모든 상황이 흉신 때문이다.

흉신 놈이 갑자기 지상을 침략하지만 않았어도 망량과 제갈사가 저렇게 비참하게 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내가 전생을 진행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어깃장을 놓는 저 개같은 놈을 죽여버리고 싶어서 살의가 피어올랐다.

......?

응? 뭔가 이상한데... 어째서 흉신은...

나는 그 순간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제갈유룡이 내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 더 오래 있으면 위험하다. 이제 수해로 가자."

" 자, 잠깐."

" 지금의 제갈사에게 들키면 우린 여기서 끝장이다. 초상기인의 몸까지 갖고 있는지라 그의 염마술에 잘못 걸리면 지금의 너라고 해도 일격에 죽는다. 빨리."

일격?!

나는 음신지력의 방어막을 치면 웬만한 건 다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황당했으나 제갈유룡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닌 듯 했다.

" ... 알았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음신지력의 방어를 풀고 제갈유룡에게 몸을 맡겼다. 그러자 제갈유룡이 이동술법을 써서 빠르게 본진으로 되돌아갔다. 비등을 쓰지 않은 이유는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마도구이기 때문에 마력에 민감한 중마에게 탐지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앗

우리는 광동성에 돌아와서 잠시 피난퇴각 행렬을 도운 후 곧장 수해의 세이메이 일족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세이메이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 으음... 이토록 안좋은 상황이 될 줄이야. 백웅 그대는 끝까지 정향의 인과율만 믿고 앞으로 가야할 것이다."

" 말 안해도 그 정도는 알아. 그보다... 상황은?"

내 질문에 세이메이가 대답했다.

" 대천무량천신진(大天無量天神陣)에서 끊임없이 수해의 마를 억누르는 중이다. 하지만 내 힘이 쇠해서 점차 마력이 밖으로 새어나온다."

대천무량천신진은 아베노 세이메이가 만든 최강의 절진으로서 현재의 수해를 통째로 억제하는 역대 최고의 음양봉인진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천무량천신진이 약화되었다는 건, 역시 세이메이가 내게 아마테라스의 반쪽을 넘겨줬던 여파가 있는 듯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 ... 제길, 신공표만 있었어도."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신공표의 부재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공표는 천계대전에 잠시 참가한 후 제멋대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끝까지 신공표가 우리를 도와줬다면 흉신의 세력을 막거나 금오도에서 알을 훔치기도 한결 쉬웠을 텐데 아쉬울 노릇이었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구천현녀 등과 대척점이면서도 티격태격대며 우리를 따라왔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인지 신공표는 구천현녀가 만신전으로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소리없이 잠적해버린 것이다. 신공표를 한 번 소환하고 나면 어떤 수단으로든 꼬드겨서 통제해야 했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 그나마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내가 입맛이 써서 중얼거리고 있자 제갈유룡이 말했다.

" 조금만 기다리자. 그러면 곧 염제가 나서줄 것이다."

" 으음..."

나는 수해에서 가만히 대기하기로 했다. 중원 쪽의 상황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일단 수해를 통과해서 외우주로 나가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아베노 일족의 여러 음양사와 마주쳤는데,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납빛으로 굳어 있었다. 그들 또한 세상이 파멸에 직면했음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만 하루를 기다렸을 때였다.

화르르륵 -

거대한 태양같은 화염이 일렁이며 하늘 저편에서 날아오더니 수해 위에 떠올랐다. 그 화염은 서서히 수해 내부로 진입하더니 천천히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 화염을 보던 제갈유룡이 중얼거렸다.

" 염제 신농이 보낸 화신(化神)이다."

쿠우우우

끼이이 - !!

마치 불새처럼 날개를 편 화염은 순식간에 생해와 사해를 들어엎듯이 모든 것을 환염으로 불태웠다. 그것은 염제 신농의 불꽃이었기에 내부에 있던 마족과 이족들은 저항조차 못하고 소멸되었으며, 남은 자리에는 마의 찌꺼기조차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해와 사해를 순식간에 정화한 불새는 입해로 들어가서 수십 배의 크기로 변하더니 화염의 숨결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후와아악

신농의 불새가 입해의 마물들을 불태우기 시작할 때였다.

위이이잉

' 저건!'

세이메이의 방 안에서 수정구를 이용해서 수해의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공명하며 나타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사시의 회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얼굴없는 수해의 왕이 심연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 신농의 화신이여... 어찌 나를 공격하는지 알고 싶소.]

화르르륵!!

불새가 수해의 왕의 말에 화답하듯 새 형태에서 거신족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는 청동빛 갑옷과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는 거신이었는데 피부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듯 했다. 지금까지 봤던 다른 거신족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으며 그 거신이 수해의 왕의 말에 대꾸했다.

[ 신농께서 명하신다. '바깥'으로 가는 길을 비켜서 신의 지음을 받은 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라, 문지기여.]

스윽

거신의 손에는 거대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 도끼는 투박해 보였으나 엄청난 신력을 머금고 있었다.

[ ......]

수해의 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길을 비켜줄 순 있소. 그러나 나오려 할 경우 나는 문을 막아버리고 말 것이오. 그것은 문지기의 책무이므로 결코 양보할 수 없소.]

[ 그 경우 나의 왕께서 너를 없애고 말 것이다. 또한 네 힘으로는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

거신은 차분하게 자신의 승리를 예견하는 듯 했다. 그리고 수해의 왕도 그 말을 그다지 부정하지 않았다.

[ 그러하겠지. 허나 내게도 왕이 있소... 문지기로써 의무를 다함은 내가 섬기는 분의 의지일 뿐이오! 나 자신의 이기심이 아니란 걸 알고 계셨으면 하오.]

[ 그렇군.]

저 대화에는 무슨 뜻이 담겨있는 걸까?

신농의 화신으로 찾아온 거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 그대의 의지를 왕께 보고했다. 지음받은 자를 통과시켜주길 바란다.]

[ 그러겠소.]

아무래도 신농은 예전처럼 본체를 직접 강림시켜서 수해의 왕을 쓰러뜨리기 보다는 화신을 내보내서 교섭하려는 듯 했다. 다소 아쉬웠으나 신농 입장에서는 이게 훨씬 더 자신의 힘을 아끼는 방책이므로 효율을 택한 듯 했다.

후웅!!

" 헉!"

그 순간, 나는 뜬금없이 그들이 대화하던 장소에 혼자서 순간이동함을 느꼈다. 세이메이의 방에서 안전하게 수정구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가?! 하지만 나는 이내 눈앞의 두 거대한 존재가 이미 내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으며 그들의 신적인 권능으로 나를 불러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여기 있으면 안전하다.]

" 억."

그리고 거신이 나를 덥썩 집어서 자신의 투구 위에 올렸다. 거신의 키는 무려 십여 장이 넘었기 때문에 나는 금세 언덕 위에 올라온 느낌이 들었다. 거신이 말했다.

[ 이제 외우주으로 가겠다. 그대와의 협약에 따라 외우주에서는 내가 그대를 경호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하라.]

" ... 아, 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내가 얼떨결에 질문하자 거신은 성큼성큼 멸해 최후의 문으로 걸어들어가며 대답했다.

[ 나는 거신왕(巨神王) 수인(燧人). 신농의 화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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