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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명계의 심장부, 전륜성왕의 방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 과거 망량은 이 방에 도착해서 모든 걸 샅샅이 조사하며 5년간 버텼다. 사실 이 방에 대해서 모르는 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망량의 기억을 갖고 있기에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방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한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5년동안 망량이 이 사방 오십여 장에 이르는 전륜성왕의 방에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으며 때로는 명경을 조작해서 다른 장소에 영향력을 끼쳤으나, 그런 망량조차도 이 방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방에는 독특한 법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치리링
풀잎이 떨어진다. 동시에 바닥에 거대한 원같은 형상이 떠오르며 향불을 피어올렸다.
나는 잠시 후 방 내부의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된 서적의 향연과 같았던 넓은 공간에 난데없이 맑은 연못과 청량한 숲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서적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서재의 공간에 자연이 나타났다.
' 제 6의 만다라가 지났나... 지금은 제 7계.'
나는 내심 중얼거리며 방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쳐다보았다. 저 나무에서 풀잎이 떨어질 때마다 계속해서 만다라(曼茶羅)가 움직이게 되는 식이었다.
만다라.
그것은 본디 밀교(密敎)에서 세계만물의 이치를 형상화하여 나타낸 일종의 법화(法畵)이자 상징같은 것이었다. 만다라라고는 해도 천차만별이었기에 이 세상에 몇 종류의 만다라가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며 제각기 뜻하는 바가 달랐다.
이 방에는 총 7계(界)의 만다라가 존재하며 7번의 순환동안 계속 공간이 바뀌게끔 되어 있었다. 만다라는 분명히 저 중앙의 나무를 중심으로 기동하고 있었으며, 순환주기는 약 7일로 알고 있었다.
즉 모든 만다라가 한 번씩 지나치기 위해서는 총 49일이 지나야 한다는 식이었다. 나는 망량의 과거 지식을 생각해냈고, 동시에 이 변화한 공간마다 제각기 감춰진 보물이나 비밀장치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망량은 5년동안 계속해서 7계 만다라 하나하나를 보물찾기하듯 뒤졌지만 결국 다 알아내진 못했다. 그가 비밀공간에서 찾아낸 것은 대개 저승의 운영에 필요한 기밀이거나 비전(秘傳), 지옥시왕(地獄十王)의 특징과 그들에게 감춰진 진짜 역사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망량에게 말을 걸었다.
[ 막 7계의 만다라로 진입했소.]
[ 그렇군... 알고 있겠지만 전륜성왕 7계만다라의 전체 탐색율은 약 7할 정도라고 생각하오. 백웅 당신은 기억에서 미처 뒤지지 못한 부분을 찾아서 한 나절동안 탐색해 보시오. 그리고 뭔가를 발견하면 연락해 주시오.]
[ ... 망량 당신이 5년동안 찾아내지 못한 수수께끼를 내가 어찌 한 나절만에 풀 수 있겠소?]
나는 다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천하에서 제일 가는 두뇌와 지략을 가진 천재 망량이 5년동안 만다라의 회귀를 반복하며 꾸준하게 풀었음에도 다 찾아내지 못한 수수께끼다.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한 나절만에 비밀장소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러자 망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백웅 당신 말대로 그건 원래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떤 가호를 받고 있소?]
[ 정향의 인과율.]
[ 그렇소. 지금 시점에서 반고의 가호 덕분에 우리는 세계의 주인공이자 패자(覇者). 아마 당신이 그 의문의 삿갓무사를 피한 운(運)에도 정향의 인과율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오. 그 운이 평범한 운이 아니란 건 알고 있잖소?]
[ 으음.]
그건 그렇다. 아무리 내 직감이 좋다 하더라도 끝까지 은신을 선택한 건 운의 영역이기도 했다.
[ 지금의 당신이라면 뭔가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으니 걱정말고 해 보시오.]
[ 알겠소.]
나는 망량의 말에 용기를 얻으며 바닥을 잘 살폈다.
우우웅...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의 불화(佛畵)가 서서히 녹아내리듯 다른 색깔로 변했다. 원래는 적색(赤色)이었는데 경계를 넘는 순간 불화가 청색(靑色)으로 변했다. 다시 몇 걸음을 이동하자 다른 공간의 불화가 은은한 녹색(綠色)으로 변했다.
' 채홍(彩虹).'
만다라는 총 7개의 색깔을 띄고 있었고 그 색깔은 채홍, 즉 무지개와 같았다. 적주황록청람자(赤朱黃綠靑藍紫)가 불규칙적으로 발판을 옮길 때마다 바뀌게 되어 있었다. 이 오십 여 장의 공간에서 발판은 정확하게 529개였고, 가로 23개 세로 23개였다. 그 발판 속에서 일정한 규칙을 통해 비밀공간이나 보물이 모습을 드러내게끔 되어 있다.
망량은 과거 5년간 이 공간에서 지내면서 불규칙적인 경우의 수를 모조리 시도해 보면서 간간히 법칙을 찾아내며 비밀공간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경우의 수가 워낙에 많은지라 아무리 망량이라고 해도 다 찾아낼 수는 없었다. 법칙을 찾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알려지지 않은 불규칙의 경우를 시도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정갈한 파해법이 없다면 1천년이 지나도 경우의 수를 다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이 만다라 채홍의 비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망량에게 한나절만에 비밀을 찾아내는 게 무모하다고 말했었지만 망량은 그래도 어떻게든 될터이니 운을 믿고 내게 도전해보라고 말한 셈이었다.
" ......"
망량의 머릿속에는 약 100여 개의 만다라 법칙이 새겨져 있었고 기억의 전승에 따라 내게 전해져있는 상태였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법칙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굴려 보았다.
' 으음... 빨강 파랑 파랑 노랑 초록 초록 빨강 보라.... 에다가 보라 보라 주황 녹색을 하면 체력을 회복시키는 생명수가 나오는 거고... 북으로 파랑 파랑 초록 자색 후 남쪽으로 남색 남색을 하면 맨 끝으로 이동... 으으으.'
너무 복잡해!
법칙에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도저히 맨정신으로 깰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100여개의 법칙 중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게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고, 3개 정도의 보물을 먼저 습득하기로 마음먹었다.
' 북북서로 빨강 빨강 자색 초록 청색 노랑 초록, 그리고 남쪽으로 두 걸음, 다시 동쪽으로 초록 빨강 보라 보라 초록!!'
위이잉!!
법칙대로 하자 공간이 갑자기 열리면서 그 안에서 법장(法杖)이 튀어나왔다. 나는 법장을 손에 넣고는 이게 강대한 힘을 지닌 전설급 유물이라는 걸 즉시 알 수 있었다.
' 지옥시왕, 평등대왕(平等大王)의 법장!'
본래 평등대왕은 시왕이 되기 전에 정체불명의 이계의 존재였으나 전륜성왕이 그를 거두어들여 가면을 씌우고 왕으로 세웠다는 기록이 이 전륜성왕의 방의 기록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평등대왕이 왕이 되기 전에 썼던 무기가 바로 이 법장이었는데 지나치게 흉흉한 기운을 갖고 있었기에 전륜성왕이 내부에 봉인한 것이다.
쿠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이 이름없는 법장에서는 심상치 않은 마력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정순한 존재가 쓸만한 것이 아니었고 강력한 주문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최소한 마왕급의 존재가 쓰던 것이라 생각되었기에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일단 법장을 목갑에 집어넣었다.
다음으로 간다!
' 노랑 노랑 노랑 노랑... 계속 노랑으로 가다가 12걸음째에 다시 밑으로 9걸음을 가고... 제자리에서 세 바퀴 돌다가 보라 초록 노랑 자색 으로 이 4군데의 색깔을 잘 맞추면... 열렸다!'
위이잉!!
딸칵!
공간이 열리면서 이번에는 마치 사람의 피부로 만든 듯한 인형(人形)이 나왔다. 이 또한 전설급 유물인 건 확실했다.
인형은 조그마한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눈코입이 꿰매져 있고 주언(呪言)이 몸통에 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 주언의 정체는 망량조차도 해독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이 또한 머나먼 이계에서 쓰이는 괴이의 언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문헌에 따르면 이 인형은 무조(巫祖)의 괴(傀)라고 불렸으며, 저승이 생기기 전부터 수만 년 동안 존재하고 있었는데 사용자를 파멸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인형 때문에 이름높은 저승의 거대한 용이 죽어서 파멸한 적이 있었다.
" ......"
어째 전륜성왕의 방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흉흉한 물건이 많은데...?
하지만 문헌에 따르면 이 인형을 가지고 있으면 사용자의 죽음을 막아준다는 효과가 있었으므로 나는 일단 챙기기로 했다.
나는 마지막 보물을 챙기기 위해서 망량의 공략을 다시 참고했다.
' 파랑 파랑 파랑 파랑 노랑 노랑 초록 자색 남색 남색 남색 남색 빨강 빨강... 어? 아니 빨강 다음에 초록인가? 아니 노랑... 그래 초록! 초록 맞아. 초록에서 다시 남색 초록 빨강 빨강 자색 자색... 자색...? 아니... 아닌데... 어라...'
나는 공략대로 움직이다가 문득 헷갈리고 말았다. 채홍의 색깔이 7개나 되는데다가 동서남북을 다 봐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순서가 틀려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그 자리에서 동서남북으로 발판을 4번 빙글빙글 돌았다.
쉬익!
틀렸을 경우 동서남북으로 4번 돌면 초기위치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다.
"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망량의 공략대로 움직였다. 잘못 움직이면 죽음의 함정이 발동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결코 만용을 부릴 수는 없었다.
' 자 다시! 파랑 파랑 파랑 파랑 노랑 노랑 초록 자색 남색 남색 남색 남... 으아아아아!!'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 1칸 더 갔다! 제기랄!!"
슈웅!
나는 그 순간 전혀 동떨어진 어딘가로 순간이동 했다. 초기위치가 눈에 보이긴 했지만 완전히 다른 발판이었다. 아무래도 실수하는 바람에 또다시 위치가 꼬인 모양이었다. 바로 그 때 망량이 말을 걸어왔다.
[ 백웅, 시간이 꽤 지났구려. 뭔가 찾아냈소?]
[ 음... 그게... 평등대왕의 법장과 무조의 괴를 얻어냈고 또... 황천릉(黃天綾)이란 걸 얻으려 하는데...]
망량이 짐작했다는 듯 말했다.
[ 황천릉을 공략하는 발판이 많은데다가 헷갈리는 건 사실이오. 조금 힘들겠구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 하하... 남색칸을 1칸 더 가버려서... 다시 한 번 동서남북으로 돌아서 초기화시킬 생각이오.]
[ 흠... 아니오.]
[ 응?]
[ 지금 상태에서 법칙을 무시하고 맘대로 움직여 보시오. 황천릉은 나중에 얻어도 좋으니.]
나는 망량의 말에 깜짝 놀랐다.
[ 헛! 그렇게 하면 함정이 발동해서 죽을지도...]
[ 상관없소. 당신은 무조의 괴를 얻었잖소. 사실 그것이야말로 발판공략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므로 지금이 감에 맡기고 움직일 때라고 생각하오.]
[ ......]
[ 죽어도 원망 안 할 터이니 맘대로 움직여 보시오.]
[ 아, 알았소.]
감에 맡기라고?
제길... 어쩔 수 없지! 그냥 찍는다!
" 으아아아!!"
나는 목갑에서 무조의 괴를 꺼내서 허리춤에 매단 후 마음 내키는대로 움직였다. 발판 밑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든간에 신경도 쓰지 않고 동쪽으로 북쪽으로 때로는 남쪽으로 왔다갔다하며 구석탱이로 향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내 걸음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지이잉!!
츄와아아악
" 크아악."
속박의 주술이 걸리면서 하늘에 수천 개의 창날이 떨어져서 나를 공격해 왔다. 당연히 죽음의 함정이었고 나는 재빨리 음신지력을 전개해서 창날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함정이 중첩되어서인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어디선가 파괴광선이 날아와서 나를 또다시 공격했고, 음신지력의 방벽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 ......!!"
쿠콰쾅
나는 호신기를 돋우며 파괴광선을 간신히 피했지만 어디선가 죽음의 벌떼가 날아와서 나를 쏘려고 했다. 나는 검뢰를 시전해서 벌떼를 재빨리 베어버렸지만 난데없이 몸이 무거워지면서 수백 배의 중력이 나를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퍼벅
" 끄어억."
나는 중력 때문에 바닥에 떨어져서 부상을 입었다. 중력을 이겨내려고 몸에 힘을 주어 강화시켰으나 그 순간 수천 배의 중력이 배가되어서 덮쳐왔다. 동시에 벌떼 몇 마리가 내게 벌침을 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벌침을 맞은 순간 상처부위가 크게 부풀어올랐고, 다음 순간 폭발해 버렸다.
콰광
주.... 죽는 건가...
나는 상반신이 통째로 터져나가며 죽음을 예감했지만 그 순간이었다.
파앗!!
무조의 괴가 갑자기 눈에서 빛을 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함정도 전혀 발동한 기색이 없었다. 아니, 그렇기는 커녕 처음부터 내가 발판을 움직이지 않은 듯 했다.
시간을 되돌린 게 아니다.
방금 전 나는 환영을 본 것이다.
' 이게 무조의 괴가 가진 능력, 죽음의 예언!'
무조의 괴는 [죽음의 운명]을 읽은 후 이대로 행동할 경우 생기게 되는 미래를 생생한 체험으로 보여주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용자가 사망에 이르게 되면 그 현실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바꿀 수 있는 지점으로 되돌리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사용자는 [죽음의 운명]을 미리 읽고 피할 수 있으니, 여벌목숨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강대한 저승의 용이 파멸의 운명을 감수하고서라도 무조의 괴를 소지했던 이유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무조의 괴는 오래 쓰면 무조건 사용자를 파멸시키게 되어있으나 그걸 감수할 정도의 성능을 갖고 있는 전설의 유물이었다.
이런 발판공략에 있어서 무조의 괴는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망량 또한 원래 지략과 두뇌로 공략을 미리 읽어내어서 실패없는 공략중이었으나 무조의 괴를 얻은 후 탐색속도가 더 높아졌던 것이다.
이걸 지상세계로 가져가면 굳이 전욱의 권능을 쓰지 않아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나는 죽음을 맞이한 감각 때문에 껄쩍지근해서 목을 긁다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 좋았어. 다시 간다!"
이번에는 무조의 괴에게 도움받지 않아도 뭐라도 나오겠지!
쿠콰쾅
콰과광
" 아아아악."
나는 또다시 죽음의 환영을 보고는 이 위치로 되돌아왔다. 이 곳의 함정은 너무나 강력하고 극악한 위력을 갖고 있어서 지금의 내 실력으로도 제대로 3중첩이상 걸리면 절대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내 실력으로도 이럴 정도라면 인간으로써는 한번 걸리는 순간 무조건 죽음이리라.
' 엇 제기랄... 왜 이래? 정향의 인과율이란 거 발동 안 하나?'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털고는 앞으로 전진했다. 망량이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면 일단 하면 되는 것이다! 망량을 믿기에 나는 계속 무조의 괴가 발동하는 한이 있어도 움직여 볼 생각이었다.
파바밧
' 오 좋아좋아... 함정이 안 나와! 그럼 이제...'
쿠콰쾅
" 끼야아아아악!!"
나는 또다시 무조의 괴가 발동해서 아까 그 위치로 되돌아와 있었다. 나는 멍해져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고개를 털고는 또다시 도전했다.
그렇게 몇 번을 도전했을까?
열 번을 넘었을 때 나는 문득 무조의 괴를 쳐다보았는데, 사람피부로 만들어진 인형이 무표정이다가 점점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씨익 웃는 표정인 듯 했다.
" ......"
설마 이 놈이 완연히 미소를 짓게 되면...?
' 에이 설마...'
나는 고개를 털었으나 불길한 예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망량의 통신이 순어구를 통해서 들려왔다.
[ 백웅. 뭔가 좀 진전되었소?]
[ 음 그게... 열두 번 정도 시도한 거 같은데 무조의 괴가 웃기 시작했소.]
[ 위험하구려.]
[ 위험하지...]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가설이 틀린 듯 하니, 슬슬 당신을 지상으로 되돌릴 준비를 하겠소. 황천릉만 얻고 다시 불러 주시오.]
[ 알았소.]
[ 정향의 인과율은 단순한 운의 영역으로는 발동하지 않는가...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작용하는가 보구려.]
나는 동서남북으로 네 번 빙글빙글 돌아서 위치를 초기화시킨 후 다시 황천릉에 도전했다. 더 이상 실패하면 진짜로 목숨이 위험했기에 이번에는 하나하나 천천히 순서대로 진행했고, 나는 마침내 황천릉이 있는 공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달칵
파아앗!!
나는 환한 빛을 내뿜는 황천릉을 목갑에 집어넣은 후 망량을 불렀다.
[ 됐소.]
[ 그럼 이제...]
그 순간이었다.
벌컥!!
" ......!!"
전륜성왕의 방 문을 벌컥 열고 다시금 삿갓무사가 들어온 것이다!
" 씨발!!"
이게 웬 날벼락이냐?!
나는 눈을 부릅뜨며 모든 선검과 검뢰의 힘을 모으며 음신지력으로 놈에게 대비하려 했다. 삿갓무사는 여전히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삿갓무사가 서서히 도(刀)를 앞으로 내밀었다.
피잉
현이 당겨지는 듯한 소리. 그리고 정체불명의 참격에 목이 날아간다. 도저히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공격한 건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음신지력으로 방어막을 쳤으나 놈은 그 모든 방어를 꿰뚫었다.
' 뭐... 뭐야 대체...'
죽음인가?
나는 그 순간 무조의 괴가 발동하며 내 목숨을 지켜주듯 현실을 무효화하는 것도 동시에 느낄 수가 있었다.
쉬쉬쉭
현실이 무효화되며 나는 황천릉을 목갑에 넣은 직후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제 숨 몇 번 쉴 시간이 지나면 삿갓무사가 저 거대한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문답무용으로 내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 찰나의 시간에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이를 악물고는 외쳤다.
" 전욱이여, 나 그대의 권능을 쓰노니!"
시간회귀!!
파아앗
나는 전욱의 권능을 써서 재빨리 전륜성왕의 방에서 보물탐색을 시작한 시점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그와 동시에 전욱의 노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걸 들을 수가 있었다.
[ 감히 이 힘든 상황에 본좌의 권능을 사역하다니... 네놈은 인과율을 넉넉히 바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아이고 죄송합니다!! 꼭 갚겠습니다.]
[ 후우... 어쩌다 저런 놈을 내 사도로...]
전욱은 한탄성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일단 전욱에게 빌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 젠장! 지금이라도 망량한테 상황을 말해서 당장 지상으로 되돌아갈까? 아니면 명경에 몸을 숨길까?'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달라지는 건 없다. 지상으로 이대로 되돌아가면 저승에서 얻을 수 있는 보물 3개를 그냥 놓쳐버리는 셈이다. 명경에 몸을 숨겨도 어쨌든 보물은 얻어야 한다.
' ... 최단시간내에 정확히 3개의 보물을 손에 넣자!'
일단 아까 시간낭비만 아니라면 그렇게 해도 시간은 남을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집중해서 다시금 차례로 법장, 무조의 괴, 황천릉을 손에 넣었다.
" 으오오오오!!"
집중하니까 복잡해도 어떻게든 된다! 그리고 명경을 꺼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 다시 숨어야겠다.'
우웅!
내가 명경안에 들어가고 한참을 기다리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삿갓무사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삿갓무사는 다시 한 번 내부를 살피다가 밑의 발판을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금 나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 ......?'
나는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놈의 행동을 명경 내부에서 지켜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놈은 그림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