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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911화 (1,38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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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내 선택은 이내 '은신'으로 기울어졌다.

' 저 놈은 위험해.'

예전에 칠요 중 하나인 수요를 그대로 베어버린 일도 있다. 놈이 구사하는 수수께끼의 무예는 지금 내 무공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고, 단순한 절대지경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저런 정체불명의 상태와 대적하다가 죽으면 이번 생의 실패라고까지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놈에게 붙잡혀서 되려 고문당할 가능성도 생각해야만 했다.

' 그렇다면 되도록 저 놈의 이목을 피할 방법을...'

나는 놈과 내 사이의 거리가 이십 리가 훨씬 넘는 걸 알고 있었다. 화안금정에 잠재되어 있는 천리안 능력 덕분에 놈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정상적인 시력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거리다. 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도 이십 리에서 상대방을 감지할 수는 없기에 일단은 안심이었으나 어디까지가 안전한 거리인지를 알 수 없었다.

' 음... 십 리...? 아냐. 십 리라면 나도 기감(氣感)이 좋을 때는 가끔 기척을 감지할 수 있어...'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내 놈에게서 무형의 범위를 십오 리 정도로 잡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놈에게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빙 돌아가듯이 염라대산 일대를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산이 놈의 일검에 뭉개져서 온갖 성채가 박살났으니 경계를 뚫기는 훨씬 쉬워졌으리라.

타닷

나는 빙 둘러서 놈의 맞은편으로 쭉 달려나갔다. 그리고 놈과의 거리가 더 좁혀지지 않는지를 확인했고, 거리는 그대로인 채 염라대산이 있던 경계 근처까지 도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에서 염라귀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곧장 검을 휘둘러서 싸우려고 했다.

이대로 염라귀들을 없애면서 곧장 염라부까지 돌파한다!

" ......?!"

사삿!

나는 멀리서 달려들어서 명계옥졸 염라귀 30여 마리를 습격하려다가 허공에서 몸을 돌려서 재빨리 수풀속으로 은신했다. 그것은 염라귀들에게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 기묘한 감각이 스쳐지나가면서 내 등골을 훑었기 때문이다.

위험.

단지 그 하나를 알리는 고수만의 감각이었다. 사실은 의념을 늘 두르고 있는 동안에 접하게 된 불가사의한 감각의 경계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직감은 언제나 목숨과 직결되어 있었기에 나는 결코 무시하지 못하고 전투를 피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염라귀들은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기저기를 어슬렁대며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 ......"

나는 어느 새 은신술까지 쓰면서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염라귀들도 멀어져서 이제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정적이 가득함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마치 애벌레처럼 단단하게 숨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 대체 이 감각은 뭐지?'

알 수가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근처에 내게 위험이 될만한 무언가는 전혀 없다. 명계의 옥졸인 염라귀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귀장(鬼將)이었고, 귀장보다 더 높은 게 대귀장(大鬼將), 그리고 최고로 높은 게 염라대왕의 친위대라고 하는 귀왕나찰(鬼王羅刹)이었다. 귀왕나찰은 생전에 영적으로 강력했던 대존재들조차 잡아들일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 하지만 정작 그 귀왕나찰이 여기 있다 해도 나는 어떻게든 이길 자신이 있다.

단순한 무예만으로는 귀왕나찰을 이길 수 없겠지만 음신지력이나 선검 등 다른 재간을 쓰면 충분히 그게 가능한 것이다. 귀왕나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팽조보다 더 강하기는 힘들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귀왕나찰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인기척 하나 없는데도, 육감이자 직감이 계속해서 내 뇌에 경고를 쏟아붓고 있었다.

여기서 싸우거나 인기척을 내면 죽는다고!

' 어째서...?'

나는 한시바삐 명경을 회수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납작 엎드려서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는 게 멍청한 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망량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안달내던 모습이 기억나기에 더더욱 그렇다. 초조한 마음이 가득찼지만 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은신태세를 절대 풀지 않았다.

나 자신의 섣부른 추측에 의존해서 무(武)가 쌓아올린 감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건 실전에서 가장 피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감각은 내 무예의 집대성이었으며 모든 것이었으므로 의심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숨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은신했다.

......

......

그렇게 약 한 시진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버티고 있었을까?

후웅

한 순간, 나는 문득 내가 어째서 이렇게 바짝 웅크리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전신을 뒤덮는 섬뜩한 느낌이 바로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살기다.

저 살기가 나를 감지했다면 그 순간 살기의 주인이 나를 향해 쇄도해 왔으리라.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생각했다.

' 그... 그렇군. 그랬던 거야. 여긴 안전하기 않기 때문이었어...'

안전범위가 아니다.

삿갓무사로부터 약 십오 리의 거리를 벌려두었고 이 정도 거리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 이미 나는 삿갓무사의 범위 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삿갓무사가 나를 감지하기 직전에 내 초절정의 무예감각이 위험을 감지하고 내게 숨을 것을 종용했으며, 나는 그 감각대로 따랐기에 지금까지 무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아까 내가 서 있었던 이십 리 범위도 삿갓무사의 감지범위였단 말인가?

' 말도 안 돼! 그건 인간의 감지능력이 아니야!'

아무리 절대지경이라도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다! 말이 이십 리이지, 그 정도 범위면 마을이 서너 개는 존재할 법한 거리였다. 더욱이 지금은 염라대산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소란과 함께 수십 만의 염라귀들이 삿갓무사를 공격하고 있을 텐데, 그 혼란의 와중에 이십 리 밖의 미세한 기척까지 감지한다고?!

' ... 뭔가 보패나 영능력을 갖고있는 게 분명해. 그거라면 납득할 수 있어.'

나 또한 화안금정으로 놈을 천리안으로 감시했다. 유사한 영능력이나 보패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절대 순수한 무예지경으로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으리라.

... 만일 순수한 무예만으로 그 정도 감지범위라면, 나는 놈에게 일 검조차 대어볼 수 없다는 뜻이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움직여서 염라부를 돌파해서 전륜성왕의 방으로 가야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있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놈에게 들키지 않은 건 확실한데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감지범위에 붙잡힐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답답하다. 하지만 이 초조함조차도 미숙함의 증거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끈질기게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설령 하루가 지나도 좋으니 일단 지금의 위험을 넘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망량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내가 죽게 되면 어차피 결과는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이 지나갔다.

쩌엉!!

저만치 먼 곳에서 다시 한 번 반월(半月)의 빛이 번뜩이더니 큰 소리와 함께 퍼져나왔다. 그리고 이윽고 정적이 다시 감돌았고, 나는 내 마음속을 괴롭히던 위험의 감각이 점차 사라지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주위를 화안금정으로 둘러보자 경악할 광경이 보였다.

' 염라귀가 전멸했다...'

한두마리도 아니고 수십만 마리나 되는 염라귀들이 시체의 산을 쌓듯이 죽어 있었다. 또한 염라귀를 통솔하던 귀장이나 대귀장들도 예외없이 죽어 있었다. 명계에서 또 죽는다는 표현은 이상했지만 그들은 영적인 생명체였으므로 죽음에 이르게 되면 다시 명계 내부로 환원된다고 알고 있었다.

저벅 저벅

을씨년스러운 시체의 평원을 한동안 걷고있던 나는 시체들을 자세히 살피고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 뭐지? 이건..."

모든 시체가 단 일 검(一劍)에 죽은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외상(外傷)은 그저 실처럼 그어진 일선(一線)뿐이었고, 거기에선 피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기공으로 내부를 진탕시켜 폭파시키는 수법인가 싶어서 내부를 살펴보았으나 역시 내상도 존재치 않았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염라귀들이 단체로 엎어져서 수면중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염라귀들은 회생의 여지 없이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런 무공은 처음 본다.

겨우 이런 미세한 상처만으로 예외없이 일검에 즉사시키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더욱이 저항조차 못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한 거지?

아무리 대단한 절세무공이라도 생명을 끊을만한 이유와 흔적이 분명히 남게 되어있었다. 비교적 사흔(死痕)이 깨끗한 내가기공조차도 내장이 터지거나 상하는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뇌와 감정을 진탕시키는 음공(音功)계열 또한 분명히 사망한 이유가 고수의 눈에 보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흔적은 일반적인 무공의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혹시나 뇌신지혼처럼 자연지력으로 감전시켜 죽였나 싶었지만 그런것도 아닌 듯 했다. 미래기술인 초진동 칼날으로 베었나 싶었지만 그런거라면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다.

더 문제는 나는 이 일선(一線)의 흔적을 보면서 도저히 무공연원을 추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무공의 흔적도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벤 걸까?

"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 시체를 좀 가져가야겠군."

나는 염라귀의 시체들을 목갑에 잔뜩 집어넣었다. 지금 당장 알 수 없다면 나중에라도 분석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염라부 쪽으로 진입했다.

타다닷

' 없을... 려나?'

나는 거대한 궁궐이자 염라대왕의 집무처인 염라부의 담장을 넘으면서 내심 중얼거렸다. 염라부를 지키는 병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수상쩍은 상황이었다. 다만 그런 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바로 삿갓무사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만일에 염라부 내부에서 삿갓무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끝장이다. 왠지 나는 놈의 일검을 당해낼 수 없으리라는 직감이 든 것이다. 나는 은신술을 쓴 채 움츠러들었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 안으로 들어갔다.

' 감각이 사라진지도 한참 됐어! 갔으면 진작에 갔겠지. 여기서는 진입한다!'

나는 용기를 내서 염라부 궁궐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걷던 중, 여기저기에 염라부의 옥졸과 귀장들이 픽 쓰러져서 죽어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삿갓무사의 작품일 것이다. 좀 더 내부로 들어가자 염라대왕이 평소에 앉는 듯한 의자가 보였는데 주인없이 비어 있었다.

" 흠..."

망량의 기억에 따르면 여기서 뒷문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서 가다보면 전륜성왕의 비밀방이 나오게 되고, 거기에 바로 명경이 있다. 목표까진 거의 다 온거나 마찬가지 상황이었기에 나는 내심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서 뒷문으로 갔고 이윽고 목표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문짝이 눈에 보인다. 이 문짝은 웬만해서는 절대 열 수 없는 것이었고 망량이 이 문짝의 방어력에 기대어서 내부에서 농성했던 것이다. 원래라면 인간의 힘으로는 전륜성왕의 방을 열 수가 없으나 나는 망량의 기억에 의존해서 파해법을 시전했다.

쿠쿵!!

나는 염라대왕의 의자 옆에 놓여있던 거대한 쇠막대를 철문 사이에 끼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힘들이지 않고 내 쪽으로 쇠막대를 끌어당겼는데, 그러자 높이가 삼 장에 이르는 거대한 철문이 가볍게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 이야."

나는 감탄했다. 본래 이 사람팔만한 쇠막대로는 도저히 열수 없을 것 같은데 진짜로 가볍게 열리는 것이다!

' 망량은 대단해!'

망량은 저승을 탐험할 때 염라대왕의 의자 옆에 놓여있는 쇠막대가 사실은 전륜성왕의 방문을 여는 열쇠라는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나는 쇠막대를 들고 열린 문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문은 천천히 닫혔다.

전륜성왕의 방 안.

내가 직접 여기에 오는 건 처음이었으나 망량의 기억을 통해 얼추 알고 있었기에 새롭지는 않았다. 나는 이윽고 명경을 찾아내었고 명경을 목갑 안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순어구를 써서 망량에게 통신했다.

[ 망량! 전륜성왕의 방에 도착해서 명경을 손에 넣었소.]

망량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 했소. 그럼 이제 내가 파천일월선을 써서 당신을 현세로 인도하겠소. 문을 열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 그런데 이상한 놈이 도중에 끼어들어서...]

[ 음?]

나는 망량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망량은 말없이 듣고 있다가 내게 말했다.

[ 그 무사와 부딪히지 않은 건 아주 잘 했소. 그러나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구려.]

[ 나도 그렇소. 빨리 현세로 돌아가게 해 주시오.]

[ ......]

망량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말했다.

[ 아니오. 아무래도 그래선 안되겠소.]

[ 응?]

[ 백웅. 목갑에 넣은 명경을 다시 꺼내시오. 그리고...]

망량은 내게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일러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 뭣하러 그렇게 해야한단 말이오? 그냥 현세로 돌아가면...]

[ 시간이 없소. 내가 생각하는 대로라면 당장이라도 들어올지도 모르오. 빨리 하시오.]

[ 알았소.]

나는 망량이 시키는대로 했다.

파앗!

잠시 후 정적이 흘렀고, 약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르자 정적 속에서 천천히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전륜성왕의 문이 열리면서 삿갓무사가 천천히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놈은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 했고, 삿갓이 워낙 커서 놈의 진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놈은 한동안 방을 샅샅이 뒤지다가 이윽고 내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

넌 대체 누구냐?

대체 누구길래 나를 쫓아다니는 거지?

나는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참동안 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던 놈이 슬쩍 손을 뻗었지만 이윽고 포기한 듯 말없이 물러서서 다시금 전륜성왕의 문을 열고 나가 버리고 말았다.

" 푸핫."

번쩍!

한참 후 나는 빛과 함께 명경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망량의 계책대로 명경을 발동시켜서 명경 내부의 세계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삿갓무사라고 해도 명경 내부에 내가 숨어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니 세운 계책이었다. 실제로도 삿갓무사가 날 찾아내지 못한 듯 했다.

나는 긴장감 때문에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망량에게 다시 통신했다.

[ 망량. 놈이 전륜성왕의 방을 뒤지다가 나갔소.]

[ 혹시 놈의 얼굴을 확인했소?]

[ 하지 못했소. 화안금정의 힘을 써도 전혀 보이지 않아서...]

조금 이상한 일이긴 했다. 화안금정은 천리안의 공능도 가지고 있어서 투시도 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삿갓무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은 것이다.

[ 그래도 명경에 숨은 백웅의 존재는 탐지하지 못했다... 명경 내부까지 통찰할 수는 없다는 뜻. 그리고 마구잡이로 물건을 부수지 않았으며 가져가지 않았다는 건... 놈도 만능은 아니란 소리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망량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 백웅. 이렇게 된 김에 그 방에서 좀 더 있다가 돌아오시오.]

[ 아니 왜? 아까부터 왜 자꾸 현세로 돌려보내는 걸 꺼리는 것이오.]

[ 놈이 당신의 흔적을 따라서 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 ......]

그, 그럴수가!

[ 당신이 이번에 명계로 간 것은 그야말로 천하에서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계획이었소. 그런데 그 삿갓무사는 마치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소. 놈에게는 비범한 탐지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고, 섣불리 파천일월선의 힘을 쓴다면 그 힘의 잔향을 쫓아서 우리 일행이 있는 장소를 알아낼지도 모른다 생각하오.]

[ 으음.]

[ 정체를 모르는 이상 조심에 또 조심할 수밖에.]

일리있는 말이었다. 망량이 신중한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 망량이 말을 이었다.

[ 마침 잘 됐소. 기억대로라면 전륜성왕의 방에 뭔가 숨겨진 보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오. 최대한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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