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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파앗
나는 봉래도로 들어가는 입구, 탐라도의 칠성단으로 갔다. 그리고 망량이 내게 칠성단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말해주었다.
" 성좌의 힘을 발현시키시오."
" 천우진이 없어도 괜찮소?"
" 상관없소. 어차피 이 칠성단은 성좌의 힘으로 지어지고 안정된 유적. 같은 성좌의 힘이라면 기동시키고도 남을 것이오."
우우웅!!
나는 항우에게서 전해받은 성좌의 힘을 끌어올려서 칠성단에 불어넣었다. 나는 성좌의 힘이 생각보다 많이 고갈된 걸 알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 제길, 예상은 했지만...'
항우가 전해준 성좌의 힘은 1차로 음신지력에 흡수되어 쌍륜처럼 내 심장을 맴돌고 있었다. 그 덕에 음신지력이 일시적으로 증폭되었었지만 서로 이질적인 두 가지 힘은 잘 섞이지 못했다. 나는 음신지력과 성좌력을 같이 끌어낼 수가 없었으며 도리어 음신지력을 쓸 때마다 성좌의 힘이 깎여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성좌의 힘이 처음 전해받았을 때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우우우웅
칠성단에 빛이 들어오면서 제단이 작동했으나 내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상을 느낀 망량이 물었다.
" 백웅. 왜 그러시오?"
" 사실은..."
나는 현재 음신지력과 성좌의 힘이 균형이 맞지 않아서 계속 상쇄되고 있는 상황을 말했다. 그러자 망량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음신지력은 전욱의 힘이고 성좌의 힘은 그런 전욱의 힘과 완전히 다른 것."
" 아마테라스의 경우처럼 음신지력에 성좌를 흡수시킬 순 없겠소?"
"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안될 거라고 생각하오."
" 어째서요?"
" 항우가 전해준 성좌의 힘은 일종의 단말이오. 본디 죽었다 깨어나도 얻을 수 없는 머나먼 성계(星界)와의 연결이지. 단말이기 때문에 그건 순수한 힘의 덩어리라기보다는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오. 흡수해봤자 의미도 없을뿐더러 괜히 성좌의 진짜 주인에게 간섭만 받을 가능성이 높겠지."
" 성좌의 진짜 주인?"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 [옛 지배자]를 말하는 것이오. 은하계를 주름잡는 괴물들..."
" 아..."
" 본디 태생적인 성좌의 능력자는 거대한 힘에서 단말을 끌어쓰는 것 뿐. 진짜 주인이 다스리는 권능에 비하면 워낙 미약한지라 도리어 간섭받지 않소. 그러나 만일 음신지력에 의해 성좌가 합일되고 그 단말이 더욱 강력해져서 통로가 넓혀진다면... 힘의 주인은 그대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일 것이오."
망량의 말에 나는 움찔했다.
' 그건 좀 안좋은데.'
머나먼 성계의 주인이자 [옛 지배자]라고 한다면 필멸자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존재들이다. 예전에 우주의 종말 때 봤던 [렐크로바우스]와 동격이거나 그 이상의 괴물들이리라. 그런 놈들이 마치 흉신처럼 내 머릿속에 [부름]을 넣거나 온갖 종류의 간섭을 하려 든다면 내게 성가시고 위험한 일밖에 되지 않으리라.
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 그렇다면 항우는 어찌된 것이오? 항우는 12개나 되는 성좌의 힘을 마음껏 쓰면서 폭주해도 그런 간섭 따위는 받지 않았잖소."
" 성좌가 그 정도로 중첩되어서 태어난 인간은 우주역사상 항우뿐이오. 다시 말해 항우는 생긴 게 인간이었을 뿐 한없이 [지배자의 영역]에 가까운 존재... 그가 지닌 격(格) 자체가 달랐던 것이오."
" ......"
" 백웅 당신이 걱정하는 바를 알고 있소. 기껏 항우에게 성좌 2개를 넘겨받았는데 계속 힘이 줄어드니 아깝겠지."
"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소."
" 줄어들어도 아깝게 생각할 건 없소. 어차피 음신지력만 소화해도 힘 자체는 차고 넘치는데다... 그 성좌는 나중에 전투 말고 다른 용도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터이니."
망량은 그렇게 말한 후 칠성단으로 성큼 걸어들어갔다.
" 자아, 갑시다. 불쌍한 선인들을 구출해야 하오."
우웅!
칠성단을 통해 봉래도로 들어간 후 우리는 곧장 봉래도를 지배하고 있는 해신족들을 물리치고 선인들을 구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서문혜가 선봉에서 해신족들을 쳐죽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푸콰콰콱!
콰과광!!
[ 끼에에에... 엑?!]
콰광!!
서문혜가 키가 이 장에 이르는 거대해신족의 발을 잡아채서 먼 봉우리로 던지자 봉우리에 핏자국이 터지면서 산이 무너졌다. 정말 말도 안되는 괴력이었기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천 마리의 해신족들이 일시에 사색이 되어서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런 서문혜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 으음..."
정말 강하다.
서문혜의 현재 힘과 속도는 인간을, 아니 투선조차 어느 정도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원래도 강하긴 했지만 지금은 천계대전 이후 더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망량이 옆에 서서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염제가 봉인에서 풀렸기에 거신의 혈맥은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게다가 그녀는 천계대전에서 자신이 가진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강적과의 사투에서 깨달았소."
" ......"
" 우리 일행 중 최강은 현재 서문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퍼버버버벅
쿠콰쾅
" ... 그런 것 같소."
나는 서문혜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해신족 오백 마리를 피떡으로 만드는 걸 보자 망량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문혜의 가공할 일권이 한방에 산 하나를 날리고 있었다. 이제 해신족들은 서문혜에게는 덤빌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른 일행에게 덤벼들었지만, 내가 검뢰를 난무하며 다가오는 놈들만 해치워도 안전하기 그지없었다.
[ 끼에에엑!!]
이윽고 해신족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말았다. 아직 놈들을 다 죽인 건 아니었지만 고작해야 일 다경만에 수천 마리가 몰살당했으니 도저히 더 싸울 마음이 들지 않았으리라. 혈겁을 일으킨 서문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어서 가지요."
사실 이 자리에 미호를 데리고 올 수도 있었으나 미호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으므로 서문혜만 데려왔다. 그리고 사실 서문혜면 충분하다는 망량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던 것이다. 우리는 감금되어 있던 선인들을 풀어주고 봉래도주 이흥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파지지직!!
이흥패의 보패가 저절로 반응해서 침입자를 태워죽이려 했으나 나는 음신지력으로 큰 방벽을 쳐서 막아내었다. 다만 힘이 조절이 안되어서인지 지나치게 큰 방벽이 생겨났고 삽시간에 수십 장 크기의 시꺼먼 장막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 윽.'
역시 흑웅이 있어야 해...
내가 내심 황당함을 느끼고 있을 때 안쪽에서 이흥패의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전욱의 사도인가...? 그 엄청난 힘... 이제 우리의 영혼을 거둬 만귀전으로 데려가려고 찾아온 건가?]
나는 이흥패의 모습이 보이는 거리까지 걸어들어간 후 말했다.
" 뭔가 오해한 듯 하군. 내가 전욱의 사도인 건 맞지만 그럴 의도는 없소, 이흥패."
[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 나는 백웅. 현재 천계가 멸하고 서왕모가 실각했다는 걸 알고 있소?"
[ ......!!]
나는 이흥패에게 상황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전반적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흥패가 이윽고 충격을 수습하더니 말했다.
[ 그렇군... 삼황오제 전욱의 강림을 위한 인과율... 그걸 각지의 보물로 충당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구려.]
" 솔직히 말하겠소. 도주가 갖고 있는 그 보패, 반황주를 내게 내놓으시오."
[ ......]
이흥패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 기이하구려... 당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했으나... 그 모든 일을 주도한 것은 바로 백웅 당신... 그 엄청난 지식과 정보의 근원은 도무지 추측할 수조차 없으니...]
" ......"
[ 좋소... 대신 선인들을 거두어 팔선의 휘하에 데려가 주시오. 그것만 약속해 준다면 반황주를 드리겠소.]
" 알겠..."
내가 이흥패의 말을 승낙하려 할 때 망량이 끼어들었다.
" 잠깐, 이흥패. 물어볼 게 있소."
[ 무엇이오...?]
" 삼신산(三神山)에 대해서요."
[ 무엇을 알기를 원하오.]
" 또 다른 삼신산인 영주산과 방장산으로 가는 법을 알려 주시오. 그 곳도 가봐야겠소."
[ 으음... 봉래도에서 바로 가는 방법은 없소. 알고 있겠지만 이 봉래도에는 삼황오제 전욱의 어전인 만귀전이 있기 때문에 자칫했다가는 만귀전에서 다른 삼신산을 침략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오. 허나... 지상계에는 그 입구가 있소.]
" 거기가 어디요?"
[ 영주산은 반도의 태백산(太白山), 방장산은 반도의 백두산(白頭山)이오. 그 곳에 차원을 겹쳐놓았으며, 이 봉래도와 마찬가지로 성주(星主)가 대대로 삼신산의 입구를 관리하고 있을 것이오.]
" ......"
망량은 그 순간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빙긋 웃었다.
" 아주 좋은 정보 고맙소. 그러면 영주산과 방장산의 맹주가 어떤 인물들인지 알 수 있겠소?"
[ 미안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소...]
" 다른 구룡도의 사성이 임명된 것은 아니오?"
[ 인사처리에 관해서는 철저한 비밀이었으므로 나조차 아는 건 없소.]
" 그렇구려."
[ 후후... 그럼 안녕히...]
화르륵!!
잠시 후 이흥패는 나직이 웃음을 흘리더니 스스로 영화(靈火)에 휩싸여 소멸되었다. 그리고 그가 소멸된 자리에 구슬보패, 반황주가 떼구르르 굴렀다. 이흥패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망량은 반황주를 주우며 내게 건네주었다.
" 받으시오."
" 이걸로 목표는 달성했군. 이제 명계는 어찌 간단 말이오?"
" 명계는 파천일월선을 이용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통로를 열 수 있소. 최심부까진 바로 못 가겠지만 어느 정도 심처에서 탐색을 개시할 수 있을 거요."
촤락
망량은 파천일월선을 펼쳤지만 이내 다시 접으며 말을 이었다.
" ... 물론 이 곳은 해신족의 소굴인데다 근처에 만귀전이 있으니 여기서 문을 여는 건 자살행위지. 일단 돌아갑시다."
" 알겠소."
우리는 반황주와 선인들을 가지고 지상계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팔선에게 피폐해진 봉래도 선인들을 위탁하러 갔다.
" 백웅. 그러고보니 용화수의 씨앗을 갖고있을 것이오."
" 아. 있소."
나는 주섬주섬 목갑에서 용화수의 씨앗을 꺼내려 했는데 망량이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 지금 당장은 아니고 그걸 잘 간수해 두시오. 갖고 있다는 인식을 늘 하고 있으시오. 곧 쓰게 될 터이니."
" 그러고보니 그냥 이 용화수의 씨앗을 삼황오제의 인과율을 위한 제물로 바쳐도 충분하지 않소? 이것만으로도..."
용화수의 씨앗이라면 세계수이니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 제안에 망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되기야 되지만 그럴 필요가 없소."
" ......?"
" 명분과 실제는 다르다는 말이오. 당신은 전욱의 뜻만을 이뤄주려고 지금 행동하는 게 아니잖소."
" ... 그렇구려."
나는 망량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실 지금 가진 보물만 잘 긁어모아도 삼제가 여와의 목숨줄을 끊을 정도의 인과율을 부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보물을 모으는 핑계로 시간을 벌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유는, 그들에게 빨리 공양을 바쳐봐야 결국 놈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보물을 모은다는 핑계를 대고 돌아다니는 진짜 이유는 사실 내가 수해 내부를 안정적으로 탐색할만한 저력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망량이 말했다.
" 명계에는 백웅 당신 혼자서만 가는 게 좋겠소."
" 서문혜나 당신은 따라가지 않소?"
" 기억을 갖고 있다면 알겠지만, 명계의 탐색은 특이하고 위험하오. 힘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칫했다가는 빨려들어가서 소멸할 함정이 많지. 동료가 많이 따라들어가도 무의미하니 당신 혼자서 가는 게 낫소."
망량은 흠, 하고 자신의 턱을 긁었다.
" ... 더 중요한 이유는 내 파천일월선으로도 현세에 귀환시킬만한 힘이 딱 1인분이라는 거지만. 사실 백웅 당신이 이렇게 강해지지 않았다면 명계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요."
" 하지만 나는 최심부의 방이 어딨는지 잘 모르오."
" 걱정 마시오. 내가 파천일월선을 이용해서 인도해 줄 터이니."
파앗!!
망량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이름모를 명계의 대지에 서 있었다. 파천일월선을 이용해서 망량이 단번에 나를 명계로 보내버린 것이다.
" ......"
스스스스
' 저 빛을 따라가면 되는 건가?'
나는 땅에 새하얗고 은은한 빛이 감돌면서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게 망량이 말했던 [인도]인 게 분명했다. 나는 망량이 어떤 원리로 이렇게 막강한 권능을 행사하는지 궁금했으나, 파천일월선에 부여된 [파천의 가호]가 만능에 가깝다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 좋아, 가자!"
타다닷!
나는 망량의 인도를 따라서 명계의 대지를 빠르게 갈라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명계였기에 곳곳에 영혼들이 음울한 비명소리라도 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먹구름이 낀 대지가 정적 속에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도리어 지상보다 영혼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나는 시꺼멓고 거대한 산 하나를 마주치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 저게 염라대산(閻羅大山)인가."
망량의 기억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명계에 진입하지 않은 경우 삼도천(三途川)을 건너지 않고 명계의 산골짜기를 넘어다니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 산골짜기는 사실상 외계의 세력이 침입하는 장소나 다름없으므로 명계의 모든 귀졸과 병졸들이 성채를 중심으로 방어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산 자체가 인간계의 그 어떤 산보다 10배나 높았으니, 이 산을 일컬어서 염라대산이라고 하게 되어 있었다.
저 염라대산에는 수십만의 염라귀와 염라신장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염라대산을 넘으면 바로 염라대왕이 다스린다는 염라부(閻羅府)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염라부에서 대략 삼백 리를 더 내부로 진입하게 되면 그때서야 명경(冥鏡)이 봉인되어 있는 전륜성왕의 방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내에 염라대산을 넘고 염라부도 통과해서 명경을 얻는다!
상당한 난관이었고 인간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나는 마음을 다잡고는 이를 악물었다.
신과도 싸워야 하는데 이 정도로 죽는 소리 할 수는 없다!
" 간다!"
나는 수십 만 염라귀와 싸울 각오를 하고는 선검을 들고 달려가려 했다.
써컹!!
반월(半月)의 환영이 비친 듯 했다.
" ......?!"
그 순간, 나는 거대한 염라대산의 몸통이 비스듬히 잘려나가더니 천천히 옆으로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너무 거대한 산이라서 흑산(黑山)이 내려가는 순간 하늘의 흑백이 뒤바뀌는 느낌마저 들었다.
쿠쿠쿠쿠구구구...
쿠구구....
' 염라대산이 잘렸다?!'
나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몰랐으나 이윽고 화안금정을 이용해서 시력을 돋우자 저만치 앞, 염라대산의 근처에서 누군가가 염라귀들에게 포위당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눈을 홉떴다.
" ......!!"
그 놈이다!
삿갓을 쓰고 있는 무사!
놈은 수많은 귀졸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오연하게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마치 두려울 것 따위는 없다는 태도였다. 아마도 방금 전 염라대산을 일 검에 베어버린 것도 저 놈의 짓이 틀림없었다.
' 저, 저놈... 왜 여깄는 거야?'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거리가 매우 멀었기에 저 놈이 아직 이 쪽을 눈치채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건 저 수수께끼의 인물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귀졸들 뒤에서 틈을 보다가 삿갓무사를 습격해서 제압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득이 될지도 모른다.
저 놈은 너무 수상하다.
수해에서 괴물이랑 싸우고 있어야 할 놈이 왜 명계에 있단 말인가.
" ......"
그러나, 과연 내가 수천 장 높이의 염라대산을 베어버린 놈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곤륜산을 일격에 베어버린 거나 마찬가지 위업이었기에 놈에게 접근하는 건 거리껴질 수밖에 없었다. 저 놈에게 눈에 띄지 않은 채 내 임무만을 달성해서 되돌아가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습격인가, 은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