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05화 (904/1,615)

905====================

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여동빈에게 말했다.

" 무신이 웃었다고요?"

" ......"

" 그의 미소를 볼 수 있단 말입니까?"

여동빈은 무신과 어떤 관계인가?

내 연속된 질문에 여동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여동빈이 한 말은 뜻밖의 내용을 품고 있었다.

" 연자여. 이 세상의 결말이 과(果)라고 생각하는가?"

" 네...?"

이 질문은 무슨 뜻인 걸까.

나는 이윽고 그가 하는 말이 인과(因果)를 뜻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이 창조된 것이 인(因)이라면 멸망하는 게 과(果)라고 할 수 있겠지요."

" ... 우리들, 하찮은 존재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러할 것이다."

여동빈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러나 시선에 따라서는 우주의 종말조차도 결과가 아닌 경우가 있을 수가 있겠지..."

"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 인과가 단순한 시간의 축적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스윽

여동빈이 검을 서서히 움직였다. 그의 검선(劍線)이 비스듬히 허공을 베었고, 이윽고 차분하게 검초(劍招)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 천둔검법이구나.'

그 유려한 움직임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천둔검법이었으며 나는 신중하게 그의 검술 전개를 관찰했다. 이윽고 천둔검법이 완결되자 여동빈이 말했다.

" 검술시전에 인과율을 담아서 휘둘렀다는 게 느껴지는가?"

" 네?!"

그, 그랬던가?

나는 당황해하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 아뇨... 전혀 안 느껴졌습니다..."

여동빈이 대꾸했다.

" 솔직하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천둔검법을 전개한 것 뿐이다."

" ......"

대체 뭐야!

" 허나 만일 인과율을 담아서 휘둘렀다 하더라도 그대가 느낄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건지 모르겠습니다."

" 선검술이 인과율을 축적시키고 때로 해방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다루고 있는 기(氣), 주술(呪術), 마도(魔道), 정령(精靈)처럼 세계에 구현화되는 힘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과율이란 힘은 그보다 더욱 음유하며 감지하기가 힘든 근원(根原)이므로 정상적으로는 수련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아......"

" 그렇기에 선검술사(仙劍術師)란 것도 본디 존재할 수 없다. 선검술을 연마하여 또다른 힘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건 일반적인 존재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인과라는 건 기력(氣力)을 연마하듯 수양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그제야 여동빈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선검술은 본래 수련이 불가능에 가깝다!

인과의 축적이라는 성장능력을 사용하기에는 근원이 되는 인과율 자체가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우주적인 법칙이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보조능력인 [인과의 단절] 쪽을 자주 쓰게 되리라.

' 그렇기 때문에 구천현녀는 따로 인과의 축적법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거구나.'

내가 선검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여동빈의 말이 이어졌다.

" 구천현녀가 본디 격조높은 존재이기에 인과율을 축적하는 술법을 개발하는 게 가능했을 뿐... 그렇기에 선검술은 전투용 술법이 아니다."

" ......"

" 그러나 인과율의 성질을 이해한다면 선검술의 축적속도를 빠르게 올리는 게 가능하다."

"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여동빈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 원(圓)이다."

원!

그렇게 언급한 여동빈이 천천히 검선(劍線)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는 한동안 작은 원과 큰 원을 번갈아서 그렸는데, 원이 이윽고 기공의 여파 때문에 눈에 실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여동빈이 그리는 원은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게 허공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형상과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원 그리기를 끝마친 여동빈이 말했다.

" 인과율의 본성은 원(圓)일지니, 원의 이치를 이해하게 되면 선검술에 숨겨진 묘용을 수련할 수 있게 된다."

" 원의 이치라는 게 무엇입니까?"

" 입으로 말해봐야 깨달음을 방해할 뿐이다. 그대가 스스로 궁구하고 깨닫는 게 제일이다."

" ......"

내가 황망한 눈으로 여동빈을 쳐다보자, 여동빈이 먼 산을 쳐다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 홀로 깨닫는 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단서를 줄 터이니 열심히 수련하길 바라겠다."

" 네!"

" 선검술을 쓰게 되면 선검의 내부에서 맥(脈)이 그대의 심혈(心血)에 이어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한 번 써 보도록 하라."

우우웅!!

나는 여동빈이 시키는대로 다시 선검을 발동시켜서 손에 쥐었다. 그러자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으나 확실히 선검에서 실같은 광선이 뻗어져 나와서 내 육체의 심장과 혈맥에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감각을 느끼자 여동빈이 말했다.

" 기(氣)는 심기혈정(心氣血精)의 원리에 따라 도야한다. 기와 의념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검술 또한 심혈에 이어져 있는 이상 심기혈정에는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심기혈정을 응용해서 선검술을 발전시키는 토대로 삼아야 한다."

" 의념을 강화시키는 것입니까?"

" 나중에는 그 방법도 쓰게 되지. 하지만 기초단계에서는 아니다. 일단 맥을 이은 채 선검과 동화(同化)하려 해 보라."

동화라...

' 선검이 내 팔이라고 생각해 볼까.'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기공수련은 아주 오랫동안 해 왔기에 여동빈의 말에 즉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검과 이어진 기혈에 집중해서 선검을 마치 내 팔처럼 여기게끔 노력했다. 그러자 잠시 후 나는 눈을 반개하면서 집중력을 높이게 되어 선검을 들고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체감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스!

여동빈이 내 상황을 보더니 말했다.

" 좋다. 그 상태에서 선검으로 원을 그려라."

우웅

나는 아까 여동빈이 한 것처럼 원을 그려 보았다. 하나의 원을 그리는 게 끝났으나 여동빈이 계속 나를 쳐다보았고, 그 무언의 압박에서 계속해서 원을 그리라는 뜻을 알아챈 나는 계속해서 허공에 원을 그려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백여 개 이상의 원을 그렸을 때 여동빈이 말했다.

" 기초수련은 이런 식이다. 선검과 심혈을 연결시킨 채 하루에 최소한 일백 개 이상의 원을 그리도록 하라."

" 이 수련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 아까 그대가 선검을 구현화하는 방식이 일개 강기를 불어넣은 철검과 다르지 않다 말했을 것이다."

" 그랬지요."

" 이는 선검의 숙련도를 높이는 수련이다. 선검을 신외지물(身外之物)이나 일개 소환무기로 다뤄서는 결코 그 진수를 맛볼 수가 없으니, 최대한 스스로와 일체화시켜서 자신의 몸처럼 다뤄야만 한다."

그렇군!

여동빈의 방식은 무기술에서도 종종 쓰이는 수련법이었기에 나는 즉시 무슨 말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또한 이 수련이 간단해 보여도 아주 끈덕지고 귀찮도록 수련해야만 하는 방식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숙련도를 자신의 몸에 붙이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번 이상의 구차한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동빈의 말이 이어졌다.

" 숙련도가 일정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선검에 날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 날... 이라고 하시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도 소환된 선검에는 멀쩡히 날이 달려있지 않은가? 실제로도 나는 이 선검술로 온갖 유형의 사물을 벤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동빈은 고개를 저었다.

" 그대의 선검은 아직 날이 서 있지 않다. 진정한 선검은 그 예기(銳氣)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걸 벨 수 있다."

" ......!!"

문득 나는 신투지존에게서 배웠던 만상지투(萬象之偸)의 원리가 생각났다.

존재하지 않는 걸 훔친다.

존재하지 않는 걸 벤다.

비슷하지 않은가?

나는 여동빈에게 말했다.

" 사실 저는 신투지존에게 만상지투라는 수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 원리가 검선께서 말한 것과 왠지 비슷합니다."

여동빈은 내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 ... 어떤 것인가. 한 번 펼쳐보아라."

" 네."

타닷!

나는 여동빈에게 달려들어서 만상지투로 그의 기력을 훔치려고 해 보았다. 가장 일반적인 사용법이었으며 무형의 존재를 훔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여동빈을 지나쳐서 만상지투를 시전한 순간이었다.

츄와악!

" 크헉!"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만상지투가 거의 성공한 순간, 갑자기 찰나지경에 내 손목이 반토막나서 허공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경악해서 눈을 부릅떴을 때, 여동빈이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잘리지 않았다."

" ......"

나는 눈을 꿈벅한 후 다시 내 손목을 살폈다. 여동빈한테 걸려서 일검에 손목이 날아간 줄 알았는데 멀쩡히 붙어 있었다. 다만 신경이 안 통하는지 힘을 주어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고 아직도 잘려나간 느낌이 들었다.

' 젠장... 손목이 잘린 것 같아.'

등골이 축축해져서 멍하니 서 있자 여동빈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 신투지존. 그 또한 심검지도(心劍之道)와 유사한 경지를 개척해나간 모양이구나."

" 심검... 이라고요?"

" 그렇다."

여동빈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방금 그대는 마음의 손을 뻗어 내 기(氣)를 훔치려 했다. 그건 틀림없이 무형의 존재에 손을 뻗어서 간섭할 수 있는 절대지경이다. 훌륭한 수법이지만, 나는 방금 전 그 마음의 손을 마음의 검으로 벤 것이다."

" ......!!"

" 그 수법에 고하는 없으니, 신투지존 본인이었다면 내게서 기를 훔칠 수도 있었겠지."

중얼거린 여동빈이 말했다.

" 백웅이여. 선검의 날을 세운다는 건 심검(心劍)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 그, 그렇군요."

" 그대는 이미 만상지투를 익혔으니 기초수련을 열심히 하면 머지않아 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리라."

나는 이제서야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었다.

' 도둑들의 심검지경이 바로 만상지투였던 거야!'

또한 여동빈은 선검술을 수양하다보니 심검을 깨닫게 되어 자신의 절대지경을 연마하게 된 것이리라. 나는 무학의 갈래가 극한에서 서로 통하는 걸 보자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나는 의욕이 붙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 심검을 쓸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인과를 축적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원의 이치를 깨달아 선검을 통해 축적하는 것이다."

" 축적단계에서는 어떤 수련을 하지요?"

" 그대가 원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말해봤자 소귀에 경읽기다. 우선 기초수련을 다 마친 후에 이야기하겠다."

" 음, 알겠습니다."

매몰찬 느낌도 들었으나 무예수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여동빈의 말에 납득했다. 초보자가 아무리 고급단계 설명을 들어봐야 결국 숙련도가 쌓이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여태껏 무공수련을 하며 깨달은 것이다.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해봤자 무의미한 게 바로 무술의 세계였다.

' 어차피 선검술은 당장 대성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야. 최소한 몇 년은 걸릴테니 꾸준히 수련을 해야겠어.'

나는 여동빈에게 배운대로 앞으로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고는 마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 여동빈. 신투지존에 대해서 여쭤볼 게 있습니다."

" 물어보라."

" 사실 저는 그가 천 년 전에 헌원검을 찾아서 외차원이라는 이계(異界)로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번에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돌파하려는 것도 결국 그 수해의 끝에 외차원의 문이 있기 때문이지요."

" ......"

" 또한 저는 신투지존의 시련을 통과해서 그에게서 수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만상지투를 익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여동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신투지존은 어째서 그렇게나 헌원검을 얻고싶어 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가 무신의 좌(座)를 갖고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 ... 2가지나 물어보는군."

" 왠지 알고 계실 것 같으니까요."

지금까지 전생하면서 얻은 정보로 볼 때 여동빈과 장삼봉은 틀림없이 무신의 좌를 지니고 있는 주인이었다. 어찌보면 신투지존과 동격이라 할 수 있으니, 신투지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아는 바가 있으리라는 추측은 당연히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동빈에게 연속해서 질문했다.

" 신투지존은 자기자신이 최고의 도둑이라 생각하며 딱히 무인(武人)이라 생각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도둑이자 대도(大盜)라고 확립한 사람이었습니다."

" ......"

" 무신의 좌란 궁극의 경지에 달한 무인만이 도달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까? 스스로를 도둑이라 생각하는 자조차도 무신의 일좌를 차지한다면, 그 기준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게 제일 궁금한 점이었다.

신투지존은 물론 속세의 무림에 나온다면 틀림없는 절대지경의 초고수이며 세상에서 손가락에 꼽힐 절대자였다. 그러나 그 무공실력과는 별개로 그는 무공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도둑질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투지존이 무신의 좌에 들어가 있는 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신은 궁극의 무인들만을 무신의 좌에 초대하는 게 아닌건가?

내 질문에 여동빈이 대답했다.

" 그대의 말은 착각이라고만 말해 두겠다."

" 착각이라고요?"

" 무신이 무신의 좌에 궁극의 무림인만을 초대한다는 그 어떠한 근거도 없으며 그저 그대의 추측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 ... 그건 그렇지만."

" 그대는 무(武)가 무엇인지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린 듯 하군. 그러면 무인(武人)이란 무엇인가."

" 무예를 수련해서 경지에 도달한 자입니다."

" 어리석은 대답이다."

" ......"

뭐라고!

당연한 대답이 틀렸다고 하자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여동빈은 내 기분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인간은 태어나서 늙어죽을 때까지 백여 년간 무예를 수련한다. 타고난 수명의 한계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명이 일만 년인 이종족(異種族)이 일만 년 동안 무예를 수련한다면, 더욱 오랫동안 수련했기에 더욱 훌륭한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백 배는 더 훌륭한 무인인가?"

당연히 그건 아니다. 나는 감정을 추스리며 대답했다.

" ... 무예에 있어서 수련한 기간이 꼭 그 사람의 가치를 말해주는 건 아닙니다."

" 잘 알고 있군. 그러면 검을 잡은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는 무인이 아닌가? 그 자는 무신의 좌에 들어갈 가치가 없는가?"

" ......"

어렵다.

" 이는 모든 무예인이 평생을 걸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무(武)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지..."

그렇게 말한 여동빈이 말을 이었다.

" 신투지존은 사실 무신의 좌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 도둑이기 때문입니까?"

" 그게 바로 착각이다. 도둑이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인해, 그는 원래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그 자가 무(武)를 깔보는 자세와도 상관없다. 그러나 무신은 신투지존 또한 좌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던 것이다."

" .......?"

그 문제가 뭐지?

여동빈이 말했다.

" 그대가 만일에 외차원을 돌파하여 신투지존을 만난다면, 반드시 명심할 것이 있다."

" 무엇입니까?"

여동빈이 진중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 그가 헌원검을 얻고싶어 한다면 그건 단지 도둑의 지존으로써 얻어야 할 명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그 자신의 문제일 터이니, 그 점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뜻밖의 말에 흠칫했다.

" 자기자신을 위해 헌원검을 얻고싶어 한다고요?"

" 그렇다. 그대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다."

" 으음..."

신투지존이 자기자신을 위해서 헌원검을 얻으려 하는 거라고?

그가 무신의 좌에서 얘기했을 때는 전혀 그런 어투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여동빈이 한 이야기가 훨씬 신뢰가 갔기 때문에 나는 여동빈의 이야기를 앞으로 지침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파앗

그 때 급히 망량이 공간이동의 술법을 써서 파천일월선을 손에 든 채 나타났다. 그가 급하게 외쳤다.

" 백웅! 수련은 끝났소?"

" 아직 안 끝났소만..."

" 미안하지만 수련은 다음에 해야할 것 같소. 급히 따라와 주시오."

나는 아쉬운 눈으로 여동빈을 쳐다보았다. 며칠동안 시간을 잡고 수련한다면 여동빈에게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일이었다. 나는 여동빈에게 포권했다.

"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파앗

나는 망량을 따라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바로 대명제국의 황궁이었다. 나는 의아해서 망량에게 말했다.

" 망량. 갑자기 황궁에는 왜 온 것이오?"

" 오행의 금(金)이 소멸된 여파로 황궁의 [옛 지배자]가 현세에서 영향력을 놔버리고 말았소. 떠나버렸다는 소리요."

" ......?!"

" 복마전과 그 세력은 앞으로 최소 백 년 간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오. 사교단의 괴멸이지."

뭐라고?!

복마전의 관리자가 이 세상에서 떠나버렸다고?!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 그게 무슨 소리요? 두 가지 일이 무슨 관계가 있소?"

"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세상의 인과율이 뒤틀리면서 황궁의 [옛 지배자]가 이 세상에 간섭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모양이오. 손해를 본다면 계속 간섭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 물러난 거겠지."

" 으음, 오행의 요소가 사라진 것만으로 그런 효과가..."

" 세상의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 법. 오행의 한 축이 소멸한 거라면 충분히 그만한 영향을 미치게 되오."

" 아무튼 그래서 뭐가 문제요?"

" ... 두 가지 문제가 있소. 한 가지는 황궁의 [옛 지배자]가 떠남으로써 황도 낙양을 지탱하고 있던 강대한 마력이 사라졌고, 그 때문에 낙양의 대결계가 크게 약화되어버렸다는 말이오."

" 으음...!!"

" 다만 이건 당장 큰 영향을 미칠 문제가 아니오. 스승님의 사도인 내가 결계를 더 강화하면 되는 문제니까. 진짜 문제는..."

망량은 이를 악물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이 일을 빌미로 흉신(凶神)이 지금 중원에 강림하려 하오. 백웅 당신이 전욱의 사도로써 새롭게 낙양을 장악해서 흉신을 견제해줘야만 하오!"

" 뭣..."

"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오."

번쩍

그 순간 괴영(怪影)이 번개와 함께 동쪽 하늘에 비친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러나 이윽고 나는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

잘못하면 흉신과 직접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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