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902화 (90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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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망량의 제안에 세 명의 오제는 잠시 시선을 교환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전욱이 말했다.

[ 복희가 봉인된 장소를 알고 하는 말이겠지.]

"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 우리도 알고 있는 장소다. 그러나 쉬이 갈 수 없는 곳이지.]

" ......"

[ 너희를 어떻게 처우할지는 우리가 논의해보고 결정하겠다. 너희는 천계의 상황을 정리하고, 우리가 강림할 수 있는 인과율을 좀 더 만들어두어라.]

" 알겠습니다."

[ 사도여,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휘잉!!

그 말이 끝나자 세 명의 오제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그들의 본체는 물론이고 가득 불러냈던 졸개들을 모조리 소환해제한 것이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지라 놀라웠다. 그리고 전욱의 강림이 풀리면서 나는 다시 육체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화르륵

전욱의 신화(神化)가 풀리면서 내 몸에 겹겹이 쌓여있던 시꺼먼 화염이 마치 부스러기처럼 떨어졌다.

' 힘의 총량이 늘어났다.'

나는 힘의 잔향을 다 털어내자 음신지력이 이전보다 삼 할 정도는 더 강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욱이 직접 강림하면서 내게 본체의 음신지력을 눈꼽만큼 주고 갔는데 그 덕분인 듯 했다.

삼황오제가 모두 물러나자 전욱의 방어막이 풀렸고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동료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그들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후우. 다행이군."

" 백웅 님, 괜찮으신가요?"

" 괜찮소. 그보다 저쪽은..."

중화팔선이 어느 새 방어막에서 나와서 내 앞에 와있었다. 그들 또한 얼떨결에 함께 보호받게 되었기에 삼황오제의 격렬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중화팔선은 모두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종리권이 말했다.

[ 백웅이라 했는가? 그리고 망량... 그대들은 신의 사도가 되었군.]

나는 옆에 있던 망량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서 종리권의 말에 대답했다.

" 그렇게 되었습니다."

[ 보다시피 천계는 이미 멸망했다 할 수 있네. 방금 전의 대결에서 천계가 반파당했고 수많은 신선들이 소멸했네. 남은 신선들을 찾아봐야 하겠으나 그리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네. 뿐만 아니라 십이대선도 상당수가 소멸하거나 이탈했고 사어가 모두 사라졌으니...]

" ......"

[ 그대들은 인간종족을 위해 천계를 기어코 멸망시키고 말았군...]

종리권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약간 양심의 가책이 생기는 걸 느꼈다.

' 쩝...'

따지고 보면 그들은 아무런 죄도 없었는데 서왕모의 음모를 분쇄하다보니 온갖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팔선은 신선이었지만 인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던 대영웅이기도 했기에 미안한 감정이 안느껴질 순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털며 말했다.

" 원시천반이 남아있으니 잘 이용하면 천계 곤륜산이 지상에 추락하는 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어가 없더라도 신선들의 힘은 그들에게서 근원하는 게 아니니 앞으로 하시기 나름이겠지요."

[ 원시천반의 소유자는 현재 자네일세. 원시천반을 써서 천계를 구해줄 생각인가?]

" 그럴 생각입니다."

[ ... 고맙네.]

종리권의 옆에 있던 장과로가 말을 받듯이 입을 열었다.

[ 우리 팔선은 앞으로 남은 천계 신선들을 인솔하여 영주산(瀛洲山)으로 갈 것이네. 그때까지만 우리를 도와주게...]

" 영주산이라면 삼신산(三神山)이군요. 그게 어디에 있습니까?"

[ 다른 삼신산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이계(異界)일세. 조국구(曹國舅)의 술법을 쓰면 갈 수 있지.]

그렇게 대꾸한 장과로가 망설이다가 문득 망량을 쳐다보았다.

[ ... 묻고싶은 게 있네. 정말로 그대들은 삼황 복희님을 죽이러 갈 생각인가?]

망량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 그래야 합니다. 전욱과의 약조이니까요."

[ 하아... 정녕 그래야 하는가...?]

장과로가 탄식하며 말했다.

[ 이 세계에 '술법(術法)'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복희 님이 존재하기 때문일세... 술법이란 문명의 불꽃(火)이나 다름없는 것. 그 분이 사라진다면 술법은 그 순간 이 세계에서 소멸하고 말 것일세. 마법과 동격 이상의 체계인 술법은 오로지 복희 님의 권능이네. 그렇기에 인간이 이족(異族)과 마(魔)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창이자 방패가 사라진다는 말이네.]

" ......"

[ 나약한 인간종족이 과연... 오행이 일그러진 세계에서 술법도 없이 생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부디 다시 생각하게.]

장과로는 명망높은 팔선답지 않게 간청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가 체면이나 말투를 가릴 때가 아닌 상황이기도 했다. 망량은 현재 망량선사의 사도였으며 나 또한 전욱의 사도이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정말로 삼황 복희와 여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간절한 건 장과로 뿐만이 아닌지 대부분의 팔선들이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예외라면 오로지 여동빈 뿐이었다. 여동빈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나와 망량을 쳐다보고 있었다. 팔선 중에서도 그만은 이 일에 그다지 감흥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여동빈은 복희가 죽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건가?'

내가 내심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망량이 입을 열었다.

"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삼황오제와의 약속을 어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닐 뿐더러, 다른 이야기를 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하군요. 다만 최악의 상황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알았네.]

그리고 우리는 사후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중화팔선은 천계를 돌아다니면서 생존한 신선들을 구조하고 모으기 시작했고, 우리는 원시천반에서 풀려났던 고대의 인간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고대의 인간들이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고 놀랐다.

' 사상자 하나 없다니?'

그들은 전장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여파로 인해 거의 다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천계가 반파당하는 거대한 충격 속에서도 자기자신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내가 내심 놀라고 있을 때 주 무왕(武王) 희발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 삼황오제가 소환되었더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이오?"

나는 고대의 인간들에게 상황설명을 간략하게 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고대의 인간들은 놀라워하며 수군거리는 기색이었고, 무왕 희발이 탄식하며 말했다.

" 그렇군... 여와이자 서왕모가 쓰러지고 천계가 멸망한 것인가!"

" 미처 보호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우리 자신을 챙기기만도 힘든 상황이었소."

" 아니오. 어차피 가만히 있었다 하더라도 전쟁의 여파로 원시천반이 부숴졌으면 우린 죽었을 것이오. 꺼내줘서 도리어 고맙소."

담담하게 대답한 무왕 희발이 말했다.

"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앞으로 당신들을 도와야 할 것 같군. 뭐라도 하겠으니 부디 도울 수 있게 해 주시오."

" 도와주겠단 말이오?"

" 삼황오제의 사도를 돕는 대신 생존을 도모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선택이 있겠소?"

" ......"

맞는 말이었다.

' 흠, 하지만 이들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역량도 정체도 불확실한 무릉도원의 고대인들이 아군이 된다 해도 확하고 체감이 오진 않았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성좌를 지닌 고대인 정도면 쓸 곳은 많이 있다. 쓸데없이 안되는 머리 쓰지 말고 그들은 내게 맡겨라."

" 제갈사."

" 그보다 망량이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군."

나는 망량을 쳐다보았다. 망량은 나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소. 따라오시오, 백웅."

" 알았소."

나는 다른 책사들에게 일행의 인솔을 맡긴 후 망량을 따라서 인적없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너진 협곡의 절벽 위에 선 망량은, 소용돌이치는 협곡의 강물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나 또한 그를 따라서 침묵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 후 망량은 품속에서 시꺼먼 부채를 꺼내더니 말했다.

" 백웅. 이건 본디 보패 오화칠금선이었소."

" 알고 있소. 하지만 아까 당신은..."

망량은 쓴웃음을 지었다.

" 들었던 대로요. 오화칠금선은 이제 파천일월선(破天日月扇)으로 진화했소."

" ......"

"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겠지만 이 부채에는 원래부터 파천의 가호가 아주 미량이지만 담겨 있었소. 스승님께서 내게 오화칠금선을 내려주시면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려주셨던 것이오."

" 파천의 가호가..."

" 그러나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스승님께서는 임시로 이 부채를 단말으로 삼아서 내가 스승님의 힘을 전해받을 수 있도록 하셨소. 본디 이런 식으로 사도를 만들 수는 없기에, 편법으로 사도로 각성할 수 있었던 거요. 나는 파천일월선이 없으면 파천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

" 그런가."

나는 망량의 설명을 듣자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오화칠금선.

그 보패에는 사실 파천의 가호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파천의 가호라 하더라도 과거에 내가 받았던 것처럼 압도적인 수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능성]과 [운명]을 아주 조금 조작할 수 있는 정도였으리라. 망량선사가 제자에 대한 애정으로 내려준 보패인지라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망량. 어째서 망량선사는 그렇게 급하게 당신을 사도로 삼은 것이오?"

" ......"

" 어째서인지 이번 생에서 망량선사는 당신에게 권능을 급히 내리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오지랖이 넓다는 게 느껴지오..."

내 말에 망량이 대답했다.

" 본디 스승님의 힘은 너무나도 위대한 것이라 인간같은 하위종족이 감히 쓰기에는 버거운 것이오. 사제가 스승님의 사도가 된다 하더라도 그 힘의 티끌조차 사용하기 힘들겠지... 하물며 내 경우는 말할 것도 없소. 솔직히 지금도 스승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기분이오. 하지만."

망량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 그럴만한 이유가 있소."

" 아까 말했던 [기어오는 혼돈]이라는 놈 때문이오?"

" 그렇소. 사실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있지."

그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 아까 삼황오제의 전투를 관전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여와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대비하고 있었소. 여와는 십중팔구는 부활의 수를 남겨두었을 것이고, 우리가 미호님을 기신으로 만듬으로써 그 방책이 막혔으리라 생각했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와는 시종일관 여유로웠지. 그건 틀림없이 또 다른 부활법이 남아있다는 뜻이었고..."

" 달기를 흡수해서 자신의 새 목숨으로 쓸 수 있었다는 말이군."

망량이 파천일월선을 접어서 손바닥 위에 얹었다.

" 바로 그거요. 본래 서왕모이자 여와에게는 두 번의 부활기회가 존재한다는 뜻이지. 그리 크지 않은 위기에서는 미호 님을 여벌목숨으로 사용하고, 본체의 위기에는 달기를 불러들여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오."

" 어이가 없군. 그럴거면 도대체 왜 달기를 금오도에 봉인했단 말이오? 그냥 천계에 봉인하면 될 것을."

" 그렇기 때문에 금오도에 봉인한 것이오. 날뛰는 달기를 일일이 다스리기 귀찮으니 십천군에게 관리를 맡겨버리고, 동시에 그 누구도 달기와 서왕모의 목숨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지."

" 아니..."

" 고대 은주대전 직후부터 서왕모는 완벽하고 철두철미하게 위기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오. 금오도에 설치되어 있던 달기 봉인결계에 처음부터 소환술식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오."

" ......"

" 허나 미호 님의 경우와는 달리 달기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부를 수 없게끔 되어있었겠지..."

망량이 말했다.

" 그리하여 우리는 달기를 소환해서 여와가 힘을 회복하려 할 경우, 달기의 소환을 차단하려고 대기하고 있었소. 나는 파천일월선의 힘을 바로 그 때 사용하려 했던 것이오."

" 하지만 당신은 중간에 나서서 삼황오제 전욱을 방해하고 여와가 도주하게끔 했소.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오."

" ... 그럴 생각이었소. 스승님께서 [파천의 가호]로 예지를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 예지?"

내 반문에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 최악의 미래가 보였소. 아까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 대신에 [기어오는 혼돈]이 끼어들었을 것이오. 그리고 끼어든 그 존재는 아마 균형을 맞춘답시고 오제를 없애거나 봉인시켜버렸겠지. 또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전멸을 맞이했을 것이오."

" 뭣...!!"

"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여와를 탈출시키고 몰아잡는 게 나았소. 어차피 그녀가 태초부터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삼황 복희를 찾아갈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으니."

" 이, 이해가 안 되오. 그 놈이 왜 끼어들지?"

나는 혼란스러워서 반문했다.

" 그 놈은 여와의 동맹이오? 그렇게 치면 애초부터 여와를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하단 소리인데..."

" 아니오. 여와와 명목상 동맹이겠으나 실질적으로는 방관자... 정확히는 유희(遊嬉)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겠지. 그리고 전욱을 비롯한 오제 셋이 여와를 죽여서 잡아먹는 전개를 그리 마음에 안들어했을 가능성이 높소."

" 왜 마음에 안 들지?"

" 그것까진 알 수가 없소. 혼돈의 최고신성에 가까운 존재를 인간의 지혜로 추측하려 함은 무의미하오. 다만 스승님의 권능이 그에 필적할지도 모르니 미욱한 인간으로서는 스승님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씁쓸하게 중얼거리던 망량이 말했다.

" 달라지는 건 없소. 우리는 일시적으로 정비를 끝마치고 복희의 봉인지로 가서 복희와 여와를 없앨 것이오."

"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또 다시 그 혼돈의 존재가 끼어들지도 모르잖소."

"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까 전욱이 사라지면서 했던 말이 기억나시오?"

" 인과율을 모으고 준비를 하라고..."

" 그렇소. 아무리 상대가 최고신이라 하더라도 이쪽이 정당한 인과율을 사역하며 공략에 나선다면 결코 억지를 쓸 수 없소. 상대의 성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이번의 경우는 전욱이 과한 꼼수를 써서 너무 큰 이득을 봤기에 인과율상 끼어들 여지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오."

" ......"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 후우... 너무 어렵군. 지금 뭘 해야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소.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싶군."

망량은 격려하듯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달라지는 건 없소. 어차피 행선지가 같으니까."

" 그게 무슨 소리요?"

" 우리가 복희의 봉인지를 가려고 따로 채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오."

망량이 파천일월선을 접어서 자신의 품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 어차피 우리는 아오키가하라 수해로 가게 될 것이오. 그 [문]을 통과하면 두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게 되니."

" ......!!"

나는 망량의 말에서 뭔가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설마...!!

" 복희 또한 외우주에 있단 말이오?!"

" 맞소. 외우주가 바로 복희의 봉인지요."

망량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 이번 아오키가하라 수해 공략이야말로 아마 모든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다 마쳐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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