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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쓔웅
전욱의 암창이 쏘아져 나가자 여와가 눈빛을 발했고 그와 동시에 암창이 소멸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신의 감각으로 판단할 때는, 전욱이 [반드시 명중하는] 인과율의 왜곡을 걸었으나 여와가 그걸 다시 취소시킨 듯 했다.
그리고 제곡이 전욱의 공격 직후에 기이한 언령을 발했다.
[ 근원에서 태어나라!]
쿠구구구궁
제곡이 여와의 발 밑을 가리킴과 동시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대지가 크게 울렸다. 기이하게도 보통의 지진과는 다르게 아주 깊은 심연에서부터 공진(共振)이 일어나는 듯 했으며 그 여파가 잠시동안 행성 전체를 한 바퀴 휘도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기둥같은 게 천상을 향해 치솟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콰지직!!
구름을 꿰뚫고 성장한 기둥, 그것은 바로 나무였다!! 그 크기와 두께가 일반적인 나무와는 격을 달리했으며 산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수십 개의 거대목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며 잠시 후 숲을 형성하는 듯 했고 그 기세는 산맥이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아 보였다. 여와는 제곡의 술수를 보더니 눈에 기광을 발하며 말했다.
[ 도를 넘는구나... 이 조그마한 세계의 핵을 먹어치우려는 것인가.]
[ 어차피 그대가 인과를 조작해서 되돌릴 수 있지 않은가?]
[ 어리석은 놈...]
쿠구구구
잠시 후 나는 전욱을 통해서 제곡이 어떤 술법을 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혼돈의 심목(梣木)을 소환한 거구나!'
혼돈의 심목은 외우주, 즉 머나먼 저편의 심연에서 자란다고 일컬어지는 나무이자 괴생명체였다. 혼돈에서 태어난 생명체로써 무한히 뭔가를 먹어치우고 자라는 특성이 있었다.
여러모로 세계수와 비슷해 보였으나 완전히 다른 게, 세계수는 안정되게 자라서 절대적인 힘의 근원지가 될 수 있었으나 혼돈의 심목은 결국 자기자신의 생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멸하게끔 되어있는 마물(魔物)이었다. 격으로 치면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그 파괴적인 힘은 행성도 부술만큼 강력하긴 했다.
또한 제곡은 심목을 소환해서 거기서 힘과 인과율을 임시로 빨아들여서 자신의 힘을 보충하려는 속셈이었다. 얼핏 좋은 전략같아 보였으나 이렇게 되면 결국 심목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계를 완전히 망가뜨려서 회생불가능으로 만들 게 분명했다. 제곡은 천계의 유지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심목의 술수를 여와가 인과율 조작으로 철회시킨다면 그 또한 여와의 힘을 낭비시키는 것이므로 좋았다.
거대한 힘의 흐름이 기이한 환영을 만들어내며 심목을 통해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대하(大河)와 같은 그 흐름은 천계의 힘이었다.
혼돈의 심목에서 오제, 소호 금천이 힘을 빨아들였다. 천공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는 우주붕조의 한 쌍의 눈이 무감정하게 번들거렸다.
성단멸우
쿠콰콰콰쾅
다시 한 번 성단멸우가 쏟아지자 이번에야말로 천계는 반파된 듯 했다. 겨우 삼황오제끼리 몇 번의 충돌이 일어났을 뿐인데 천계라 불리는 중간세계가 파멸지경에 이르는 모습은 비현실적일 정도였다.
여와는 성단멸우를 막아내더니 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 좋다... 세계를 만든 것이 여라면 거두는 것 또한 여의 몫이 되리라.]
문득 천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천지를 떠받치는 오색의 돌이여, 나 주인으로써 너희를 거두노라.]
키이이잉
여와의 손 위에 다섯 가지 빛깔을 지닌 보옥(寶玉)이 소환되었다. 막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전욱이 여와를 보자 흠칫해서 외쳤다.
[ 잠깐! 무슨 짓을 하는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전욱은 그 답지 않게 당황하는 듯 했다. 그 반응은 전욱 뿐만이 아닌지 제곡과 소호조차도 움찔하며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 음... 아니...]
[ 여와. 진정하시게.]
방금 전까지 신나게 공격하던 자들 답지 않게 여와의 행동에 움츠러든 듯 했다. 여와가 냉막하게 대꾸했다.
[ 너희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여 또한 마찬가지다. 어디 끝까지 가 보자.]
[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우리끼리의 싸움으로 끝내야하지 않은가.]
[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자, 간다.]
오색의 보옥 중 청색의 보옥이 하늘로 떠올랐다. 여와는 그 청색의 보옥을 지긋이 쳐다보더니 언령을 외웠다.
[ 목(木)이여, 이 세상에서 사라질 지어다.]
창세신(創世神)의 업(業)
오행환원(五行還元)
번쩍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땅에서 천계의 영력을 퍼 올리던 혼돈의 심목이 쪼글쪼글해지더니 급격히 노쇠한 것이다. 하늘을 꿰뚫던 심목의 줄기가 말라비틀어져서 땅에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세계에 비통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게 들렸다.
크어어어어
우어어어어어
' [옛 지배자]들의 울음소리?'
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살던 지배자들이 잔뜩 항의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예전에 창힐이 신격의 전쟁을 치를 때 봤던 광경이기도 했다. 그 때는 창힐이 잔뜩 반발을 사서 결국 권능까지 봉인당하는 결과가 생겼던 기억이 났다.
전욱이 말했다.
[ 여와여. [옛 지배자]들이 그대의 폭거에 분노하고 있다. 이 세계를 이루는, 아니 우주의 법칙에 관여하는 오행의 목(木)을 소멸시킨 행위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입었다.]
[ ......]
[ 그대가 지배자들의 손에 제거되기를 바라지...]
그랬다.
여와는 지금, 이 행성 뿐만 아니라 은하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행의 법칙을 건드려서 그 요소 중에서 목(木)을 영구히 제거해버린 것이다. 도저히 인간의 술법경지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예전에 제곡이 이 행성일대에서만 오행을 금지시킨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앞으로 이 세계에서 목(木)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건 단순히 나무 뿐만이 아니라 오행에서 목에 속하는 모든 자연요소와 법칙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여와가 자기 앞에 소환한 것은 태초에 만들어진 오색의 보옥이자 이 세계 오행의 상징이었다. 청색의 돌은 목을 상징했고 붉은색의 돌은 화(火)를 상징했으며 백색의 돌은 금(金), 흑색의 돌은 수(水), 황색의 돌은 토(土)를 상징했다. 저 다섯 개의 보옥이 있으므로 물리법칙이 멀쩡히 돌아갈 수 있으며 만물이 생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와는 그 중에서 청색의 돌, 목(木)의 오행을 제거해 버렸고 그 때문에 우주의 법칙이 크게 뒤흔들린 것이다.
제곡 또한 노한 듯 말했다.
[ 여와여! 오색의 신옥(神玉)은 그대가 관리하는 것이지만 그대가 맘대로 다뤄도 될 것이 아니다! 그걸 건드리는 순간 우리는 모든 명분을 잃고 전우주의 [지배자]와 적대하게 되거늘, 무슨 짓인가!]
여와가 조롱하듯 대꾸했다.
[ 제곡... 초조한가? 네가 창조한 목요(木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테니 걱정 말거라.]
[ 후후, 차도살인이 가능해졌으니 되려 좋구나!]
성나게 대답한 제곡이 힐끔 천공에 있는 소호 금천을 쳐다보았고, 금천이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
[ 여와할머니, 경고하지. 앞으로 한 개의 신옥이 더 부숴질 경우 우린 더 이상 지배자들의 항의를 막지 않겠다. 모든 것의 혼돈을 원하지 않는다면 싸움의 법칙을 지켜라. 오행 2개가 영구적으로 사라진다면 우주 전체가 뒤틀릴 수도 있다.]
[ ......]
[ 노인공격이 아프면 좀 살살 때릴 의향도 있어.]
여와는 대꾸하지 않았다.
제곡과 소호가 싸우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여와를 살살 어르는 걸 보면 오행의 신옥이 파괴되는 건 삼황오제측에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인 듯 했다. 반면에 전욱은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 생각보다 대단하군. 아직도 위기상황이 아니란 건가... 과연 삼황이다.]
전욱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슈슈슉
잠시 후 전욱이 암창을 수백 개나 소환하며 말했다.
[ 여와. 본좌는 그대가 끝까지 가는 성격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 전욱, 여를 얕보는 것이냐?]
[ 아니. 이 인간과 그 동료들이 그대의 성격을 분석한 결과지... 본제는 그대가 오행의 보옥을 부순 것도 그저 위협이며 냉철한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는 아직도 밑바닥을 들여다볼 생각이 없는 것이다.]
[ ......]
[ 본좌,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 기왕 끝까지 가기로 한 거라면 미련따위 놓아주마.]
퓨우우웅!!
암창이 일제히 여와를 공격했다. 여와는 지금까지처럼 권능을 발현해서 전욱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나, 갑자기 전욱이 외쳤다.
[ 지금이다!]
그 순간 전욱이 발사한 암창 중에서 두 자루가 난데없이 변신했다. 그들은 바로 전욱의 양팔이라고 할 수 있는 축융과 열이었으며, 그들은 여와의 지근거리에서 신력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 죽어라!]
여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 고작 이딴 기습으로... 개죽음이다!]
파앗
여와가 손을 휘두르는 순간 축융과 열의 몸뚱이가 멈췄다. 삼황 여와는 설령 그들만한 마신(魔神)이라 하더라도 멈춰버릴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욱은 냉담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손을 꾸욱 말아쥐었다.
[ 잘 가라, 내 충신들아!]
쿠콰쾅
[ ......!!]
축융과 열의 몸이 일제히 폭발했다. 그리고 여와는 신격의 폭발까지 상처없이 막아낼 순 없는 듯 비틀거리며 존재가 잠시 흐릿해졌다.
그러나 전욱이 노린 것은 그런 부상 따위가 아니었는지, 여와가 잠시 후 경악한 듯 외쳤다.
[ 아... 아... 아... 아니....]
[ 그대가 망설일까봐 내 충신들의 목숨을 바쳤노라.]
[ 안돼!!!]
파지직
폭발의 흔적에서 보옥의 조각이 부숴져서 흩날리고 있었다. 부숴진 것은 백색의 돌과 황색의 돌이었고, 2개의 오행인 금(金)과 토(土)가 소멸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만귀전 양대신격의 자폭 때문에 오행의 3요소가 사라진 상황.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곡과 소호가 경악해서 외쳤다.
[ 전욱!!!]
[ 무슨 짓을 한 거냐!!]
전욱은 두 명의 항의에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 어차피 우린 초월적 존재라서 오행의 소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의 힘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 미친소리 하지 말라!! 이 일은 인과율의 붕괴를 의미하니, 우린 이제 인과율의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모든 [옛 지배자]의 공적(共敵)이 되어서 도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 역풍은 없다. 왜냐하면 오행신옥의 원 관리자는 여와였으니까 결국 그녀의 관리소홀인 셈이지.]
전욱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자, 어떻게 하겠나? 이제 온 세계의 [옛 지배자]들의 저주가 그대에게 퍼부어질 것이다, 여와.]
[ ......]
[ 거기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우우우우우
잠시 후 천공 가득히 끔찍한 [옛 지배자] 수백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들은 예전에 창힐을 심판할 때처럼 무수한 주언(呪言)과 마력(魔力)을 토해내면서 여와에게 저주를 하기 시작했다.
[ *%&*#&%**%@ ]
[ *$#^&%*#&%$*&*@!! ]
후두둑
개 중 몇몇은 실시간으로 소멸되는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오행의 3요소가 사라진 여파 때문에 뜬금없이 소멸해버리는 [옛 지배자]도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초월적 힘이 부족한 하급 지배자인 경우이리라.
쩌엉!!
잠시 후 여와의 몸에 빼곡하게 칠흑의 저주가 쐐기처럼 박혔다. 지구에 머물고 있던 모든 지배자들이 한꺼번에 여와에게 저주를 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무리 여와가 최상급 신격이라 해도 이를 감당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게 분명했고, 여와는 아니나 다를까 비틀거리면서 큰 피해를 입은 모습이었다.
[ ......]
오제의 판정승처럼 보이는 상황이었으나 제곡이나 소호는 결코 표정이 좋지 않은 듯 했다. 제곡은 원독어린 시선으로 전욱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 우리 또한 앞으로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놈과 무한히 싸워야 할 운명이 되고 말았다. 과거 이상으로 귀찮고 번거로운 상황이다. 가면을 벗지 못한다면 나 제곡의 이름을 걸고 전욱 너를 반드시 해치우고 말겠다.]
전욱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 마음대로 하도록...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삼황을 해치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게 더 무책임한 듯 싶군.]
소호가 말했다.
[ 각자 창조한 칠요는 챙겨가도록 하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옛 지배자]와의 협정은 모두 무효일 테니.]
[ 알아서 하게.]
[ 흠, 어디보자 금요가 어디있었지...]
이윽고 소호가 거대한 눈동자를 꿈벅이며 당황했다.
[ ... 엉? 내가 만든 전국옥새가 왜 저 놈한테 있어? 어떻게 된 거지.]
[ ......]
[ 되찾아야겠군! 제길... 귀찮게!]
아무래도 전국옥새를 선지자한테 공양한 일 때문에 소호가 당황한 듯 했다.
소호가 당황하든 말든 전욱은 다시 한 번 암창을 소환했다. 그는 저주에 걸린 여와를 싸늘하게 쳐다보더니 여와의 명줄을 끊기 위해 암창을 내던졌다.
[ 죽어라, 여와.]
퓨웅
퍼억!!
암창은 저항할 힘이 사라진 여와의 목에 박혔다. 여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천천히 뒤로 쓰러졌는데, 그 모습은 완전히 여와의 몰락처럼 보였다. 여와의 몸이 쓰러짐과 동시에 전욱을 포함한 세 명의 삼황오제는 그녀의 시신 근처로 다가갔다.
대지에 자신을 상징하는 은빛의 붕조를 화신으로 소환한, 소호가 말했다.
[ 아무리 강한 저주라 해도 신살의 능력은 없으니 그녀의 영육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맛있는 신성을 먹을 수 있을 것이오.]
[ 여와를 잡아먹은 다음에는 만신전에 쳐들어가야겠군.]
[ 당연하지. 황제는 더 맛있을 것이오.]
[ 여와는 창세와 함께 태어난 신격. 그녀를 먹으면 응룡과 구천현녀라 해도 쉽게 때려잡을 수 있을 게 분명하오.]
그들에게 더 이상 황제나 만신전에 대한 경애같은 건 없었으며 식탐만이 존재했다.
세 명의 제왕이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까지 전욱의 방어막 내부에서 전투의 여파를 피하고 있던 망량이 앞으로 뛰쳐나오더니 외쳤다.
" 울어라, 파천일월선(破天日月扇)!!"
슈아악
망량의 손에 들려있던 오화칠금선은 허공에 휘둘러지는 순간 새까만 색깔로 변했고, 새까만 선신(扇身)이 기이한 파장을 내뿜었다. 동시에 부채의 주변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 ......?!]
[ 아니?!]
[ 어떻게 이런 일이...]
놀라운 일이었다. 망량이 파천일월선을 휘두르자 삼황오제의 셋이 갑자기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치 인간을 우보법으로 잡아둔 듯한 모습이었고 심지어 전욱이나 제곡 등은 권능조차 발휘할 수 없는 듯 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지상에 소환한 화신을 오제 소호가 회수했지만, 소호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삼황오제 특유의 강대한 권능으로 망량을 찍어누르거나 죽이는 행위를 전혀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소호가 크게 당혹했다.
[ 너... 너는... 도대체 무슨 힘을 쓰고 있는가? 태초 이래 이런 권능은 본 적이 없다...]
그렇다.
망량은 지금 이 순간 삼황오제를 속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어,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망량이 저 정도 능력이 있었던가?
아니 그걸 따지기 이전에 삼황오제를 술법으로 구속하는 게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신급 술법이라면 삼황오제에게 타격을 주는 것까지는 가능했으나 이런 형태의 구속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망량의 지금 술법은 말 그대로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 크흑! 으윽."
망량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입가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어서 정상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눈가에서 피눈물을 한 줄기 흘리던 그는 재빨리 파천일월선을 허공으로 내던지더니 외쳤다.
" 오행의 신옥이여, 불확정성의 허공록(虛空錄)이 명하노라. 그 파쇄기록을 삭제한다!"
부웅
그 순간, 파괴된 오행의 신옥 중에서 두 개가 복원되었다. 오행의 목(木)과 토(土)를 상징하는 두 개의 신옥이었다. 그러나 금(金)의 신옥을 되살리는 데는 실패한 듯 망량은 크게 토혈했다.
" 우우욱. 여, 역시 우주의 법칙을 통째로 되돌리는 건... 아무리 스승님의 힘이라도. 아니... 이건 내가 인간이기... 때문인가. 쿨럭!!"
그는 중얼거린 후 무릎을 꿇고 한참동안 피를 토했다. 선명한 내장혈까지 보일 정도였기에 그의 명줄에도 영향이 간 게 분명했다. 망량은 이내 정신을 차리면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여와의 시신을 향해 외쳤다.
" ... 여와여, 도망치시오!! 지금이라면... 달기를 불러들여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오!!"
피잉!!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 저편에서 하나의 혼(魂)이 날아오더니 거대한 여우의 형상을 띄었다. 그 여우는 물론 미호가 아니었으며, 금오도에 갇혀있을 달기의 형상이 분명했다. 달기는 그대로 여와의 시신으로 뛰어들었고, 빛과 함께 여와가 갑자기 눈을 떴다.
번쩍
여와는 섬광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전욱은 노한 눈빛으로 망량을 쳐다보며 말했다.
[ 사도여. 이게 무슨 짓이지? 네놈은 여와가 달기를 불러들여서 그 힘으로 회생하는 걸 막으려고 대기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 ...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망량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방금 전 스승님께서 미래의 나뭇가지를 읽으셨고... 또 다시 [기어오는 혼돈]이 개입하는 미래가 보였으니... 이게 최선이라 판단하셨습니다... 이대로가면 모두가 파멸하기에... 저는 스승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전욱이 껄껄 웃었다.
[ 후후... 겁도 없구나. 그리고 주제를 모르는구나.]
" ... 스승님의 힘으로 오행의 신옥을 회복시킨 것 또한 과(過)라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오행의 3옥이 파멸했다면... 세계는 열흘 내에 멸망했을 겁니다."
[ 본제는 이미 그 파멸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일로 용서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전욱이 눈에서 광망을 흘렸다.
[ 망량선사의 사도여. 아둔한 선택의 대가로 너와 네 동료들은 억겁의 세월동안 지옥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 ......"
[ 망량선사의 권능이 대단하긴 하나 너 따위가 그 힘을 제대로 살릴 순 없으리라.]
사도?!
망량이 망량선사의 사도가 되었단 말인가!!
" 쿨룩!!"
망량은 전욱의 말에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여와를 그냥 놓아준 게 아닙니다... 그녀를 반드시 잡을 수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 넌 이미 우리를 배신했다.]
" 배신이 아닙니다... 여와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운명의 고리... 타고난 운명의 인연이 단 하나 남아있음을 알고 계실 터..."
전욱이 흠칫했다.
[ ... 설마.]
" 그렇습니다."
망량이 비틀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 삼황 복희... 상처입은 여와는 틀림없이 그 곳으로 갔을 겁니다. 그 곳에서 삼황의 둘을 한꺼번에 잡으면... 만신전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