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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97화 (89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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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여와 강림!

그 일이 일어나게 되면 우린 모두 끝장이었다. 물론 지금의 서왕모 또한 여와의 힘을 거의 모두 끌어낼 수 있었으나 본체가 강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본체가 강림할 경우 문자 그대로 세계가 멸망하는 건 물론이고 최소한의 전투조차 성립하지 않으리라. 서왕모로 싸운다는 건 아직까지 인과율의 범주에서 싸운다는 뜻이지만 여와가 나선다는 건 인과율의 제약을 감수하고 우주를 오시하는 초월적 신성이 나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 뭔가 우리가 모르는 흉계가 있군."

" 제갈사! 무슨 소리야?"

" 서왕모는 지금까지 하려면 언제든 여와본체를 소환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이제 와서 소환한다는 건 이유가 분명히 있다."

" 인과율 때문에 손해를 입기 싫어서 망설인 것 뿐일수도 있잖아."

내 말에 망량이 대꾸했다.

" 백웅, 당신 말대로일 수도 있으나 숙부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오. 서왕모이자 여와의 성격을 파악했기 때문이오."

" 성격?"

" 지금까지의 정보로 추측하건대 여와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성격이오. 무모하게 나가는 척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결과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끼는, 그런 성격이오."

" ......"

"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적이오.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끝까지는 안 가는 성격인 것이오."

나는 망량의 말을 듣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여와 본체로 강림하면 인과율의 반동때문에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본체강림을 하려는 지금 상황... 그래도 손해를 안 입을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란 말이군!"

" 그렇소."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아무리 천하의 삼황오제라 해도 인과율은 어쩔 수 없을 터인데..."

내가 중얼거리자 제갈사가 말했다.

" 아직 여와의 패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금 해야할 건 저 결계를 파괴하는 것 뿐이란 거지."

" 음..."

쿠쿠쿠쿵!!

하지만 항우를 비롯해서 대존재들이 지금 다같이 힘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서왕모의 결계를 전혀 깰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몸에 두르고 있던 결계와 달리 모든 힘을 방어에 쏟아부은 탓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서왕모의 결계를 깰 가능성이 있는 게 구천현녀와 항우, 둘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구천현녀에게 외쳤다.

" 구천현녀 님!! 이제 그만 각성하여 전력을 다하십시오! 어차피 여와가 강림하면 우린 다 죽습니다!"

[ ......]

" 저 결계는 깨야 합니다!"

구천현녀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인간세상의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건가!

잠시 후 환한 빛과 함께 구천현녀의 몸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었고, 기이한 빛의 거인이 이 자리에 소환되는 듯 했다. 실제로는 구천현녀의 본질이 드러나면서 일요의 수호자로써 각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응룡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옆에 한 명의 선인(仙人)이 나타나 있었다. 일선일룡(一仙一龍)은 그들 사이에 황금빛 광채를 발하는 문을 두고 있었는데, 응룡이 기염을 토하며 구천현녀에게 영언을 날렸다.

[ 구천현녀여! 나 그대에게 황제 공손헌원의 명을 전하노라. 지상에 관여하는 걸 그만두고 만신전으로 복귀하라!]

[ ......!!]

[ 문을 준비해두었으니 속히 시행하라.]

세상에 이런 일이?!

난데없이 지금 와서 만신전과 응룡이 우리 일에 간섭한단 말인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구천현녀는 어느 정도 예상한 듯한 표정이었고 다소 체념해서 말했다.

[ ... 광성자(廣成子). 진실로 황제의 명령입니까?]

광성자라고 불린 응룡 옆의 선인은 어린 흑발의 소년이었다. 그 외모가 마치 수묵화에서 튀어나온 듯 수려하고 선기(仙氣)가 강했는데 황금빛 의관과 도복을 입고서 거대한 장(杖)을 왼손에 들고 있었다.

광성자는 무감정하게 대꾸했다.

[ 그렇소, 구천현녀.]

[ 삼황 여와가 강림하면 온 세상이 멸망합니다. 그런 황제의 뜻을 납득할 수는 없습니다.]

[ 그대가 납득하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소. 그대가 수호자로 각성하여 이 세계에서 싸우는 것 자체가 황제 공손헌원의 인과율을 낭비하는 것. 만신전의 소속인 이상 무의미한 낭비를 용납할 수가 없소.]

[ 무의미라고요! 탁록대전 이후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게끔 유예를 둔 것은 바로 황제 본인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자신의 뜻을 철회하는 것입니까.]

[ 내게 말해봤자 소용없소. 명을 듣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대를 제압할 수밖에 없으니 신중하게 결정하시오.]

[ 그런 명령은 듣지 않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장내의 모든 존재들이 광성자와 응룡에게 적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본디 응룡의 힘이 오제에 맞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싸움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어차피 삼황 여와가 강림해서 다 죽게 생긴 판에 그런 전력비교는 무의미했다.

그러자 광성자가 슬픈 눈빛을 띄며 손 위에 한 송이의 연꽃을 소환했다.

키잉!

[ 삼황 여와의 강림조차도 우주의 운명이란 관점에서는 치기어린 선택에 불과할 터, 일시적인 멸망을 참지 못해 모든 걸 그르치다니... 아쉽구려.]

[ 광성자, 어쩔 생각입니까?]

[ 극단적인 선택은 그만두시오. 그대의 선택에 여유를 주겠소.]

치리링

광성자가 소환한 연꽃이 갑자기 금빛을 내더니 허공을 강하게 유영했다. 그와 동시에 시공을 격하고 천공을 꿰뚫었고, 잠시 후 연꽃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광성자가 진언을 중얼거렸다.

[ 나 [유지하는 자]로서 우주의 질서에 명한다. 위대한 지배자의 시간을 메울 지어다.]

쩌엉!

광성자의 진언이 끝난 순간 서왕모의 결계가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주문을 외우며 여와본체를 소환하던 서왕모의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린 듯 했다. 실제로는 서왕모를 둘러싼 시공간이 완전히 정지해버린 것이었다.

" ......!!"

광성자가 자신의 소매로 황금빛 연꽃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 내가 그녀의 소환을 잠시 멈췄소.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진정하시오.]

뭐지?!

서왕모를 멈췄다고?!

[ 아니!]

[ 저 놈은 대체 무엇인가!]

[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나는 물론이고 장내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팔부신중들은 광성자의 힘에 경악하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도 다들 마왕급이었으나 누구도 서왕모를 억제하기는 커녕 제대로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 서왕모에게 주문 한방으로 시공간정지를 걸어서 일시적으로 봉인시켜버릴 줄이야!

달리 말하자면 삼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최강의 화신을 봉인한 셈이므로 엄청난 일이었다.

' 광성자는 대체 뭐지?!'

곤륜십이대선에 속한 자이지만 다른 자와는 격이 다르다고 일컬어지는 존재. 구천현녀만이 거의 유일하게 광성자와 아는 사이였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광성자가 만신전 소속의 신선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광성자가 신비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그 힘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저 정도의 힘이라니.

만신전의 다른 소속원인 응룡과 구천현녀의 힘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할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선이 저 정도 힘을 지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성자의 정체를 수상쩍게 여기고 있을 때 광성자가 말했다.

[ 황제의 소환령을 받아들이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힘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소.]

방금 전까지는 코웃음을 쳤을 경고지만 광성자의 능력을 본 이상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광성자는 엄청난 실력자였다.

[ 엄청난 권능이군요. 광성자, 당신의 진짜 정체는 무엇입니까?]

[ 나는 혼돈의 맞은편에서 왔소. 질서의 축에 서 있는 대적자이자 [유지하는 자]. 그대들은 내 진짜 이름을 들어도 알 수 없을 것이오.]

광성자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 다만 이 세계의 질서와 정의, 그것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나는 황제 공손헌원과 잠시 손을 잡아 종말 너머에 존재하는 구원을 추구하려 하오.]

[ ......]

[ 얌전히 따라오시오. 나와 응룡이 그대들의 동료를 먼저 전멸시키기 전에.]

광성자는 마치 자신과 황제가 대등한 관계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또한 진짜 정체가 일개 대라신선은 아닌 모양이었다. 구천현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날개옷을 움직여 광성자 쪽으로 향했고, 이윽고 그들은 차례차례 황금색 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광성자에게 외쳤다.

" 광성자!! 당신은 어째서 삼황내문과 음부경을 지은 겁니까!! 의도가 뭡니까!"

정말 묻고 싶었다!

광성자는 내 부름에 멈칫하더니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 ... 미욱한 자여. 그걸 왜 알고싶은지 모르겠구나.]

" 그쪽에서는 구천현녀를 데려가는 건데 정보 하나 줄 수 없단 말이오!"

[ 그렇군. 이유는 간단하다.]

광성자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 인과를 뒤틀어서라도 가련한 자들을 구하고싶었기 때문이었지...]

" ......?"

[ 서왕모의 결계는 한 시진 후에 다시 풀려날 것이다. 건투를 빌겠다.]

" 하, 하는 김에 서왕모를 영구히 봉인해주시면 안됩니까?"

내가 광성자에게 부탁했으나 광성자가 대꾸했다.

[ 저 봉인이 한계다. 또한 아무리 나라도 본체와 직접 연결된 서왕모를 두 번 봉인할 수는 없다.]

파앗!

불친절한 광성자의 말이 끝난 후 만신전의 세 존재는 황금빛 문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 한 시진...!!'

한 시진이라는 시간이 생겼으니 그 동안 뭔가 수를 내야 한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다들 뾰족한 수는 없는 듯 했고, 어색한 침묵이 장내에 감돌았다. 그리고 팔부신중 측으로 시선을 돌리자, 팔부신중들 중 긴나라가 대표로 나와서 말했다.

[ 우리는 서왕모와 끝까지 싸울 것이다. 뭔가 묘안이 있는가?]

" 음... 그게."

사실 방법이 없다. 유일하게 대적할만 했던 구천현녀가 만신전에 잡혀가 버렸는데 이제 와서 어떤 수를 써야한단 말인가? 내가 우물쭈물하자 망량이 말했다.

" 백웅. 지금 최선의 수라고 한다면 당신의 [흉신의 주문]을 응용하는 것이오."

" 흉신의 주문!"

" 곧 광성자의 봉인이 끝나면 다시 저 결계를 파괴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오. 또한 우리가 가진 그 어떤 수단보다도 흉신의 주문이 강력하니, 그 주문이 만들어내는 빈틈으로 모든 힘을 집중하는 수밖에 없소. 기회는 한번 뿐이오."

" 그 외의 방법은 없겠소?"

" 방법이라기 보다는... 사실 방금 전 우리 제갈세가 사람들이 서왕모의 계책이 뭔지 짐작했으니 서왕모의 한 수를 막는 게 중요할 것이오."

" 정말이오!"

서왕모의 계책이 뭔지 알아냈단 말인가!

망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렇소. 천계에서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합시다."

" 알았소."

우리는 한 시진동안 부상을 치료하고 힘을 회복해서 다시 싸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항우에게서 받은 성좌의 힘을 다스리며 최대한 흘리지 않게 정신을 집중하며 제어했다.

그 때 제갈유룡과 제갈부가 도착했다. 제갈유룡은 냉막한 얼굴로 말했다.

" 백웅. 우희의 정체를 확인했다."

" 인간이었나?"

" 그래. 적어도 우리가 보기엔 그랬다. 신의 화신으로 의심할 만한 점은 없었어."

" 그런데 왜 같이 오지 않..."

제갈유룡이 대답했다.

" 그녀는 자결했다."

" ......!!"

" 항우가 그녀를 버리게 된 정황과 이유를 설명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고통스럽지 않게 선법으로 빠르게 마무리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단 말인가?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저만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항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항우라면 당연히 이 대화도 듣고 있을 텐데 열받아서 제갈유룡과 우리를 몰살시키지 않을까 걱정된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제갈유룡이 말했다.

" 항우는 이미 그녀를 마음 속에서 놓았다. 그도 예상했을 것이다."

" 하지만 이건..."

" 처참한 비극이지. 패왕조차 피할 수 없는..."

" ......"

" 항우 뿐만이 아니야. 태허천존을 막지 못하면 미래억겁동안 100억의 인간이 그 이상의 비극을 겪게 되겠지. 신에게 맞선다는 건 이런 것이다."

이어진 제갈유룡의 말에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 백웅. 네가 그 업을 등에 지고 끝까지 갈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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