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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96화 (89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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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뭐라고?!

이 자식은 어떻게 그 사실을...

나는 그만 놀라는 표정을 지을 뻔 했으나 제갈사의 '경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아무런 티를 내지 않는 데 성공했다.

이 자리에서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

나는 그 말에 되려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 무슨 소리요? 그런 능력이 있으면 뭐하러 이런 곳까지 오겠소?"

내 대꾸에 유방이 흐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럴지도. 허나 그게 도리어 의심스럽단 말이지."

" 의심이야 멋대로 하시오. 내가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고 당신이 의심을 안 하겠소?!"

내가 짜증을 내자 유방이 움찔하면서 멋쩍게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 그, 그건 그래."

" 이참에 물어보고싶은데, 만일 2가지 선택 중 당신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요? 악의 화신으로 각성해서 우리를 다 죽여버릴 참이오?"

내가 도발적으로 말하자 유방이 손사래 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 그럴 리가. 그건 삼류 전개지."

" 삼류라고?"

" 그래, 삼류.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재미도 없다네. 안되니까 힘으로 다 엎어버린다는 결말을 나는 가장 혐오한다네. 그건 내가 패배를 인정한 것과 다름이 없지."

" 그렇다 칩시다. 그럼 삼류가 아니라면 어떤 전개를 한단 말이오?"

" 이류라면 거기서 살짝 꼬아서 또 하나의 반전을 보여줄테고, 일류라면..."

그의 눈이 혼돈으로 번들거렸다.

"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주겠지..."

" ......"

어째서 힘으로 깽판놓겠다는 말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걸까?

알 수 없는 위압감에 내가 움찔하고 있자 항우가 한걸음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 그만하라. 본왕은 선택하겠다."

" 무엇을 선택하겠나, 항우?"

" 본왕의 선택은..."

항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널 죽이는 것이다!"

꽈르릉

그 순간 항우의 기개세가 일으켜지며 마치 번개처럼 시공간을 꿰뚫었다. 뇌신지혼을 연상케하는 속도로 움직인 항우의 주먹은 어느 새 유방의 오른쪽 팔을 비롯한 상반신을 대거 날려버리고 말았다.

일격!

그러나 유방은 즉사지경의 부상에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으며 껄껄 웃었다.

"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현실을 도피하는 것인가, 항우!"

" 마음대로 지껄여라."

" 우희의 진실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나! 내가 널 위해 준비한 이 유희의 결말을 정말 피할 수 있을것 같으냐, 항우...!!"

" ......"

항우는 말 없이 손을 뻗어서 유방의 혀를 뽑았다.

푸콱!

" 크으으크컥..."

" 수천 년 전부터... 네놈의 혀를 뽑고 싶었다."

유방의 표정이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르는 것으로 변했다.

파스스스...

잠시 후 유방의 몸이 소멸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항우가 예상밖의 선택을 해 버리자 우려섞인 눈으로 항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 유방을 없애는 선택을 하신 이유가 뭡니까?"

본래 항우였다면 이런 내 질문을 무시하거나 도리어 날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우는 주먹을 천천히 내리면서 내 말에 대답해 줬다.

" 둘 중 어느 선택을 하든 놈의 뜻대로 되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무의미하다면 천 년 전부터 별러왔던 일을 하는 게 낫다."

" 하지만 이 선택 또한 놈의 계산대로입니다."

" 본왕은 선택에 책임을 진다. 후회하지 않고 나아가는 게 나의 왕도(王道)다."

저벅

저벅

항우는 천천히 뒤돌려서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멋있어서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 항우 님."

멈칫

옥음같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우리의 발걸음이 멈췄다. 항우는 그 목소리에 잠시 멈춰서 있다가 말했다.

" 백웅. 뒤를 돌아보지 마라."

나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정체를 짐작 가능했다. 제갈유룡이나 제갈부 또한 같은 생각인 듯 나와 눈빛을 공유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항우에게 말했다.

" 항우님. 저 목소리는 설마 우희..."

" 닥쳐라!"

항우가 일갈하자 나는 움찔했다. 항우의 눈이 분노의 혈광으로 충천해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에 없이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으며 자칫하다가는 이성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항우는 씹어뱉듯 말했다.

" 진짜든 가짜든 무슨 상관인가? 놈의 정체를 안 순간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았다! 본왕의 모든 명예와 의지, 운명이 농락당했노라! 이 분노를 네가 받고 싶지 않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라!"

" ... 알겠습니다."

나는 항우의 목소리가 처절할 정도의 분노를 담고 있었으나 동시에 무력감 또한 스며들어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항우는 깨달은 것이다.

유방이 곧 태허천존이며, 이 천계를 농락해 온 의문의 절대적 마신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 우희의 정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녀가 진짜든 가짜든 그녀에 집착하는 모든 행위가 혼돈의 화신에게 장난감이 되는 행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설령 등 뒤에서 애타게 항우를 부르는 그녀가 진짜 우희라고 하더라도 항우는 뒤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항우가 유방을 없앤 선택에는 그런 의미 또한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제갈유룡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백웅. 그렇다고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을 순 없다.]

[ 네가 확인할 거냐?]

[ 나와 부아가 우희의 정체를 확인하겠다. 너는 항우를 데리고 서왕모의 전장으로 되돌아가라. 항우는 아마 서왕모와 싸울 것이다.]

[ ... 알았다.]

잠시 후 제갈유룡과 제갈부가 뒤를 돌아서 우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나는 희미하게 그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앞서가던 항우를 따라가다가 항우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 뭐가 죄송하단 말이냐."

" 제가 진실을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면..."

항우는 진실을 알아내지 못해서 답답할 지언정 스스로의 운명에 회의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항우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항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 백웅. 손을 이리 내놓아라."

" 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항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항우는 힐끔 내 손을 내려다보더니 꽉 붙잡았고, 잠시 후 손을 통해서 거대한 힘이 밀려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우우우웅!!

" 으읏!!"

나는 내 대성지경의 음신지력만큼이나 거대한 2개의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자 움찔했다. 그 힘은 마치 태고의 자연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느껴졌고, 나는 음신지력이 아니었다면 몸이 찢겨나갔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윽고 2개의 기운을 갈무리하자 항우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 한 개만 전해줘도 보통 인간은 몸이 터져죽는데 튼튼한 놈이군."

" 항우 님, 이건..."

" 본왕은 태어날 때부터 12개의 성좌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 중 7개가 타신편에 부숴져서 다섯 개가 남았으나, 지금 그 중 2개를 너에게 주었다. 천강성(天罡星)과 지묵성(地默星)의 성좌다."

" ......!!"

성좌라고?!

지금 내가 건네받은 게 성좌의 힘이란 말인가!

내가 깜짝 놀라서 내 몸을 살펴보자 확실히 별처럼 느껴지는 기운이 내 심장 부근에서 맥동하고 있었고, 마치 쌍룡(雙龍)처럼 맴도는 두 개의 성좌가 음신지력을 축으로 회전하는 게 느껴졌다.

" 성좌의 힘을 남에게 줄 수도 있는 거였습니까?!"

"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우희에게 호신용으로 성좌의 힘을 줄 순 없었겠지."

" ......"

" 그러나 그 힘은 결국 단말이자 재능이다. 본인이 타고난 성좌가 아니라면, 그 힘은 유지되지 않으며 소진될 것이다. 또한 성좌의 재능이 없다면 본왕만큼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겠지. 설령 같은 천강성과 지묵성을 타고난 자가 있었다 해도 본왕이 그들보다 100배는 강했던 이유다."

항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으나 어쨌든 그가 내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이 성좌의 힘이 비록 휘발되어 나중에는 콩알만한 단말밖에 남지 않겠지만 그는 현재 자기 전력의 절반에 가까운 힘을 내게 건네준 것이다.

" 어째서 제게 이 힘을... 이 힘을 주시면 약해지시는 게 아닙니까!"

" 멍청하군."

" 네?"

" 성좌의 개수가 줄어든다고 약해지는 거였다면 본왕이 어찌 태공망을 이겼겠느냐."

그, 그러고보니.

타신편은 성좌의 핵조차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신성을 직접 부술 수 있는 특수한 보패였다. 그런 타신편에 성좌가 7개나 파괴되었는데도 항우는 힘이 전혀 쇠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항우를 쳐다보자 항우가 말했다.

" 본왕에게 성좌의 갯수는 무의미하다. 본왕은 우주와 직접 통해있어서 단지 단말이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일 뿐이다."

" ......"

" 그러므로 본왕에 비하면 대라신선조차 하찮은 존재일 뿐."

진정 괴물이 아닌가.

그러면 성좌가 1개만 남아있어도 항우는 계속 무한한 성좌의 힘을 쓸 수 있다는 소리인가?

' 괜히 태공망이 그를 [옛 지배자]에 비유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기가 질려서 멍해져 있자 항우가 말했다.

" ... 백웅. 본왕의 마지막 부탁이 있다. 네게 건네준 성좌는 그 부탁의 대가다."

" 네,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유언처럼 들리는 것인가?

내가 불길한 눈으로 항우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 만일 다음이 있다면... 그 때는 본왕의 운명을 농락한 놈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해 다오."

후웅!

항우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도약해서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항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 다음...'

항우는 역시 내가 전생자라는 걸 추측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유방의 말에서 알아챈 것일지도 몰랐다.

" ......"

다시 말하자면 태허천존에게 복수를 해달라고 한 셈이었다. 항우가 이미 화신 유방을 깨부숨으로써 복수한 듯 했으나 그게 전혀 복수가 아니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신에게 화신이란 그저 세상에 내세우는 매개체에 불과하니, 그 본질은 여전히 항우를 농락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항우는 이번 생에는 자기 힘으로 복수하기 힘들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에, 정체불명의 잠재력을 지닌 내게 부탁한 것이리라. 거기에 보탬이 되라고 2개의 성좌의 힘을 건네준 듯 했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태허천존의 진짜 정체가 어쩌면 삼황오제조차 초월할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지금 내 힘으로 태허천존의 본체를 물먹이는 게 가능할까? 나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젓고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파앗

이윽고 나는 태허궁 밖으로 나오자 마자 항우가 서왕모에게 달려드는 걸 볼 수 있었다. 항우는 성좌의 힘을 극도로 끌어올렸기 때문인지 몸 전체가 핏빛 기운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 서왕모!!!]

전투중이던 흉수 서왕모는 하늘에 떠 있다가 뜻밖이라는 듯 항우를 쳐다보았다.

[ 너는... 항우?]

[ 죽어라!!]

꽈르릉

[ 크아아아아악.]

서왕모는 항우의 주먹을 맞는 순간 굉음을 울리며 땅에 날아가서 처박혔다. 그 모습에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 아니!]

[ 저럴 수가.]

팔부신중은 물론이고 이쪽에서 팔선과 구천현녀, 미호, 서문혜 등이 쉴새없이 공세를 퍼붓던 중이었는데 서왕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등하게 맞서는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뛰어든 항우의 일격에 서왕모가 여유를 잃고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항우는 눈에서 혈광을 흘리며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 죽어라!!!]

콰과광

그러나 이번에는 서왕모가 순순히 당해주지 않는지 곧장 방어막같은 걸 소환했고, 항우의 공격은 그 방어막을 깨부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서왕모는 항우가 자신에게 도전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지 말했다.

[ 패왕, 그대가 감히 여에게 덤빈단 말이냐? 섭섭하게 대한 건 없을진대 감히!!]

[ 닥쳐라! 네년은 우희가 태허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터! 수천 년 동안 본왕을 농락한 죄값부터 묻겠다.]

그러자 서왕모가 웃었다.

[ 그렇구나... 진실을 알았구나, 가련한 성좌의 패왕이여! 그럼 여의 손으로 그 삶에 종지부를 찍어주겠노라.]

키이이잉 -

서왕모의 입에 기이한 음파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항우가 달려들 때 서왕모의 눈이 빛났다.

천려오잔(天厲五殘)!

그 순간 천려오잔의 음파가 뻗어져 나갔다. 팔부신중 마후라가를 일격에 해치운 천려오잔이 더더욱 강력해졌으니 그 어떤 필멸자도 저걸 맞고 멀쩡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천려오잔은 항우의 몸을 휩쓸었고 일시적으로 섬광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우우우웅

그러나 항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명동(鳴動)하던 성좌의 핵 중에서 하나가 핏 하는 소리를 내며 부스러졌고, 항우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그대로 달려들어서 다시 한 번 서왕모의 몸통에 주먹을 꽂았다.

[ 크아아아!!!]

꽈과광!!

[ 크으! 성좌를 희생시켜서 천려오잔을 막아내는가? 과연 항우구나.]

주먹에 격중당한 서왕모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아파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 그러나 네게 신살(神殺)의 능력이 없는 이상 이런 짓을 수백 수천번 하더라도 여의 승리다.]

[ 그건 해봐야 알겠지!]

[ 무의미하다!]

호통을 친 서왕모가 분노한 듯 거대한 사자후로 포효했다.

[ 무모한 자들이여,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다. 너희가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질 때가 되었다!]

스아아아

[ 이 의지여, 삼천세계에 뻗을지어다.]

흉수 서왕모의 등에서 갑자기 새까만 날개가 크게 돋아났다. 그 날개는 마치 까마귀의 것처럼 보였는데 서왕모와 싸우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였다. 날개를 뻗은 서왕모가 갑자기 기이한 주문을 외웠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 공격상태가 아닌 건가?'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잠시 후 서왕모의 몸 주변에 반투명한 결계가 쳐지면서 모든 접근을 막았다. 항우 또한 더 이상 서왕모를 공격하지 못해서 뒤로 물러나자 아군들이 일시적으로 결집했다. 그리고 때마침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올라와서는 외쳤다.

" 제길, 무슨 일이야?"

[ ... 큰일이군요.]

" 구천현녀! 서왕모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어?"

[ 저 결계를 뚫고 서왕모를 이번에 없애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어진 구천현녀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굳어졌다.

[ 이 세계에 삼황(三皇) 여와(女媧)의 본체가 강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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