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894화 (89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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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제갈유룡이 술법을 쓰더니 말했다.

" 원시천반 내에서 탐색기능을 쓸 방법은 없소."

항우의 혈광어린 시선이 제갈유룡을 응시하자 제갈유룡이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

" ... 물론 지금은 그렇다는 거고, 원시천반은 잠시 후 내부의 결계가 모두 깨졌으니 원래대로 천반형태의 보패로 되돌아갈 것이오. 그리고 그때 내부에 있는 모든 게 원시천반 바깥으로 튕겨나갈 것이니 지금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오."

말이 많아졌다. 아무리 철석간담의 제갈유룡이라도 항우의 시선에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제갈유룡을 비웃을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또한 항우가 내게 일권을 날려서 피떡으로 만들지 않을지 두려워서 조마조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항우가 두렵지 않다고 하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치 않으리라.

항우가 냉막하게 말했다.

" 원시천반으로도 우희를 못 찾으면... 너흰 죽는다!"

" 마음대로 하시오."

스스스스 -

잠시 후 제갈유룡의 말대로 세상에 균열이 마치 살얼음 깨지듯 나타나기 시작했고, 일 각 정도가 지나자 완전히 공간이 깨지고 말았다.

파앙!

후두두둑

우리는 다음 순간 원시천반 바깥의 삼청궁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원시천반이 조그마한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고, 드넓은 삼청궁의 공터 여기저기에 수많은 인간들이 우글거리며 나타나 있었다.

웅성웅성

' 으음... 대략... 오백여 명 정도 되나?!'

그들은 하나같이 고대의 복식을 입고 있었고 겉으로만 보면 영락없이 인간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평범한 마을사람처럼 생긴 듯 했다. 그러나 나는 화안금정으로 그들을 살피자 내면에 가공할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보통 인간이 아니다...!!'

고대인에게 현재의 인간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해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 당신들은 이제 자유요!"

" ... 뭐, 뭐라고! 당신들은 누구요!"

" 여기는 삼청궁! 우리는 원시천존의 명을 받고 당신들을 풀어주러 여기 왔소. 이제 결계에 갇혀살지 않아도 좋소."

" 헉...!!"

고대인들은 웅성거리면서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좌중에서 갑자기 마수(魔獸) 두 마리가 허공으로 치솟으며 하늘로 날아갔다.

[ 크하하하하!!]

[ 자유다!!]

" ......"

아마 저들은 사흉 중 남은 두 마리일 것이다. 궁기는 안에서 죽어버렸고 도올은 만귀전의 소속이니 저들은 아마 도철과 혼돈일 것이리라. 마수 사흉들이 하늘로 날아가버리자 사람들은 더욱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

그 때 한 명의 노인이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 믿기지 않는군... 태공망은 세상이 끝날때까지 봉인을 유지하려 했는데 아무리 원시천존의 명이라 해도 우리를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 당신은 누구요?"

" 나는 희발(姬發)일세."

" ......!!"

희발이라 하면 주(周) 무왕(武王)!

고대에 은 주왕과 달기를 쓰러뜨리고 세상을 평정한 절대군주였다. 태공망의 보필을 받은 자이니 당연히 천자(天子)였던 것이리라. 황제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촌로의 모습이었으나 외모와 행동거지에 묘한 기품이 스며들어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마 그는 진짜 무왕 희발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공손하게 대꾸했다.

" 태공망과 선인들은 우리에게 유지를 맡기고 승천했습니다."

" ... 그런가."

" 지금 당장은 천계에 큰 난리가 일어나서 하산시켜드릴 수 없습니다. 당분간은 이 삼청궁에서 머물러 주십시오. 조만간 하계에 내려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때 몸에 꽃문신이 가득 새겨진 한 대머리 사내가 앞으로 성큼 걸어나오더니 괄괄하게 외쳤다.

" 필요없소! 우리를 다시 그 세계에 살게끔 해 주시오. 세상에 나가기 싫소!"

" 무슨 말이오? 당신은 또 누구요?"

" 나는 노달(魯達)이오! 우리가 세상에 나가봤자 번잡하기만 할 뿐 평화롭게 살고싶으니 다시 그 세계를 만들어달란 말이오. 우리 108명이 나가봐야 애먼 세상에서 애꿎은 사람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노달?

처음 듣는 이름이라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옆에서 청수한 이목의 문사가 그 말을 받았다.

" 나 또한 노지심의 말에 동의하오. 나는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이라 하는데, 우리는 모두 원치 않는 성좌의 힘을 얻어서 세상을 불행하게 살았소. 간신히 천계 선인들의 인도 덕분에 평안을 찾았건만 더 이상 괴롭게 살고싶지 않소."

" ......"

급시우 송강!

서, 설마 이들은 소설 수호전에 등장한 그 인물들이란 말인가?

' 수호전은 송나라 시대에 성좌를 타고난 자들의 이야기였어?!'

소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 어, 그게..."

내가 뜻밖의 진실에 멍하니 서 있자 뒤에서 흉맹한 항우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 알 바 아니다! 조용히 해라."

침묵.

항우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퍼져나가자 삽시간에 군웅들이 조용해졌다. 그들 중 108명은 저마다 성좌의 힘을 한 개씩 타고난 자들이었음에도 항우의 힘에 짓눌린 듯 했다. 성좌보유자라고 해도 선천적인 격차가 있는 것이다.

" 오오오..."

" 저, 저게 인간인가..."

대부분의 인간들이 경외심 어린 눈으로 항우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항우가 피곤한 듯 말했다.

" 본왕의 용건부터 처리해라. 다른 일은 너희가 나중에 알아서 하라."

" 아, 알겠습니다."

내가 제갈유룡을 바라보자 제갈유룡이 원시천반을 들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제갈유룡이 말했다.

" 나는 원시천반이 부숴지기 직전에 무리를 해서 [옛 지배자]의 소환을 취소시켜서 지금 가진 술력과 마력이 하나도 없다. 하물며 원시천반은 최초의 보패이니 엄청난 술력이 필요하다. 지금 이걸 제대로 발동시킬 수 있는 건 너뿐이다."

" 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갈유룡에게 원시천반을 받았다. 그리고는 원시천반에 음신지력을 흘려넣으며 발동시켰다.

우우웅

잠시 후 원시천반에서 반투명한 환영같은 게 떠올랐다. 그 환영은 고대의 선인처럼 보였는데 헌앙하고 젊은 모습이었다. 환영의 선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 그대가 고대의 봉인을 풀어버렸구나.]

" 그렇소."

[ 이 또한 운명인가... 무언가를 찾아서 원시천반을 발동시켰다면 내게 질문하라.]

환영은 원시천반의 봉인을 푼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을 생각인 듯 했다. 하긴 인공정령일 테니 저런 태도가 당연할지도 몰랐다. 나는 곧장 질문했다.

" 초패왕 항우의 연인인 우희의 행방을 알고 싶소."

[ 기다릴 지어다...]

잠시 침묵하던 원시천반의 환영은 입을 열었다.

[ 그녀는 홍균도인(鴻鈞道人)의 홍균궁(鴻鈞宮)에 있다.]

" ......?!"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 홍균도인의 홍균궁? 그건 뭐요. 어디에 있소."

천계에 그런 장소가 있었던가? 그리고 어째서 지금 홍균도인이 나오는 거지?

우희가 홍균도인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 홍균궁은 홍균도인이 천계에 나타날 때 열리는 장소로써 그의 초대를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오로지 사어(四御)만이 홍균궁에 갈 수 있다.]

" 무슨... 그래서 홍균궁 내에서도 어디에 있단 말이오?"

[ 그건 알 수 없다.]

" 그녀는 무사하오?"

[ 알 수 없다.]

" ......"

우희의 행방을 알아낸 건 다행이지만 전혀 뜻밖의 장소에 위치한 듯 했다. 나는 항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 홍균궁에 있다고 합니다."

" ... 홍균도인인가... 홍균도인. 그랬군."

항우는 뜻밖에 우희의 행방을 듣고도 폭발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대신에 뭔가 생각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문득 크큭하며 웃었다.

" 크크... 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그가 앙천광소를 터뜨리자 삼청궁 전체가 진동했다. 그는 잠시 후 광소를 뚝하고 멈추더니 말했다.

" 태공망. 그런 뜻이었느냐? 본왕의 운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에게 농락당했다는 말이었던가? 후후... 고약한 일이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그를 살려둘걸 그랬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던 항우가 휘적휘적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손에는 어느 새 태공망에게서 빼앗은 타신편이 들려 있었다. 나는 급히 항우에게 외쳤다.

" 어디 가십니까?!"

" 본왕은 홍균도인을 만나러 가겠다."

" 네?!"

어디 있는 줄 알고 만나러 가겠단 말인가?!

내가 황당해서 외치자 항우가 문득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 그간 수고했다, 백웅."

파앗

항우가 사라지자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다시금 무릉도원에 살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와글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제갈유룡이 내게 말했다.

" 백웅. 더 이상 이 곳에 볼일은 없다. 어서 항우를 따라가자."

" 무슨 소리야? 대체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항우를 왜 따라가지? 서왕모를 치러 합류해야하지 않나?"

" 그 전장은 이제와서 우리가 합류해봤자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항우를 따라가는 쪽이 승산이 높아."

" 뭐? 무슨 소리야."

" 이유가 있다. 지금은 항우를 따라가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갈유룡이 이렇게 강경하게 제안하는 걸 보면 그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안되면 전욱의 권능을 써서라도 시간을 되돌리겠다고 마음먹으며 나는 제갈유룡의 말에 대꾸했다.

" 그래 그렇다 치자고. 항우는 어디에 가서 홍균도인과 만난다는 건지 혹시 알고 있나?"

내 질문에 제갈유룡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 항우는 이제부터 태허궁에 갈 것이다. 태허궁은 서왕모의 궁전 뒤편에 있으니 어차피 서왕모의 전장을 스쳐가겠군."

" 왜 그렇게 되지? 그게 홍균도인을 불러내는 것과 무슨 관계야."

" 그는 우희 실종의 진실을 눈치챈 거다."

" ......?"

" 가면서 이야기해 주겠다. 지금은 시간을 아끼자."

타닷

우리는 축지술을 써서 태허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축지술로 뛰어가며 제갈유룡이 내게 전음을 써서 말했다. 축지법의 속도가 워낙 빠르기에 정상적으로 입을 열어서 대화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 홍균도인의 궁궐이 홍균궁이듯, 태허천존의 궁궐은 태허궁이다. 알고 있었나? 그렇다면 항우가 홍균도인을 찾아서 태허궁에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지.]

[ ......!!]

나는 제갈유룡의 말에 큰 충격을 느꼈다.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 그, 그러고보니.]

[ 태상노군이 여의봉의 유언에 말했었지. 네 기억이 워낙 방대해서 쉽게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은 홍균도인이라 칭하는 의문의 마신(魔神)에게 암살당했다.]

[ ......]

[ 또한 그 홍균도인은 동시에 삼청(三淸)의 일인인 영보천존(靈寶天尊)이기도 했지. 그리고 영보천존의 화신은 바로 너도 알다시피.]

[ 태허천존(太虛天尊).]

그랬다.

지금까지 태상노군의 유언이 멀게 느껴져서 홍균도인의 존재를 곧장 떠올리지 못했으나, 분명히 단서는 존재했던 것이다. 천계를 이끌고 있던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을 암살하고 천계 전체를 장난감으로 만든 존재, 그가 바로 홍균도인이었으며 태허천존이었다. 항우는 홍균도인이 태허천존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하지만 우리는 여의봉에 있던 태상노군의 유언을 보지 못했다면 전혀 눈치조차 챌 수 없었던 사실이야. 항우는 도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챈 거지?]

[ 아마 천 년 동안 우희를 찾아서 천계의 온갖 정보를 모으고 돌아다녔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 물증은 없어도 심증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는 천 년 동안 폐인처럼 지냈던 게 아니라 줄곧 천계를 정탐하고 있었던 거지. 적어도 홍균도인과 태허천존의 관계를 의심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는 그의 손에 있었을 것이다.]

[ ......]

항우는 힘만 쓰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두뇌도 영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또한 무작정 우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정보를 모을만큼 모으고 있었으리라.

[ 그리고 그 사실은 하나를 의미한다.]

[ 뭘?]

[ 태허천존이 굳이 우희를 숨겨서 유폐했다는 건, 유폐해야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동기를 가진 인물은 천지천상, 역사상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너도 눈치챘겠지.]

[ ......]

[ 항우 또한 그걸 알아챈 거겠지.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농락하는 존재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 분명하다.]

[ 빌어먹을... 도대체 이 모든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지?]

나는 기가 막혔다. 엄청난 흉계가 고대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이어져 오는데 밝히면 밝힐수록 그 저변이 방대하고 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제갈유룡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직이 말할 뿐이었다.

[ 이번이 아마 정향의 인과율에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다...]

타닷!!

우리는 이윽고 서왕모와 아군이 겨루는 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완전히 황폐해진 서왕모의 궁 일대에서 나머지 팔부신중과 구천현녀, 그리고 내 동료들이 힘을 합쳐서 서왕모에게 대항하는 모습이 보였다.

쿠콰콰쾅

수많은 권능이 얽히고 섥히고 있었으며 종종 미호와 서문혜가 날아다니면서 서왕모를 공격하고 있었다. 서왕모가 천려오잔을 쓰려 하면 구천현녀가 나서서 막아내었고 나머지 팔부신중들이 죽어라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일단 상태는 대등해 보였으나 실제로는 대등하지 않다는 건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서왕모는 계속 힘을 올리면서도 전혀 위급하지 않은 듯 여유롭게 한 수 한 수를 던지고 있었고 이쪽은 필사적으로 막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서왕모가 조금만 진심이 되면 아군이 전멸할 게 분명했다.

' 크윽.'

나는 근처에 있던 제갈사에게 가서 재빨리 흑요석을 주었다.

" 제갈사!"

제갈사는 내 흑요석을 받자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듯 했다. 그리고는 눈빛이 날카로워져서는 말했다.

" 백웅. 태허궁에는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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