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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92화 (89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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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태공망의 외침이 울려퍼지자 항우는 처음으로 호전적인 표정을 지었다. 태공망의 사자후에 실린 힘이 그의 권태를 날릴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항우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 멀리 꺼져라."

" 네?"

" 본왕은 이 싸움에서 네 목숨을 보전해 줄 자신은 없다."

" 알겠습니다. 궁기를 쓰겠습니다."

" 맘대로 해라."

나는 항우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만큼 태공망이 격조있는 상대라는 걸 항우가 인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 나와 항우의 힘의 격차가 너무 나서 비교할 상대조차 아닌데다가, 투선을 초월한 존재들끼리의 대결이라면 그 여파만으로 내가 죽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대결을 구경 못하는 건 아쉽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나서 궁기를 일으켜세워서 말했다.

" 궁기. 혈주를 해치우러 간다."

[ 크으으... 네놈들은 대체 뭐냐...]

" 서둘러."

나는 궁기의 등에 타서 허공을 활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궁기와 함께 약 일 리 정도의 거리를 멀어졌을 때, 등 뒤에서 거대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세계가 뒤흔들렸다.

쿠콰콰콰쾅

" ......!!"

광염(光炎)의 지옥이 펼쳐졌다는 게 이런 것일까? 삽시간에 등 뒤의 모든 것이 불타면서 파괴흔이 대지와 허공을 동시에 긁어내는 게 보였다. 두 번째 파동이 날아올거라는 걸 예감한 나는 급히 궁기에게 음신지력을 불어넣으며 외쳤다.

" 더 빨리 날아!!"

쓔우웅

콰콰콰쾅

궁기는 내게서 힘을 받자 날개의 힘을 한층 가속시켰고, 그 덕에 또다시 번져나오는 폭발 속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가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 지난번에는 혈주 남극선옹에게 갔었지. 그럼 이번에는 다른 혈주에게 가야겠다!'

이번에는 제갈유룡이 용길공주 쪽으로 가기로 했었던 것이다.

파앗

나는 기억에 남아있는 대로 제갈유룡이 갔었던 혈주로 향했다. 나는 혈주가 묘령의 사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 정체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혈주니까 강력한 선인이겠지?

아무튼 나는 혈주앞에 서자마자 주문을 외웠다.

" 머나먼 용천(龍天)에 깃드는 수호자여! 나 광륜(光輪)을 이끌어 그대를 인도하리라. 영겁 속에 비밀을 엿봄을 허락하라!"

쿠구구구구궁...

잠시 후 용길공주의 머리 위에 있던 거대한 외벽에 여섯 개의 빛의 문양이 떠올랐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 제갈유룡 개새끼...'

제갈유룡은 고대문헌을 통해 혈주의 약점을 파해해서 외벽을 제거하는 사법(邪法)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이건 완전한 열쇠라고는 할 수 없었으며 일정시간 동안 외벽을 수호하는 주문의 위치를 밝혀내서 드러내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으로 저 6개의 빛의 문양을 지우고 나면 일시적으로 외벽이 열리는 방식이었고, 그나마도 오래 열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제갈유룡은 내가 실패하면 두 번 다시 외벽을 열 수 없기에 주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변명했으나 결국 놈에 대한 불신만 키워진 꼴이었다.

' 깊게 생각하지 말자.'

어찌되었든 지금 중요한 건 외벽 내의 영겁지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는 빠르게 빛의 문양에 음식지력을 날려서 없앴고, 여섯 개의 문양이 사라지자 둔중한 소리와 함께 깔때기처럼 하늘 저 편까지 뻗어있던 외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나는 잠시 후 제갈유룡이 했던 것처럼 외벽 내로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때처럼 기이한 구조물들이 둘러싼 가운데 영겁지벽이 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제 저 영겁지벽만 제거하면 그만이었으므로 나는 따라들어온 궁기에게 말했다.

" 궁기. 저 영겁지벽을 부수면 된다. 같이 공격하자."

[ 좋다!]

슈콰쾅

궁기는 입에 혼돈의 힘을 모아서 포효하기 시작했고, 나는 멀리서 검뢰를 모아서 의념절기로 정제하여 내공을 실어 공격했다. 두 번의 공격이 허공에서 교차하면서 영겁지벽을 때렸고, 광대한 파괴력이 영겁지벽을 휩쓸어 지나갔다. 그러나 지상에서라면 산 하나를 지울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음에도 영겁지벽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듯 했다.

" 으음."

[ 저 영겁지벽 또한 외벽과 같은 내구도가 아닌가 싶군...]

그래, 이것도 당연한 것이다. 영겁지벽이 결코 부숴져선 안되는 물건이라면 천하무적의 내구도인 게 당연하리라. 나는 제갈유룡에게서 길어도 한 식경이면 이 외벽이 다시 닫힌다는 걸 들었으므로 내심 초조해져서 머리를 굴렸다.

' 제갈유룡은 [옛 지배자]를 소환하여 그 힘을 빌어 영겁지벽을 깨려 했다... 반면에 나는 그런 복안이 따로 없다. 어떻게 해야 영겁지벽을 부술 수 있을까?'

흑웅이 있었다면 이 광대한 음신지력을 한 곳에 모아서 뭔가 시도해봤을테지만 지금은 흑웅이 없다. 신력은 있으되 그걸 효율적으로 쓸 수가 없다면 무공의 파괴력만 못할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그래!'

나는 손 끝에 신력을 집중해서 영겁지벽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 집중력을 키우며 서서히 손을 뻗으며 절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절기(絶技)

만상지투(萬象之偸)!

' 간다...!!'

신투지존은 말했었다. 만상지투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훔칠 수 있게 해 주는 비술(秘術)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만상지투를 습득하고 나서도 이 능력을 어디에 써야할지 몰라서 안 쓰고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쓸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훔친다.

영겁지벽의 [내구성]을 훔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나, 만상지투는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절세오의였다. 더욱이 만상지투에 내 음신지력을 불어넣었으니 그 위력은 더욱 강화될 게 분명했고 숙련도부족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우웅

내 손이 백색으로 물들었고 그 순간 어렴풋한 감이 머릿속과 손끝을 동시에 스쳐지나감을 느꼈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내 손끝에 담아서 훔칠 수가 있었고, 그대로 손을 빼 버렸다.

파밧!

내가 뒤로 물러섰을 때, 영겁지벽은 왠지 뿜어내고 있던 광채가 많이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대로 다시 검을 꺼내서 검뢰를 날려보았다.

쿠콰콰쾅

[ 이럴수가! 해냈구나.]

영겁지벽이 산산히 부숴져 날아감과 동시에 옆에 있던 궁기가 찬탄성을 내었다. 나는 영겁지벽이 순식간에 약화된 걸 보자 멍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해냈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 가능한 거였구나.'

만상지투로 존재하지 않는 걸 훔칠수 있다는 것 - 그것은 [내구도]같은 무형의 개념 또한 훔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지금 음신지력을 꽤 끌어다 쓴 덕도 있는 듯 했고 본래는 절기의 숙련도가 높아도 성공률은 반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겁지벽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머나먼 곳에서 태공망이 비탄섞인 사자후를 외치는 게 들렸다.

[ 아아, 이럴수가!! 영겁지벽이 파괴되다니... 너희는 도대체 이 일을 어찌 책임질 생각인가!]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일대에 암운이 깔리면서 번개가 수십 줄기나 근처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래도 태공망이 여기에 직접 오려는 속셈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급히 궁기에게 외쳤다.

" 도망치자! 태공망이 온다."

[ 알았다!]

내가 궁기의 등에 타서 다시금 허공을 박차는 순간, 영겁지벽에서 무언가 새하얀 것들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그 새하얀 것들은 혼(魂)으로 보였고 너무나 수가 많아서 그 밀도가 구름처럼 보인 듯 했다.

' 저게 고대인의 혼인가?'

영겁지벽에는 고대인의 혼이 가둬져 있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영겁지벽 하나를 부숨으로써 봉인된 고대인의 혼 중 3할을 해방시킨 셈이 되리라. 내가 궁기를 타고 도망치고 있을 때였다.

빠지직

[ 크아아아아악.]

" 으아아악."

어마어마한 크기의 낙뢰(落雷)가 퍼부으면서 나와 궁기를 정통으로 맞춰버렸고 우리는 비명소리를 내며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머리가 띵했으나 생각보다는 별로 피해가 없는 걸 깨닫고 허공에서 몸을 튕겨서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러나 같이 떨어진 궁기는 벼락 한번에 잘 구워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듯 했다.

" 어이 궁기!!"

대답은 없었다. 궁기는 잠시 후 혼돈의 가루가 되어서 소멸해 버렸다.

' 궁기가 한 방에 당한건가! 굉장한 위력이군...'

아마 태공망의 술법일 터인데 아무리 태공망이라지만 낙뢰술법 한 번으로 사흉을 구워버릴 수 있단 말인가? 여러모로 태공망이 초월급의 강자라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뇌신류를 익힌 덕에 뇌력에 강한 것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빠지직!

" 크윽."

하지만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다시 방금 전과 같은 위력의 낙뢰가 덮쳐왔다. 나는 재빨리 음신지력을 모조리 끌어모아서 방어막을 쳤고, 이번에는 손바닥이 얼얼한 수준에서 낙뢰를 막을 수가 있었다.

태공망의 사자후가 들려왔다.

[ 원시천존께서 직접 전수해주신 건곤뢰(乾坤雷)의 술법을 두 번이나 버티는가? 대라신선을 처형하기 위해 만든 술법일진대 그대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 ......"

[ 그대들이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인정하겠다. 나 또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태공망의 말이 끊어졌다.

' 최후의 수단?'

그게 뭐지?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이 들었으나 일단 지금 가야할 곳은 하나였다. 나는 재빨리 제갈유룡이 맡은 혈주를 향해서 날아갔다.

타닷

제갈유룡은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옛 지배자]를 백호를 제물로 소환중이었고, 이미 반쯤은 소환에 성공한 듯 광대한 마력을 이용해서 영겁지벽을 지지고 있었다. 영겁지벽은 제갈유룡이 쏟아내는 마력에 버티는 듯 했으나 점차 녹아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쿠르르릉

잠시 후 제갈유룡은 영겁지벽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듯 했다. 동시에 고대인의 혼이 해방되기 시작했고, 그는 멍하니 그 광경을 무릎꿇은 채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 이거다... 나는 이걸 보고 싶었던 것이다..."

" 제갈유룡.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제갈유룡과 제갈부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내 쪽도 영겁지벽을 부수는데 성공했으나 궁기가 죽었다. 그리고 태공망은 이제 최후의 수단이란 걸 쓰겠다고 하고는 내게 공격을 멈추었다."

" ......"

" 뭔가 짐작가는 게 있나?"

" 백웅. 두 개의 혈주를 부쉈으니 이제 우린 세 개째의 혈주를 부수러 가게 되겠지. 태공망은 그걸 읽고는 마지막 혈주가 있는 남극선옹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이다."

" 그게 왜 최후의 수단이지?"

제갈유룡은 내 질문에 대꾸하지 않고 제갈부에게 명령했다.

" 혈주 용길공주의 상태를 확인하고 오너라."

" 네."

제갈부는 명령대로 지상으로 내려가서 확인한 후 다시 올라오며 말했다.

" 사라졌습니다."

" 역시 그렇군."

" 뭐가 역시 그렇단 거야?"

제갈유룡은 한숨을 쉬며 내 질문에 대꾸했다.

" 태공망은 마지막 혈주와 영겁지벽을 지키기 위해서 나머지 두 개의 봉인에 배치되어 있던 혈주를 모두 깨워서 자기의 전력으로 삼을 셈이다."

" ......!!"

" 혈주는 모두 살아생전에 십이대선을 뛰어넘는 대선인(大仙人). 그들이 태공망과 힘을 합친다면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 큭..."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면을 뺏아썼던 남극선옹만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힘의 주인이라는 걸 직접 느꼈기 때문이었다. 만일 나머지 혈주의 힘이 남극선옹과 동격이라면 아무리 항우가 우리 편이라고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 ... 지금이라도 제천대성이나 다른 아군을 불러올까?"

" 이미 늦었다. 들어오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들어왔다면 우리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모조리 관리자인 태공망의 의지하에 있다. 탈출은 안 된다."

" ......"

" 다만 영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제갈유룡의 시선은 아직도 소환되고 있는 허공의 거대한 어둠을 향하고 있었다. 저건 틀림없는 황궁의 [옛 지배자]였기에 나는 인상이 암울하게 굳었다. 나는 이를 악물곤 말했다.

" ... 정말로 지배자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단 건가."

" 이제 와서 팔문을 열어서 싸워볼 생각인가? 네 목적은 이 천계의 싸움이 끝이 아니니 그렇게 할 순 없겠지. 지금은 마도(魔道)의 힘을 빌릴 때다."

" 하지만 [옛 지배자]를 끌어들이는 건 늑대를 쫓아내자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것과 같다. 놈들은 절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 이미 늦었다. 여기까지 소환이 진행되었으면 아무리 내가 제사장이라도 더는 멈추지 못해."

정말 그런가?

이제는 이이제이를 노리는 수밖에 없을까?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 성가신 일이군."

" 항우 님!"

우리가 서 있는 곳 근처로 항우가 날아왔다. 그는 자신의 목을 뚜둑거리더니 냉막하게 말했다.

" 너희 무슨 짓을 한 거냐?"

" 네?"

이어진 말에 나는 어떤 표정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 내 성좌의 힘이 훨씬 더 강해져 버렸다."

" ......"

뭐라고?!

강해졌다고?!

" 이 봉인이란 게 내 힘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나?"

" 어... 그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뻐끔거렸지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대인의 봉인을 푸는 순간, 항우의 성좌가 더 강해져버린 것이다.

나는 잠시 후 냉정을 되찾고는 항우에게 말했다.

" 그렇습니다. 부디 그 힘으로 태공망을 쳐죽여 주십시오!"

이렇게 된 이상 답이 없다.

항우만 믿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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