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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85화 (884/1,615)

885====================

진공가향(眞空家鄕)

서왕모는 예전과 같이 흉수(凶獸)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산발한 머리카락에 귀기가 서려 있었고, 표범 꼬리가 나 있는 괴물이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였으며 명백히 두려운 형태였고 보기만 해도 섬뜩할 지경이었다.

' 이미 서쪽을 향해 세 번 포효를 끝냈구나.'

구천현녀와 서왕모의 대결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 듯 본디 서왕모의 소유였던 천계의 궁궐은 온데간데 없었고 모조리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왕모의 맞은편에는 구천현녀가 시해지술을 쓰며 맞서고 있었는데 그녀의 주변에 새하얀 결계같은 게 수십 개나 만들어져서 구형으로 허공을 떠도는 중이었다.

크오오 -

서왕모가 한 번 포효를 하자, 갑자기 허공에서 어둠의 문이 열리더니 그 어둠 속에서 하나의 운석이 튀어나와서 구천현녀에게로 날아왔다. 무려 그 크기가 수백 장이나 되는 듯한 그 운석이 지상에 충돌하면 대재앙이 일어날 터이지만 구천현녀가 가볍게 손을 내젓는것으로 운석을 소멸시켜 버렸다.

[ 지금이다!! 그녀를 견제하라.]

팔선 장과로가 호통을 치듯 외치자 구천현녀를 위시해서 허공에 떠 있던 중화팔선들이 나서서 서왕모를 공격하고 있었다. 각자의 술법을 동원해서 서왕모를 묶거나 공격했고 서왕모는 팔선의 공격에 주춤거리면서 행동이 점차 늦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전방으로 뛰쳐나간 여동빈이 필생의 힘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심의육합(心意六合)

무형검(無形劍)

꾸궁

무형검의 검력이 서왕모의 목젖을 찌르는 데 성공했으나 서왕모는 그저 따끔하다는 듯 고개를 잠시 휘젓고는 그저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비명조차 없었고 피도 흐르지 않았다.

간단한 공방에 불과했으나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 미, 미쳤군!! 검선 여동빈의 무형검을 맞고도 마치 이쑤시개에 찔린 것 같다니...!!'

너무 무섭다.

해신조차도 무형검을 맞고 나서는 꽤 타격을 입은 반응이었는데 어찌 저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무형검은 인간세상의 적수, 혹은 마왕이나 사도를 상대로 반드시 결판을 낼 수 있는 필살기였다. 그런 무형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줄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구천현녀가 시해지술로 보조해주는데다가 팔선끼리 협동하기에 검의 위력이 훨씬 증대되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게 바로 삼황 여와의 분신이자 화신, 서왕모의 힘이란 말인가!

' 진정한 [옛 지배자]의 힘... 이란 거겠지...'

서왕모는 과거 다른 [옛 지배자]를 상대로도 굴하기는 커녕 오만하게 내려다보았었다. 서왕모의 본체인 여와 자체가 일반적인 [옛 지배자]와 격을 달리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때 서왕모가 도착한 우리 일행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 후후... 또 다시 애송이들이 날 없애겠다고 찾아온 건... 으음...?]

흉수 서왕모의 시선이 문득 미호를 향했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듯 침묵하여 그저 미호를 홀린 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황금빛 거대여우가 된 미호는 말 없이 그 시선을 마주 응시했고, 전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 서왕모가 대노(大怒)했다.

[ 이런 같잖은...!! 감히 내 일부를... 내 소중한 영혼의 조각을 제멋대로 신화(神化)시켰느냐...!! 어떤 놈이 죽고싶어서 여(余)의 기휘를 건드렸단 말인가!!]

쿠오오오

서왕모가 포효하자 팔선들이 다같이 움찔거리며 세 걸음 뒤로 물러났고 구천현녀조차 움츠러든 기색이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누군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미호가 서왕모를 노려보며 말했다.

[ 나는 나일 뿐 당신의 일부가 아니다. 과거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아니야.]

[ 그렇지 않다. 팔이 잘렸다 하여 그 팔이 더 이상 네 팔이 아닌 것인가? 너와 나는 본디 하나이며, 영혼 또한 나의 것이다.]

[ 그래서 결국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서왕모라는 화신이 오랜 시간 후 힘을 잃어 약해지면 여벌목숨으로라도 쓰려 했던 건가?]

[ ......]

[ 나는, 당신을 거부한다. 당신은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자 서왕모가 산발한 머리에서 비녀를 천천히 뽑았다. 그리고는 그 비녀를 손톱으로 으스러뜨리더니 말했다.

[ 차라리 잘 되었구나. 살찌워서 먹어치우는 셈이니.]

본색을 드러낸 건가.

[ 할 수 있으면 해 봐.]

미호의 눈빛에 숨길 수 없는 적의가 드러났고, 우리 또한 서왕모에 맞서싸울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쪽의 전력만으로 친다면 엄청난 수준이었으나 서왕모는 우리가 전부 덤벼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진짜 괴물이었으므로 절로 긴장이 되었다.

' 서왕모는 삼황 여와의 모든 힘을 끌어올 수 있는 특수한 화신이야. 그 말은...'

완전히 여와의 본체와 대등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8할의 힘을 끌어올 수 있으니 [옛 지배자]의 본체와 상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막강한 적을 상대한 적은 그리 없었으나 나는 칠요의 시련 때를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 - 그 때 마주쳤던 괴물들도 적어도 서왕모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 때도 어떻게든 끝까지 갔으니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 때였다.

[ 흐하하하. 천하의 서왕모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먼 하늘에서 거대한 존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총 여섯 명이었는데 나는 그들의 면면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서왕모 또한 마찬가지인지 먼 하늘에 떠 있는 그 존재들을 보자마자 말했다.

[ 팔부신중. 너희가 정말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 가만히 숨어 지냈으면 좋았을 걸 그리도 죽고 싶으냐?]

그러자 본체로 변해 있던 팔부신중 긴나라가 웃었다.

[ 하하하!! 천계 어딘가에 삼황오제의 화신이 더 있으리라 짐작했기에 그 동안 천계를 감히 건드릴 수는 없었지. 그러나 그 존재가 소멸되었을 거라는 정보를 들었으니, 당신 하나를 우리가 감당치 못할까.]

[ ... 그 정보를 어디서 들었지?]

[ 말할 이유가 있겠는가.]

스스스

긴나라가 여유있게 대꾸하는 동안에도 팔부신중들의 본체가 서왕모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긴나라는 구천현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었지. 잠시 손을 잡는 게 어떻소?]

[ ......]

구천현녀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 차후 천계에 해가 된다면 그대들 또한 배제할 것입니다.]

[ 그러셔야지...]

순식간에 팔부신중 여섯이 서왕모를 포위한 상태가 되었고, 그런 서왕모 앞에는 구천현녀와 중화팔선이 버티고 있었으며, 우리가 측면으로 돌아가자 완전히 협공을 하는 태세가 되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서왕모라도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아, 그러고보니 아수라가 없군...'

팔부신중이 다 왔으나 아수라만은 오지 않은 듯 했다. 내심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 싸우기 전에 묻겠다.]

서왕모가 눈을 빛내며 우리에게 외쳤다.

[ 이 세계의 인과율에 질서의 축인 반고를 끼어들게 한 자는 누구인가? 너희 중에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아무래도 그녀는 여와답게 이미 우리가 반고에게 공양한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서왕모의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뜻밖에도 팔부신중 긴나라였는데, 긴나라는 움찔하며 말했다.

[ 서왕모. 그게 무슨 말이지? 반고가 끼어들었다는 게 무슨 말이냐.]

그러자 서왕모가 가소롭다는 듯 긴나라를 비웃었다.

[ 천지모르고 까부는 애송이들. 결국 너희도 휩쓸려가고 있을 뿐이구나. 아무것도 모르면 닥치고 있어라!]

[ ......!!]

[ 다시 묻겠다. 반고를 끼어들게 한 놈은 누구냐?! 답하지 않는다면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서왕모의 질문에 대답해 줄 이유는 무엇하나 없었다. 대답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왕모의 외침에는 엄청난 신력과 위엄이 있어서 마치 대답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을 때였다.

" 바로 나요."

[ 네놈은 누구냐?]

" 망량이라고 하외다."

나선 것은 바로 망량이었다. 망량은 서왕모 앞에 나섰는데도 그 엄청난 신력이 두렵지도 않은지 선선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음신지력을 대성해서 신의 사도에 못지 않은 신력을 가진 나조차도 분노한 서왕모의 힘을 정면으로 받고 있으니 살이 에리고 마음이 황폐해진다. 그런데 망량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아무런 압박이 없어보였다.

망량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내가 그를 이 세계의 직조에 끼워넣었소."

서왕모는 뚫어져라 망량을 주시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그렇군... 그랬었어. 너라면 나와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 감읍할 따름이오."

[ 어째서 반고를 끌어들였느냐?]

" 이 세계는 혼돈이 질서를 압도한 세계. 질서의 근원으로써 세계의 균형을 수복하려는 시도가 잘못되었소? 당신의 근원 또한 반고이니 마땅히 기뻐해야 옳지 않겠소?"

그러자 서왕모가 웃었다.

[ 후후... 반고가 질서의 축이라 하여 혼돈과 극렬하게 대립하는 절대선의 존재인 줄 아느냐? 그는 그저 우주의 탄생이며 서막이며 현상에 불과하다. 그에게도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질서는 선(善)과 동의(同意)가 아니다.]

" 잘 알고 계시는군. 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소. 질서와 혼돈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속성이니 하잘것없는 필멸자의 선악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 알고 있음에도 어찌 저질렀느냐?]

" 그렇다고 종말을 지켜만 보란 말이오? 나는 이 세계의 진정한 균형을 위하여, 그리고 종말의 유예를 위하여 이 수단을 택한 것이오."

[ ......]

" 미워할 거라면 나를 미워하시오."

나는 그 순간 망량이 나 대신에 앞서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서왕모와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데다, 설령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그가 나 대신에 서왕모의 분노를 떠안고 죽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망량의 의도를 읽자 이를 악물었다.

' 망량... 고맙소...!!'

서왕모는 망량의 대꾸에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 허나 한때 반고의 분신이었던 나이기에 알고 있는 게 따로 있지. 너희같은 필멸자들이 모르는 최후의 조각이 있다.]

흠칫

" 뭣..."

망량은 뜻밖의 말에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가 판단하기에도 저 말이 서왕모의 허세나 거짓이 아니란 걸 느꼈기 때문이리라. 서왕모는 그런 망량의 반응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 나와 복희는 태초에 반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이에게 존재하는 특이점이 그에게도 존재함을 알 수 있었지. 반고는 세계를 창조하면서 자기자신을 죽였고, 그건 현상으로써 물러나서 자신의 특이점을 피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 무슨 말이오?"

[ 반고의 특이점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여기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너희와 협력할 수도 있다.]

" ......"

망량이 침묵하자 서왕모가 실망한 듯 했다.

[ ...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필멸자치곤 똑똑한 놈 같았는데 과한 기대였군.]

" ......"

서왕모는 큭 하고 웃더니 조롱하듯 말했다.

[ 자신의 발 밑밖에 볼 수 없는 자들아. 거대한 질서의 의지를 살필 수 없는 작은 자들아! 여기에서 그 우둔함의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쿠우우우우우우!!

그 순간, 서왕모가 입을 벌렸고 그 입에서 난데없이 섬광이 뿜어져 나와서 천공을 꿰뚫었다. 우리를 노리고 쏜 게 아니었기에 피하는 자는 누구 하나 없었으나, 그 순간 팔부신중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같이 서왕모에게 달려들었다.

콰과과광

팔부신중들의 압도적인 마력이 담긴 공격이 서왕모를 찢어발기려 했으나 서왕모는 처음에는 그 공격에 약간 고통스러워 하다가 이내 몸 근처에 반투명한 보호막같은 걸 소환했다. 그리고 보호막은 점점 강력해졌고 서왕모는 또다시 귀곡성을 내질렀다.

--------!!!!

인간의 청력으로는 들을 수 없는, 말 그대로 신성(神聲)!

그 포효가 내뿜어지는 순간 팔부신중 중에서 마후라가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 크아아악!!]

[ 마후라가!]

[ 사, 살려...]

퍼버벙

마후라가의 몸은 처참하게 터져나가더니 이내 소멸하고 말았다. 서왕모은 그 모습을 보더니 히쭉 웃으며 꼬리를 떨며 기뻐했다.

[ 아하하하하하.]

순식간에 팔부신중 중에서 한 명이 서왕모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심지어 팔부신중에게 적용되는 부활능력도 적용되지 않는 듯 다른 팔부신중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 뭐야?!'

내가 놀라서 그 광경을 쳐다보자 망량이 뒤로 물러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서왕모의 천려오잔이오."

이어진 말에 나는 이 전투가 최악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맞으면 마왕도 일격에 살해당하는 공격이 음파로 날아올 수도 있소... 조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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