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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84화 (88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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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나타태자의 심장을 입수한 후 제갈사, 제천대성과 함께 바로 망량과 미호에게로 갔다. 그들은 십이대선 중 하나인 보현진인(寶賢眞人)을 상대하러 갔는데 혹시나 미호에 비해서 약한 망량이 죽거나 부상당할까봐 일단 도우러 간 것이다. 그리고 보현진인이 사는 구궁산의 백학동에 도착했을 때였다.

" 백웅. 저항이 거세서 그를 사로잡을 순 없었다. 죽일 수밖에 없었느니라."

황금빛 반인반요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미호의 손톱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땅바닥에는 보패인 오구검을 쥔 채 쓰러져 죽어있는 보현진인이 보였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심장이 꿰뚫려 있었기에 아마 미호의 조격(爪擊)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 미호! 괜찮아?"

" 물론이다."

말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미호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보현진인을 해치운 게 분명했다. 기신이 된 미호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 망량은?"

미호가 턱으로 한쪽을 가리켰고, 나는 미호가 보는 산속 동굴에서 서서히 망량이 걸어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망량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백학동에 있는 보물을 찾아보았소만 별다른 게 없었구려."

" 괜찮소?"

" 미호 님께서 잘 싸워주셔서... 아무튼 잘 풀려가고 있군."

" 이제 서문혜를 도우러 갑시다."

미호, 망량과 합류한 우리는 이번에는 서문혜를 도우러 갔다. 서문혜가 상대하기로 계획한 자는 태을진인(太乙眞人)이었고 구룡신화조라는 보패를 사용하는 존재였다. 구룡신화조는 상대를 봉인하고 붙잡는 효과가 있기에 서문혜가 걱정되었으나 제갈사가 아까부터 호언장담을 했기에 일단 그녀가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을진인이 있는 산에 도착하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콰과과광!!

콰릉!!

천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 그리고 뇌광(雷光)!

" 저게 보패 구룡신화조인가!"

마치 그물같은 형태로 시뻘건 환염이 허공에 수놓아지며 동시에 여섯 마리의 염룡(炎龍)이 어지럽게 천공을 누볐다. 그리고 그물 사이사이로 서문혜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면서 피해내는 중이었고 종종 달려들어서 검강을 날리곤 했다. 그 때마다 세 마리의 염룡이 만들어낸 커다란 벽이 태을진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어하고 있었다.

' 여섯 마리는 공격에 쓰고 세 마리는 방어를 하는 건가?'

마치 신화시대의 싸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장관이었기에 내가 잠시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자 미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과연 태을진인은 십이대선이구나. 저 자는 보현진인보다 강한 듯 하군."

" 팔짱 낄 때가 아니야. 서문혜를 빨리 도와주자."

" 그럴 필요가 있을까?"

" 뭐?"

미호가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서문혜를 응시하며 말했다.

" 내가 보기에 그녀는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도와줄 필요 없다."

" 기회라니..."

" 보면 알 것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동료들과 함께 서문혜가 태을진인과 겨루는 장면을 밑에서 쳐다보기로 했다. 그렇게 약 일백 오십 합을 부딪혔을 때, 난데없이 서문혜가 뒤로 크게 물러서더니 자신의 검을 거두어서 등 뒤의 검집에 넣어버렸다.

철컥

허공에 구룡과 함께 떠 있던 태을진인은 서문혜를 보며 말했다.

" 그 엄청난 신력과 신체능력... 그대는 거신족의 후예인 듯 하구나. 어찌 천계를 적대하여 무모한 짓을 하는가?"

" 태을진인. 저의 제안에 아직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문답무용으로 공격하셔서 상대해 드렸습니다만 이젠 대답을 듣고 싶군요."

" 으음... 건방진...!! 십이대선으로써 어찌 천계를 멸망시키는 일에 동조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 그런가요."

서문혜가 갑자기 무영문의 무예 중 권형(拳形)을 잡았다. 정권을 날릴 듯한 그 자세는 천공에 떠 있는 대라신선을 상대로는 무의미해 보였다. 그러나 서문혜는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태을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럼 진심으로 죽일 수밖에요..."

투둥

다음 순간, 서문혜가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확히는 내가 화안금정과 무예경지를 동원했어도 서문혜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힘들만큼 그녀가 빨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찰나가 지나자 태을진인을 감싸고 있던 구룡신화조 세 마리의 용은 모두 머리통이 터져나갔고, 태을진인의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려버렸다.

" ...... 커헉..."

태을진인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피를 토해내다가 잠시 후 추락해서 땅에서 꿈틀거렸다. 즉사한 것 같지는 않았으나 저정도 부상이라면 아무리 대라신선이라도 머지 않아서 죽을 게 분명했다.

" ......!!"

곤륜십이대선을 일격에?!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우리가 서문혜가 싸우던 곳으로 가자, 미호가 신기를 불어넣어서 태을진인을 일시적으로 회복시켰다. 나는 서문혜에게 놀라서 말했다.

" 어떻게 그를 일격에 해치울 수 있었소?"

" ... 하아, 하아..."

" 서문혜."

서문혜는 숨이 거칠어져 있었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해 보였는데 체력과 힘이 크게 고갈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제갈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 백웅. 빨리 서문혜를 진맥해라. 그녀는 죽을 수도 있다."

" 뭐?"

" 짐작가는 게 있으니까 빨리."

파밧

나는 재빨리 서문혜의 손목을 잡고 기를 흘리며 내부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 속에 있는 경혈이 모조리 트이고 동시에 활화산같은 힘이 당장이라도 그녀의 몸을 터뜨릴 것처럼 흘러나오는 걸 느꼈고, 이 익숙한 흐름의 정체를 즉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경악해서 외쳤다.

" 대... 대라멸진!! 대라멸진을 쓴 거요?!"

대라멸진!

그거라면 서문혜가 일격에 태을진인을 해치운 게 이해가 되었다. 서문혜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 ... 태을진인의 구룡신화조는... 선계 최고의 방어보패 중 하나... 육룡(六龍)이 모여서 방어하면 아무리 제가 전력을 써도 안 부숴졌고... 그래서 그가 방심하는 틈에... 대라멸진을 써서 한번에 해치우려 힘을 모았습니다... 육룡을 공세로 돌리고 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였기에..."

" 하지만!! 당신은 대라멸진의 개요만 알 뿐 정확한 시전방법을 모르고 있었을텐데."

" '문'의 고리를 열기만 한다면... 세부적인 운용은 필요없었습니다... 저는 인간과는 다른 몸이니까요..."

" ......"

나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대라멸진은 엄청난 힘을 폭주시키는 비법이기 때문에 고도의 의술을 가진 자가 경락을 통제하는 고도의 운용을 필요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문이 열리는 도중에 인간의 몸이 폭발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폭주술이라 하더라도 폭주가 끝날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존재했다.

그러나 서문혜는 인간에 비해 수백 배 이상의 내구도를 가진 몸이었으므로 그런 세부운용이 필요없었으리라.

문제는 대라멸진이 다해서 연소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서문혜에게 찾아온 대라멸진의 부작용은 내가 평소에 겪던 것과 반대였던 것이다.

' 대라멸진이 끝나지 않아!! 너무 힘이 넘쳐서 문제인 거야.'

인간의 경우 대라멸진의 각성이 끝나는 시점에 급격히 힘이 쪼그라 들어서 죽게 된다. 그러나 서문혜는 대라멸진으로 얻게 되는 힘이 인간의 수십 배 이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법의 각성이 끝났어도 그 힘이 단시간에 사라지진 않고 도리어 내부에서 더욱 팽창하게 되어 있었다.

인간이 지닌 기의 절대량이 찻잔이라면 서문혜의 절대량은 거대한 욕조와 같았다. 절대량이 너무 많으면 욕조의 물이 빠지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 와중에도 물이 부어진다면 욕조가 도리어 차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득 나는 서문혜가 음양이 바뀌었을 때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던 일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 때도 음의 기운이 너무 팽창한 바람에 지금과 비슷한 현상이 닥쳐오려던 게 아니었을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 백웅. 이대로 그녀를 데리고 서왕모에게 갑시다."

" 뭣..."

" 어차피 그녀는 힘이 과잉하여 고통을 겪고 있소. 그러면 절대강적 서왕모에게 그 힘을 부딪히다보면 힘을 발산하여 상태가 나아질 것이오."

어차피 이렇게 된거 반폭주상태가 된 서문혜의 힘을 이용하자는 말이었다. 나는 의원이었기에 망량의 말이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

" 망량!! 그건 아니오! 설령 그렇게 지금의 상태가 나아진다 하더라도, 결국 대라멸진은 '그릇' 그 자체를 깨버리는 금단의 비법이며 역천의 힘. 힘이 다 빠지게 되면 아무리 서문혜가 신족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죽거나 큰 장애를 입게 될 것이오."

" 그렇겠지."

" 지금은 서문혜의 힘을 서서히 안정시키면서 그릇이 깨지는 걸 최대한 막아야 하오."

" 백웅, 그렇다면 아까 얻은 나타태자의 심장을 그녀에게 먹이는 수밖에 없소."

흠칫!

내가 몸을 떨자 망량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 본디 당신이 먹어야 할 힘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지."

" 으음...!!"

" 보패의 핵을 섭취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핵이 내부에 있는 힘을 흡수하게 될 것이고, 그 틈에 당신이 기공치료로 서문혜의 그릇을 안정시키시오."

나는 서문혜를 쳐다보았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문혜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먹겠어요."

" 괜찮겠소?"

" 죽는 것보단 낫겠지요."

잠시 후 나는 나타태자의 심장을 서문혜에게 먹였고, 그녀는 역하고 비린 냄새를 꾹 참으면서 심장을 씹어서 목 뒤로 삼켰다.

쿠구구

나는 그녀의 심장에 핵이 박혀들어가면서 대라멸진의 힘을 흡수하여 새로운 핵의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힘이 안정되어 가자 나는 급히 기공치료를 이용해서 그녀 내부의 경락과 혈도를 보수했다. 비유하자면 흙벽이 물렁해진 틈에 재빨리 찰흙을 이용해서 부숴진 벽을 보수하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서문혜가 안정상태에 이르러서 기절했으나 다행히 대라멸진을 연 것 치고는 크게 이상이 없어보였다. 내가 내심 한숨을 쉬자 옆에 있던 제갈사가 이죽거렸다.

" 남 좋은 짓만 해주는 놈이군."

" 미안."

"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릴 틈은 없다. 이제 서왕모의 궁으로 가자."

" 잠깐. 원래 계획은 그게 아니었잖아. 우리 삼파가 3명의 십이대선을 처리한 후 제갈유룡까지 도와서 십이대선의 과반수를 제압한 후 천궁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

내가 제갈사의 말에 의아해서 반문하자 제갈사가 대꾸했다.

" 상황이 달라졌으니 계획도 바뀌어야지. 뜻밖에도 구류손과 중화팔선이 우리 편이 되어서 구천현녀를 지원하러 갔으니 그쪽의 전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그들은 구천현녀가 힘을 보존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니 구천현녀가 힘을 더 잃기 전에 그녀를 도와서 서왕모를 쓰러뜨리는 게 훨씬 승산이 높다. 나머지 9명의 십이대선은 이제 전황에서 별로 의미가 없어."

" ......!!"

" 결국 천계의 대장은 삼청이며 사어이며 서왕모. 그 중에서 옥황상제와 삼청이 실종되었으니 실질적으로 서왕모만 쓰러뜨리면 천계는 끝이다. 대장만 쓰러뜨리면 끝날 싸움이면 거기 집중해야겠지."

" 그럼 제갈유룡은?"

" 글쎄 뭐, 알아서 하겠지. 그 인간이 돌봐달라고 부탁 한 마디라도 했던가? 아니잖아. 죽으면 그 정도 능력일 뿐 아니겠나."

자기 형의 일인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제갈사는 냉정했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서왕모의 궁으로 가자."

파앗

우리는 제천대성의 근두운을 타고 다같이 곤륜산을 올랐다. 서왕모의 궁은 곤륜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었으며 곤륜산은 지상의 그 어떤 산보다 높았으므로 정상적으로 오르고자 하면 사흘 밤낮을 올라야 했다. 그리고 근두운을 타고 중턱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퓨웅!!

어디선가 거대한 화살이 날아와서 근두운을 공격해 왔다. 제천대성은 몇 발을 피하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근두운을 소환해제시키면서 우리를 땅에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제기랄! 저 아저씨... 이런데서 기다리는 거냐고."

" ......"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기에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 투선 예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거 아닙니까?"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때는 천계 반고의 주를 막으려고 천계에 돌입했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도 예가 서왕모의 명을 받아서 우리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제천대성이 결국 이기긴 했지만 씻을 수 없는 부상을 당했었다.

" 화살을 보고 추측한 거 같은데, 맞아. 저 아저씨는 나도 쉽게 못 이겨."

" 나타태자처럼 어쨌든 싸우면 이기잖습니까."

" 저 아저씨는 나타태자보단 강해. 그래서 부상없이 이길 자신은 없어. 아무튼..."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 여긴 내게 맡겨라. 너흰 올라가서 구천현녀와 팔선을 도와서 서왕모를 쓰러뜨려."

" 알겠습니다."

" 간닷!"

콰르릉

슈웅 하는 소리와 함께 제천대성이 허공으로 날아갔고, 이윽고 하늘에 번개가 튀기면서 제천대성과 투선 예의 결전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쉬운 상대가 아니란 말은 사실인지, 나타태자 때와는 달리 제천대성은 전혀 웃는 기색도 없이 싸움에 임하는 중이었다.

망량이 곤륜산의 정상을 응시하며 말했다.

" 적어도 정상까지 남은 거리가 일천오백 장은 되겠군... 과연 천계 최대의 산 답소. 이걸 곧이곧대로 오르려 한다면 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칠 주야가 넘게 걸릴 것이오. 무림인이라 해도 사흘밤낮..."

" 여기서 비등은 못 쓰니 축지법을 씁시다."

" 축지법을 쓸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소."

" 윽, 그러면..."

미호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 내가 본체로 변해서 너희를 등에 태우고 오르는 게 제일 나을 것이다."

퍼엉!!

미호가 본체인 황금빛 여우로 변신했고 그 몸 크기가 무려 칠 장이나 되었다. 우리는 미호의 등에 올라타서 황금빛 털에 파묻혔고, 이윽고 미호가 빠르게 곤륜산을 달려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바밧

그렇게 약 한 식경 정도를 뛰어올랐을까? 미호는 정상에 착지하며 말했다.

[ 이미 겨루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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