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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76화 (87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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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진소청이 공격당하는 순간, 나는 당연히 막아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나는 만일에 대비해 백호의 가면으로 바꾼 후였다.

' 진소청을 구해야...!!'

멈칫

하지만 동시에 내 멈칫거림을 불러온 것은 책사들의 진소청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망량은 물론이고 제갈사도 진소청이 향후의 불안요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죽이진 않더라도 봉인해야만 한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억지로 진소청을 구하려는 행위 자체가 모든 계획을 망칠 수 있지 않은가? 사실 객기를 부린 진소청을 그냥 교주의 손에 죽게 놔두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소청이 뇌령을 머금은 창섬으로 교주의 일 장을 쳐내는 걸 보는 순간 내 정신이 번뜩 되돌아온 것이다.

' 그래 진소청은 내 동료야! 동료를 구하는데 그런 효율을 따지는 게 어딨어?!'

부부부붕

나는 첫 일격을 막아낸 진소청의 전신으로 교주의 장력(掌力)이 수백 방이나 날아오는 걸 보았고, 진소청이 어떻게든 피해내려 했으나 몇 수 지나지 않아서 치명상을 입는다는 걸 알아챘다. 진소청은 감으로 교주의 공격이 어떻게 오는지는 모두 파악하고 있으나 아직 숙련도와 경지가 부족해서 자신의 의념을 실천할 수가 없었기에 결코 교주를 이길 수 없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나는 급히 뛰어들어서 교주를 기습했다.

콰광!!

교주의 몸 근처에 원영신이 일으킨 무지막지한 호신강기가 떠올라서 내 혼신의 힘을 다한 검뢰의 기습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내 검뢰도 그리 만만치 않았기에 교주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그 덕에 진소청은 수월하게 교주의 공격에서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

교주는 찰나의 시간에 나를 주시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지강(指罡)을 발출했고 그 지강에는 파산(破山)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영신의 무한한 힘이 담겨 있었으므로 저 공격을 정면에서 받으면 내가 무조건 손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일반공격 하나하나에 무쌍패를 쓰면 결국 내가 불리했으므로 나는 멸혼보의 극성을 이끌어내서 최대한 피했다.

퓨웅

[ 흐음!]

교주는 내 멸혼보의 환영이 생겨나며 그의 코앞까지 근접해 오자 약간 놀란 듯 했다. 그러나 용중일과는 달리 내가 지근거리에서 일참을 휘둘렀는데도 아무런 동요없이 절기를 발동하며 응수했다. 그는 용중일과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심천무량(心天無量)

만다라가 일그러짐과 동시에 내 근처 공간의 사방팔방에서 막대한 힘의 광선이 쏟아졌다. 나는 그 찰나에 다시 한 번 삼보절기를 펼치며 공간을 확보했고, 연이어 멸혼보로 심천무량의 공간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슈웃

동시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후! 빠져나오긴 했지만 확률은 반반이었군.'

멸혼보의 극성이 아니었다면 저 지근거리에서 삼보절기로 잠시 버티긴 했겠지만 결국 호신강기만 믿고 무차별적으로 계속 수천 개의 만다라에 두드려맞았으리라. 반쯤은 운좋게 빠져나온 셈이었다. 내가 교주와의 일수공방을 무사히 끝내자 백련교주가 눈에서 광망을 뿜어냈다.

[ 후후... 그대는 천외천(天外天)급 고수인가? 재밌구나!]

" 과한 평가입니다만... 아무튼."

나는 말을 얼버무리고는 진소청을 힐끔 쳐다본 후 말했다.

" 저 어린 호랑이는 제가 데려가야겠군요. 객기를 부렸단 이유만으로 천부적인 재능의 싹을 꺾는 건 중원제일인이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내가 중원제일인이라... 그대가 있는 한 섣불리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 무슨 그런 말씀을."

언뜻 교주가 겸손하게 말하며 나를 인정하는 듯 했으나, 실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여기서 진소청과 나를 잡아죽이겠다는 진심이 깃들어 있었기에 나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 교주께는 후학의 싹을 꺾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세계의 종말을 막는 일이라던가..."

아, 저질러버렸다.

아직 제갈사와 논의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교주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큰 떡밥을 풀지 않으면 교주는 틀림없이 백련교의 세력을 동원해서 이광한테까지 추격을 보낼 것이고 뜬금없는 뇌신류 멸문이 일어날수도 있었다. 교주에게 더 큰 관심을 제공해서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당연히 세계의 종말을 언급하자 백련교주는 흠칫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그대는 이면의 세계에 접한 자인가?]

" 그럴지도요."

파바밧

" 이 놈들!"

" 감히 교주께 거스르다니... 죽음 뿐이다!"

그 때 사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원로원의 고수들이 한가득 우리를 포위했다. 내가 진소청 앞을 가로막듯 서자 수십 명이나 되는 초절정고수들이 일시에 살기를 뿜어내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들의 살기를 태극의 운용으로 가볍게 흘려보내며 백련교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백련교주 한 명이 수십 배는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력이 빠진 듯한 진소청을 들쳐업으며 말했다.

"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 흐름을 자세히는 알지 못하시겠지요. 하지만 저희쪽은 혼돈의 시대에 대비하고 있으니, 정보를 얻고 싶다면 저희와 손을 잡으셨으면 합니다."

교주는 솔깃한 기색이었다.

[ '저희'라... 그대들은 어떤 단체에 속해있나?]

" ... 조만간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뇌신류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뇌신류를 건드린다면 당신이 원하는 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일로(一老)가 버럭 화를 냈다.

" 건방진 놈! 감히 교주님을 협박하는 것이냐? 알량한 무공으로는 결코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백련교주가 그를 제지했다.

[ 그만해라, 일로. 내가 더 부끄러워질 뿐이다.]

" 교, 교주님."

[ 저 자는 설령 내가 막는다 해도 살아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표면적인 무림에서는 결코 나타난 적 없는 절대고수. 너희의 상대가 아니다.]

" ......!!"

교주는 몇 수만 부딪혔는데도 내 실력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멸혼보의 극성으로 그의 지근거리까지 파고들었는데도 심천무량을 피해서 돌아나간 한 수가 그의 마음을 경동시킨 모양이었다. 교주가 침착하게 말했다.

[ 좋다. 보내주지. 하지만 그대의 이름과 다시 방문할 시기 정도는 말하고 가라. 그렇지 않다면 결코 순순히 갈 수는 없으리라.]

" 물론입니다. 제 이름은 백웅이며, 십 주야 이내로 다시 방문드리지요."

[ 그대가 속한 단체에서는 그대가 가장 강한가?]

" 그건 말씀드릴 수 없군요..."

[ 알았다. 가라.]

타닷!

파아아앗

나는 진소청을 들쳐업고 백련교 본단을 빠져나왔다. 당연히 멸혼보를 극성까지 펼쳤기에 내 움직임은 마치 별빛을 연상케 할 정도였고, 간간히 능공허도를 펼치면 하늘의 구름을 쭈욱 두 줄로 가르는 듯 했다. 처음에는 쫓아오고 있던 원로원 고수들도 도저히 멸혼보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오 리쯤 쫓아오다가 그만뒀고, 나는 그렇게 백오십 리 이상을 달리다가 멈춰섰다.

이 정도로 빠르면 굳이 그 자리에서 비등을 써서 이쪽 패를 안 보여줘도 상관없었다. 남들 안보이는 데서 비등을 쓸 생각이었다.

쿠쿵

" 정신차리시오, 진소청!"

멸혼보의 전개를 멈추고 나는 진소청에게 기를 불어넣으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 진소청은 교주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마주하고는 정신을 잃은 듯 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진소청이 눈을 뜨며 말했다.

"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이오?"

" 그렇소. 내 이름은 백웅이오."

" ... 일면식도 없는... 아니... 당신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아차.

아직도 백호의 가면을 뒤집어쓴 걸 깨달은 나는 재빨리 가면을 벗어서 변신을 해제했다. 내가 소년의 모습으로 되돌아오자 진소청은 깜짝 놀란 듯 했고, 나는 차분하게 그에게 말했다.

" 이게 내 본모습이오."

" 음, 구해줘서 고맙소... 그런데 어째서 날 구해준 것이오?"

" 흠... 설명하면 긴 얘기지만..."

진소청에게 흑요석을 주면 간단하겠지만 암기가 섞여서 그에게 줬다가는 타락하거나 미칠게 분명했고, 게다가 이미 전생에 대해 아는 자를 더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말 몇 마디로 지금상황을 말할 수 있을 리도 없었기에 나는 정직하게 용건만 말하기로 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봉인하려 하오."

" 봉인이라고? 어째서?"

" 이쪽의 사정이라고밖에 말할수가 없구려. 다만 그대가 죽는 것은 과한 일이라고 여겨서 죽는 것만은 피하고자 당신을 구한 것이오."

" 어처구니가 없군. 멋대로 살리고 멋대로 봉인하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오?"

진소청은 화가 난 듯 했다. 그러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했다.

"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건 알고 있소. 대신 당신에게 나중에 속죄하고 큰 대가로 보답해 주겠소."

" 헛소리 하지 말고 이만 헤어집시다. 구해준 은혜는 다음에 갚겠소."

" 자, 잠깐."

나는 그를 제지한 후 잠시 생각해서 물었다.

" 어째서 백련교주를 찾아가서 제자가 되길 청한 것이오? 그런 돌발행동을 한 이유가 있소?"

이것만은 알아야겠다. 진소청의 이번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태까지 없었던 행동이었고 뭔가 변인(變因)이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러나 사실 창힐과 요순이 소멸한 정황으로 볼 때 어느정도나 인과율이 뒤틀렸는지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진소청의 말과 행동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진소청이 대답했다.

" 나는 내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소. 그리고 한계에 부딪혀 있었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싶었지. 그러던 중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라면 백련교주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목숨을 걸고 그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오."

" ......"

"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군."

나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 왠지 그건 내가 아는 당신같지 않소."

" 무슨 소리요? 이제 일면식이거늘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 ......"

진소청은 불쾌해했지만 나는 입을 다문 상태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 당신과 나는 이제 일면식이겠지만 나는 진소청 당신을 수십 번이나 곁에서 보고 들어왔다. 어쩌면 친형제 이상으로 당신이라는 인간을 잘 알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진소청은 단순히 강해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백련교주의 제자로 받아달라고 가는 인간이 아니었다. 진소청에게는 뇌신류의 자부심이 있었으며 재능에 어울리는 여유가 존재했기에 그런 단순무식한 선택을 할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의 진소청은 이상하다.

나는 그를 억지로라도 제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더 이상 그를 활보하게 놔두면 큰 불안요소가 될거라는 책사들의 말에 피부로 공감한 것이다.

" 미안하오."

" 음!"

파밧!

나는 곧장 진소청에게 달려들었다. 진소청은 기습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빠르게 대응했지만, 나는 영활하게 지금까지 익혔던 모든 무공을 사용해서 진소청의 숙련도가 부족한 부분을 노렸다. 진소청은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상위라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직 최절정의 세계에서 먹히기에는 사소한 빈틈과 단점이 많았다. 최정상급 고수와 많이 겨뤄보지 못한 진소청을 공략하는 건 수많은 혈전을 거쳐 온 내게는 쉬운 일이었다.

퍼벅

나는 삼십여 초 만에 진소청을 제압해서 꿇려앉혔다. 내가 혈도를 제압하자 진소청은 원통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 으으... 분하구나."

" ......"

나는 진소청을 목갑에 집어넣었다.

' 당신은 왜 이렇게 변한 거지?'

알 수가 없다. 설마 이런 식으로 동료를 제압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나는 기분이 매우 꺼림칙하고 착잡했다. 진소청과는 늘 우호관계로 지냈는데 이렇게 입맛 나쁜 결과라니! 하지만 어쨌든 일은 벌어졌기에 나는 제갈사에게 복귀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 잘했다. 백련교주도 어차피 끌어들여야 할 판이었으니 나쁘지 않았어."

" 이제 어쩌지?"

" 제갈유룡에게 제갈부를 보냈고 회신이 되돌아왔다. 사흘 후에 반고의 공양을 위해 항산(恒山)에서 보자고 하더군. 칠요를 준비해서 그 때 가면 된다."

" 알았어."

" 그리고 그 날에는 망량도 참여할 거다."

" 망량은 기억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힘이 부족하잖아."

망량의 오화칠금선을 세이메이에게 전해주려 했으나 망량이 거부해서 하지 못했다. 망량은 자신이 오화칠금선을 갖고 있으면 더 좋을거라 말해서 그 제안을 거부했던 것이다.

"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본인은 그게 아닌 것 같더군. 되려 자신이 참석하지 않으면 그 공양의식에서 곤란할거라 했어."

" ... 그리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망량 또한 성장성이 약하지는 않다. 언뜻 천우진 등에게 밀려보이지만 어쨌든 그는 지선의 경험과 지식을 빠르게 이해해서 등용문을 통과할 수 있었고 시해지술에 있어서는 천재라 해도 좋은 인물이었다. 다만 그의 성장에는 시간이 걸렸기에 당장 사흘 후에 내놓기에는 힘이 부족해서 걱정이었지만 본인이 괜찮다 하면 그 말대로 해주는 게 맞았다.

그리고 사흘 후, 나는 일행과 함께 항산으로 갔다. 항산에는 제갈유룡과 제갈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유룡이 말했다.

" 네가 올 줄은 몰랐다."

그의 시선 끝에는 망량이 있었다. 망량은 어쩐지 살짝 검게 물든 오화칠금선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면서 대꾸했다.

" 아버님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형님과도 마찬가지. 오늘은 서로 할 일만 하고 헤어지도록 합시다."

" 냉정하구나."

" 정말 냉정한 건 이 모든 일을 진행하면서 저만을 떼어놓은 아버님이 아니십니까."

" ... 그건 이유가 있었다."

망량은 제갈유룡의 말을 무시하고는 말했다.

" 이 항산이 반고에게 공양을 바치는 제단인 건 확실합니까?"

" 그래."

" 공양의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제갈유룡이 설명을 시작했다.

" 반고는 일반적인 신성(神聖)이 아니다. 보통 [옛 지배자]나 신격처럼 직접 공물을 받거나 필멸자와 소통하지 않지. 그 존재가 너무나 머나먼 차원이라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반고에게 공양할 수 있다고 확신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 구천현녀 때문이겠죠."

망량이 곧장 대꾸하자 제갈유룡이 그를 보았다.

" 그렇다. 구천현녀는 반고의 화신이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화신이 존재한다면 본체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이전에는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 구천현녀가 이 행성에 존재하는 정령들의 왕이라면 반고는 정령왕 이상의 존재. 우주적 법리(法理)의 구현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매질 하나하나에 스며있을 것입니다."

" 범세계적 존재라면 사당 하나로 불러낼 수 있을 리는 없지. 그러나 이 항산을 택해서 공양을 하는 이유는..."

제갈유룡은 품 속에서 반고의 상(像)을 꺼냈다. 그 상은 반고가 조각되어 있었고, 모두의 시선이 반고의 상으로 향했다. 제갈유룡의 말이 이어졌다.

" 이 반고의 상은 태고적부터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항산의 천제단 위에 올려져 있었다. 먼저 이 항산에 도착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물건의 연원을 추측해 보니 최소한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즉 이 또한 신적인 존재와의 인과율이 맺어져있는 물건인 것."

" 반고의 상을 매개로 반고에게 공양의식을 한다는 말입니까?"

"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그것만으로 되었다면 태산노옹 시절에 진작에 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범세계적 존재가 아무리 인과율이 이어져 있어도 고작 상 하나에 소환되진 않는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잠시 말을 멈춘 제갈유룡이 상을 지긋이 보다가 말했다.

" 반고가 태초의 혼돈을 가를 때 사용했던 건 한 자루의 도끼였고 그 도끼가 혼연을 갈라서 세계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반고의 사망 후 그의 시체에서 여와와 복희가 태어났고 그때부터 세계에 방위라는 게 생겨났다. 이 전설에 비춰볼 때 반고 본인은 방위가 존재하기 이전의 혼돈과도 별개의 존재. 즉 그는 우주적 질서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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