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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75화 (87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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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뭐?!

뜻밖의 이야기에 내가 놀라서 망량을 돌아보자 망량은 태연하게 말했다.

" 놀랄 것 없소.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오."

당연한 흐름이라니?!

진소청은 지금까지 고정적인 동료이자 큰 전력이었기에 한 마디로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자연히 언성이 조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이유를 설명해 주시오. 진소청을 대체 왜 봉인하려는 거요?"

망량은 뭔가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 말을 마음속에 묻고 다른 말을 했다.

" 가능하면 죽여야 할 것이오. 그게 옳소."

" 뭣!!"

진소청을 살해한다고?

그렇게까지 해야한다고?

망량치고는 너무나 강경한 계책에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자 제갈사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 답답하군. 저놈의 주군이 두뇌가 좋으면 모르겠는데 상황이 안좋아서 전부 다 알아서 눈치를 채야 하다니."

" 무슨 소리야."

" 그냥 이번엔 우리를 믿어라. 모든 상황이 정리되면 설명해 줄거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안 되냐?"

제갈사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 책사를 둔다는 건 머리쓰는 일을 우리한테 맡긴다는 소리지. 맡겼으면 푹 쉬고 시키는대로나 해."

" ... 어째 그건 주군이 아닌 것 같은데."

보통 그런 걸 머슴이라고 하지 않나?

내가 불만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제갈사가 툭하고 내뱉었다.

" 그러면 단서 정도는 줄테니 알아서 생각해 봐."

제갈사가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 이번 동맹을 맺을 때 나와 제갈유룡은 다른 건 몰라도 단 하나의 명제에는 합의했다. 그건 바로 진천휘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아니 그걸 누가 몰라? 나도 다 알아."

" 멍청한 녀석. 같은 문장에도 수십 개의 뜻이 함의할 수 있는 법이야. 단서는 다 줬으니까 더는 귀찮게 하지 마."

" ......"

정말 무슨 뜻이야?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망량이 말했다.

" 백웅. 굳이 더 말해주자면 진소청을 믿지 못해서 잡아가두자는 건 아니오. 다만 일이 진행될수록 그는 우리의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높소."

" 음... 정말이오?"

" 그렇소. 내 이름을 걸고 확신해주지. 또한 봉인이 가능하다면 굳이 죽이진 않아도 될지도 모르오."

" 알겠소. 그럼 봉인합시다. 내가 진소청을 잡아오겠소."

나는 결국 생각하는걸 포기했다. 진천휘를 의심하지만 진소청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아가둬야 한다는 말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내 머리론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내 책사들을 믿기 때문에 그들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진소청에게는 나중에라도 사과할 생각이었다.

파앗

나는 청룡무관으로 가서 진소청이 어디있는지를 몰래 탐색했다. 그런데 진소청의 기(氣)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생겨서 삼선 수련생을 하나 붙잡아서 재빨리 이혼대법을 써서 상황을 심문했다.

우우우

" 내 질문에 모두 사실대로 답해라."

" 네..."

" 이광과 진소청은 어디 있지?"

눈이 혼미한 삼선수련생이 천천히 대답했다.

" 이광 관주님은... 태검문주님을 만나러 가셨고... 진소청 사범님은... 무사수행을 위해 떠나셨습니다..."

" 떠났다고? 어디로?"

"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 윤광과 지평은 그 사실을 알 것 같나?"

" 그 두 분도... 관주님을 따라가셔서 저는 잘..."

" 알았다."

나는 심문을 마치고 그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돌려보냈다. 이혼대법을 쓴 게 미안하긴 하지만 건강이나 수명에는 큰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광이 사범인 윤광과 지평을 대동하고 태검문주를 찾아갔다는 건 제법 위중한 용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포기하고 전국옥새라도 써서 탐색했겠지만, 전국옥새는 선지자에게 정보료로 줘버린 후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다가 일단 태검문으로 가보기로 했다.

파앗

나는 태검문의 지붕 위에서 기를 탐색했다. 그리고 이광이나 윤광, 지평의 기는 느끼지 못하고 태검문주의 기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미 용무를 마치고 떠난 듯 했고 태검문주를 심문해야 알아볼 수 있을 듯 했다.

' 가면을 준비할까.'

나는 마치 유령처럼 숨어들어서 태검문주가 쉬고 있는 방 안으로 소리없이 들어갔다.

태검문주는 잠시 후 내 기척을 눈치채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엄청난 은신술의 소유자로군... 당신은 누구요."

나는 어둠속에서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 나는 사신위(四神衛) 백호(白虎). 금의위의 수장이오. 우린 구면이지."

태검문주가 경악했다.

" 백호!! 당신이 어찌 여기에... 그리고 어째서 금의를 안 입고 있소?"

" 비밀임무 중이기 때문이지."

그랬다. 나는 괴인으로 잠입하면 태검문주가 완전히 입을 닫을까봐 사신위 백호인 척 하기로 한 것이다. 태검문주는 금의위에게 늘 상위제자를 등용시키기 때문에 금의위 수장인 백호와는 안면이 당연히 있었다.

또한 내게 백호의 가면을 쓰는 것 정도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백호가 나중에 이 일로 엿먹든말든, 그의 상관인 제갈유룡과 이미 동맹을 맺었으니 알 바 아니다. 태검문주는 완전히 백호와 똑같은 외모인 나를 의심하지 못했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 당신의 무공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니었소. 초절정에 겨우 오른 자였거늘 어찌 무위가 몇 배나 증가했단 말이오?"

" 후후. 그런 건 당신이 알 바가 아니지. 나는 칙령(勅令)을 받고 이 자리에 와 있으니 신중하게 대답하시오."

" ......"

" 전대 사신위 청룡 이광이 얼마 전 당신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소. 그의 두 제자도 동석한 듯 한데, 그들과 무슨 얘기를 했지?"

태검문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친구의 행방을 결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의리가 느껴졌다. 나는 백호를 연기하며 차갑게 웃었다.

" 입을 못 여시겠다? 그럼 당신네 태검문은 금의위의 권한으로 압수수색하여 반역도의 증거를 찾아내겠소."

" 폭거를 저지르지 마시오! 우리 태검문은 낙양 쌍문사가의 일원으로 오랫동안 황실에 충성해 왔으며 금의위에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소. 당신들이 이런 짓을 저지른다면 결코 성하지 못할 것이오!"

" 나도 그러고싶진 않소. 그러나 청룡 이광은 위험인물이니 반드시 그 거취를 알아내야 하지. 그러면 이러는 건 어떻소?"

" ......?"

스릉

" 나는 특기인 권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검만을 사용하겠소. 그리고 당신을 십 초 내에 꺾겠소."

" 뭐라고!"

" 이 조건으로 내가 이긴다면 당신은 내게 그의 행방과 나눈 얘기를 모조리 말해줘야 하오."

" 오만하기 짝이없군..."

태검문주가 안광을 폭사하며 초절정고수의 살기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안광이 어찌나 강렬한지 실제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고 새하얀 균열이 의념지기 때문에 나타났다. 그가 살기를 드러내며 외쳤다.

" 기껏 사냥개의 우두머리인 주제에 어디서 감히...!! 넌 여기서 내가 죽여주마!"

... 어, 너, 너무 화내는데?

그와 동시에 분기탱천한 태검문주가 검강을 일으키며 내게 덤벼왔다. 나는 일전에 태검문주를 꺾은 적이 있었기에 다소 방심하고 있었지만 이 신검합일의 일격에 엄청난 위력이 실린 걸 깨닫고는 급히 피했다. 동시에 머리카락 한무더기가 검강에 터져나갔고, 그의 검강이 백열하며 수백 조각의 단면을 비치며 날아들었다.

극의(極意)

일선태검무(一線太劍舞)

검의 환영이 허공에서 합쳐지더니 단 하나의 직선이 되어 내 심장을 향해 뻗어왔다. 이것이 바로 태검문 검술의 최강오의이자 극의, 일선태검무! 예전에 한백령의 종용으로 태검문주와 겨룰 때 이 극의를 상대할 때는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그저 피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여주자.'

태검문주는 이혼대법을 걸기에는 껄끄러운 상대다. 지금까지 닦은 무공을 시험하기 좋은 상대이기도 했기에 실력차를 보여줘서 전의를 꺾는게 좋다고 여겨졌다. 나는 일선태검무가 뻗어오자 음양의 이치를 정수에 모은 후 무쌍패를 펼쳤다.

기분탓일까? 아마테라스의 힘을 얻어서인지 양(陽)의 힘이 훨씬 강해진 듯 했다.

파앗

일선태검무는 무쌍패의 힘에 부딪히자 그대로 무화(無化)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태검문주가 눈을 부릅뜨자, 나는 그가 당황한 틈을 타서 가볍게 검을 휘둘러서 그의 목에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훗하고 웃었다.

" 십 초도 길군. 삼 초도 안 걸렸소."

" ... 방금, 그 기술은 대체..."

" 당신이라면 알 것이오. 당신의 검술이 어떤 극의를 지니고 있든간에 내게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 ......"

" 약속을 지키시오."

땡그랑

태검문주는 허탈감을 느끼고는 검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일평생 검만 휘둘러온 검호가 검을 손에서 놓쳤다는 건 엄청난 상실감을 의미했다. 그는 마치 하늘이 꺼진 듯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 ... 이광은 제자 진소청의 실종을 찾기 위해 내게 찾아왔었소."

" 실종? 이광도 그의 행방을 모른단 소리요?"

태검문주가 텅빈 듯한 눈으로 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그렇소. 어느 날 갑자기 무사수행을 떠나겠다는 쪽지만을 남기고 진소청은 사라졌다 하오. 그래서 이광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진소청을 찾기 시작했고 내게도 찾아온 것이오. 나는 내 인맥을 동원해서 진소청을 찾아주기로 약조했었고 이광이 떠난 건 사흘 전이오."

" 사흘이라..."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태검문주에게 말했다.

" 당신은 진소청의 행방이 짐작가는 곳이 없소?"

" 진소청을 찾아서 어쩔 생각이오?"

나는 태검문주에게 조금 미안했기에 변명하듯 말했다.

" 아까는 말을 그렇게 했지만 이광과 진소청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소. 다만 윗선에서 그들의 거취파악을 늘 해두라는 명을 내린지라 어쩔수없이 움직일 뿐이오."

" 그 말을 내가 믿을거라 생각하오?"

" 믿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

" ... 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 약속하오. 우리 금의위에서는 거취파악만 하면 그만이오."

내가 약속하자 태검문주는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 진소청의 행방은 모르지만 이광은 내게 마지막으로 감숙으로 가겠다고 했소. 거기서 진소청을 찾겠다 했소."

" 감숙? 거긴 왜..."

" 최악의 상황부터 가정하겠다 했었소."

" ......?"

최악의 상황?

나는 이윽고 태검문주의 말에서 그 상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왜냐하면 감숙으로 갈 이유는 거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 ... 그렇구나!'

나는 태검문주에게 말했다.

" 협력에 감사하오."

파앗

나는 태검문주에게서 벗어난 후 곧장 비등을 써서 백련교 본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온갖 고수들이 용담호혈처럼 웅크리고 있는 곳에서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적당한 놈의 가면을 써서 내부에 잠입했고, 몰래 기감을 돋우어서 진소청의 기운을 찾았다.

' 찾았다!'

있다!

나는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된 걸 알아채고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탐지해 낸 진소청의 위치가 정말로 최악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진소청은 일대일로 거대한 기와 독대(獨對)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기의 주인은 호법사자가 아니었고 그들보다 훨씬 강대한 존재였다.

나는 원로원 고수인 척 해서 조용히 숨어있긴 했지만 감히 그들의 이십 장 이내로 접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이상 접근하면 거대한 기의 주인이 내 정체를 눈치챌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 제길.'

그렇다.

백련교 본단의 가장 심처 - 그 곳은 바로 백련교주의 정원.

진소청은 지금 백련교주와 일대일로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십 장 정도 더 접근해서 문 근처에서 청력을 돋우어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근처에 은신해 있던 원로원 고수들이 나를 수상쩍은 눈으로 보았으나 나는 육합전성으로 대충 변명했다.

[ 저 애송이가 교주님께 해를 끼칠까봐 걱정된다.]

[ 흥... 그럴 리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네 위치로 돌아가라.]

[ 걱정된다니까.]

[ 멍청한 놈. 맘대로 해.]

다행히 다른 원로원 고수들은 그다지 의심하진 않았고 충성심으로 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청력을 쫑긋 세우고 둘의 대화를 들었다.

진소청이 말하고 있었다.

" 백련교주. 어제 숙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할 건 없다. 본교는 도움을 구하는 자를 함부로 내치지 않는다.]

교주의 눈에 기광이 흘렀다.

[ 그러나 진소청, 네가 원하는 건 그저 하룻밤의 휴식을 구하는 게 아닌 듯 싶군. 무엇을 원해 본교에 찾아왔는가?]

" ......"

진소청은 잠시 후 교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무(武)의 궁극을 구하여 찾아왔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 말에 대한 교주의 대답은 아주 간결했다.

[ 넌 이미 날 넘을 소질이 있다. 난 그걸 느낄 수 있다. 넌 실로 불가일세의 천재...]

" 교주."

예전에는 교주가 진소청의 재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 같은데 지금 반응은 사뭇 달랐다. 제반사정이 다르기 때문일까? 그는 진소청을 강하게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 그리고 나는 호랑이새끼를 키우는 바보가 되고싶지 않다.]

" ......"

[ 뇌신류의 천재라... 이청운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내 그릇으로 널 어찌 감당하겠는가.]

교주의 강한 의지를 느낀 진소청의 얼굴이 굳었다.

교주는 냉막하게 대꾸하며 살기를 돋우었다.

[ 스스로를 다스리며 수련에 전념했으면 향후 백련교의 후환이 되었겠을텐데 과욕이 스스로를 망쳤구나, 진소청. 잘 가거라.]

투웅

다음 순간 진심어린 살의를 담은 교주의 일 장이 뻗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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