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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세이메이의 말에 나는 놀라서 말했다.
" 무슨 소리야?! 놈은 엄청나게 위험한데..."
세이메이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놈은 이 동양의 균형이 더 무너지지 않게 지켜야 할 수호자의 의무 또한 지니고 있지. 고대에 고다이고 천황에게서 월요를 강탈해서 강화도에 묻어둔 이상 놈은 동영을 지켜줄 의무가 있어. 만일 동영이 무너져서 수해(樹海)가 온 열도를 뒤덮게 된다면 마(魔)의 기운이 수십 배는 더 강해지게 되고, 놈은 해신(海神)에 맞서싸울 엄두도 못 내게 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었다. 십이율주가 수천 년간 버티면서 미래에 닥쳐올 파멸을 막는게 목적이라면, 그 전에 마의 세력이 강해져서 버티기조차 못하는 건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리라. 그리고 동영에 결집된 마의 힘은 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편이라서 결코 좌시할 수는 없었다.
" 으음!"
" 놈은 아직 너와 나의 동맹관계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순수하게 동영의 수장으로써 힘이 필요하다고 하면 적당한 지원을 해 주겠지. 그리고 교섭을 해서 최대한 귀한 보물을 받아내겠다."
" 십이율주에게서 얻은 보물로 기신을 만들어내겠다는 건가?"
" 그렇다. 기신이 된다면 너희 계획대로 서왕모가 미호를 소환해서 자신의 여벌목숨으로 삼을 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 ......"
나쁘지 않은 계획 같았다. 이쪽에서 괜히 무리하기 보다는 십이율주의 여력을 남몰래 끌어내는 작전인 것이다. 제갈사를 돌아보자 그 또한 어깨를 으쓱했고 그리 반대하지 않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이메이에게 말했다.
" 부탁한다, 세이메이."
세이메이는 늙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 미호는 우리 츠치미카도 일족의 힘으로 미리 확보해 두겠다. 그녀가 다칠 일은 없을테니 걱정 마라. 그녀의 인격도 보존할 수 있게 노력하지."
" 고마워. 그럼..."
" 아, 그리고 또 하나."
" 응?"
말하는 도중에 끼어든 세이메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 네 동료인 망량에게서 오화칠금선을 내게 갖고 와라."
뜻밖의 이야기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 ... 뭐? 망량과는 관계치 않기로 했었는데."
" 그것과는 다른 문제다. 오화칠금선에는 뭔가 비밀이 있는게 분명하니, 내가 음양술로 한 번 연구해보고 싶다."
확실히 이전 생에 세이메이는 오화칠금선에 기묘한 비밀이 숨어있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비록 그 생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바람에 그 비밀이 뭔지 알 수 없었긴 하지만, 세이메이는 아무래도 그 기억에 주목해서 오화칠금선을 연구해볼 생각인 듯 했다.
" 으음. 알았어."
음양도의 최고 달인인 세이메이라면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세이메이의 말에 동의한 후 제갈사와 함께 중원으로 돌아왔다.
제갈사가 세이메이에게서 들은 의뢰를 듣고는 말했다.
" 오화칠금선을 갖다주면 되겠군. 망량과 굳이 접촉할 필요는 없다는 거 알지?"
" 알아. 오화칠금선만 가져 올게."
파밧
나는 망량이 머물던 진랑곡으로 가서 망량의 오두막집으로 몰래 들어갔다. 현재 망량은 부재중인 듯 했고 살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가만히 잠복해서 기다리고 있자 망량이 반나절 후 집에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촛불을 밝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아마 망량의 품속에 오화칠금선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곧장 달려들어서 망량의 수혈을 짚었다.
" 윽, 누구..."
풀썩
망량은 순식간에 제압당해서 쓰러졌고, 나는 그의 품안에서 오화칠금선을 찾아서 손에 들었다. 나는 씁쓸한 눈으로 기절한 망량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미안하오. 이걸로라도 보답하지..."
나는 그의 머리맡에 금괴 다섯 덩이와 흑백련을 몇 송이 놔두고 갔다. 나와 관계되지 않는다면 이것만으로도 망량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리라. 그런데 내가 오화칠금선을 가지고서 비등을 쓰다듬어 발동시키려 할 때였다.
스스스스
갑자기 오화칠금선에서 다섯 줄기의 화염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뱀처럼 내 상반신을 순식간에 에워싼 것이다!
" ......?!"
후와아아악!!
" 으으으윽!!"
오화칠금선의 화염이 나를 태우기 시작하자 나는 깜짝 놀랐지만, 곧장 내부에 있던 음신지력과 아마테라스의 힘이 반응하면서 오화칠금선의 화염을 중화시켰다. 가만히 있어도 술법의 화염을 중화시키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나는 급히 오화칠금선을 놓으려 했지만 오화칠금선은 마치 아교라도 먹인 것처럼 내 손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 고... 고갈된다.'
뿐만 아니라 화염으로 인한 고통은 갈수록 강렬해지더니 내 내부의 신력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음신지력과 아마테라스의 힘이 마치 밧줄끝이 불씨에 타들어가듯 지속적으로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화염은 신력마저도 태워없애는 힘이 존재하는 듯 했다!
스아앗
" 허억!!"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묘안(猫眼)이 나를 노려보는 느낌이 들어서 심장이 덜컹거렸다. 한 쌍의 눈동자가 내 전신을 덮쳐왔다.
저... 저... 저 눈은!
나는 살기를 훨씬 초월한, 형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오화칠금선 너머에서 전해지는 걸 느끼자 그만 맥이 풀려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오화칠금선의 화염은 이미 멎어 있었지만 나는 묘안을 직시하면서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놈이 나를 보고 있다.
그 시선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정신을 마구 뒤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선이 사라졌을 때 나는 급히 오화칠금선을 땅에 내던졌고 그제서야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이를 악물었다.
" 망량선사...!!"
설마 제자 물건이 도난당할 경우 망량선사가 직접 찾아주려는 거였던가?!
나는 설마 이게 오화칠금선에 숨겨진 비밀이었나 싶었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망량선사가 나를 본 이상 이제부터 관심을 가지고 주시할 확률도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윽, 괜히 했나!'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든 기분이었으나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기에 나는 이를 악물고 이번에는 잠들어있던 망량에게 다가가서 그를 깨웠다.
" 으, 으음... 당신은 누구요!"
" 망량! 나는 백웅이라는 사람이오. 보다시피 당신의 오화칠금선을 빌려가고자 여기에 대여료를 놔 두었소."
어리둥절해하던 망량은 금괴와 흑백련을 힐끔 보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웃기지 마시오! 당장 내놓으시오. 그건 스승님이 주신 선물이니 결코 줄 수 없소."
" 윽... 좋소. 망량선사에게 직접 허락받으면 빌려가도 괜찮소?"
"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오. 그 경우에는 빌려주겠소... 그런데 당신이 어찌 스승님을 알고 있소?"
덥썩
나는 망량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다시 오화칠금선을 쥐었다. 아까처럼 격렬한 화염이 몸을 뒤덮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공간 너머의 묘안을 직시했다. 그리고 망량선사에게 의지로 외쳤다.
[ 망량선사! 내겐 시간이 없어. 한시라도 빨리 모든 비밀을 풀어야 해. 그러니 이걸 빌려가는 걸 허락해 줘!]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망량선사의 대답이 들려왔다.
[ 좋다. 대신 조건이 있다.]
[ 뭐든 하겠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뭐든 안되겠는가. 망량선사가 몇 안되는 아군인 것도 사실이었기에 나는 내심 각오를 했다.
그리고 이어진 망량선사의 조건은 뜻밖이었다.
[ 망량을 네게 동행시켜라.]
[ ......?! 안 돼! 흑요석을 쓰면 망량이 오염...]
내가 곤란함을 이야기하려 하자 망량선사가 알고 있다는 듯이 대꾸했다.
[ 그건 내가 막아주지. 네 흑요석을 받아들여도 망량은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흐음.
망량선사라면 충분히 막아줄 수 있었기에 솔깃한 기분이 들었다. 나로서도 망량이 동료가 될 수 있다면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다. 다만 더욱 신중해져서 입을 열었다.
[ 더 이상 전생을 아는 자를 늘려서는 안 된다고 들었어.]
[ 그 마도사가 걱정하는 바는 이미 내가 인과율으로 읽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망량만은 예외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나와 제갈사의 대화 또한 꿰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망량선사는 아무것도 안하는 척 하면서 모든 걸 파악하는 듯 했다.
그렇다해도 나는 망량선사가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걸 처음 보았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그렇게까지 망량을 내 여정에 동참시키려는 이유가 뭐야?]
대부분의 경우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망량이나 천우진을 내 인과율에서 보호하려고 들지 않았던가? 내게서 멀어지게 한 적은 많았으나 도리어 제자를 끼워주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에 오화칠금선의 화염은 멎었다.
나는 오화칠금선을 급히 원주인인 망량에게 돌려주었다.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받더니 멍한 눈으로 말했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떻게 된 일이오?"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대꾸했다.
" 망량. 나도 이 상황이 뭔지는 잘 모르겠소. 하지만 내 이름은 백웅이고, 망량선사와 약조한 대로 당신에게 흑요석을 전달하겠소."
" 뭣."
나는 망량의 손에 흑요석을 얹고는 그대로 흑요석의 술법으로 기억을 전송했다. 원래라면 결코 하지 않을 무모한 행동이겠지만 망량선사가 보증했으므로 그냥 해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망량선사의 보증보다 믿을만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파앗
망량은 기억을 받더니 잠시 비틀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를 잡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문득 눈물을 주륵 흘렸다.
" ... 백웅, 외통수의 외통수까지 몰려있구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 윽.
직접 망량의 입으로 듣고보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가 실감이 났다. 나는 암울한 기분이 들었으나 티를 내지 않고 망량에게 물었다.
" 망량. 기억을 얻었소?"
" 후우... 그나마 숙부가 그대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었구려. 천만다행이었어..."
넋두리하듯 중얼거린 망량이 기운을 다잡고는 말했다.
" 백웅. 상황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내가 당신과 동행하며 위험에서 지켜주겠소."
" ... 고맙소!"
나는 상황이 어찌된 건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환하게 웃었다.
내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줄 망량이 일행에 합류한 것이다!
나는 망량을 데리고 장령곡으로 왔다. 그리고 망량과 제갈사가 대면하자, 제갈사는 일순 놀란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 망량선사가 손을 쓴 거냐?"
이쪽은 한마디 말도 안 꺼냈는데 바로 알아챘는가?
정말 두뇌와 눈치가 귀신같다. 한번에 눈치챈 사실에 내가 내심 혀를 내두르자 망량이 제갈사에게 말했다.
" 그렇습니다."
" 어째서일까?"
제갈사의 묘한 반문에 망량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 스승님은 저를 장기판의 말로 쓰시려 합니다."
" 그렇겠군.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망량을 쳐다보았다.
" 성장했군."
제갈사는 망량에게 존재하던 어설픈 구석, 의기(義氣)가 다소 변했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건 나 또한 망량에게서 느낀 점이었으므로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 아버님과 동맹을 하기로 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천계를 칠 생각입니까?"
" 알고 있겠지만 반고에게 칠요를 공양한다."
망량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 전 그 전에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뭐지?"
이어진 망량의 계책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 지금 당장 진소청을 잡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봉인하거나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