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872화 (87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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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 날 봉인하겠다고?"

진천휘는 무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스윽

그와 동시에 제갈유룡이 자신의 품 안에서 부신(符信)을 꺼내서 들었고, 주사가 새겨진 그 부신을 본 진천휘가 중얼거렸다.

" 신선술 박령(縛靈)을 인위적으로 음각한 최상위 부적. 진심이군."

" 저항하지 말게."

" 이유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가?"

" 정황상 자네를 완전히 믿을 수 없네."

" 하하, 자네는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자의 계획을 내가 죽고 나서도 계속 실행해 왔다는 건가? 아주 웃기는 일이군. 뭐가 그래?"

진천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제갈유룡이 말했다.

" 자네는 죽기 하루 전 나와 술자리를 할 때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이제부터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 ... 그랬지."

" 그 또한 자네의 말일세. 나는 자네의 망령에 씌어 살아가고 있으니 본인을 의심하더라도 이상하진 않네."

" 후후."

" 의심이 풀리면 풀어주겠네."

진천휘는 그저 쓴 웃음을 지은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 저 자는 아무리 봐도 그냥 인간인데... 무고한 자를 핍박하는 거라면 너무 미안한 일이다.'

만일 순수인간이라면 대명제국을 구원한데다가 세상까지 구하려 했던 위대한 영웅에게 괜히 수난을 안겨주는 셈이었다. 죄책감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정작 진천휘의 부활을 요청한 제갈유룡 본인이 봉인을 시키고 싶어한다는데야 막을 이유는 없었다. 잠시 후 제갈유룡이 박령술을 담은 부신을 진천휘에게 날렸고, 진천휘는 그 부적을 맞자마자 전신이 허공으로 빨려들어갔다.

쉬익!

이윽고 그 자리에는 나풀거리며 부적이 떨어졌다. 부적을 주운 제갈유룡이 부적을 품 속에 넣은 후 제갈사에게 말했다.

" 진천휘의 일은 이걸로 끝내지."

제갈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 형님 맘대로 끝내기가 있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어물쩡 넘길 셈인가?"

" 어떤 의문 말이냐."

" 어째서 시체가 사라졌는가. 일개 인간의 영혼이라면 어째서 신이 그의 영혼을 살리는데 주저했는가. 그런 의문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의심스러우니 육체를 이공간(異空間)에 봉인시켜서 가둬서 끝이라... 우리가 그렇게 우스워보이나?"

제갈사가 성난 목소리로 말하자 제갈유룡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 너도 알다시피 본인한테 물어봤자 알 수 없는 노릇이지. 모른다고 할 게 뻔하지. 그럼 결국 의심암귀만이 공회전할 뿐인데 그를 더 놓아두어서 뭐가 좋지? 봉인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하는데."

" 봉인은 됐어."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하게 굳어졌다.

" 당장 진천휘를 꺼내서 확실히 죽여야겠어. 그게 더 확실하게 의심을 제거하는 방법 아니겠어? 그를 부적에서 꺼내."

" ......"

" 흑패가 아깝긴 하지만 없었던 걸로 치지. 살린 게 우리니까 죽일 권한도 우리에게 있는 거 아니겠어?"

쿠구구

" 할 수 없다."

동시에 제갈유룡에게서도 심상치 않은 살기가 일어났다. 제갈유룡에게 있어서 진천휘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인 듯 했다. 나는 제갈유룡의 표정을 보자마자 그가 이대로라면 내가 전생자라는 걸 아예 무시하고 내 앞길을 전력으로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기억을 다 줘버린 지금 엄청난 위험요소가 될 게 틀림없다.

나는 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했다.

" 잠깐! 그럼 일단은 봉인으로 놔두자고. 진천휘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걸로 됐어. 그리고 제갈유룡 당신은 우리가 당신 요청에 협조했으니 우리를 도와줘야 해."

" ... 인정하지. 앞으로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것이다."

" 좋아."

제갈사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는 지금 당장 진천휘를 죽이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제갈사의 마음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우선은 이대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제갈유룡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이번 일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았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물었다.

" 제갈유룡. 아무튼 천계를 칠거라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 칠 생각이지?"

" ... 천계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전력인지 알고 있는가."

나는 아는 대로 대답했다.

" 그야 지선과 인선 등등 신선들이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고 강대한 투선들이 버티고 있으며 강력한 신통력을 지닌 대라신선과 그들을 통솔하는 곤륜십이선이 있지. 또한 서왕모가 있고..."

" 그렇다. 상식적으로는 천계의 힘은 이 행성에 존재하기에는 너무 막강한 수준이지. 정면승부를 할 경우 절대 이길 수가 없었기에 나는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제갈유룡이 말을 이었다.

"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만마전에 들어가서 마(魔)의 힘을 얻음과 동시에 은거자 창힐에게 손을 뻗어 그의 팔부신중에게서 조력을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것만으로는 종말을 막을 수 없었다."

" ......"

" 하지만 네가 도와준다면 천계를 절반이상 허물어뜨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정확히는 네가 가진 그 보물들의 힘이 있다면..."

" 그래, 보물을 빌려주겠어. 구체적으로 어떤 게 필요한 거야?"

" 우선은 칠요다. 칠요의 힘이 있어야 성립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네가 선지자에게 정보를 얻을 때 칠요를 제외한 것들을 주었기에 그건 아직 보유하고 있더군."

" 칠요를 어떤 식으로 쓰고싶다는 말이지."

이어진 제갈유룡의 말에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 공양(供養)하겠다."

" ......!!"

제갈유룡이 나를 안심시키듯 말을 이었다.

" 놀랄 필요 없다. 마도의식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공양해서 힘을 얻겠다는 말이니까."

" 공양을 한다면 상대방이 있어야 할텐데 누구한테 한다는 소리냐?"

나는 조금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 [옛 지배자]같은 마신(魔神)에게 공양한다면 결국 마도의식을 치르는 것과 다를바가 없잖아!"

칠요에는 이 세상의 균형을 깰 수 있을 정도의 강대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또한 지닌 상징성 또한 무시무시하게 컸다. 그런 칠요가 특정한 [옛 지배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결국 그 지배자가 급속히 세력을 확장할 것이고, 그것은 세상에 마(魔)의 힘이 현격하게 높은 밀도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애초에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내가 몰라서 못했던 게 아닌 것이다.

그러자 제갈유룡이 말했다.

" 원래라면 나는 칠요가 생겼을 경우 창힐에게 공양했을 것이다. 창힐의 힘은 삼황오제의 바로 아래수준에 있으니 칠요를 얻는다면 충분히 세상을 뒤집어엎을 테니까... 나와 뜻을 같이하기도 하고. 그러나 창힐이 갑자기 실종되었으니 나는 방법을 바꾸겠다."

" 어떻게?"

" 그에 앞서 천계를 부수기 위한 전제조건은 공양받을 신의 힘이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천계의 서왕모는 여와이니 결국 천계를 무너뜨린다 함은 그녀와 싸우는 게 아니겠는가?"

" ... 그거야 그렇지."

서왕모의 화신을 쓰러뜨릴 힘이 없다면 천계부수기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 내가 그의 말에 긍정하자 제갈유룡이 말했다.

" [옛 지배자]라고 해서 모두 사악한 건 아니다. 그리고 사악하지 않은 [지배자] 중에도 삼황오제의 힘을 넘어서는 존재가 있다."

" 뭐! 그런 존재가 있나?"

" 흔히 고대신(古代神)이라고도 불리는 자들이지."

아, 마도지식에서 들어본 것 같다. 인간에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악의도 품지 않은 범우주적인 존재들! 그들 또한 [옛 지배자]로 분류되었으나 정작 인간이 그들을 만날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말했다.

" ... 하지만 삼황오제는 지배자 중에서도 꽤 위격이 높은 자들이야. 고대신 중에 삼황오제, 그것도 여와를 감당할만한 자가 있을까."

" 한 명 있다."

" 그게 누구지?"

" 반고(盤古)."

" ......"

창세신 반고!

그 존재는 중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천지를 창조한 거대한 거신이자, 태초에 우주를 떠받치고 있었다는 창세신! 반고가 하늘을 떠받치지 못해 무너지고 그의 시체가 세계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존재했으며 그 이후에 삼황오제가 출현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제갈유룡은 전혀 장난을 치지 않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 반고는 존재한다. 좀 더 확실히 근거를 대자면 그대는 항산에 들러서 반고의 사당을 본 적이 있었겠지."

" ... 그랬었지."

과거 전생도중에 봉선의식을 할 때 항산을 오르다가 반고의 사당을 발견해서 그 곳에서 승려와 이야기를 나누고 반고전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자 제갈유룡의 말이 이어졌다.

" 반고의 사당이 있는 곳은 그곳 뿐만이 아니다. 최소한 오악(五岳)에는 모두 하나씩 존재했으며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파손되었을 뿐. 적어도 갑골문(甲骨文)에 따르면 은주시대에 반고신앙은 실체하는 신앙이었으며 삼황오제 또한 반고신앙을 용인했다."

" ......"

" 또한 반고(盤古)의 주(呪)는 창세신 반고의 힘을 불러와서 세계를 멸망시키는 주문.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힘을 빌려주는 대상도 없는데 주문이 성립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 음... 하지만... 우주의 혼연시대에 존재했던 거인이 실제로 있다면 삼황오제가 지상에서 이런 깽판을 치고 있는데 아무런 관여도 안하는 이유가 뭐지?"

" 신의 의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 그러나 적어도 삼황오제 이전시대에 이 행성, 이 대지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 시기는 신비(神秘)에 속하는지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생명은 커녕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 흠...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근거가 있나."

" 여러 마도서를 읽은 경험... 그리고 거신족 때문이다."

" 거신족?"

" 축융을 위시한 거신의 일족은 본래 머나먼 외계의 종족으로써 이 세계에 올 이유같은 건 없었는데도 왔다. 굳이 말하자면 나머지 삼황이자 남매신인 복희, 여와와는 완전히 다른 계통의 존재들이자 [옛 지배자]. 본디 차원계가 수백이나 떨어져 있는 그들이 이 세상에 올 확률은 엄청나게 희박했다."

" 음."

" 그토록 이질적인 존재들이 일부러 이 세계에 온 이유가 따로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나."

" ......"

" 나는 나름대로 확신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제갈유룡의 이야기에 숨겨진 뜻을 알아챘다.

' 창세신 반고는 거신... 축융일족 또한 거신. 그렇다면 축융일족은 머나먼 선조였던 창세신 반고를 찾아서 고향에 돌아왔다는 뜻이 되는가?'

... 아, 아니 이건 너무 나간 게 아닐까?

완전히 소설인데?

하지만 제갈유룡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솔깃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 꼭 그게 아니더라도 구천현녀의 예를 본다면 반고의 존재는 증명되긴 하지... 제갈유룡은 그저 추가적인 가설으로 뒷받침했을 뿐이군.'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좋아. 그 반고란 게 있다고 치고, 그에게 공양을 어떻게 하지? 설마 오악에 있는 반고의 사당에 가서 칠요를 바친다는 건가?"

" 아니. 그 방법은 안 될 것이다. 이미 태산노옹으로 강호를 떠돌 때 반고의 사당에서 몇 번이고 공양의식을 치러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뭐? 실패했어?"

" 신과 인간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정확한 제의와 절차, 장소를 갖추지 않으면 목소리가 닿이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원래라면 방법이 없었을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 제갈유룡이 말을 이었다.

" ... 그러나 넌 이미 반고에게 공양할 수 있는 방법을 내게 제시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도 사실 없었지. 문제는 없다."

" 응?"

" ......"

제갈유룡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왠지 말을 아끼는 모습인지라 나는 방법이라는 걸 머릿속으로 유추해야만 했고, 뭔지 알 수가 없어서 끙끙대고 있을 때 제갈사가 끼어들었다.

" 좋아! 칠요를 바친다고 치지. 하지만 그 의식으로 얻은 힘이 칠요의 부재를 감당할 정도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 반고가 삼황오제 이상의 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 흐음.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시도란 거군. 재밌겠어."

제갈사가 내게 말했다.

" 하자, 백웅. 이건 나쁘지 않아."

" 하,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가진 칠요를 모조리..."

" 없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니가 칠요를 휘두른들, 아니 여동빈이 칠요를 휘두른들 수해의 왕을 못 이기기는 마찬가지야. 그럴 바에야 반고에게 공양해서 얻는 힘으로 천계를 무너뜨리고 여세를 몰아서 수해까지 뚫는 게 낫지."

" 음. 알았어."

나는 별 수 없이 제갈유룡에게 칠요를 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제갈사가 나를 배신할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제갈유룡이 추가로 요구를 해 왔다.

" 부아를 살려 다오."

" ... 아니 반전의 권능은 이미 썼는데."

" 너한테 말한 게 아니다."

제갈유룡의 눈은 제갈사를 향해 있었다. 제갈사가 귀를 후비적거리자 제갈유룡이 차갑게 말을 이었다.

" 너라면 부아에게 의체(義體)를 만들어서 혼을 다시 넣을 수 있겠지."

" 글쎄~ 내가 왜 그렇게 해줘야 하는건지~"

" 무례를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표현이 있지. 부아가 그 사죄를 실천했으니 살려주는 게 혈육의 도리 아니겠나?"

"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 초혼술은 따로 쓰지 않겠다. 네가 이혼대법으로 부아의 영혼을 챙기는 걸 봤다."

" 알았어. 좋은 육체에 넣어서 되살려주지."

이제 보니 제갈사는 처음부터 제갈부를 한 번 죽였다 살릴 생각인 듯 했다. 이미 이혼대법의 최고달인인 제갈사에게 상대의 생과 사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 우리 쪽도 계획을 정립하고 제갈부를 살릴 시간이 필요하니 사흘 후에 다시 만나지. 그 때 칠요를 넘겨주고 공양의식을 진행하자."

" 사흘은 짧다. 칠 주야는 필요하다."

" 그러지."

파앗

우리는 약속을 하고는 헤어졌다. 그리고 본거지에 되돌아오자, 제갈사는 난데없이 말했다.

" 백웅. 흉신의 주문은 수해의 왕을 뚫고 외차원에 갈 때까지 절대 쓰지 말고 아껴라. 수해의 왕을 상대할 때도 절대 쓰면 안 된다."

" 왜?"

" ... 그런 이유가 있다. 난 제갈부를 살리러 들어갈테니 너는 서문혜에게 무공이라도 좀 가르쳐 줘."

스윽

의체를 제작하러 연구실에 들어가는 제갈사가 순어구로 나직이 말해오는 게 들렸다.

[ 명심해. 이번 생에서 우리 이외에게 전생(轉生)은 끝까지 들키면 안 돼.]

============================ 작품 후기 ============================

내용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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