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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68화 (86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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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전생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만이 원월천살법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제갈사의 말에 그를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근거는 단순해. 수천 년 동안 그만한 위력을 지닌 무맥의 전승자가 한 번도 출현하지 않았고, 외차원의 [문] 바깥에서 온 강력한 혼돈인 백제의 비류가 동영의 신격과 충돌하면서까지 원월천살법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어. 그리고 수해의 왕은 미야모토 무사시를 가리켜서 인과율에 따라 자기에게 다가온 것이라고 했고….”

제갈사가 차갑게 웃었다.

“무엇보다도 수해의 왕은 무사시의 회상에서 ‘이 시대의 누군가’라는 표현을 썼지. 안 그렇냐?”

“아!”

“우리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건 그 나름의 수수께끼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네가 전생자라는 걸 인지하고 있고, 또한 네가 같은 시간대를 무수히 왕복하는 중이란 걸 알고 있지. 그렇다면?”

“…수해의 왕은 전생자를 찾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모든 게 설명된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원월천살법을 쓸 수 있는 자가 전생자라면 기본적인 어귀가 맞아.”

“…….”

“수천 년 동안 못 찾을 수밖에 없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수밖에. 왜냐하면 딱 한 시대에만 뜬금없이 나타나서 같은 시간대를 쳇바퀴 굴리는 인간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나? 비류라는 혼돈의 신은 그래서 공연히 분탕질만 치다가 외차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렇군.”

그 사실은 이미 무수히 전생하면서 확인이 끝난 사항이었다. 삼황오제조차도 내가 전생하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제갈사의 추측이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제갈사!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미야모토 무사시가 원월천살법의 인과율 때문에 미나모토 요시츠네와 수해의 왕을 만나게 된 거지? 그들은 무사시가 원월천살법의 인과율에 이끌렸다고 했지만, 정작 무사시 본인은 아류일 뿐 원월천살법을 배운 적이 없었어.”

“그것도 생각해 둔 가설은 있다만….”

“뭔데?”

제갈사가 슬며시 나를 쳐다보았다.

“무사시가 언젠가 너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인과율이 성립하고 있었다는 가설이지.”

“…뭐?”

여기서 내가 왜 나온단 말인가?

“무사시는 원월천살법을 천하에서 가장 간절하게 찾아다니는 인물이었지. 결국 오늘 무사시가 네게 원월천살법에 대해 알아낸 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냐? 그 와중에 수련도 하고 별 별짓을 다하긴 했다만.”

“어… 잠깐…. 그러니까….”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운명의 고리 내에서 무사시의 역할은 그거 였단 말이지. 너한테 원월천살법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화자(話者).”

“…….”

“인과율이 닿았다는 건 그렇게 이해하면 쉽겠지.”

설마….

원월천살법이 전생자와 관련 있다고 하는 그 사실.

고작 그 하나의 단서를 언젠가 내게 말해주기 위해서 미야모토 무사시의 모든 인생이 소비되었단 말인가?!

‘그, 그건 너무한데.’

인과율이 아무리 대단한 법칙이라 해도 그런 게 가능한 건가?

그 때문에 비류라고 하는 혼돈의 존재는 고대에 신들의 전쟁을 벌였고, 동영의 대영웅 미나모토 요시츠네란 인물은 해골이 되어서까지 수 천 년 동안 원월천살법의 정통계승자를 기다리게 되었다. 게다가 미야모토 무사시는 평생 동안 원월천살법을 찾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 수 많은 여정과 인생이, 겨우 전생자에게 전해질 단서 한 토막 때문에 소비되었다고?!

어이없을 정도의 비효율성과 잔인함에 내가 충격을 받고 있자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또 하나, 이걸로 알아낸 게 있긴 하지.”

“뭔데?”

“수해의 왕이나 비류는 일단 [옛 지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마왕급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강해. 신(神)이란 말야. 이해했냐?”

“어.”

“그리고 그런 수준의 [옛 지배자] 들은 인과율의 잔향을 읽어내는 것 까지는 가능하지만 인과율의 전모를 통찰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비춰볼 때, 장래에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옛 지배자]들은 네게 밥이나 다름없어.”

“응? 지금은 [옛 지배자]를 전혀 이길 수가 없는데….”

“그거야 전략이나 전술조차 안 먹히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때문이지. 그게 통하는 수준까지만 가면 무조건 유리해. 왜냐하면 전생자가 주도하는 인과율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읽을 수 없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 아니냐?”

“……!!”

“지금 우리는 생각보다 목표에 많이 다가와 있을 수도 있어. 다만….”

제갈사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황제(黃帝) 공손헌원이나 흉신(凶神)의 경우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상대가 안 되는데.”

“말했듯이 힘의 문제가 아니야. 힘이야 무슨 수를 쓰든 쌓기만 하면 되니까 크게 어렵진 않아. 정말 문제가 되는 건 황제에게는 인과율을 계산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흉신 또한 비슷해 보인다는 거지.”

“…….”

“놈들은 전생자의 정체까지는 몰라도 전생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거나 그 전모를 보일 경우, 순식간에 대응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아니, 이미 우리는 황제에게 농락당해 버렸지. 칠요의 시련 자체가 황제가 전생자의 행동반경을 읽고 마련한 함정이라는 걸 지난번에 깨달았잖나.”

“음.”

인과율을 읽어버리는 최상위 신격들.

향후에는 그놈들을 상대할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는 건가.

“백웅. 우린 무사시로부터 큰 정보를 얻어냈다. 이제부터 뭘 해야겠냐?”

제갈사의 지금 질문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주군인 내가 어떤 전략을 짜고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뚫는다.”

“혼자서 뚫을 거냐?”

“아니. 가장 큰 문제는 [수해의 왕]을 이길만한 힘이 필요하단 걸 거야….”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사시를 통해 좋은 정보를 알아낸 건 좋지만 정작 중요한 외차원으로의 문,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뚫을만 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해의 왕이라고 하는 [옛 지배자]에 준하는 강력한 존재를 이기지 못 하면 외차원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뭔가 놓치는 게 있지 않냐?”

“……?”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지. 우리가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뚫는 이유는 그게 외차원의 문이고, 그 안에 들어가야 백련교 사대신기를 찾아서 법문을 찾는 거였지. 법문을 찾아야 특이점의 위험을 되돌릴 수 있고.”

“그래, 맞아.”

“그런데 외차원에 들어간 놈은 이미 있어. 그렇지 않나?”

“…신투지존!”

“신투지존이 정말 [수해의 왕]을 쓰러뜨리고 그 안에 들어갔을까?”

“그건… 절대 아니야.”

신투지존은 분명 강력한 존재였지만 결코 투선급 이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물론 신역절기라는 걸 쓰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입으로 인간세상에서는 신역절기를 쓸 수 없다고 단정 지은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투지존 혼자서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멸해에서 수해의 왕을 해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고 보긴 어렵다.

제갈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무력만이 답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 다시 한 번 신투지존을 만나서 방법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좀 힘들겠는데….”

“…….”

골똘히 생각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우선은 아베노 세이메이를 아군으로 만들자. 수해를 공략하려면 놈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알았어.”

파앗

나는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그를 만나기 전에 관리자인 아베노 요시히라가 등장하자 그를 설득해서 세이메이의 면전으로 갔고, 내 기억을 담은 흑요석을 내밀며 말했다.

“말해두지만 이 흑요석에 들어있는 내 기억은 흉험한 종말과 어둠의 기억이 있어. 내가 전생자인걸 증명하기 위해서 네게 주고 싶은데, 동의 한다면 받아들여 줘.”

“알았다.”

슈우우욱

아베노 세이메이는 잠시 후 흑요석을 받아들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먹빛으로 물드는 듯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과연… 어지간한 인간은 미쳐도 이상하지 않겠군.”

“괜찮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아마테라스 오오카미와 한 몸이라 이 정도는 상관없다.”

역시 제갈사의 말 대로였다. 아베노 세이메이 또한 순수인간이라 볼 수 없었기에 지금 내 동료가 되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인 것이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내 기억을 받아 들인 후 말했다.

“확실히 원월천살법이 전생자 전용 무공이라는 가설은 흥미롭군.”

“세이메이. 무사시한테는 아메노하 바키리를 줬잖아? 나도 수해를 뚫을 때 도움이 될 만한 귀중한 보물을 줘.”

“농담하는가? 내가 모은 보물을 모두 합해도 네가 전생지식으로 모을 수 있는 보물의 일부에도 미치지 못 한다. 칠요만 있어도 과분할 지경일진대.”

“…….”

그렇긴 하지.

아베노 세이메이가 말했다.

“이렇게 하지, 백웅. 만일 네가 정말로 전생자인 게 사실이라면….”

후와아앗

“……!!”

갑자기 아베노 세이메이가 내 가슴에 손을 올렸는데 마치 빨려들듯이 그의 손이 내 가슴팍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몸 내부에서 무언가가 내 쪽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나는 전신에서 열화가 뻗쳐오르면서, 화룡진인에게서 느꼈던 것 이상의 가공한 열기가 내면에서 소우주처럼 피어오르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내가 혼미한 정신 속에서 간신히 중심을 버티고 서자, 아베노 세이메이가 대번에 중년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너… 갑자기 왜 늙었….”

“아마테라스 오오카미의 신체(神體) 중 절반을 네게 넘겨주었다.”

“……!!”

“수백 년 후까지 동영의 어둠을 봉인해야 해서 계속 힘을 아끼고 있었지만, 전생자라는 게 진실이라면 그렇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동영의 창세신이자 강력한 고대신의 몸이 원래 아베노 세이메이와 융합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절반을 덜어내서 내게로 넘겨준 모양이었다.

단숨에 50년은 늙은 듯한 모습이 된 세이메이는,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힘이 있다면 수해의 왕을 상대 할 때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너, 생명이 위험한 것 아닌가?”

“물론 죽으면 안 되니 절반을 남겨 둔 것이다. 일단은 계속 널 도와야 하니….”

세이메이가 말을 이었다.

“다만 그 힘이 네 전생(轉生)을 넘어서 그대로 이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신체(神體)는 진짜 신이 아니라 신격의 정신을 제외한 몸만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수해의 왕을 상대할 때 힘을 끌어내서 쓰면 휘발해 버릴 우려가 크다.”

“흐음.”

“수해의 왕을 쓰러뜨리지 않고 그냥 자살해서 다음 회차에 그 힘을 남기는 것도 좋겠지.”

“…….”

나는 세이메이가 너무 담담하게 전생자 입장에서의 이득을 논하자 내가 도리어 멋쩍어졌다. 당연히 내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현생을 사는 세이메이나 다른 인간들에게는 파멸이 닥쳐오지 않는가? 여태껏 전생자로 섣불리 행동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니 곧이곧대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마테라스의 힘이 음신지력과 충돌하지는 않는지를 감지해 보았다. 하지만 두 개의 힘을 동시에 끌어올려도 그리 부딪히는 기색은 없었고 도리어 유하게 서로 기름처럼 흘렀다. 서로 다른 신력이라고 해서 꼭 충돌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불의 힘이라기보다는, 태양의 힘이군.’

나중에 이 힘을 써서 수해의 왕을 상대로 승산을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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