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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무사시는 아마노하바키리를 받은 후 바로 입해에 진입하지 않고 당분간 사해의 마물들을 베었다. 아마노 하바키리라는 신검에는 마물을 베면 벨수록 항마(抗魔)가 축적되어 마력에 대한 저항력을 강력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물에게 한 번이라도 지거나 큰 부상을 입을 경우 그때까지 쌓아두었던 항마의 방어력이 모조리 날아간다는 단점은 있었다.
‘최대한 항마의 힘을 쌓고 나서 입해로 가는 게 좋겠군.’
절대지경에 이른 무사시였으나 이 아오키가하라 수해는 결코 만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해의 마물만 하더라도 열 마리 정도가 떼 지어 덤벼오면 무사시 혼자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정면대결이 아닌 마력파장만으로도 타격을 입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종종 정신오염에 걸릴 경우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로 어떻게든 이겨내긴 했으나 제대로 된 전투 상태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아마 노하바키리는 이 지옥 같은 수해에서 굉장한 효용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무사시가 어느 정도 마물들을 베었을까? 그는 어느 순간 아마노하바키리의 검신에서 날개가 치솟아 오르면서 마력을 완전히 차단하는 은은한 막이 주변에 쳐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아마 아마노하바키리가 최대한 항마의 힘을 머금었을 때의 상태이리라.
“좋아.”
무사시는 자신감을 갖고 입해로 나아갔다. 차원문을 뚫고 입해로 들어 가는 순간 그는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으며 천지에 온통 혼돈만이 들어차 사물이 제멋대로 떠다니는 걸 알 수 있었다.
혼연 한가운데에서 무사시는 자신이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난감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이 공간에서 발을 딛으며 기력으로 무공술을 시전하자 쉽게 뛸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사시가 약간을 뛰다 보니 머나먼 곳에서 마물의 포효가 울리는 것을 느꼈고, 그는 마물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
크다!
지금까지 봐 왔던 생해와 사해의 마물들도 물론 거대한 것들이라 수 십 장에 이르렀지만 지금 혼연 속에서 나타난 괴물은 그런 놈들과도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산이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무사시는 일순간 외경심에 휩싸였다. 저렇게 큰 놈을 상대로 인간의 무(武)가 미칠까?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무사시는 이윽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목표는 이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돌파하여 더 강대한 힘을 손에 넣는 것이며 이제 와서 주춤거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
“…헉… 헉….”
이틀 후, 무사시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입해의 마물 중 하나를 간신히 어떻게든 쓰러뜨리긴 했으나 그는 태어나서 해본 싸움 중 가장 흉험하고 격렬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나마도 천운으로 마지막에 신살참으로 마물의 급소를 베는 데 성공해서 망정이지, 제대로 싸웠다면 승률이 3할도 되지 않았으리라. 그나마도 아마노하바키리가 없었으면 그때까지 버티지도 못했으리라.
그는 혼연에 떠 있는 대지에 안착해서 잠시 쉬었는데 이제는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체력과 기력이 다 떨어졌고 이렇게 큰 부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하지….’
파앗
“다행이군….”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사해에서 모아왔던 아마노하바키리의 힘이 하얀 빛으로 변해서 무사시를 치유했다. 모아뒀던 힘을 이용해서 사용자를 치유하는 능력도 있었던 것이다. 무사시는 다시 힘을 회복한 후 방침을 바꿨다.
절대 입해에서 정면승부는 안 된다.
도망친다!
그는 죽어라 도망치고 또 도망치면서 계속 혼연 속을 탐색했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던 중, 이 공간이 어마어마한 넓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상상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최소한 대륙 정도의 넓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대로 정처 없이 떠돈다 해도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할지 몰랐기에 무사시가 암담해하고 있을 때였다.
‘응?’
무사시는 문득 발달한 감각으로 기묘한 느낌을 느꼈다. 무저갱의 한계까지 뻗어있는 듯한 ‘길’이 머나먼 혼연 속에 어렴풋이 보였는데, 그게 사실은 ‘마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사시의 감은 맞았다. 그는 가까이 접근하자 혼연 속에서 붉은 빛이 넘실거리고, 허공에 떠 있는 길처럼 보이던 게 사실 거대한 생물체의 등이며 촉수를 넘실거리는 초거대 괴어(怪魚)임을 알게 된 것이다. 괴어의 등에 오른 무사시는 어렴풋이 자신의 발밑에 있는 이 마물이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공격하지 않는 이유.
아직 무사시가 투기를 일으키지 않은데다가, 말 그대로 벌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
무사시는 자신이 살의를 일으키는 순간 마물과의 전투가 시작될 것임을 예감했다. 또한 잘은 모르겠지만 이놈과 싸워서 이기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과연 거대한 강이나 바다의 지류를 연상시키는 이런 초거대 괴물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에 싸웠던 마물보다 몇 배는 강해보이는 놈과 싸워서 그가 이길 가망은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는 게 좋을까.
무사시는 힐끔 뒤를 돌아봤다. 지금이라면 천운으로 어떻게든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가장 옳은 판단이었으며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실력이 미치지 않는데 개죽음해봤자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사시는 살기를 일으켰다.
꾸우우우-!!
초거대 괴어가 반응했고 무사시는 검을 뽑았다.
‘죽인다!’
그의 머릿속에 이미 승산 같은 건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도 어차피 지옥 같은 퇴로를 거쳐 가면서 추하게 죽을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재능을 믿고 인생 최후의 싸움에 도전해 볼 수밖에!
정상이 아니었다. 광기(狂氣)에 매몰된 미야모토 무사시는 눈에서 혈광을 내뿜으며 힘줄이 삐죽이며 튀어나온 팔뚝을 휘둘렀고 한 줄기의 섬광이 괴어의 등을 쳤다. 의념을 극도로 끌어 모은 일격은 그 스스로 무쌍참(無雙斬)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삽시간에 괴어의 등을 쩍 갈라 버렸다.
촤아악
괴어는 몸을 꿈틀거리더니 갑자기 몸 전체에서 빛을 뿜어내었다. 그 빛은 언뜻 섬광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유어(幼魚)가 수천만 마리나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써 하나하나가 화살보다 빠르고 독보다 치명적이었다. 무사시는 검광을 몸에 둘러 막을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했으나 그 순간 유어의 폭발이 또다시 터져 나오며 그는 뒤로 마구 날아갔다.
무사시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딱 한번 부딪혔을 뿐이지만 눈앞의 괴어와 자신의 역량차이를 현저히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뒀는데도 그의 얼굴은 생기에 물들어서 웃고 있었다. 그는 광소를 터뜨리며 뛰어들었다.
“죽인다, 크하하하하!!”
귀면상이 그의 몸을 지배해 버린 것이다.
귀면상은 엄청난 무예의 재능과 전투본능을 주는 대신에 그 재능을 타고난 자가 자신의 재능에 삼켜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무사시는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귀면상의 광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으므로 점차 파괴본능이 그의 뇌수를 침식했고 종래에는 광인의 영역에 이르게 되었다.
쿠콰쾅
콰광
원래 무사시와 괴어 사이에는 압도적인 힘과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광기에 눈을 뜬 무사시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하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지부진하게 약 이 백여 초 동안 승부가 나지 않자, 갑자기 괴어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끼우우우-]
괴어가 물러나든 말든 무사시는 공격을 하려 했으나, 괴어는 다음 순간 갑자기 입을 벌려서 기묘한 혼돈의 문을 토해내었다.
“윽….”
쓔아아악
그는 잠시 후 혼돈의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사시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완연한 흑암의 공간 속에 홀로 있었다. 지금껏 죽을힘을 다해 탐험했던 입해의 혼연과는 달랐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잠시 후 그의 맞은편에서 음울한 영언이 들려왔다.
[인과율의 안배가 찾아왔구나.]
“넌 누구냐?”
[…그렇다는 건 바로 이 시대의 누군가라는 말이겠지….]
어둠의 맞은편에 빛이 생겨났고 빛 근처에 마치 인형처럼 무언가가 떠다니는 게 보였다. 그것들은 바로 혼연에서 보았던 초거대 마물들이었으며, 이윽고 점점 빛이 더욱 밝아지면서 세상에 퍼져 있던 그 존재들이 천지사방에 끝도 없이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숫자는 너무나 많아서 무사시는 이 공간의 공간감이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유하는 마물들은 무사시를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사시에게 말을 건 자는 천천히 무사시의 3장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으으
[살육의 재능을 타고난 인간이여….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지?]
아오키가하라의 지옥을 뚫고 여기 까지 온 이유.
당초의 이유는 더욱 더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만의 절대지경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은 달성되었다. 무사시는 수해에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강해졌으며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 검객 수준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무사시는 눈앞의 존재를 보자 그런 게 하나도 머릿속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 마디도 뻐끔할 수가 없었다.
못 이겨.
귀면상이 수그러들었다. 자신보다 아무리 강한 상대를 보아도 곧장 투쟁본능을 믿고 뛰어들었던 광기의 원동력이 삽시간에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 덕분에 본래 광기에 먹혀서 죽었을 무사시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얼굴 가득 돋아났던 힘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상대의 생김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그저 흐릿하고 흐릿해서 인식이 되지 않았다. 저런 걸 인간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무사시는 그 존재의 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대번에 느낀 것이다.
무사시는 잠시 후 이성을 되찾고는 대답했다.
“강해지려고….”
[강해지려는 이유는?]
“…모든 걸 베어버리기 위해서….”
마치 진실을 고백하는 듯 했다. 그는 어째서인지 눈앞의 상대에게 거짓을 전혀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문]을 지키고 있는 자. 바깥에서는 나를 수해의 왕이라고 부르더군…. 너는 내게 인과율에 따라 도달했다. 도전하겠느냐?]
“…….”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개미가 코끼리에게 덤비란 말이냐? 무사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토록 철저한 무력감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방금 전에는 광기로라도 덤볐으나 눈앞의 상대는 그런 것조차도 무색하게끔 하는 존재 - 말 그대로 이런 걸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러나 무사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져서 입을 열었다.
“하겠다.”
어차피 이리 죽든 저리 죽든 마찬가지.
“원월천살법을 알고 있나?”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미쳐서 죽을 정도의 상황임에도 무사시는 한 마디를 했다.
그의 인생을 함축한 한 마디.
원월천살법 - 그걸 찾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눈앞의 수해의 왕은 대답했다.
[알고 있다. 바로 그게 내게 도달한 인과율이었군.]
…뭐라고?
무사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최후의 최후에 맞이한 절망에서 설마 - 신적인 존재가 원월천살법을 알고 있다고 할 줄이야!
“뭐, 뭣…?!”
[원월천살법이란… 무신(武神)에게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지. 비류도 나도 그걸 찾고 있었다. 그건 [위대한 분]께 방해가 될 만한 요인이니까.]
“……!!”
[비류는 못 찾고 문으로 되돌아갔지만.]
무사시가 격렬하게 떨자 수해의 왕이 말했다.
[너 또한 이 세상에 배정된 유희(遊嬉)의 말.]
치지지직
얼굴 없는 수해의 왕이 손을 뻗자, 무사시의 몸 안에 무언가가 쐐기처럼 박혔다. 무사시가 고통 때문에 몸을 뒤틀자 수해의 왕이 말했다.
[그러하다면 네 운명을 결정지을 건 내가 아니겠구나.]
“무슨… 짓을….”
스스스스
무사시는 점차 의식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수해의 왕이 비웃듯 하는 말이 무사시의 뇌리에 꽂혔다.
[그렇다 해도 내 앞까지 와서 살아 나가는 대가로 낙인은 찍어두마.]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나온 건지 모르겠다.”
무사시는 자신의 회상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의 회상을 듣고 있던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그저 듣고만 있었다. 무사시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동영을 뛰쳐나와서 몸부림치듯 고려의 강자들을 찾아다녔지. 내가 느꼈던 그 절망감과 무력감을 보상받기 위해….”
“…….”
“그리고 십이율주를 만나서 졌다.”
“어떻게 졌지?”
“그냥… 뚫고 들어갈 틈이 없더군. 놈은 정상적인 무예로 이길 수 없다.”
얼버무리듯 이야기한 무사시의 말이 이어졌다.
“난 모든 걸 잊고 싶었다. 인간의 무예세상을 초월한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알아도 내 검이 절대 닿지 않는 그런 영역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다.”
“무사시.”
“그런 건… 무의미하다.”
넋두리 같은 목소리.
나는 철석간담의 냉혈한인 무사시가 이렇게 약해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그 오만함과 천하를 제패하려던 호전성은 현실도피에 가까웠단 말인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무사시가 귀면상에 씌인 전투마라고 해도 검마에게 보였던 기이할 정도의 천하제일에 대한 집착. 그건 도저히 현실적인 게 아니었고 계기조차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또한 [어둠]의 세계를 엿본 자가 무력감을 느끼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충동에서 생겨난 것이었으리라.
이윽고 무사시가 말했다.
“원월천살법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발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만일 발견한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정통계승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과율이라고 하는 기이한 법칙이 원월천살법으로 그 자를 이끌게끔 하기 때문이다.”
“십이율주 또한 원월천살법의 정통계승자에 대해 알고 있던데 그놈은 어떻게 알지?”
“고다이고 천황을 습격해서 삼신기를 강탈해간 게 그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원월천살법에 대한 문헌도 읽었겠지.”
“……!!”
“본인에게 들었다.”
뭐야?!
고다이고 천황 때라면 천 년 이전의 고대일건데 그때 십이율주가 활동했단 말인가?
내가 황당해서 쳐다보자 무사시가 말했다.
“그 놈은 나이가 없는 것 같다. 겉으로는 청년 같지만 아무래도 수천 살이 넘을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단의 일족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흐음.”
십이율주가 머나먼 미래에서 온 미래인이긴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불로불사일 이유는 없다. 먼 미래의 과학이 발전하긴 해도 그 정도의 불로불사 기술을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십이율주가 무려 고다이고 천황 때부터 월요 삼신기를 강탈할 정도로 활동력 있게 역사의 이면에서 돌아다녔다면,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
“나는 더 이상 원월천살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더 이상 물어볼 게 없다면 가겠다.”
“아, 잠깐!”
내가 무사시를 불러 세우자 그가 멈칫했다.
“너는 혹시 무신의 좌에 도달한 적이 있나?”
“…….”
무사시는 영문 모를 소리를 들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 표정만으로도 무사시가 무신의 좌에는 연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렇게 강한 무사시도 무신의 좌에는 도달치 못했던 건가.’
팔부신중 아수라 또한 적멸무극으로 궁극의 무인이었음에도 무신에게는 티끌만큼도 닿지 못했다. 귀면상을 타고난 초천재인 무사시도 무신의 좌는 전혀 도달하지도 못한 것이다.
무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뭔가 조건이 있다.
강함만이 아니라 다른 조건이.
“나와 겨룬 건 십이율주한테 말하지 마라.”
“알았다.”
나는 이후 무사시를 보내고는 제갈사에게 돌아가서 지금까지의 경과를 이야기해줬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결론은 하나군. 원월천살법을 얻은 놈은 진짜로 [혼돈]을 토벌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혼돈의 신격들이 매우 싫어한다는 거고.”
“어째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걸까?”
“…가설이 하나 있긴 하다.”
“어떤 가설?”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쥘 수밖에 없었다.
“원월천살법은 전생자(轉生者)만이 얻을 수 있는 무공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