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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65화 (86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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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미야모토 무사시는 혼간지로 갔다. 정확히는 후마 코타로가 말해줬던 장소인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였다. 이곳은 동서로 분리된 혼간지에서 동쪽에 속했으며, 니시혼간지(西本願寺)라고 불리는 서쪽의 혼간지에 대항해서 세워진 곳이었다.

이곳이 세워진 계기는 제육천마왕이라 불리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혼간지 세력이 박살나고, 전대 법주였던 혼간지 켄뇨의 사후 혼란스러울 때, 아들인 쿄뇨와 준뇨의 세력이 분열해서였다. 두 아들의 다툼 끝에 동영에서 가장 큰 불교세력이 양분 된 것이었다.

타앗

미야모토 무사시는 혼간지가 보이는 구릉 위에 서서 침묵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그 혼간지 죠노신이란 놈은 어디 있지?”

어둠 속에서 후마 코타로가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했다.

“이미 서찰을 보내놨지. 오늘 밤 자시에 히가시혼간지의 뒤편에 있는 작은 절간으로 가면 된다.”

후마 코타로는 자신의 정찰임무를 끝내고서 무사시를 따라온 상태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속내 같은 건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와 요도도노, 히데요리가 친한 상태라는 건 확인했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사시라는 존재의 행보가 궁금했던 후마 코타로는 그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 날 자정.

무사시는 체력을 회복하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문을 등지고 한 명의 승려가 조그마한 절간 내부의 불상에 염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우우우….

저것은 염불인가?

염불이라기보다는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문을 연 무사시가 침묵하고 있자 그 승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보고 싶어 한 무사인가?]

말이라기보다는 울림처럼 느껴진다.

스윽

“……!!”

그 순간 무사시는 반사적으로 검을 꺼내들었다.

괴물!!

승려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마치 흉행(凶行)을 일삼는 악귀, 아니 그 이상의 기괴한 무엇이었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끔찍한 얼굴에, 철석간담을 지닌 무사시조차 놀랄 정도였으니, 보통 인간은 저 얼굴을 보는 순간 기절하거나 정신에 이상이 올 게 분명했다.

무사시는 이윽고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렇다. 네가 혼간지 죠노신인가?”

[내가 죠노신이다.]

“내 이름은 미야모토 무사시. 내가 할 질문은 하나다.”

[…….]

“너는 원월천살법을 알고 있는가?]

혼간지 죠노신은 침묵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고문(古文)에서 본 적이 있는 단어군….]

찾았다!

드디어 원월천살법이란 것의 단서를 찾은 것이다!

혼간지 죠노신은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나를 따라오라, 귀면상의 무사여!]

“귀면상?”

[그대와 같은 자를 귀면상의 재능이라 일컫는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눈앞의 죠노신이 무력적으로는 자신에게 한 주먹도 안 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앞의 상대를 벨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가 자신이 원월천살법으로 나아갈 단서를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엄청난 지식과 지혜를 축적한 인물이란 걸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좁은 절간에서 나가서 히가시혼간지 앞에 섰다. 이 거대한 사찰은 동영에서도 가장 거대한 것으로 꼽히고 있었으며 신슈오오타니파(真宗大谷派)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잠시 후 죠노신이 무언가 주문을 외우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출렁….

죠노신이 그 일렁임 속으로 걸음을 옮기자,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장소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히가시 혼간지에는 따로 옆문이 없었음에도 귀신처럼 사라진 것이다! 무사시는 그 기괴한 광경에 당황했으나, 이윽고 술법의 일종이란 걸 알아채고는 그를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공간의 내부는 사찰이 아니라 거대한 도서관의 일부인 듯 했다. 시야 끝의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서책의 산! 이렇게 책이 많은 건 처음 보았기에 무사시가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자 혼간지 죠노신이 책의 동산 위에 앉아서 자신의 턱을 괴며 말했다.

[미야모토 무사시여…. 나는 원월천살법에 대해서 그대에게 알려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대가로 내게 무엇을 주겠는가?]

“대가?”

끼기기기

그가 손을 들자 괴물의 손아귀 위에서 밀교의 법언(法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는 상당한 술법사이자 마도사였다.

[신슈오오타니파(真宗大谷派)의 진정한 어둠의 법주(法主)가 바로 나다. 이 동영에서 아베노 세이메이를 제외하고는 가장 세계의 어둠에 근접한 자가 바로 나…. 그런 내게 어떤 대가를 주겠냐는 말이다.]

“혼간지 켄뇨와 쿄뇨는 뭐냐?”

[…인간에 불과하지.]

“그럼 넌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신(神)과의 혼혈이다.]

순간 혼간지 죠노신의 눈에 기광이 흘렀다.

[전대 법주인 흔간지 켄뇨는, 제 육천마왕 오다 노부나가와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다른 차원에서 어둠의 존재를 소환해서 자신의 여인과 피를 섞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이다.]

“…….”

[그리 놀라지 않는군…. 너는 아마 이미 세계의 어둠에 접한 적이 있을 것 같군. 그래서 원월천살법을 찾아 다닌 게 아닌가?]

“내가 알고 싶은 건 원월천살법에 정말로 신을 베어 죽이는 힘이 있냐는 것이다.”

[성급하군. 아직 대가도 받지 못했는데 내가 그걸 알려줄 이유가 있을까?]

“원하는 게 뭐냐?”

미야모토 무사시의 질문에 혼간지 죠노신이 말했다.

[그대 수명의 절반을 원한다.]

“…….”

[보통 인간의 수명 따위는 쓸모가 없으나, 그대는 귀면상…. 무구한 명운(命運)과 가능성을 지닌 존재. 충분한 거래대가라고 생각한다.]

내 수명의 절반이라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잠시 동안 생각을 했다.

‘내 수명이라….’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같은 것도 모른다. 강해질 수 있으니까 강해졌을 뿐이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진에 쳐들어가려는 무모한 생각도 그렇게까지 삶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야모토 무사시가 이윽고 말했다.

“주지 않겠다.”

그냥 술법사와 거래하기 싫었다. 그는 한 번 싫은 건 죽어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호오…. 원월천살법에 대해서는 영영 모르게 될 텐데 말이냐? 말해 두지만 이것은 어둠의 심처에 숨겨져 있던 지식이라서 설령 아베노 세이메이라 해도 모를 것이다. 그대는 내 제안을 거절하면 후회할 텐데.]

“후회라는 건….”

무사시의 눈에 혈광이 흘렀다. 죠노신을 죽이고 나서 정보를 빼앗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네놈이 죽고 나서 하지 않을까.”

푸콱!!

그 순간 무사시는 전방으로 뛰어들어서 혼간지 죠노신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목을 베었다 생각한 순간 죠노신의 몸뚱이 전체가 종이로 변했고, 양옆에서 거대한 괴물들이 소환 되었다.

쿠궁

[어리석은 놈…. 난 이미 오리가미 (折り紙)의 술법으로 대비하고 있었노라. 젠키(前鬼), 고키(後鬼)! 놈을 해치워라.]

뱀과 두꺼비 형상을 한 몸뚱이 6 장의 마물들이 동시에 무사시에게 덮쳐왔다. 젠키인 뱀의 등을 타고 유려하게 올라선 미야모토 무사시가 뱀의 목을 베려 했으나 너무 단단해서 베이지 않았다.

티잉

“……!!”

엄청난 경도!

소환수란 것 자체를 처음 상대하는 무사시는 당황했다.

‘검기가 안 먹히는 건가? 그렇다면 좀 더 힘을 높여서….’

화르륵

그 순간 두꺼비인 고키가 입에서 거대한 부채꼴의 화염을 방사했다. 무사시는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굴러서 그 범위를 피해냈으나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술법사란 존재가 이렇게 강력한 줄 몰랐던 무사시는 아찔해했으나, 이윽고 정신을 집중하고는 침착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간다!’

피잉

무사시는 신검합일의 기세로 날아가서 뱀의 목젖을 그대로 찔렀다. 상대의 약점이 왠지 거기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구경하고 있던 죠노신이 그를 비웃었다.

[크하하하!! 술법도 안 걸린 칼로 내 소환수를 없애려 하다니 계란으로 바위치기… 구… 아닛?!]

푸화학

[거…검강(劍罡).]

뱀의 머리통이 무사시의 찌르기 한 방에 터져나가자 죠노신이 아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터진 머리통은 이윽고 종이덩어리로 변해서 흩어져나갔다. 젠키와 고키 또한 오리가미의 술법에 속했기 때문이다.

검강!!

초절정고수의 증거!

확실히 강기 앞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소환수라 해도 손을 못 쓰고 패퇴하기 마련이었다. 강력한 의념절기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동영 땅에 강기를 쓸 수 있는 자는 채 열 명도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최상위 검호 몇 명을 제외하고는 어설픈 수준이었다. 평생 칼밥만 먹고 살아온 고수들도 닿을 수 없는 그 지고한 경지에 저 꼬마가 도달했단 말인가?

퍼억

다시 한 번 무사시가 고키에게 덤벼들자 고키 또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무사시는 고키를 베자마자 은신해 있는 죠노신의 위치를 알아냈는지 강하게 노려보았다. 죠노신은 자신의 은신술이 간파당한 걸 느끼고는 급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조…좋다. 무사시. 그대의 실력이 대단하구나. 그러면 이런 건 어떤가?]

저벅

무사시가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죠노신이 필사적으로 말했다.

[수명의 절반은 됐다. 그냥 원월천살법이 수록된 고문을 그대에게 줄 테니 이만 물러나 다오. 더 이상 그대와 싸우고 싶지 않다.]

그 말에 무사시가 비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였는데 그런 말을 믿으란 말인가?”

[정말이다. 지금 바로 주겠다.]

휘리릭

죠노신이 염동력을 써서 다섯 권의 책을 무사시에게 던져줬다. 무사시가 칼날을 유려하게 움직여서 칼날 위에 다섯 권을 올리자, 그 신기(神技)에 죠노신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나이는 어려 보여도 이미 명인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리라.

[…그 고문 다섯 권은 연결되어 있다. 유래는 구다라(百濟)이며 온조(溫祚)의 이복형인 비류(沸流)라는 자가 그 책을 서술했다.]

죠노신은 이미 자신이 무사시의 공격반경에 들어와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필사적으로 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정보를 토해내야만 했다.

“구다라? 그게 뭐지?”

[수천 년 전, 현재의 고려가 있는 반도(半島)에 있던 고대의 국가다. 그 당시 반도는 세 개의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가우리(高句麗), 구다라(百濟), 신라(新羅)의 삼국시대였다. 그리고 비류는 구다라의 시조(始祖)였다.]

“…….”

[비류는 하늘에서 강림한 신적 존재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는 동영으로 잠시 넘어와 동영의 신인 코토아마츠카미(別天津神)들과 교류했고, 이 다섯 권의 책을 그들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너는 그런 책을 어떻게 얻게 된 거지?”

[그대는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을 알고 있는가? 그 자가 겐무신정(建武新政)을 칭하고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결국 천황궁이 박살나고 거기에 있던 어둠의 지식과 보물들이 온갖 장소로 쏟아졌지. 그리고 그 대부분은 바로 여기, 신슈오오타니파(真宗大谷派)의 어둠의 서고에 와있다.]

“…….”

겐무신정.

문득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미야모토 무사시는 과거에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술과 제물을 신목(神木)에 바쳤던 그 날 - 아버지가 죽었던 그 날.

그 때 신목 뒤의 사당에는 분명히 겐무신정이라는 글자가 붉게 새겨져 있었다.

아니, 그 때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가 인신공양을 치르며 제사를 지냈던 3개의 사당 모두에는 겐무신정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무사시는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했다.

“고다이고 천황은 어떤 존재지?”

[그는 고대에 황권을 지키기 위해 무로마치 막부의 시조인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천황이다. 그가 마지막 전투를 벌였을 때, 그는 삼신기(三神器)라고 하는 강력한 보물을 지니고 있었는데,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는 가짜 삼신기를 주고 자신은 진짜를 가지고 가서 남북조로 천하를 나누었다.]

거기까지 말한 죠노신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고다이고 천황의 진짜 삼신기는 현 천황의 거처에 있다고 하지. 그러나 실제로는 고려로 넘어가 있다. 왜냐하면 고다이고 천황이 삼신기를 강탈당했기 때문이다.]

“고려에 삼신기가 있다고?”

[그렇다. 고려에 있던 신적 존재가 어느 날 고다이고 천황의 황궁에 쳐 들어와서 삼신기를 모조리 뺏어갔다. 삼신기의 신력으로 간신히 정권을 유지하던 고다이고 천황은 크게 당황해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지…. 봉인된 아마츠카미의 힘을 빌리기로 했던 것이다.]

“…….”

[아마츠카미가 깨어나서 세상이 도탄에 빠지자 곳곳에 어둠의 낙인이 새겨지고, [옛 존재]와 어둠의 신격 들이 이 세계에 강림하기 쉬운 [문]이 만들어졌다. 차원문(次元門)도 발생했지…. 어찌어찌 그 시대에 혼란이 수습되긴 한 모양이었으나 세상은 더욱 혼돈에 빠져들었다.]

“죠노신. 혹시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고 있나?”

무사시는 혼간지 죠노신에게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인신공양 제사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전모를 들은 혼간지 죠노신이 말했다.

[틀림없다. 그 사당은 고다이고 천황이 만들어놓은 아마츠카미 강신을 위한 통로다. 네 아버지는 그 문을 여는 지식을 얻어서 의식을 치른 것이겠군.]

“어째서 그 사당에 겐무신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거지?”

[그건 아마츠카미가 인간제물을 얻어서 강신할 경우 고다이고 천황의 정권을 전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동맹(同盟)의 표식이다.]

“…….”

[이제 궁금증은 다 해결되었나?]

“아직이다. 이 다섯 권의 책에는 정말로 신을 베는 검술이 적혀 있는가?”

[전혀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죠노신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 책은 오륜천서(五輪天書)라고 불린다. 그 책에는 구다라의 비류와 코토아마츠카미들이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대화중에 원월천살법이란 말이 나올 뿐이다….]

“내가 읽을 수 있나?”

[원래 고대어로 되어 있었으나 나도 관심 있는 책이라서 번역해놓았다.]

“읽다가 모르면 다시 찾아오겠다.”

스아앗!

[……!!]

그 순간 무사시가 칼을 휘두르자 공간이 베였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간을 뚫고 나갔다.

무사시는 밖으로 나와서 생각했다.

‘어째서 신들이 원월천살법을 논한 거지?’

모든 건 이 오륜천서에 적혀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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