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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61화 (86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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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무사시를 쓰러뜨린 직후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 나는 내 몸의 상태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손가락 세 개가 잘렸고…, 복부에 큰 자상(刺傷)이 났고, 체력과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군.’

이대로 조금만 더 싸웠어도 죽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기력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도 호흡만 정돈하면 최소한의 내공을 빠르게 회복 할 수 있었으므로 아직은 괜찮았다.

나는 기공으로 호흡을 정돈하며 내공을 회복했으며 동시에 무사시의 상태도 살폈다.

‘가슴이 내 검기에 꿰뚫렸지만 심장이 있는 쪽이 아니다. 크게 지쳤지만 이 정도면 치명상은 아냐. 그럼 지금은 기절상태군.’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에 펼친 지결의 검기는 외상보다는 무사시의 정신력에 직접 타격을 준 듯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 무사시는 중상이되 치명상은 아니었으므로 충분히 살릴 수 있을 듯 했다.

나는 목갑에서 금침을 빠르게 꺼내서 무사시의 요혈을 짚고, 화씨가문 의술로 그의 환부를 지혈했다.

욱씬

배가 아프다. 아까 배가 쫙 갈라져서 내장이 쏟아질 뻔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공치료로 환부를 임시로 아물게 했어도 중상은 중상이었다.

“크윽!”

내가 훨씬 더 중상인데도 무사시를 살리려고 먼저 치유해야한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어쨌든 할 수밖에 없다.

무사시의 긴급처치를 끝내고 내가 목갑에 그를 집어넣은 후 다시 제갈사에게 가려고 비등을 발동했을 때였다.

우웅

‘안 된다?!’

비등이 안 된다는 건…!!

‘결계가 펼쳐져 있다!’

분명히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비등을 방해하는 결계 따윈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누군가가 노리고 있다는 뜻인가?

나는 긴장한 채 천천히 검을 들고 주위를 살폈고, 잠시 후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구경을 했네. 신투객.”

“너는….”

“지금 그 모습은 진짜 모습인가? 아까 변신술을 변화무쌍하게 쓰던 모습을 보니 궁금해지는군.”

“…….”

나는 입 밖으로 놈의 이름을 꺼낼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제갈유룡!’

십 수 명의 천문관을 뒤에 대동한 채 모습을 드러낸 청수한 이목의 문사, 저 자는 바로 제갈세가의 가주(家主)이자 현 황궁의 흑막인 제갈유룡! 천하 3대 세력의 수장 중 한 명일뿐만 아니라, 복마전의 중간관리자로써 대명제국을 암중에서 움직이는 존재였다. 무공도 술법도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어서, 결코 지금 상태로 제갈유룡을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갈유룡의 양 옆에는 두 명이 서 있었다. 나는 놈들의 얼굴 또한 확인하고는 인상이 강하게 굳어졌다.

‘…제갈부. 용중일…!!’

최악이다.

보나마나 제갈유룡이 어떤 수단으로든 나와 무사시의 일대일 결투를 감지하고, 몰래 추격해서는 자신의 일신세력을 모두 데려와서 포위한 게 분명하다. 제갈부는 당연히 제갈유룡의 최측근이니 와있을 것이고, 용중일은 풍신류를 통해서 암중에서 천문관 세력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용중일은 내게 술법의 눈으로 감시를 붙인 적까지 있지 않은가? 심지어 용운궁에서 암약하던 수라문은 풍신류의 하부세력이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용중일이 훗하고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하, 신투객. 일전에 내 소매치기를 하던 자의 실력치고는 굉장하군. 자네의 몸이 만전이라면 나조차도 일대일로는 못 이길 것 같아. 자네는 천하의 모든 무림고수 중 가장 정점에 가까운 존재일세.”

그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어째서 소매치기나 하고 다닌 거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신투객이라니 무슨 말이냐?”

“시침 뗄 필요 없네. 여기 우리가 왔다는 건 이미 자네가 신투객이라는 걸 확신하고 온 게 아니겠는가?”

스윽

용중일이 서서히 자신의 검을 들어서 자세를 잡았다. 나는 그 자세가 전형적인 풍신류 검법이라고 느꼈지만, 동시에 그가 검기(劍氣)에 사신 검형의 기세를 담았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지금 시점의 용중일도 사신검형을 어느 정도 완성한 상태이며 숙련자이니, 제대로 붙으면 결코 만만하지 않으리라.

나는 힐끔 제갈부와 제갈유룡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어째서 나와 무사시가 싸우는 도중에 공격하지 않았지? 그게 당신들 입장에서는 더 쉬웠을 텐데.”

“도중에 공격한다라…. 너희들 정도의 절대고수라면 결투를 중단하고 힘을 합쳐 우리에게 덤빌 수도 있겠지. 그리고 너희가 생사투를 벌이는 극한으로 갈수록 모든 수법을 소진하게 될 텐데 그걸 관찰할 기회를 날릴 수야 없지.”

“그 덕에 확신이 섰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생포해야겠다고.”

나는 제갈유룡의 말을 들으면서 고민했다.

‘어쩌지? 죽을까, 아니면 도망칠까?’

자살하는 게 제일 편하긴 하다. 어차피 이번 생에서 신투지존의 기연을 얻어내서 만상지투의 기본수법과 천면공자를 얻었으며 멸혼보의 극성도 얻었고 심지어 무사시도 꺾었다. 괜히 놈들에게 붙잡혀서 일을 그르치느니 재빨리 자살이나 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도망치려고 하면 그 난이도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 상황이 정말로 위기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 것이다. 또 다른 길이 있다면 그걸 선택해보고 싶었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일단 질러보자.’

나는 침묵하다가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는 말했다.

“너희는 500년 후 찾아올 세계의 종말을 알고 있는가?”

“…….”

“나는 그걸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날 방해하지 마라.”

뒤쪽에 있던 천문관들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외지에서 난데없이 무사시와 결투를 벌이던 의문의 신투객이 세상의 멸망을 운운하면 생뚱맞기 그지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제갈유룡과 용중일의 안색이 살짝 바뀌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꺼낸 이야기가 그들의 심중을 흔들리게 한 것이다. 역시 제갈유룡은 물론이고 용중일 또한 환생자로서 세계의 멸망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쐐기를 박기 위해 좀 더 정보를 토해냈다.

“날 공격하지 마라. 나를 공격한다면 자살할 것이다. 그러면 네놈들은 창힐이 갑자기 소멸하고 팔부신중이 세계를 떠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 하리라.”

“……?”

“토요 팔괘도가 엉뚱한 놈 손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손을 잡는 게 좋을 걸…. 창힐의 팔부신중은 이제 그녀를 통제할 수 없다.”

제갈부는 어리둥절한 듯 후열에 있던 천문관 술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슨 개소리지? 미친놈이었군. 모두 오행결계를 펼쳐서 놈을 붙잡….”

파악

“그만둬.”

그 순간 제갈유룡이 제갈부의 입을 막듯 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단숨에 술법이 봉인 당해버린 듯, 제갈부가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금언(禁言)의 술법으로 제갈부를 한순간에 봉인한 듯 했다.

제갈유룡은 심유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 기백, 거짓은 아닌 것 같군.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해 보지.”

“그… 쿨럭! 쿨럭!!”

나는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입에서 선혈과 내장 조각이 튀어나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일단 포위진과 결계부터 풀어라.”

“그럴 수는 없지. 너는 시공간을 이동하는 마도구를 지니고 있으니 추적하기 까다롭다. 대신 운기요상약 정도는 주지.”

제갈유룡이 웬 환단을 하나 던져주자 나는 허공에서 잡아챘다. 잘 보니 이것은 배환단(培丸丹)으로써 상당한 상급 영약이었다. 그러나 제갈유룡이 여기에 무슨 수작질을 했을지 모르므로 나는 먹지 않고 씨익 웃었다.

“크크… 나름대로 필사적이군. 남 몰래 맺고 있던 창힐과의 연이 끊겼으니, 이제 복마전의 재롱둥이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길을 찾는 건가?”

“너는 누구냐?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말했듯이 세상의 멸망을 걱정하는 자다. 너와 마찬가지로 멸망만큼은 피하고 싶어 하지….”

“…….”

“네게 제안을 하지. 내가 원하는 건 수해의 왕을 토벌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 일에 협조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네게 제공하겠다. 물론 창힐의 행방과 놈이 실종된 전모까지도.”

죽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27번이나 전생을 했는데, 그렇게 비굴한 선택지만 남길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다면 이젠 저 제갈유룡조차 내 목표를 위해서 이용해주겠다. 제갈유룡의 도움을 받는다면 수해의 왕을 좀 더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흐음… 수해라는 건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제갈유룡은 한동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좋다.”

화악

그 순간 결계가 풀렸다. 나는 살짝 비등에 손을 올려보았는데 이번에는 반응이 오는 걸로 봐서 확실히 이동 불가 결계가 해제된 모양이었다. 나는 이대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선 채로 운공요상을 하며 버티고는 말했다.

“십주야 후에 보자. 장소는 황산 이십사봉(二十四峰)의 광릉봉(廣稜峰) 정상으로 하지.”

“알았다.”

“말해두겠지만 나는 인신공양이나 마도술법을 아주 싫어한다. 내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참고해 두지.”

파앗!!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비등을 써서 잠시 인적 없는 곳으로 향한 후, 화안금정을 써서 내게 추적술이나 수상한 천리안이 따라붙지 않았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그제야 고려에 있는 광명신의 화서명을 찾아갔다.

‘제길…. 제갈사한테 바로 가려고 했는데 이 상태론 안 돼. 더는 못 버티겠어.’

부상이 너무 심하다.

이대로 가면 아무리 내가 기공의 고수라도 죽는다.

제갈사한테 가도 방법은 있겠지만, 마도술법으로 의체를 이식하거나 이혼대법으로 몸을 바꾸거나 하는 괴랄한 수법인지라 그냥 화서명을 찾아가는 게 나았다.

나는 화서명에게 큰 보물을 제시하면서 나와 무사시를 치료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화서명은 그 제안을 수락하면서 말했다.

“좋네.”

“그리고 이 배환단의 성분을 조사해 주십시오. 수상한 게 없는지….”

“알았네.”

“제 손가락도 여기 있으니 가능하면 붙여주십시오.”

“깔끔하게 잘려서 가능할 듯하네.”

나는 이윽고 마폐탕을 먹고 가사상태에 빠졌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화서명은 사람을 재워놓고 허튼짓을 하지 않는 진정한 의원이었으므로 믿을만했다.

그리고 한동안 가사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나자 소슬한 안개가 끼어 있는 아침이었고, 나는 침소에 누워 있었다.

내 몸에는 빽빽하게 금침이 놓여 있었고 복부의 자상은 모두 치유되어 있었다. 아마도 화씨의술 중에서 인간의 기력을 끌어내어 자연회복력을 높이는 술수를 사용했으리라. 나는 기억하고 있는 화씨침법의 순서대로 침착하게 침을 다 뽑아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걸어 나오자, 연못가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사흘 만에 일어났군.”

“무사시.”

“화씨 의원은 다른 일을 하러 나갔다. 두 시진 후에 돌아올 것이다.”

“그렇군.”

무사시는 나보다 부상이 적었기에 훨씬 빨리 회복한 모양이었다. 무사시가 힐끔 내 쪽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약속은 약속이다. 네게 원월천살법과 수해의 왕에 대해서 말해 주지.”

“…내가 어떤 인간인지 묻지 않는 건가?”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무인으로써 한 약속을 지킬 뿐이다.”

“…….”

단순한 말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말에 신뢰가 쌓이는 걸 느꼈다. 저런 성격도 무인답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무사시가 입을 열었다.

“원월천살법에 대해 말하려면 한두 마디로는 안 된다.”

“응?”

“그건 내 인생이나 다름없었다. 수해의 왕에 대해서는 간단히 말해줄 수 있지만, 원월천살법은 그게 안 되겠군.”

“…….”

미야모토 무사시가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우선 내 예전 이야기부터 해 줘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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