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859화 (858/1,615)

859====================

진공가향(眞空家鄕)

이청운을 흉내 낸 상태로 나는 손에서 뇌편(雷鞭)을 만들어내어서 무사시에게 휘둘렀다. 뇌신류 종사에게 전수되는 무공 중에는 편법도 있었으며 내가 쓸 수 있는 뇌령지기를 이용해서 한 번 흉내 내 본 것이다.

휘리릭

번개의 채찍이 일순간 무사시의 몸을 에워싸서 토막 내려 했으나 무사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뇌편을 잘라 내었다. 그리고 나는 무사시가 동작을 취하는 틈을 타서 요결을 발동시켰다.

뇌신지혼(雷神之魂)

진곤패(震坤卦)

파지직….

역(易)은 세 가지로 해석된다. 불역(不易)과 간이(簡易), 변역(變易)이다. 그리고 이청운은 뇌신지혼이 인간의 무공에 괘를 포함시킨 절대무공이며 수많은 팔괘의 형상 중 하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가 있었다. 또한 뇌신지혼의 수많은 심득이 마치 정밀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자연스럽게 시전자가 뇌화(雷化)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뇌신지혼으로 뇌화하는 경지에는 전혀 도달하지 못했으나, 이청운과 진소청 등에게서 계속해서 그 구결의 연구결과를 받아왔다. 그러므로 주된 무공요결 중에서 진 곤괘만 뽑아내어서 일시적으로 뇌령지기를 강하게 뽑아내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어차피 뇌신지혼 또 한 팔괘의 연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며, 내 기억의 저변에는 지선 망량의 지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치잉!!!

전신을 둘러싼 뇌령지기가 시퍼렇게 빛나면서 나를 마치 번개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물론 이건 그저 뇌령지기를 막처럼 두른 것일 뿐 뇌화가 아니다. 나는 그대로 뇌령지기를 미간에 모으면서 뇌명을 썼다. 그리고 천간의 번개를 내 뜻대로 변형시키며 조화를 부렸다.

‘번개는 나의 것!’

꽈광

순간 내 의지가 향하는 장소에 낙뢰(落雷)가 떨어졌다! 무사시는 빠른 신법으로 낙뢰의 살기를 예측해서 피해 있었으나 크게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번개를 조종한다고?”

“내 살기를 읽었나 보지만, 이번엔 못 피할 거다.”

나는 짧게 대꾸하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살기를 크게 지우면서 진곤괘의 괘수를 크게 회전시켰고, 자연을 이루는 근원소가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후 눈을 번쩍 떴다.

꽈릉!

그 순간 시퍼런 불빛이 떨어져서 무사시의 몸을 덮쳤다. 무사시는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버렸는데, 아무리 그가 대단한 고수라도 인간인 이상 뇌속을 피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살기를 지우고 때렸으니 어찌 피할 수 있을까?

그러나 - 그 찰나, 절대고수만의 시공간에서 마치 무사시가 검무(劍舞)를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무사시는 이미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장도의 결로 자신을 덮친 낙뢰를 받아낸 후 코등이를 통해서 뇌력(雷力)을 흘려버렸고, 여파의 뇌령지기조차 한 번의 움직임을 털어내 버렸다. 그 유려한 흐름의 마지막 동작은 [베기]였는데, 나는 그 일참을 보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번개를 벤다고?!’

피잉

믿기지 않았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번개의 면(面)이 마치 비단처럼 무사시의 칼날에 베여가고 있었다. 내 눈의 착시인가 했으나 화안금정으로 모든 시력을 모으고 있었으므로 그럴 리는 없었다.

세상에! 물론 의념을 쓰면 파도나 폭포를 벨 수는 있으나 뇌전은 그 난이도가 비교도 안 되게 높다! 동영검술의 극의에 도달하면 저런 신위가 가능하단 말인가?

두 번의 베기로 번개를 완전히 찢어버린 무사시는 마치 미끄러지듯이 나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단숨에 일백 번이나 찔러왔다.

보장원류창술(宝蔵院流槍術)

백뢰섬열(百雷殲烈)!

까가가강

"크윽.”

뭐지 이건?!

‘본 적 없는 무공이다.’

창술을 검술로 변화시킨 것인가? 확실한 건 방금 전 가시마신류의 무공보다 훨씬 뛰어나고 정밀한 명가(名家)의 무예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강맹한 공격에는 구십구합리귀(九十九合理歸)를 써서 대적해야 함을 깨닫고는 그대로 백뢰섬열의 궤적을 막아내었다. 한 번 한 번의 찌르기에 검호를 죽일 정도의 무시무시한 살예가 집중되어 있었기에 숨조차 쉬지 못하고 막는 데 집중해야 했다.

까가강!

까강!

피가 들끓어 오른다. 무사시의 선천적인 살기가 너무 강렬해서 그에 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피륙으로 이뤄진 일개 인간이 이런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천살성도 아닐진대 태어나면서 부터 지닌 살기가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그의 눈이 혈광(血光)을 내뿜는 걸 보자 투지가 꺾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파앗

나는 무사시의 공세가 점차 내 방어영역을 돌파할 것 같자 그대로 틈을 봐서 멸혼보를 써서 뒤로 물러섰다. 내 움직임이 난데없이 가속하면서 무사시에게서 널찍이 떨어지자 그는 검술의 전개를 멈추고 우뚝 섰다. 무사시는 또 한 번 당혹한 듯 말했다.

“그 보법은 뭐지?”

“뇌신류 비전 멸혼보!”

“무당파에 뇌신류라…. 무공연원이 특이하군.”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짜증을 내면서 이번에는 이청운의 가면을 벗고 다른 가면을 썼다.

스스스

무영탈혼검법(無影奪魂劍法)!

이번에는 내가 다시 간합을 좁히며 무사시를 공격해 들어갔다. 무사시 는 내가 공격해 오자 마주 쾌검을 써서 내 목젖을 베어버리려 했으나 나는 영검(影劍)으로 막(幕)을 형성해서 그의 반격을 버텨내고 눈을 노렸다. 급소를 노려진 무사시가 한 호흡 늦게 무영탈혼검을 막았으나 그 순간 그가 허공으로 도약하면서 크게 피했다.

‘윽, 눈치했군.’

무영탈혼검법의 무서움은, 허실이 섞여 있어서 막았다 싶으면 보이지 않는 영검의 날이 상대의 급소를 공격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묘용을 이용해서 무사시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이었는데 딱 1초만 받아보고는 즉시 알아채버린 듯 했다. 주의 깊게 관찰하면 가능한 일이었으나 이런 초고속의 실전에서 저렇게 빨리 알아채는 건 마치 귀신과도 같은 재능이었으므로 멍해질 지경이었다. 정말로 저 놈은 진소청에 비할 정도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다시 후퇴….’

파앗

나는 숙련도가 부족한 무영탈혼검법으로 이 이상 공격하려 들면 되려 극강의 달인인 무사시의 검기에 말려들어서 불리해진다는 걸 눈치 채고는 다시 멸혼보를 써서 간격을 벌렸다. 무영탈혼검으로 절대지경에 이른 검마라면 몰라도 내가 무영탈혼검을 써서 무사시와 정면승부하기에는 백 년은 이르다.

내가 멀찍이 뒤로 물러나자 무사시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뭐하자는 거냐? 그런 어설픈 수작으로 어찌할 생각이지? 덤빌 거면 끝까지 덤벼라!”

“화내는 건가?”

“…….”

“더 화내게 만들어줘야겠지!”

파바밧

나는 이번에는 단의 일족이자 율도국왕 홍길동의 가면을 써서 그의 공령백팔환(空靈百八幻)을 흉내 냈다. 하지만 백팔 개의 환영이 아니라 고작해야 네 개의 분신이 꺼내졌으므로 나는 일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흉내 내기일 뿐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역량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쳇. 분신 쪽 절기는 숙련도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는가 보군….’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네 개의 분신에 기력을 똑같이 분배하며 무사시에게 돌진시켰다.

“가라!”

무사시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대장로 홍길동의 절기군. 놈과 무슨 관계냐.”

투콱

무사시는 단 일 검에 네 개의 분신을 베어버렸다. 나는 또 다시 분신을 꺼내서 무사시에게 보냈는데 그는 성가시다는 듯 또다시 지푸라기 베듯 베어버렸다. 분신을 써봤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별안간 무사시의 몸이 앞으로 순간이동 하듯 날아오며 내 목을 베어왔다.

…발도술(拔刀術)!

너무 빠른 공격이라서 나는 그대로 목이 날아갈 뻔 했으나 지금까지 쌓아온 무공 덕분에 그 찰나를 감지해서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낼 수가 있었다.

츠앗

대신에 목젖에 긴 혈선(血線)이 났고, 나는 멸혼보로 다시 뒤쪽으로 피했다. 다행히 무사시가 가진 어떤 신법으로도 내가 멸혼보로 후퇴하면 추격할 수 없는 모양이었기에 나는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다.

‘흠, 지칠 기색이 안 보이는데….’

무사시가 말로는 짜증을 내고 있지만 그의 심기와 기술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고 있었다. 겉으로는 감정을 뿜어내고 있어도 실제로는 엄격하게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있어서 늘 최상의 전투능력을 유지한다는 뜻이었고, 그가 초일류 검객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문득 용중일과 싸울 때처럼 몇날 며칠을 싸우면서 그가 완전히 지치기를 기다려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왠지 안이한 생각일 듯 했다.

무사시는 용중일과 다르다. 용중일의 사신검형 또한 물론 뛰어난 검술이었지만 거기에는 예기(銳氣)가 빠져 있었고, 절대지경만의 압도적인 뭔가가 부족했다. 반면에 무사시는 설령 죽기 일보직전에서라도 상대와 동귀어진할 수 있는 기백이 있었으므로 섣불리 그런 수를 쓰다가는 되려 내가 죽을 것이다.

“무사시. 차라리 네 절기와 무쌍패로 한 번에 승부를 내는 게 어떠냐? 막으면 내가 이기고 못 막으면 네가 이기는 걸로.”

내가 제안을 하자 무사시가 나를 비웃었다.

“내가 바본 줄 아는가? 음양의 조화로 모든 걸 무효화시키는 무공을 상대로 빈틈도 만들지 않고 덤비라고?”

“…….”

“너 또한 잡기술이 많은 것 같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끝까지 해 보자!”

“오냐, 알았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또다시 가면을 바꿔 썼다. 벽력삼존 적월(赤月)의 가면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뇌신류 회전권(回轉拳)!

이청운이 벽력삼존을 협박해서 탈탈 털어낸 결과 얻어낸 비기! 정윤보가 주로 쓰던 절학이었는데 경지에 도달하면 뇌풍을 뿜어내는 절세권법이 되곤 했다. 회전권이 일으킨 용권풍이 주변 궁궐을 다 박살내며 시야를 어지럽혔고, 무사시가 회전권의 권역을 일 검으로 베어내는 사이에 나는 적월의 가면을 최대한 끌어내면서 장심을 앞으로 뻗었다.

뇌령인(雷靈印)!

쿠콰쾅

단순파괴력으로는 천 년 이래로 손꼽히는 장공(掌功)인 뇌령인이 펼쳐지자 무사시가 정면으로는 베어내지 못하고 아까처럼 코등이를 빗겨내서 흘렸다. 적월의 가면을 쓴 탓도 있지만 내가 전생하면서 뇌령인을 자주 쓰며 연마했기에 자연스럽게 극성의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구유강기(九幽罡氣)!

명왕수(冥王手)!

뇌령인에서 끝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막대한 내공을 기반으로 장력을 퍼부었다. 무사시는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의념을 지닌 검으로 내 모든 공격을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찰나의 빈틈이 만들어 지자 또다시 가면을 바꿔 썼고, 이번에는 벽력삼존 청월(靑月)의 가면으로 변하면서 비기를 시전했다.

멸혼보 비기

천광(天光)!

빛으로 만들어진 분영(分影)이 소용돌이치는 용권풍 사이로 무려 열 두 체나 날아들었다. 언뜻 홍길동의 분신술과 비슷해 보였으나 천광은 분신술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나는 신투지존의 좌에서 주능통이 내게 해 줬던 설명을 떠올렸다.

[멸혼보의 극의를 본 자는 멸혼보 비기인 천광을 진화시킬 수 있다.]

[진화?]

[진화된 천광의 진짜 위력은….]

스각

무사시가 자신의 근처에 다가온 천광의 광체(光體)를 베는 순간이었다.

광체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이게 멸혼보의 극성이다!

그 순간 광체가 있던 장소로 나는 즉시 이동했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무사시의 뒷목에 검을 내리칠 수 있었다. 무사시는 내 기습공격을 회피하면서 반격했으나 그 때는 내가 또 다른 천광의 광체로 순간이동하면서 완전히 다른 각을 잡을 수가 있었다.

천광(天光)

멸혼난무(滅魂亂舞)!

쉬쉬쉬쉬쉭

“으음!”

천광의 분영이 한 번이라도 스쳐지나간 자리에 내가 도깨비처럼 뜬금 없이 나타나면서 여기저기서 기습공격을 가하자 무사시는 꽤 당황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빠른 신법이라고 하지만 기척도 전조도 없이 마음대로 나타나서 베어오는 건 상정 외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뇌신류 사대종사 주능통이 만들어 낸 멸혼보의 극의는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빈틈이 보인다!”

콰광

하지만 무사시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의념천주를 담은 강검으로 멸혼 난무의 공간을 분쇄하고는 연이어서 자신의 최대절기를 펼쳐 왔다.

신살참(神殺斬)!

“……!!”

무사시의 모든 힘이 심검(心劒)의 형태로 집중되며 마치 그 자신이 하나의 절세신검처럼 쏘아져 오고 있었다. 신살참을 신검합일의 형태로 펼쳐낸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벌써 승부수를 띄운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무사시가 걸어온 이 승부수가 아주 적절한 상황에서 펼쳐진 걸 금세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내가 뇌신류의 가면을 바꿔 쓰며 멸혼난무로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수로 그의 공격범위에 지나치게 접근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멸혼난무를 쓰는 동안 생기는 빈틈이 포착 당해버린 것이다.

‘크윽….’

우웅

나는 빠르게 무쌍패의 자세로 전환했고 음양의 힘을 조화시켜 극강의 힘을 내면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침잠해 들어가면서 무쌍패를 펼쳤다.

음과 양의 변곡점.

나는 무쌍패가 신살참을 흡수하면서 그의 검날이 태극을 꾹 누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변곡점의 선(線)에 도달한 무사시의 신살참이 갑자기 검극을 비틀면서 태극을 거꾸로 그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짓이지?

하지만 이윽고 나는 무사시의 신살참이 음양의 변곡점에 존재하던 아주 미세한 빈틈을 마치 상처자국 벌리듯이 비집으면서 무쌍패를 관통하려는 걸 느꼈다. 나는 설마 이런 파해법이 가능할 줄은 몰랐기에 크게 당황했다.

‘아니?! 어떻게…?’

무쌍패의 태극을 어찌 벤단 말인가?!

이건 실체하는 것도 아니고 검기나 강기처럼 구현화 된 기운도 아니다. 말 그대로 개념일 뿐인데, 어떻게….

그러나 눈앞에서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살참이 태극의 조화를 깨고 음양을 둘로 갈라버리는 순간 신투지존의 말이 생각났다.

[그건 고정관념이야. 무예에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어.]

[나 정도 되는 최고의 도둑에게는 그 소리가 들려오고, 마음이 읽히거든…. 뭐, 이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리던 거라서 재능이겠지만! 정확히는 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들리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 걸 훔치기 위해서는… 먼저 훔칠 물건이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기 마음속에서 그 존재를 구현화시키는 거다. 그 후에 무상이 유상으로 변하면 그 흐름을 읽어내어 뜻대로 훔쳐내는 것… 그것이 절대지경 만상지투다.]

존재하지 않는 걸 훔치기 위해서는 무상을 유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개념에도 생명과 마음이 있다.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설마 무사시는 마치 만상지투의 경지처럼-

‘무상(無常)의 소리를 들어서 검으로 접촉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쩌억!!

그 순간 나는 손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뒤로 다섯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무사시가 크게 체력을 잃고 헉헉대는 모습이 보였다. 신살참을 쓴 여파로 체력과 기력이 소모되었으나 그의 표정은 생기가 가득했다.

“깼다.”

“…….”

“반파(半破), 라고 해두어야겠군.”

상황은 내게 유리하다. 손을 다쳤다고 하지만 무사시가 잃어버린 체력은 그 이상이다. 그러나 나는 무쌍패가 정면에서 깨졌다는 충격에 그만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제천대성 때는 그저 허실로 시전자인 나를 현혹시켰을 뿐이라면, 지금의 무사시는 무쌍패가 구현하는 태극에 자신의 검을 쑤셔 넣어서 억지로 비집어 벌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괴물 놈….’

나는 문득 무인의 오기가 생겨났다.

내 최고의 방어수법인 무쌍패가 깨진 순간 내 자존심도 뭉개질 것만 같았기에, 나는 내 자신의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시간만 끌면서 가면을 써서 온갖 기술을 쏟아 붓는다면 내가 이기겠지만, 그렇게 이기는 건 이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무사시를 정면으로 못 이긴다니.

생각조차하기 싫다.

덥썩

나는 피칠갑을 한 손아귀로 철검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가면을 바꾸었다.

이게 아마 이번 싸움에서 내 마지막 가면이 되리라.

내 몸은 서서히 천둔검법(天遁劍法)의 기수식을 잡았다.

거울을 보고 싶다.

‘내 안의 여동빈은 웃고 있을까?’

육의성천도(六意星天圖)

운결(雲決)

그리고 나는 무사시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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