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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56화 (85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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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무사시를 쓰러뜨리라는 말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사실 나 또한 이제 뭔가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현실적으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를 나섰다.

파앗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낙양의 한 객잔에 들어가서 조용히 만두와 음식을 시켜놓고 생각에 잠겼다.

‘무사시를 쓰러뜨리고 이혼대법으로 놈에게서 원월천살법과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정보를 얻어 낸다….’

그 일을 하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외차원에 있을 사대신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혼대법을 쓰는 게 본래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건 알고 있음에도 무사시에게 이혼대법을 시도하는 이유는, 그가 순순히 원월천살법을 알려주지 않을 게 뻔한데다가, 그가 동료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변신투의 비급을 익히는 등 빙빙 돌아갔던 이유는 그런 무사시를 상대로 내가 일대 일로 싸워서 확실한 승산을 얻기 위해서였고, 이제는 그 승산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사시를 어떻게 쓰러뜨리는가?

먼저 무사시는 현재 황궁의 모처에 공간을 의념으로 베어 은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황궁내부를 누비며 도둑질을 할 때, 무사시는 내 존재를 감지했을 확률이 있다. 다만 나를 딱히 건드리지 않은 걸 보면, 그는 십이율주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철저히 수동적으로 정보만을 얻는 태세일 게 분명했다. 그런 무사시를 찾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백련교주조차 경지를 올리고 나서야 희미한 예감으로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실력만으로는 그가 공간을 베어 모습을 숨기는 은신술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방법이 있다.’

여기까지는 백변신투를 수련하기 전까지도 생각해냈다. 그러나 무사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일대 일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계속 신중했을 뿐이다. 그럼 이제는 그를 어떻게 쓰러뜨리느냐는 점만이 중요할 뿐이다.

“…….”

나는 만두를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 볼까.”

더 이상 지체할 필요는 없다.

파앗

나는 황궁의 중앙부에 있는 승건궁의 정문의 지붕 위로 비등을 써서 나타났다. 은신술을 써서 이동했기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황궁무사들이나 시비, 관리들은 내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렇게만 보면 감쪽같은 잠입이었으나, 나는 내 근처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술(瞳術)을 쓰자.’

화안금정 발동!

눈에서 시뻘건 빛이 흐르는 순간, 나는 사방의 공간 중에서 희미하게 음영이 드러난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마도 저게 화안금정이 감지해 낸 미야모토 무사시일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내게서 고작해야 삼 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날 쳐다보고 있어서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그 방향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지붕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동영어로 입을 열었다.

“이천일류 미야모토 무사시. 나는 네게 도전하러 왔다.”

나직한 목소리였다. 별로 내공을 써서 목소리를 돋운 것도 아니었으며, 육합전성 같은 고명한 수법을 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스윽

그 순간, 나는 내 등 뒤편의 공간이 열리면서, 인기척이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는 걸 알아챘다. 고작해야 내게서 일 장도 떨어져있지 않은 장소였던지라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알아챘다.

내 등 뒤에서 익숙한 동영어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

“이전에도 잠입했던 도둑놈인 것 같은데, 동영의 인자(忍者)인가?”

역시.

예전에 백련교주가 영감을 돋우어 그를 발견했을 때 승건궁 근처에서 발견했기에 여기에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적중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미야모토 무사시는 이전에 내가 옥새를 훔치러 잠입했을 때 날 발견 했던 듯 했다.

또한 그에게 은신술은 통하지 않는다. 은신술법을 쓰고 있는 중인데도 그는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절대지경의 의념천주 앞에서는 이 정도 하급술법은 손쉽게 간파당하는 듯 했다.

나는 침착하게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서로 대가를 걸고 비무를 하고 싶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냉엄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름부터 밝혀라.”

“내 이름은 백웅이다.”

“동영인이 아닌가?”

“나는 중원인이다. 다만, 원월천살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사앗

그 순간 미야모토 무사시의 눈빛이 날카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그의 기세가 변하면서 절대지경의 살기가 내 전신을 덮쳐왔다. 그러나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내가 태연하게 버텨내자 미야모토 무사시는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보통 놈이 아니군.”

“네게 비무를 신청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군. 그럼 당장 서로 죽고 죽이자.”

미야모토 무사시가 상단세를 취하며 당장이라도 절대지경의 절기를 시전할 듯 했으나 내가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잠깐! 생사결을 원하는 게 아냐. 난 대가를 걸고 비무를 하고 싶다.”

“뭐라고?”

“너 또한 내가 뭘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

미야모토 무사시가 침묵하자 나는 입을 열었다.

“내일 자시(子時)에 용운궁(龍雲宮)으로 와라. 그 곳에서 싸우자. 어느 한 쪽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싸워서 결판을 내자.”

“승패의 대가는?”

들을 준비가 된 것 같군.

나는 눈을 빛냈다.

“내가 진다면 내가 얼마 전 황제의 옥새를 훔친 이유, 그리고 원월천살법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네가 궁금해 하는 걸 모두 솔직히 말하겠다. 반대로 네가 진다면 너는 원월천살법과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왕에 대해서 모두 말해라. 정보를 걸고 비무하는 거다.”

“……!!”

“또한 이 비무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나 또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기에 왔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처음으로 크게 동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

“네놈, 설마 세이메이가 고용한 인자냐?”

세이메이?

‘아. 하긴 세이메이는 무사시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군.’

나는 전생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대충 파악하고 있었기에 단숨에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사정이 있어서 멸해를 뚫고 그 너머에 있는 장소에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해의 왕을 쓰러뜨리거나 넘어야 하는데, 듣기로는 그와 마주치고도 살아남은 건 너 뿐이라고 하더군.”

“세이메이가 그 사실을 알려줬나?”

“그래.”

이전 생의 일이긴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다. 그 도전을 수락하겠다. 결투에 늦지 마라.”

슈욱!

무사시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졌다. 나는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투덜거렸다.

“결투가 아니라 비무라니까.”

역시 싸움외곬수인 놈답게 비무로 끝낼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무조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려고 들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당장 비무를 해도 되겠지만 하루의 시간은 필요하다.’

일부러 하루의 유예를 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신투지존과의 만남으로 얻어낸 이득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그 기술을 어디까지 응용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나는 우선 낙양성내로 가서 가면을 샀다.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면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있는 쪽이 의념을 살리기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혈문으로 향해서 철혈문주의 처소로 잠입한 후, 그를 암습했다.

퍼억!

“크흑.”

철혈문주는 그래도 초절정고수라고 내 암습을 막아내려는 듯 했으나, 일격만 막고, 이격 째에 요혈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철혈문주의 머리에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원망하지 마라. 난 너한테 죽은 적이 있으니까.”

“뭐라고….”

철혈문주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들은 표정을 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주문을 외웠다.

스스스스….

108자의 주문이 외워지면서 철혈문주의 머리 뒤에 어둠과 함께 가면이 천천히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저 가면은 시전자의 눈에만 보이는 것으로써, 신투지존의 말에 따르면 심연의 본질이라고 하는 존재였다. 나는 철혈문주의 가면이 드러나자 천면공자의 다음 단계를 진행했다.

‘눈을 떠라….’

술자는 가면이 드러난 상태에서 계속 진언을 외우며 가면이 눈을 뜨기를 기다려야 했다. 내가 계속 주문을 되뇌고 있자, 제압당한 상태였던 철혈문주가 문득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듯 했으며 이내 헛소리를 했다.

“헉… 나는… 아니… 어째서 내가 나를 보고 있…지?”

이건 신투지존에게서도 들은 적 없는 현상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기다렸고, 이윽고 철혈문주의 배후에 떠 오른 가면이 서서히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번쩍!

“……!!”

마치 가면의 두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가면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광채의 안광을 쉴 새 없이 뿜었다.

‘늦으면 안 돼!’

늦을 경우 재앙이 발생한다고 들었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서 그 가면을 훔쳤고, 동시에 가면을 내 얼굴에 뒤집어씌웠다.

파앗

내가 가면을 쓰는 순간, 내 몸은 완전히 철혈문주의 그것으로 변했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는데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

눈앞에 쓰러져있는 철혈문주가 점차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점차 몸 전체가 검게 물들더니 이내 의복과 검 일체가 모두 시꺼멓게 변했고, 그 흑암은 마치 살아있는 액체처럼 변하더니 잠시 후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츄와아악

번쩍

내 얼굴에 씌워져 있던 가면에 액체가 흡수되는 순간, 나는 둔중한 충격과 함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나는, 철혈문주 배진혁이다!

어떤 괴한에게 당해서 쓰러졌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놈에게 당해버렸단 말인가? 그 못생긴 꼬맹이 놈은 어디 갔단 말인가?

잡아서 죽여 버려야겠다!

….

하지만….

아니야!

나는 백웅이다!

철혈문주 배진혁이 아니야!

“……!!”

정체성의 혼란!

나는 비틀거리며 혼란스러워하다가, 어째서 천면공자의 2단계가 위험한지를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의식과 동일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남겨두고 훔치지 않으면 동화되어서 술자의 의식이 소멸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단계 수련을 숙련시켜서 가면술사의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으윽… 어지러워…!!’

나는 토악질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버텨내고는 그 자리에서 검을 들어서 무공을 펼쳐보았다.

쉬쉬쉭

된다!

내 몸은 철혈문의 철혈이십사식(鐵 血二十四式)을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펼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철혈문주가 자기 몸에 익혀두었던 역사를 가면을 통해서 본인인 것처럼 읽어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이 순간 철혈문주였으며, 철혈검법의 달인(達人)이 되어 있었다.

“우웩.”

하지만 너무 어지러워서 이내 버티지 못하고 구토를 마구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강제로 내 얼굴의 가면을 떼어내서 던져 버렸다.

퍼엉

그러자 가면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가더니 기절한 철혈문주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천면공자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을 자신의 가면으로 만들어 서 쓸 수 있는 능력…!!’

권능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다! 이런 능력은 더 이상 무공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기문둔갑의 정화인 변신술조차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원리라면 자신보다 강한 존재의 가면을 훔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효율을 낼 수가 있었다. 물론 쓰러뜨렸을 경우가 전제가 되겠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뛰어났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을 진정시켰고 생각했다.

‘신투지존이 오랫동안 숙련시켜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군…. 철혈 문주 하나를 가면으로 사용하는데도 고작해야 찰나밖에 되지 않아.’

내 정신력과 내공으로도 천면공자를 아직 제대로 쓰기는 벅차다.

과연 신화시대의 비술답다.

1단계의 천면공자를 쓴다면 물론 무난하게 오랫동안 변신해 있을 수 있겠지만, 상대방의 능력까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2단계의 천면공자를 쓰려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보였기에 나는 내심 자신감을 가졌다.

‘좋아. 이 기술과 신투지존의 오의를 잘 쓰면….’

내일 미야모토 무사시를 반드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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