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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강신술이라고.
나는 그 순간 과거에 천우진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강신의 술법을 사용하는가? 그래 봤자 환무진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내가 과거에 천우진의 환무진에 도전했을 때 멸혼보를 써서 그의 포위를 피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칠요를 꺼내서 그의 진을 깬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천우진이 멸혼보를 가리켜서 강신의 술법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넘어갔었지만 생각해보니 신투지존이 하는 말과 큰 관련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락없는 술법이지만….’
원래 멸혼보는 낭혼(浪魂)이라고 하는 심성의 재능이 없으면 익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무공이었다. 그랬던 것을 동영무사들과의 연구와 이광의 분심결 연구를 이용해서 익힐 수 있는 구결로 바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멸혼보를 점차 발전시켜 나가다가 종래에는 수해에서 뇌신류 장로 청월을 구출해서 비기 천광(天光)을 전수받으면서 극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습득의 흐름을 살펴보면 멸혼보는 틀림없는 무공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익힌 멸혼보는 무엇인가?
무공인가? 술법인가?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신투지존이 말했다.
“너무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마라. 아까부터 너랑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누가….”
“옆을 봐라.”
내가 힐끔 옆을 보자, 거기에는 웬 고대의 무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고대의 무인이라 하는 이유는 최소한 천여년 전의 복식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무래도 오대십국 때의 복식 인 듯싶었다. 관복이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자는 관리출신인가? 아니…. 저건 법복 같기도.’
그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곳에 소환될 줄은 몰랐지만 반갑구나 후예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후량(後梁)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나는 뇌신류의 제 4대 종사(宗師)인 주능통(朱陵桶)이다! 하하.”
4대 종사?!
내가 그 말에 놀라서 주능통을 보자,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투지존에게 말했다.
“여긴 보통 장소가 아닌 듯한데 여기는 어디고 당신은 뉘시오?”
“무신(武神)의 좌(座). 그리고 나는 대당제국 팔선시대의 신투지존이며 이 좌의 주인이지.”
“좌…?”
주능통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말했다.
“아무튼 내가 영체가 아니라 본질으로 출현한 걸 보면, 여긴 사후세계가 아니라 이차원(異次元)이라 이 말이군. 내 후예에게 전승을 해야겠는데 양해를 좀 구하겠소.”
그 말에 신투지존이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참나…. 누가 뇌신류 아니랄까봐 막무가내군. 너희랑 강호에서 마주 치면 늘 그랬어.”
“과찬은 금물이오.”
“끝나면 말해라.”
주능통이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기자 신투지존은 흥이 떨어진 듯 드러누워서 어디서 났는지 밤을 까먹기 시작했다. 이 공간의 주인인 신투지존이 사승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명백히 드러내자 주능통이 내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멸혼보의 극성에 도달한 걸 축하한다.”
“극성이라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이미 수십 년 가까이 멸혼보를 익힌데다가 비기인 천광도 익혔습니다. 그래서 진작에 도달했다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극성이라니요? 게다가 멸혼보에 강신술이 섞여있는 게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흠, 혼란스럽긴 하겠군. 하나하나 설명해주… 음?”
주능통이 문득 눈을 치뜨더니 내 어깨에 손을 뻗은 후 근골을 매만졌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필수적인 재능도 없는데 멸혼보를 익혔던 건가? 그것도 상단전의 공능을 줄이면서? 어떻게? 이 거 참…. 그건 내 본래 뜻과 다른 데.”
“……?”
“생각 좀 정리해야겠군.”
뇌신류 고대종사 주능통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주능통은 한동안 고민하는 듯 하더니만 자신의 관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 후예여.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멸혼보를 익히는 데는 원래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낭혼이라고 불렀는데, 구속받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는 끼…같은 거였죠.”
“설명 안 해도 되서 다행이군.”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래. 너는 아무래도 마음을 둘로 분리하는 진경을 어디선가 습득한 후 그걸 이용해서 재능과 무공을 분 리시키는 식으로 진입장벽을 낮춘 듯 싶군. 그건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내 뜻과 멀어지게 만들었구나.”
“무슨…?”
주능통이 말했다.
“멸혼보는 강신술이라 불리는 주술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무공이다. 보통 무공과는 달리 천품을 필요로 하고, 그 천품을 바탕으로 강신을 하기 쉽게 상단전을 단련한 후 최고의 신법으로 거듭난다. 그렇기에 재능 없는 자가 억지로 익히기 위해서 재능의 영역을 배제한 것은 독이었다 할 수 있지.”
“……!!”
“네 성취와 경험치는 진작에 극성에 도달하고도 남을 정도였으나 이제야 내가 초혼될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군.”
설마 무당파 양의심공에서 파생된 분심결을 이용해서 멸혼보를 습득했던 게 그런 단점이 있었다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어째서 그런 무공을 만드신 겁니까? 멸혼보는 무공만으로도 일절이거늘 굳이 강신술이나 상단전의 힘을 빌릴 이유가….”
“음…. 이것도 따로 설명해야 할 부분인가.”
주능통은 다소 귀찮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아마 지금 네 머릿속에는 멸혼보의 구결이 바뀌어 있을 텐데 그 구결 대로 신법을 운용해 봐라.”
그는 주능통이 시키는대로 해 봤다. 그러자 나는 멸혼보를 타고 나아갈 때 평소처럼 준마를 타고 쌩쌩 달리는 느낌 대신, 마치 두 발에 열 겹은 되는 철근을 맨 듯 터무니없이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내공 덕분에 어떻게든 평균적인 신법의 속도는 낼 수 있었지만 도저히 평소의 멸혼보가 아니었다.
“이,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원래의 멸혼보에서 강신술의 비중은 5할이었고 무공의 비중이 5할이었다. 딱 절반씩이었지. 그랬던 것을 네가 변형시킨 멸혼보에서는 2할 이하로 떨어뜨려서 무공의 비중을 강화시켰고 일반인도 쉽게 익히도록 만들었다.”
“으음.”
“그게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면서 10할 완벽하게 강신술에 의존하는 보법으로 뒤바뀐 것이다.”
“…….”
“극성에 달하면 무공 자체가 진화한다. 처음부터 내가 그렇게 만들어 뒀지.”
나는 황당해졌다.
그럼 기껏 극성에 이르렀는데 멸혼보를 아예 못쓰게 된 게 아닌가?! 내가 어이없어하자 주능통이 힐끔 지평선을 보더니 말했다.
“하지만 극성에 이르러 변화된 멸혼보를 제대로 쓸 수 있다면….”
투쾅!
“……!!”
나는 그 순간 주능통이 지평선 약 20리를 주파해서 왕복하는데 눈깜짝할 순간도 걸리지 않은 걸 알아챘다. 그의 속력이 내 눈에조차 거의 비치지 않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이건 도저히 인간의 신법속도가 아니었다. 여기에 비교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뇌신지혼을 성취한 이청운의 속도 정도이리라.
“진정으로 세계최고의 신법을 얻을 수 있다.”
굉장하다.
심지어 무관심하게 밤이나 까먹고 있던 신투지존조차 흥미로워하는 기색으로 주능통을 바라볼 정도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느끼며 주능통에게 말했다.
“극성 멸혼보를 가르쳐 주십시오!”
“당연히 가르쳐줘야지. 원래 그렇게 하려고 내 영혼을 멸혼보에 귀속 시켰던 거다. 후인들이 까먹을까봐 직접 나타나서 가르쳐주기로 했었어.”
“감사합니다.”
“근데, 사실 좀 가르쳐주기 망설여 지는구만….”
“네?”
“강신술의 비중을 10할로 만든다는 건 사실 재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네가 방금 말했던 낭혼의 재능 말이지. 그래서 네가 멸혼보의 극의를 얻고 지금까지 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를 얻기는 지난한 일처럼 느껴지는군.”
“…….”
내게는 낭혼의 재능이 없다.
재능이 없을 경우 얼마나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그는 망설이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나조차 예측하지 못 했기에 좀 곤란하구만.”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신투지존이 불쑥 말했다.
“이봐! 강신술의 비중을 10할로 한다는 건 그냥 술법이라는 말이잖아?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술법의 천재를 골라서 술법형식으로 익히게 하면 될 걸 뭐하러 번거롭게 무공과 접목시키고 앉아있냐? 병신이야?”
신투지존의 말은 험했지만 일리가 있었다. 그러자 주능통이 대답했다.
“아니오. 그럴 바에야 축지법이나 전수하고 말지 뭐하러 이 고생을 했겠소? 그러나 축지법은 전투에 직접 쓰기에는 너무나 좌도방문의 술법이었고 축지법을 익히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비효율적이었소. 그래서 축지법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뇌신류의 신법을 만들려 했소.”
“호오. 강신술을 도입한 이유는?”
“내가 원했던 건 축지법도 뛰어넘는 세계최고의 신법인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육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오. 인간의 하단전과 중단전에 포진한 기력을 사용해서 올릴 수 있는 속도는 명백히 한계가 있었기에 나는 상단전(上丹田)의 힘을 끌어다 쓰고 싶었소. 그러나 상단전은 본디 천재 중의 천재들이나 타고나는 영역이었소.”
그의 말에 신투지존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래서 뇌신류 최고의 신법에 5할의 비중을 주고 나머지 5할에 강신술의 비중을 줬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서 상단전에 한 발짝을 디디면서 상단전을 다루는 능력을 점진적으로 강화시키려 했단 말이군. 그렇게 하기위한 최소한의 천부적 재능이 바로 낭혼이었고.”
“그렇소.”
“그럴바에야 저 녀석처럼 강신술의 비중을 더 낮추는 게 낫지 않았냐? 지금 네가 제시했던 원형의 기준도 엄청나게 높은 걸로 보이는데.”
“그 생각은 당연히 했었소. 그러나 그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소.”
“무의미?”
주능통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평범한 고수가 될 거라면 그냥 뇌신류에 있는 무공을 아무거나 익히면 되오. 그러나 멸혼보로 세계최고를 노릴 자는 세상에 널려있는 무수한 경쟁자를 물리칠만한 압도적인 능력을 지녀야 했지. 그렇기에 천재를 기본조건으로 할 수밖에 없었지.”
“흐음. 어차피 천재가 아니고선 최고가 될 수 없으니까 그 조건은 최소한의 타협점이었다 이 말이군.”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다소 납득을 할 수 있었다.
뇌신류에는 초창기부터 무공천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므로 종사인 주능통이 저런 발상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제일문에 가까운 뇌신류에 입문하는 수많은 자들이 수재이며 천재인데 뭐하러 범재나 둔재를 위해 배려를 해 주겠는가? 다만 둔재에 가까운 내게는 씁쓸한 일이었기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주능통이 말했다.
“자네가 익힌 멸혼보는 강신술의 비중을 줄였기 때문에 잠재력의 한계가 낮네. 그 말은 동시에 내가 원래 추구하려 했던 무공과 술법의 접목… 파천일보(破天一步)의 경계에 도달하기에는 상단전의 수련이 덜되었단 말이지.”
“파천일보?”
“내 이론상의 경지지. 아까 신투지존은 10할의 비중을 술법으로 전환 하면 술법이 아니냐 했지만 그렇지 않네. 정상적으로 익혔다면 술법과 무공이 융화되어서 그 이상의 증폭 효과를 낼 수 있을 터이며, 그 상태는 무공도 술법도 아닌 별개의 경지야. 파천일보야말로 과거 사대신기의 소유자에 버금가는 힘을 발현할 수 있는 신법경지라고 생각하네.”
“…….”
사대신기의 소유자.
그들은 여동빈의 기억에서 보았던 바에 따르면 자신의 몸을 자연화시켜서 인간을 초월한 힘을 쓸 수가 있었다. 비록 오래 쓸 수 없는 단점이 있긴 했으나 아무래도 주능통은 그 경지를 재현하려고 멸혼보를 개발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말했다.
“그럼 멸혼보를 익히기 위해서는 술법수련으로 상단전을 먼저 개발하면 되겠군요. 술법을 대성하면 된다는 소리입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술법의 세계는 무공 이상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따진다. 도저히 내 후대에 무공과 술법, 양쪽에 천재적 재능을 지녔으며 낭혼의 심성까지 갖춘 기적 같은 인물이 등장할거라 생각할 수가 없었기에 멸혼보의 수련과정을 일부러 꾸며놨던 것일진대.”
“…….”
“강신술의 비중을 줄였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원하는 수준까지는 상단전을 쓸 수 없을 터인데…. 신통력도 깨우쳐야 해서.”
주능통이 계속 망설이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신투지존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제기럴! 나도 저놈한테 무영탈주 가르쳐야 하는데 별의별 잡놈이 시간 다 잡아먹네 아이고〜!! 뭐가 그리 대단한지 몰라도 할거면 하고 말 거면 말어!!”
“끄응. 어쩔 수 없지.”
신투지존의 재촉에 주능통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요결의 운용법을 알려주었다.
“요령은 지금까지 멸혼보의 요결에서 뚫어놓았던 상단전의 길(道), 즉 강신이 통하는 맥(脈)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강신을 함으로써 영육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물질의 경계를 관통할 수 있지. 몸으로 뛰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뛰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해 봐라.”
투우우웅!!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 소리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전신이 싸해지면서 그대로 전신이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 지금까지 멸혼보에서 느꼈던 수준의 가벼움이 아니라 내 실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가벼움이었다. 나는 동시에 의지를 박차고 뛰어나가서 지평선으로 향했고, 의지가 도달한 순간 내 몸 또한 도달해 있었다. 다시 돌아오자 주능통이 황당해서 입을 쩍 벌렸다.
“아… 아… 아니?! 분명 낭혼의 재능이 없었는데 어떻게 가르쳐주자마자….”
“하니까 되던데요….”
“음…. 이해가 안 가! 너의 인생여정을 좀 알려줘야겠다.”
나는 주능통에게 지금까지 배웠던 기술이나 무공, 술법 등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끈기있게 듣고 있던 주능통이 찬탄했다.
“…오오!! 멸혼보에서 부족했던 수련분량…. 그것을 온갖 보패나 칠요 등을 습득하고 영능력 수련을 하면서 채운 거였군!!”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미호한테서 법구를 받아서 수련하기도 하고 음신지력도 자주 먹고 온갖 보패와 보물, 칠요를 얻으면서 술법의 잠재력 만큼은 계속 향상시켜왔다. 그게 지금 멸혼보의 숙련도 부족을 메우고도 남는 경험치로 되돌아 온 모양이었다.
주능통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으하하, 여한이 없다! 드디어 멸혼보의 극성을 진정으로 이룬 자가 나타났구나! 네가 자랑스럽다.”
“…….”
방금 전까지 죽는 소리 했으면서….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주능통을 보다가 말했다.
“하지만 그 파천일보라는 가상의 경지는 안 느껴집니다만.”
“그건 아마 네가 모든 넋을 놓고 한 번의 달리기에 모든 생명과 영혼을 쏟는 지경에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
“확실합니까?”
“아니면 말고.”
“…….”
“후, 그럼 이만 가 보겠다. 간만에 만족스러웠군.”
“자, 잠깐만!!”
후웅
“왜 부르나?”
주능통은 사라지려다가 말고 멈칫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대신기나 당시 백련교에 대한 것 좀 말해주십시오.”
“사대신기? 그건 내 대에는 실종되어 있었고 오호십국 시대에 후량의 황자로 태어난 나는 황궁의 암투를 버리고 뇌신류에 입문했었다. 그 외에는 뭐 특별한 게 없군.”
“거짓말 마십시오. 그럼 어째서 멸혼보나 파천일보에 집착한 겁니까?
사후세계도 버리고 무공에 모든 걸 걸었으면서.”
“…….”
“종사로써 지니고 있던 사명같은 건 없었습니까? 제겐 정보가 필요합니다.”
“흐음.”
주능통이 자신의 관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사실…. 종사의 사명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내가 뇌신류를 분열시켰었다.”
“분열시켰다고요?”
“뇌신류는 전성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온갖 무공과 술법이 난립했었는데, 무인과 술법사의 충돌이 갈수록 잦아졌고 섣불리 두 가지를 함께 익히다가 망하는 문인도 많았지. 나는 종사로써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술법사의 맥(脈)을 따로 분리시켰다.”
“설마….”
“분리된 일맥은 귀혼일파(鬼魂一 派)라는 일개종파로 나뉘어졌는데 혹시 네 시대에도 이어지는지 모르겠군. 아무튼 본류와 귀혼일파의 충돌을 무마하는데만 내 일생을 다 썼던 것 같군….”
당연히 알고 있다.
귀혼일파!
그들은 뇌신류에서 무공을 주능력으로 삼지 않는 유일한 유파였다. 그들은 술법이나 도법(刀法), 잡술을 주특기로 삼았으며 가장 비밀에 싸여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나는 두근거리며 제일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해라.”
“무혼(武魂)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주십시오.”
“그게 뭔데.”
“…….”
“모르는 건 물어봐야 답할 수는 없다.”
아, 그러고보니 거의 천 년 전 사람이니…. 이청운의 오대 선조때부터 무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면 모를 수밖에 없겠구나. 나는 이 질문을 해봤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주능통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말했다.
“멸혼보의 경지를 보여준다면 귀혼일파 또한 네게 진심으로 복종할 것이다….”
주능통이 사라지고 나자, 신투지존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끝났냐?”
“…네.”
“쳇.”
신투지존은 뭐가 불만인지 한동안 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안 되겠어. 영 자존심이 상해서 못 참겠군.”
“네?”
“무영탈주의 전수는 됐다. 내가 강호에서 활동할 때 무림제일의 신속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솔직히 무영탈주는 네 멸혼보보다는 못한 무공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에 내 진정한 비기를 알려주마.”